경주 시내․보문호․불국사로 떠나는 벚꽃여행
"봄바람 흩날리면, 함께
달려요!"
춘광사설이라고 했던가. 영화 <해피투게더>의 또 다른 제목이던 이 글자는 '잠깐 비치는 봄 햇살'을 뜻한다. 기나긴 겨울을 넘어
찾아온 길지 않은 계절 봄, 그리고 그가 품은 찰나의 햇살. 따뜻하지만 영원하지 않고 너무 짧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순간의 소중함.
봄과 사랑, 그리고 청춘을 얘기할 때 '춘광사설' 만큼 잘 어울리는 표현이 또 있을까 싶다. 꽃비를 맞으며 말없이 흘러가는 섬진강변과 더불어
'봄날'의 쌍두마차로 꼽히는 천년 신라를 품은 경주를 찾았다.
서천교 주변 만개한 벚꽃을 즐기는 상춘객들
꽃비 내리는 경주의 봄은 숨 쉬는 동안은 잊지 못할 것 같은 첫사랑과 닮았다. 오래도록 끊임없이 생각이 나서 애달프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어쩌다 문득 생각나는 첫사랑처럼. 둘은 많이도 닮았다. 그래서 봄이 오면 우리는 꽃을 기다린다. 봄날의 정점을 알리는 꽃들을 보며
언젠가 우리에게도 있었던 '봄날'을 기억해내기 때문이다. 미처 준비도 하기 전 빨리 찾아온 이번 봄날, 신기루 같은 봄날을 품은 경주로 가보자.
빼놓을 수 없는 경주의 봄날
서천 주변 벚꽃 풍경
[왼쪽/오른쪽]서천교에서 바라본 풍경 / 벚꽃 만개한 미추왕릉 앞은 상춘객들의 촬영 포인트
경주도 마찬가지였다. 때 이른 따뜻한 날씨로 전국 방방곡곡은 이미 꽃물결. 한 달 전쯤 꽃 축제 날짜를 확정한 지역마다 난리가 났다.
축제는 시작도 전인데 이미 꽃은 만개했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축제 일정을 변경하기에는 빠듯하니 그야말로 진퇴양난. 그때문일까, 올해는 경주에서
벚꽃축제가 따로 없다.
축제를 기다리던 이들에게는 좀 아쉽지만 그래도 어찌하랴. 아쉬운 마음은 이 봄이 가기 전 어디로든 꽃구경
나서는 것으로 대신하자. 철쭉과 튤립, 장미 그리고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야생화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기사가 소개될 즈음이면
아마도 경주는 벚꽃 물결로 일렁일 것이다. 불국사 왕벚꽃은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있으리라. 그리하여, 벚꽃잔치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경주의
봄날을 함께 하고 싶어 소개한다. 경주 벚꽃은 경주 시내에 만개한 후 보문호를 지나 불국사 왕벚꽃으로 이어진다.
경주 시내 제일 먼저 만개한 벚꽃…김유신장군묘와 대릉원 중심으로
경주 시내가 가장 먼저 만개한 벚꽃들이 꽃비를 흩날릴 것이다. 보문호 자락도 만개해 상춘객들을 맞이한다. 그러니까 벚꽃이 만개했다는 지역을
찾아도 일주일 전후로 벚꽃 구경을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고장이라도 지대에 따라 온도가 다르고 그에 따라 만개 시기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날씨라도 추워진다면 꽃들이 움츠리는 덕분에 꽃구경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김유신장군묘에서 나가는 방향의 벚꽃길
만개한 벚꽃을 품은 대릉원 지구
경주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자전거를 한 대 빌렸다. 하루에 7000원, 사양이 좋은 것은 1만원이라고 했다. 보문호 마라톤 대회로 차량으로
이동하기는 어려울 듯 했다. 또 경주만큼 자전거로 돌아보기 좋은 고장도 없기에 고민없이 자전거 여행을 선택했다. 본격적인 벚꽃 하이킹 전,
관광안내소에 들러 경주 벚꽃 투어 포인트 동선을 짜봤다.
경주 시내에서는 서천교를 건너 서천을 따라 김유신장군묘(사적
제21호)까지 이어진 길, 그리고 대릉원과 월성을 중심으로 둘러보기로 했다. 시내는 이미 만개한 벚꽃들이 조금씩 꽃비를 흩날리고 있었다. 머리를
써서 자전거를 빌렸지만 차량은 물론이거니와 도보로 이동하는 상춘객들도 넘쳐나 자전거는 짐이 됐다. 그래도 김춘추․선덕여왕과 함께 통일신라의
주역으로 활약한 김유신장군이 잠든 묘를 보고 내려오는 그 길, 벚꽃에 안긴 그 길을 달려 내려오는 순간 모든 것은 잊혀졌다. 대릉원에서는 신라
최초의 김(金)씨 왕 김알지가 잠든 미추왕릉(사적 제175호) 주변의 벚꽃도 아름답다. 신라는 박․석․김의 성을 가진 왕들로 천년 가까이
이어졌다. 연인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월성 북쪽에서 바라본 첨성대. 유채꽃은 아직이다
[왼쪽/오른쪽]경주 왕궁 월성과 신라인들의 고향 남산을 잇던 월정교.
2013년 복원했다 / 계림에서 월성으로 이어지는 길도 만개한 벚꽃이 상춘객들을 반겨준다
대릉원에서 경주향교로 향하는 길, 교리김밥의 기나긴 줄이 상춘객들을 반긴다. 동부사적지와 김알지의 탄생 설화를 품은 계림을 지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신라 왕성의 터, 월성으로 향한다.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이야기를 품은 월정교도 보인다. 신라 왕족들의 터전 월성과 남산을
잇던 월정교가 보인다. 경주향교 안에 있는 우물은 요석공주 때부터 있었단다. 역사가 더해지니 그냥 지나칠 것이 없다. 여기서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아들, 이두를 집대성한 설총이 태어났다.
가만, 딱히 벚꽃 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경주 전역이 온통 벚꽃
물결이다. 월성에서 첨성대를 바라보자 노란 유채꽃이 이제 막 꿈틀거리고 있다. 참, 내물왕릉과 계림은 자전거와 스쿠터 입장 금지.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동궁과 월지(안압지)도 기억해두자. 첨성대, 대릉원과 더불어 야간개방을 한다.
보문호 지나 불국사 벚꽃이 뒤이어 만개
보문호로 향한다. 경주 최고의 관광단지로 꼽히는 보문호를 벚꽃이 와락 감싸 안고 있다. 자전거로 돌아도 좋고, 막히지만 않는다면 드라이브
코스로도 으뜸이다. 세련된 숙박시설도 이곳에 모여있다. 한 가지 더, 봄날의 경주를 연인과 찾았다면 보문호 주변의 커피집에서 차 한잔 하는
센스도 잊지 말자. 정해진 시간 내에 엉덩이가 부르트도록 자전거를 타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보문호의 벚꽃에 취해 한 박자 쉬어가는 여유를
누려보자. 자전거를 세워두고 잠시 걸어보는 것도 좋다.
경주 시내에 이어 벚꽃이 만개하는 보문호
해가 뜰 무렵의 보문호 벚꽃
불국사까지는 자전거로 이동하기 어렵다. 경주 시내와 보문호는 하루정도 주어진다면 자전거로 여유있게 돌아볼 수 있다. 석굴암과 함께 '불교의
나라'였던 신라의 왕경 경주를 보여주는 불국사는 '지상에 세운 부처님의 나라'라는 뜻을 품고 있다. 아직 석가탑은 해체 복원 작업 중이다.
다보탑(국보20호)이 아쉬움을 달래준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벚꽃들이 사람들을 반긴다.
불국사 왕벚꽃은 우리나라 종으로 보통
벚꽃보다 잎이 큰 편이다. 시내에 이어 보문호를 채운 벚꽃이 만개하면 가장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동안 본 벚꽃과는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반긴다. 불국사 왕벚꽃을 벚꽃의 백미로 꼽는 이들도 있을 정도. 한번 본 이들은 잊지 않고 다시 찾는단다. 아직 만개하지 않은 이곳의
왕벚꽃들이 속삭인다. 우리의 봄날이여,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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