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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골프아카데미 원문보기 글쓴이: 정도 (손광수)
♣♣ 전우가 남긴 한마디 -허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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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글쟁이들! 왜 김대중 때문이라고 떳떳이 말하지 못하는가? 현직 대통령에 대해 온갖 험한 소릴 쏟아내는 언론들이 죽은 김대중이 그렇게도 겁나는가?
證人(회원)
영화 '연평해전'이 개봉된 후 지금까지 각 매체마다 이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관객 수를 세는 보도에서부터 "'월드컵 세대', '연평해전'에 손 내밀 때다"라는 칼럼(오늘자 조선일보)까지 여러 기사와 논평들이 나왔다.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가 당시 해전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 병사들을 제대로 추모하지 않았다는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많다. 또한 이에 대한 변명으로 '월드컵 열기'를 탓하는 의견들이 많다. 1999년 6월 (1차)연평해전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괴 경비정의 선제포격으로 시작되었다. 적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던 우리 해군의 즉각적인 반격으로 북괴 어뢰정 1척을 격침시키고 경비정 5척을 대파하는 완승을 거뒀다. 이 전투에 대해 김정일에 못지않게 속 상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김대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를 기화로 북괴군의 안전을 위하여 당장 우리 해군의 교전수칙을 바꿔 버렸다. 이때 바뀐 '4대교전수칙'을 보자. <첫째, 북방한계선(NLL)을 지켜라, 둘째, 우리가 먼저 발사하지 말라, 셋째, 상대가 발사하면 교전수칙에 따라 격퇴하라. 넷째, 전쟁으로 확대시키지 말라’>
첫번째 조항에서 지키라 해 놓고 두 번째부터 마지막 네 번째까지의 수칙은 이를 지키지 못하도록 해놨다. 상대가 먼저 발사(포)하도록 기다리다 맞아 죽은 뒤에 무슨 수로 격퇴하나? 요행히 살았다고 해도 또 무슨 수칙을 지키느라 허둥지둥대야 하나? 죽느냐 사느냐의 긴박한 상황에서 말이다. 전쟁으로 확대하지 말라는 것 역시 대응하지 말고 그냥 맞아죽으라는 말 아닌가? 결국 敵 함정이 넘어오면 몸(배)으로 막다가 적이 총이나 포를 쏘면 그냥 맞아 죽으라는 명령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총잡이 악당을 체포하러 나가는 보안관에게 판사가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러나 먼저 쏘면 안 된다'고 명령한 격이었다.) 팔려있다 싶자 복수전에 나선 것이다. 어쩌면 김대중 비선라인에서 '우리 해군은 교전수칙을 바꿔 공격을 못하도록 해 놨으니 알아서 공격하라'며 사전에 북괴에 귀띔을 해줬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북괴는 선제 기습공격을 해왔고, 우리 해군은 전사자가 속출하고 경비정이 침몰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대기하고 있던 다른 함정들이 반격에 나섰다. 적군이 궤멸될 찰나, 그러나 어디선가 공격중지 명령이 하달되어 마지막 승리마저 제한되고 말았다.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는 전사자들을 내버려 둔 채 월드컵 경기 결승전을 보겠다며 일본으로 가 버렸다. 전사자 영결식장에는 정부와 군 고위 인사 중에는 해군참모총장 외에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일반인들의 조문까지 막았다.> 이게 연평해전을 대하는 본질이다. 이는 월드컵 열기와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데 '월드컵 열기 때문에 제대로 추모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따위의 변명이 얼마나 가증스런 일인가? 끝까지 전사자들을 우롱하는 짓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시시콜콜 따지며 온갖 험한 소릴 쏟아내는 언론들이 죽은 김대중이 그렇게도 겁나는가? 서두에 꺼낸 조선일보 칼럼을 보다가 하도 속이 뒤집혀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김대중 XXX'가 절로 나오는…(조갑제 선생 버전)>처럼 격앙된, 또는 적어도 <그때 그 대통령, 대한민국 대통령이 맞았나?> 뭐 이런 제목 달아야 하는 게 아닌가?
이 비겁한 글쟁이들아! (월드컵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자기 자식이 죽어도 내버려 두고 월드컵 경기 구경 갈 것인가? |
―참수리 6용사의 유가족들도 지금까지 정부에 서운한 점이 많더라. 사건 당시 전사자 빈소에 일반인들 조문 못하게 막았다. 유족들과 몇몇 군 관계자들만 왔다 갔다.
고(故) 조천형 중사 따님은 지금쯤 초등학생 되었을 텐데…. 정말 그때 마음 아팠다. 만약 누군가 나라를 지키다 숨졌을 때, 그 자녀의 친구들이 훗날 ‘너희 아버지는 영웅이셨어. 훌륭한 아버지를 둔 거야’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유가족들에게 더 나은 혜택들을 보장해준다면 나도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몸을 던질 것 같다.
제2연평해전도 그렇게 명예를 드높여 줬다면, 자존감을 높여줬다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가족이 한을 풀지 못하고, 국가 상대로 소송 걸고 그럴까? 당시 정부는 대단히 잘못한 거다. 응당 해줘야 할 것을 안 해준 것이다.
유가족이 홀대받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정부를 위해서라면 조금도 다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북한이, 간첩이 원하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이 나라 젊은이들이 조금씩 그런 생각 먹게 하는 거다. 그래서 결국 안보가 무너지게 하고, 분열되게 하는 것이다.” ‘유진아, 네가 태어나던 해에 아빠는 이런 젊은이를 보았단다’라는 수기를 썼다. 10주기가 다가오면서 딸이 그 수기를 찾아 읽었다. ‘총알이 날아오면 피하고 숨으면 되잖아. 근데 왜 아프게 이렇게 죽게 됐어?’라고 묻더라. 그래서 ‘유진아, 아빠가 80일간 지켜본 오빠(박동혁 병장)는 총탄 포탄이 막 날아다니는데, 다른 죽어가는 친구들 살리려고 막 뛰어다녔어. 되게 용감하게 싸웠대. 왜 그랬을까?’라고 되물었다. 딸이 ‘그 오빠들이 도망갔으면, 나쁜 사람들이 더 넘어와서 우리 총 쏘고 막 죽였을 테니까’라더라. 그게 안보 아닌가. 어떤 이들이 최전선에서 희생하고, 지키고 있으니까 우리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다는 거…. 그게 안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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