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의 발자취
미르크우드 숲의 깊은 곳에서
35년 전, 제가 11살이었을 때 《호빗》을 처음 읽었습니다. J.R.R. 톨킨이 그려낸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물론 호빗들이 등장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섬세한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어 몇 시간씩이나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달, 저는 이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번에는 11살 된 제 아들과 함께 챕터별로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우리 둘 모두에게 그야말로 순수한 즐거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호빗』을 읽으니, 어렸을 때 완전히 놓쳤던 부분들을 발견했습니다. 톨킨은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모험 소설을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 용사이자, 단 하루 만에 거의 6만 명의 영국 군인이 전사한 솜 전투의 생존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한 세대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악이 실재하며, 문명은 취약하며, 선한 남녀들이 일어나 신과 인류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사라질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톨킨은 1937년 9월에 『호빗』을 출간했습니다. 당시 히틀러는 독일 총리였으며, 날마다 권력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시민권을 박탈한 뉘른베르크 법이 제정된 지 2년이 지났습니다. 유럽 전역의 수백만 유대인들은 곧 그들을 통째로 삼켜버릴 어둠 속으로 빠져들 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호빗』은 우리 세상만큼이나 무서운 세상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과 함께 이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다른 어떤 장보다도 한 장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빌보와 드워프들이 어둡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소름 끼치는 미르크우드 숲을 가로지르는 위험한 여정이었습니다.
광활한 숲 속에서 길을 잃고 굶주린 빌보와 친구들은 절망에 빠집니다. 식량은 바닥났습니다. 사방이 검고 끝없이 펼쳐진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드워프들은 자신들이 지정한 ‘도둑’이자 만능 해결사인 빌보에게, 찾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나무에 올라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재촉합니다.
빌보는 팔이 아플 때까지 올라갔고, 마침내 나무 꼭대기를 뚫고 탁 트인 공기와 햇살 속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사방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가 본 광경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마지막 희망마저 앗아갔습니다.
“아무리 멀리 바라보아도 어느 방향으로든 나무와 나뭇잎의 끝을 볼 수 없었습니다. 햇살을 보고 바람을 느끼며 잠시 가벼워졌던 그의 마음은 다시 발끝까지 가라앉았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도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시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드워프들에게 이 우울한 소식을 전합니다. “숲은 사방으로 끝없이, 끝없이, 끝없이 이어져 있어요!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상대로 드워프들은 그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화자가 나서서 말합니다. “사실, 제가 말씀드렸듯이 그들은 숲의 가장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보가 눈치만 좀 찼더라면, 그가 올라갔던 나무는 그 자체로 키가 컸지만 넓은 계곡 바닥 근처에 서 있었기 때문에, 나무 꼭대기에서 보면 사방의 나무들이 마치 커다란 그릇의 가장자리처럼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였고, 숲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절망에 휩싸여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
빌보와 그의 친구들은 숲 가장자리에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거의 다 온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끝자락에 다다르기 직전, 그들은 희망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이것은 이야기 속에서 톨킨이 자신의 주인공인 빌보를 비판하는 이례적인 순간입니다. 하지만 이 비판이 공정한 것일까요? 빌보는 모든 것을 올바르게 했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거대한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정확히 전했습니다. 톨킨이 서 있는 위치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굶주린 불쌍한 호빗을 어떻게 탓할 수 있겠습니까?
1940년 6월 4일, 윈스턴 처칠은 영국 하원 연단에 섰습니다. 프랑스는 무너져 가고 있었고, 나치의 영국 침공은 코앞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이들은 속으로 이미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처칠은 재앙의 규모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그는 어조를 바꿨습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내가 단 한 순간도 믿지 않는 일이지만—이 섬이나 그 상당 부분이 정복당해 굶주리게 된다 하더라도, 영국 함대가 무장하고 지키고 있는 바다 건너편 우리 제국이 투쟁을 이어갈 것입니다…”
“내가 단 한 순간도 믿지 않는 일이다.” 처칠은 그 방에 있던 그 누구보다도 그 위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수년 동안 그는 영국 의회와 대중에게 나치의 위협을 경고해 왔지만,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영국이 직면한 상황에 대해 어떤 환상도 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눈으로 본 것과 그로부터 도출해 낼 수 있는 결론 사이를 엄격히 구분했습니다. 그는 나무 꼭대기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숲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끝났다고 믿기를 거부했습니다.
거의 1,900년 전인 서기 70년, 로마 황제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성전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당시까지 유대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예배 중심지이자, 하나님의 임재가 그 백성 가운데 머무르던 곳인 성전은 사라졌습니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 여파 속에서, 당대 가장 위대한 유대인 학자 네 명이 함께 도시의 잔해 속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성전의 가장 안쪽 방, 즉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렀던 지성를 바라보았는데, 그곳을 여우들이 마음껏 뛰어다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네 현자 중 세 사람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네 번째 현자인 랍비 아키바는 웃었습니다.
정중하게 표현하자면, 이는 그토록 고통스러운 광경에 대한 사회적으로 어색하고 지극히 부적절한 반응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깜짝 놀라 그를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아키바, 왜 웃는 겁니까?” 그는 그들을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왜 우십니까?”
그러자 랍비 아키바는 자신의 뜻을 설명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וְאָעִידָה לִּי עֵדִים נֶאֱמָנִים אֵת אוּרִיָּה הַכֹּהֵן וְאֶת־זְכַרְיָהוּ בֶּן יְבֶרֶכְיָהוּ׃
“그리고 신뢰할 만한 증인들, 곧 제사장 우리야와 예베레키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나를 위해 증언하게 하라.” (이사야 8:2)
이 구절은 참으로 묘합니다. 우리아는 제 1성전 시대에 예언했고, 스가랴는 제 2성전 시대에 예언했습니다. 두 사람은 수 세기나 떨어져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같은 문장에 함께 등장하는 것일까요? 랍비 아키바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토라가 두 사람의 예언을 서로 연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연결하는 것일까요? 두 예언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한쪽이 이루어지면 다른 쪽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아는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밭처럼 갈리고,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며, 성전 산은 숲 속의 산당처럼 될 것이다”(미가 3:12). 스가랴는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노인과 노파들이 예루살렘의 거리들에 앉을 것이다”(스가랴 8:4).
랍비 아키바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아의 예언이 성취되지 않은 동안, 나는 스가랴의 예언도 성취되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아의 예언이 성취되었으니, 스가랴의 예언도 반드시 성취될 것이 확실합니다.”
다른 현자들은 외쳤습니다. “아키바여, 당신이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아키바여, 당신이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세 현자는 여우들을 보았고, 폐허를 보았고, 완전한 황폐함을 보았으나—그 너머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 파괴가 온전한 이야기였고, 마지막 장이었으며, 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울었습니다.
랍비 아키바도 똑같은 폐허와 똑같은 여우들, 똑같은 황폐함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이 보지 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눈앞의 파괴가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비록 당장은 볼 수 없었지만, 그는 그 파괴 너머에 위로와 기쁨, 그리고 구원이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톨킨이 빌보에게 제기한 비판입니다. 빌보의 눈이 그를 속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빌보는 눈물을 흘리던 세 현자와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내가 보는 것은 이것이다”에서 “사물은 이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이럴 것이다”로 한 번에 거대한 도약을 해버린 것입니다. 그는 끝없이 펼쳐진 나무들과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숲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바로 그 도약이 오류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시야를 제한하는 계곡에 서 있다는 사실, 지형이 그릇 모양이라 숲 속의 어느 나무에서 보더라도 숲이 끝없이 보인다는 사실, 그리고 숲의 가장자리가 자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사람—혹은 호빗—의 오류입니다.
유대교 전통은 최종 구원이 임박하기 직전의 시대를 ‘이크베타 드 메시아(ikveta d’Meshicha , עקבות משיחא)’—문자 그대로 “메시아의 발자취”—라고 묘사합니다. 현자들은 이 시기를 명백한 승리의 시기가 아니라, 혼란과 도덕적 붕괴, 그리고 어둠이 완전하고 영구적이라는 압도적인 느낌이 지배하는 시기로 묘사합니다. 메시아의 발자취는 승리의 행진 소리와는 다릅니다. 그 소리는 마치 미르크우드 숲과 같습니다.
현자들은 우리의 모든 본능에 반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둠이 점점 더 짙어지는 것은 구원이 멀리 있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만의 어둡고 무서운 미르크우드 숲을 헤매고 있습니다.
반유대주의가 미국 전역과 유럽을 휩쓸며, 명문 대학에서 도시의 거리, 정부 청사에 이르기까지 마치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반유대주의자들이 미국 주요 도시에서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해할 수 없게도 이란의 무라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정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문명의 적들은 목소리가 크고 조직적이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숲은 끝이 없어 보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10월 7일 그 어두운 아침 이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적들을 하나씩 차례로 무찔렀습니다. 그 끔찍했던 첫 몇 시간 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재앙처럼 보였던 상황이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숲의 입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대편에 거의 다다랐습니다. 단지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는 그곳을 볼 수 없을 뿐입니다.
빌보의 실수를 반복하지 마십시오. 랍비 아키바가 보았던 것을 보아야 할 때, 세 현자와 함께 울지 마십시오.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들만 보고 탈출구가 없다고 단정 짓지 마십시오.
빛은 그곳에 있습니다. 구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계속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머지않아 그곳에 도달할 것입니다.
By Rabbi Elie Mischel (Rabbi of Congregation Suburban Torah in Livingston, NJ.)
※ J.R.R.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년~1973년): 영국의 영어학 교수, 언어학자, 《반지의 제왕》, 《호빗》 등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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