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는 고양이 / 김상미
어디에나 고양이는 있다
4천만 년 전 화석에도 있고
우리 집 담벼락에도 있고
너와 헤어진 골목, 그 어둠 속에도 있다
고양이는 이미 태어나면서 진화가 끝난
더 이상 진화할 필요가 없는
완벽한 동물
나는 어디에나 있는 고양이들이 좋다
울창한 숲속, 공동묘지 앞, 잡풀이 무성한 텅 빈 공장,
어느 유명 여배우의 침실, 잘 나가는 소설가의 서재,
천재 작곡가들의 음표, 안개 자욱한 부둣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이나 시집......
그곳이 어디든, 어디에 있든 고양이는,
고양이의 눈은 눈부시게 빛난다
신이 분노하고,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세상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도
모두가 사탄의 자식이라 돌팔매질을 하고
끈질긴 저주의 올가미가 평생을 따라다녀도
고양이는 개의치 않고 모두를 비웃듯
가장 아름다운 여신 프레이야의 마차를 끌던 악마고양이들처럼
유유히 제 갈 길을 간다
나는 어디에나 있는 그런 고양이들이 좋다
사람들과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어도
언제나 살아 있는 심장에 불을 켜고
북쪽 창을 열면 그 아래에서 야옹!
서쪽 창을 열면 그 위에서 야옹!
세상 모든 장소의 혼령이기나 한 듯 그르렁거리며
어디서나 나타나고 어디에나 있는
그 도도하고 위협적인 카리스마!
누구도 완전히 소유한 적 없고 지배한 적 없는
오, 놀라울 정도로 독립적이고 신비로운 고양이
나는 그 고양이들이 좋다
그 커다란 두 눈이, 靈氣 가득한 두 눈이
뚫어져라 나를 응시하거나
타오르듯 사납게 뒤돌아볼 때면 더욱더!
―계간『시와 표현』 (2015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