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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1-5 설교 요약: "거룩한 부르심의 시작"
인생을 살다 보면 "이제 내 인생은 여기까지인가 보다"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꿈은 희미해지고,
남은 것이라고는 낡은 지팡이 하나뿐인 것 같은 광야의 시간 말입니다.
80세의 모세가 바로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이집트의 영웅이 아니었고,
그저 장인의 양 떼를 치는 이름 없는 목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을 때, 모세는 당혹스러웠습니다.
4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그래서 "내가 누구이기에 그 일을 하겠습니까?"라며 뒷걸음질 칩니다.
이 고백은 겸손을 넘어선 자기 비하이자 절망의 표현이었습니다.
시편 90편(모세의 기도)에서 인생을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표현했듯,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 부족함의 빈자리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는 신성한 동행으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왜 굳이 힘 빠진 80세의 모세를 선택하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모세가 80세라는 고령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이유는 ?
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기간 동안 모세가 겪은 **'낮아짐'과 '훈련'**의 과정이 핵심입니다.
1. 인간의 혈기를 빼는 과정 (광야의 40년)
모세는 40세 때 이집트의 왕자로서 자신의 힘과 지혜로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살인과 도피였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실에서 자랐으나, 성인이 된 후 자신의 동족인 히브리인들이 고된 노동을 하는 현장을 살피러 나갑니다. 이때 한 이집트 감독관이 히브리 노예를 무자비하게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모세는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뒤,
우발적 혹은 정의감에 의한 행동으로:이집트인을 쳐죽이고 사체를 모래 속에 파묻어 감춥니다.
다음 날, 서로 싸우는 두 히브리인을 말리려던 모세는 오히려 그들로부터 **"누가 너를 우리의 통치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네가 이집트인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라는 반문을 듣게 됩니다.[동족의 외면:
이 사실은 곧 이집트 왕(바로)의 귀에 들어갔고, 바로는 모세를 죽이려 명령을 내립니다. 모세는 이집트를 떠나 동쪽의 미디안 광야로 급히 몸을 피합니다.
광야에 도착한 모세는 우물가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이드로)의 딸들을 도와줍니다.
이 인연으로 모세는 르우엘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아들 게르솜을 낳고, 40년 동안 장인의 양 떼를 치는 목자로 지내게 됩니다.
모세의 인생 전반기 40년이 "I am something"(나는 대단한 사람이다)을 배우는 시기였다면,
미디안 40년은 아무 성과 없어 보이는 40년의 반복적인 일상을 통해**"I am nothing"(나는 아무것도 아니다)**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우리 인생의 '광야 시기'는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귀하게 쓰시기 위해 빚으시는 시간입니다."
80세가 되었을 때
모세는 스스로를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고백할 만큼 모든 자신감을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
2. 광야 학교에서의 훈련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며 보냈습니다.
왕궁의 화려함과는 정반대되는 척박한 환경에서의 생활은 훗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40년 광야 길을 걸어야 했던 모세에게 필수적인 지리적, 심리적 훈련이 되었습니다.
지리적,‘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훗날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지나갈 '사역의 현장'을 미리 답사한 셈입니다.
광야 어디에 오아시스(물)가 있는지,
어디에 양 떼를 먹일 풀밭이 있는지,
어떤 경로가 이동에 용이한지를 완벽하게 파악했습니다.
낮의 뜨거운 열기와 밤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는 훗날 백성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들을 광야에서 생존하게 할 실질적인 지식이 되었습니다.
심리적 훈련’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양들을 돌보며 분노와 혈기를 다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모세의 이러한 훈련 과정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인생의 광야' 역시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시간이 아니라,
더 큰 사명을 위해 우리를 **숙련(Expertise)**시키고 **연단(Character)**시키는 시간임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모세를 향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수기 12:3)고 평가합니다.
여기서의 온유함은 성격이 유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잘 길들여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수백만 명의 불평하는 백성을 이끌기 위해서는 자신의 혈기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할 수 있는 성품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를 들어 쓰시기보다,
스스로 약하다고 고백하는 자를 통해 일하기를 즐겨하십니다.
80세의 노인이 되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모세를 선택하심으로써, 인간적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시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시편 90편(모세의 기도)에서 인생을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표현했듯,
모세는 이미 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상태였습니다.
이때 부르신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모세의 전략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계획임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헬라어 '프라위테스')은 흔히 야생마를 길들일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힘이 넘치는 야생마가 들판을 마음대로 뛰어다닐 때는 그저 '위험한 짐승'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주인의 손에 길들여져서, 주인이 가자고 하면 가고 서라고 하면 설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온유한 말'**이 됩니다.
그 말은 힘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강력한 힘이 '주인의 통제 아래(Under Control)' 있게 된 것입니다. 80세의 모세는 기력이 없어서 순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강한 혈기를 하나님의 통제 아래 둔 '길들여진 장수'가 되었기에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의 기적이 모세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권능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모세를 선택하신 이유는
그가 **가장 뛰어난 영웅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가장 온전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준비된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생전에 자신을 가리켜 **"나는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작은 연필에 불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연필은 스스로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쓰는 이의 손에 온전히 붙들려야만 비로소 문장을 만들어냅니다.
도구의 가치는 도구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을 쥐고 계신 분의 능력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 입니다.
어거스틴은 오죽하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 번째 계단은 겸손이다. 두 번째 계단도 겸손이며, 세 번째 계단도 겸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시 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 모세를 부르시며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장면은
단순히 그 흙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영적·문화적 배경이 담겨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임재가 땅을 거룩하게 함
'거룩(Holy)'의 본질적인 의미는 **'구별됨'**입니다.
그전까지 그곳은 모세가 양을 치던 평범한 광야의 한 지점이었으나,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심으로써 그 땅이 다른 곳과 구별된 거룩한 장소가 된 것입니다.
즉, 거룩의 근거는 장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신발'은 먼지 묻은 땅을 밟고 다니는 도구로,
세상의 부정함과 죄악을 상징합니다.
당시 귀인이나 주인은 신발을 신었지만,
종이나 노예는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다녔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주님의 말씀에만 따르는 종입니다"라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는 이제 네 능력과 방법으로 살던 광야의 삶을 멈추고, 나의 거룩한 사역을 위해 너 자신을 온전히 내어맡기라"**는 강력한 초대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이제 내 백성의 지도자가 될 것이나, 본질적으로는 나의 종이다"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십니다.
영국의 위대한 총리였던 윌리엄 글래드스턴(William Gladstone)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막강한 권력자였지만, 주일이면 어김없이 교회 학교에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한번은 한 기자가 "대제국의 총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번거롭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영국의 총리이기 이전에,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종입니다. 총리의 직분은 잠시 맡은 것이나, 하나님의 종이라는 신분은 나의 영원한 본질입니다."
그는 세상의 지도자라는 화려한 신발을 신고 있을 때도,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신을 벗은 종'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네 인생의 운전대를 나에게 맡겨라"는 주권의 양도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처음에 "내가 누구이기에 가리이까"라며 거절했지만,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으로 그의 부족함을 채우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누군가를 쓰시는 기준은 '능력의 유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가'입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신을 벗었던 사건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80세의 노인이 되어 자신의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서 있던 모세처럼,
우리 역시 인생의 광야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대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는 기준은
우리의 **'남은 기력'**이나 **'쌓아온 경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입이 뻣뻣합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자기 부인'**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신발을 벗고 맨발로 주님 앞에 설 때,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리더'가 아닌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십니다.
짐 엘리엇은 명문 휘튼 대학교를 졸업한 재원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그가 미국에서 큰 목회자가 되거나 학자가 되길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기며 에콰도르의 식인 부족이었던 '아우카(Auca) 부족'에게 가기로 결심합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못한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what he cannot lose.)
1956년, 짐 엘리엇과 4명의 동료 선교사는 외부인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던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쿠라라이 강변에 착륙했습니다. 그들은 수개월 동안 비행기에서 선물을 떨어뜨리며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노력했습니다.
1956년 1월 8일, 아우카 부족 전사들이 창을 들고 그들을 습격했습니다. 당시 짐 엘리엇과 선교사들에게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권총과 소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이유: "우리는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지만, 저들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해 지옥에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짐 엘리엇은 29세의 나이로 가슴에 창을 맞고 강가에 쓰러져 순교했습니다.
세상은 이들의 죽음을 "이 무슨 낭비인가!(What a waste!)"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기적은 그 후에 일어났습니다.
짐 엘리엇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과 동료의 아내들은 남편들이 죽은 지 2년 만에 어린 딸들을 품에 안고 다시 아우카 부족을 찾아갔습니다.
부족원들이 "당신들은 누구인데 우리를 위해 약을 가져오고 도와주느냐"고 묻자, 그녀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죽인 그 사람들의 아내입니다. 하지만 우리 뒤에 계신 하나님이 당신들을 사랑하시기에 우리도 당신들을 사랑하러 왔습니다."
이 사랑에 감복한 아우카 부족은 복음을 받아들였고, 짐 엘리엇을 창으로 찔렀던 **민카야니(Mincayani)**는 후에 부족의 목사이자 장로가 되었습니다. 짐 엘리엇의 아들은 자신을 아버지를 죽인 그 사람의 손에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40년을 견디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듯,
결국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