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년 만력 15년, 선조 20년(1587년)
봄 2월. 왜적이 흥양(興陽) 경내에 있는 손대도[損竹島]를 침범했는데, 녹도만호(鹿島萬戶) 이대원(李大元)이
싸우다가 패하여 죽다. 이에 앞서 소수의 왜적이 탄 수 척의 배가 본도(本道)의 바다를 지났는데, 이대원은
일이 다급했기 때문에 미처 전령을 보내 보고하지 못하고 독자적으로 잡았었다. 좌수사(左水使) 심암(沈嵒)이
그 일에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는데, 이때에 손대도에 와서 정박하는 왜적의 배가 무척 많아지자,
심암은 이대원을 척후로 내세워 앞장서서 교전하게 하고 자기는 수군을 거느리고 관망하다가 구원해 주지
않고 퇴각해 버리니, 이대원은 고군(孤軍)으로 역전(力戰)하다가 죽은 것이다. 심암은 군법을 어겼음을 스스로
알고, 왜적의 세력이 치열하게 뻗어나므로 내지(內地)의 군사를 징발해야 한다고 거짓 장계를 내다.
○ 신립(申砬)과 변협(邊協)을 본도(本道)의 좌ㆍ우 방어사로 삼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본도에 달려 내려가게
하고 감사(監司) 홍여순(洪汝諄)은 나주(羅州)에서 각 읍에 명령을 전하여 군대를 동원해서 전지(戰地)에 가게
했으며, 남원(南源) 등지의 관(官)들은 순천(順天)에 나아가 진을 쳤고 전주(全州) 등지의 관들은 낙안(樂安)으로
나아가 진을 쳤으며, 우도(右道)의 각 읍은 모두 바다 연변으로 나아가 진을 쳤는데, 5, 6일이 지나도 바다에서
는 왜적이 왔다는 경보가 없어서 각 진의 군사들을 해산시키다.
○ 조정에서 심암의 실상(實狀)을 듣고 체포하여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고 뭇사람들에게 보이다.
○ 주청사(奏請使) 유홍(兪泓)을 명 나라 서울로 보내어 《대명회전(大明會典)》을 보내달라고 청하게 하다.
가을 9월. 함경도의 시전(時錢) 번호(藩胡)가 도적 오랑캐들을 모아 경흥(慶興) 경내에 있는 녹둔도(鹿屯島)에
들어와서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약탈하곤 했는데, 육진(六鎭)의 장수들이 그것을 막아내지 못하다.
작년에 육진에서 이 섬에 둔전(屯田)을 마련하고 수백 호의 백성을 옮겨다 놓았었는데, 이때에 와서 도민(島民)
이 다 함몰된 것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차주환 신호열 (공역) |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