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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랑의 '물보고 흐르면'에 실린 정서는 역설적이다. 흐르는 물, 하늘의 별을 느끼는 마음이 차라리 늙어 버렸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비애를 노래한다. |
물보면 흐르고/ 별보면 또렷한/ 마음이 어이면 늙으뇨.// 흰날에 한숨만/ 끝없이 떠돌던/ 시절이 가엽고 멀어라.// 안쓰런 눈물에 안겨/ 흩은잎 쌓인곳에 빗방울듣듯/ 느낌은 후줄근이 흘러 흘러가건만// 그밤을 홀히앉으면/ 무심코 야윈 볼도 만져 보느니/ 시들고 못피인꽃 어서 떨어지거라.// 김영랑 '물보면 흐르고'
김영랑은 단기 4235년(서기 1902년) 음력 12월 18일 전남 강진의 500석 지기 지주 김종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윤식. 그해 8월 6일 평북 구성에서 태어난 김소월과 동갑이다. 시인은 14세에 휘문의숙에 입학했는데 재학 중 부인과 사별했다. 3·1운동 때는 '독립선언문'을 감춰 강진으로 가다가 잡혀 옥고를 치렀다. 일본 청산학원 영문과에 다닐 때 관동지진 때문에 귀국해 김귀련과 재혼했는데 9·28수복 때 유탄에 맞아 절명했다. 그때 나이 48세였다.
그는 음악에도 정통했다. 동·서양 음악은 물론 북과 거문고 등 악기에도 심취했다. 그러한 음악적 재능이 영랑 특유의 아름답고 섬세한 언어 감각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운 봄길 위에'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 주옥같은 시를 발표했다. 영랑의 시는 화사하면서도 애수에 찬 서정성을 바탕에 깔고 있다. 정서를 순화해 순수함 위에 섬세한 상상의 세계를 그려낸다.
'물보면 흐르고/ 별보면 또렷한/ 마음이 어이면 늙으뇨'. 이 첫 연은 정서적 인식작용을 시화하면서 시인의 의중을 투입한다. 흐르는 물을 바라볼 때 물이 흐르는대로 마음도 따라 흐르고, 별의 반짝임 따라 마음도 반짝이는 모습을 그린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느낌을 유발하는 그 마음이 어찌하면 늙을 것이냐 하며 마음에 대한 부정적인 바람을 토로하고 있다. '마음도 어서 늙어버렸으면 좋겠다'라며 비애를 표출한다. '물보면' 따라 '흐르고' '별보면 또렷한'이라는 표현은 심미적이다. 그 정서를 유발하는 마음이 늙기 바라는 것은 비애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반영한다. 그 이유는 다음 연에서 살펴볼 수 있다.
'흰날에 한숨만 끝없이 떠돌던' 가여운 시절에서 '흰날'이란 순수했던 시기를 말한다. 순수하고 청순하여 정서가 때 묻지 않았기에 감정을 토로함에 있어 망설임이 앞서지 않았을 것이다. '한숨'이란 슬픈 감정에 억눌린 고비를 만나거나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나오는 현상이다. 정서의 정착에 실패하고 '떠돌아' '가엽고' 아득한 시절을 둘째 연에서 회상하고 있다. 소년 시절에 일찍 아내를 잃었던 일 때문이었을까? '한숨만' '떠돌던' 현실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다만 메마르고 답답한 시절이 있었기에 포기하는 마음으로 늙기만을 바랐다고 보인다.
'한숨'의 시절 지나 지금은 '안쓰런 눈물에 안겨' 후줄근이 젖어 흘러가고 있지만 '가여운 그 옛 시절' 회상하며 홀로 앉으면 '무심코 늙어 야윈 볼도 만져 보느니' 피지 못하고 시든 꽃 어서 떨어지라고 탄식한다. 물보고 별본 느낌, 한숨 쉬며 가엾다고 느끼는 감정, 눈물 젖어 후줄근이 흘러내리는 감정, 못 핀 꽃 어서 떨어지고 싶다는 상념 등은 마음의 그림자다.
마음은 화가 같아서 그리지 못할 것이 없다. 서산대사가 봉성이란 곳을 지나며 닭 울음소리 듣고 깨달아 대장부 할 일 다했노라는 시가 있다. ('한국불교전서' 7쪽) 영랑의 이 시에 담긴 마음은 시정의 순화에 있고 서산대사의 시에 나오는 마음은 완연한 대장부의 기개다. 대오각성의 마음인 것이다.
천룡사 주지
첫댓글 붓다의 길따라...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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