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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생마중(蓬生麻中)
삼밭의 쑥은 바르게 자란다는 뜻으로, 삼 밭에서 자라는 쑥이 붙들어 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듯 사람도 주위환경에 따라 선악이 다르게 될 수 있음을 뜻하는 성어이다.
蓬 : 쑥 봉(艹/11)
生 : 날 생(生/0)
麻 : 삼 마(麻/0)
中 : 가운데 중(丨/3)
(유의어)
근주자적(近朱者赤)
근묵자흑(近墨者黑)
귤화위지(橘化爲枳)
남귤북지(南橘北枳)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친구를 사귈 때나 이웃의 중요성을 말할 때 환경을 강조한 말은 많다. 요즘의 이웃이야 아파트 생활이 많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게 되었지만 공자의 가르침 부터 보자. 이인위미(里仁爲美)라. 마을의 풍속이 질서를 지키며 화목하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이러한 마을을 잘 골라서 거처하지 않는다면 지혜롭지 못하다고 했다.
중국 송계아(宋季雅)라는 사람이 집값의 열배나 주고 이웃을 산 백만매택 천만매린(百萬買宅 千萬買隣)과 똑같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은 사귀는 친구에 의해 바른 길로도, 나쁜 길로도 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삼밭 가운데(麻中) 자라는 쑥(蓬生)이라는 이 성어는 따라 붙는 대구 불부자직(不扶自直)과 같이 쓰면 뜻이 명확해진다. 죽죽 곧은 삼밭에 있으면 원래 구불구불 자라는 쑥이 붙들어 주지 않아도 곧게 된다는 의미로 역시 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뜻한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의 사상가로 성악설(性惡說)을 주창한 순자(荀子)의 저작 순자(荀子)에 처음 실렸다. 첫 부분 권학(勸學)편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 순자는 환경이 인간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남쪽 지방에 몽구(蒙鳩)라는 새가 있다. 이 새는 깃털로 둥지를 만들고, 머리털로 그것을 엮어 갈대 잎에 매달아 놓는다. 바람이 불어와 갈대 잎이 부러지면 둥지 안의 알을 깨지고 새끼가 죽는다. 이러한 까닭은 둥지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매어 놓은 곳이 그렇기 때문이다.
서쪽 지방에 나무가 있으니, 이름은 사간(射干)이다. 줄기 길이는 네 치밖에 되지 않으나 높은 산꼭대기에서 자라 백 길의 깊은 연못을 내려다 본다. 이는 나무줄기가 길어서가 아니라 서 있는 자리가 높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몽구 새는 둥지가 튼튼해도 매어놓은 갈대가 흔들리기 때문에 알을 깨뜨렸고, 사간 나무는 줄기가 짧아도 서 있는 자리가 높기 때문에 멀리 볼 수 있다. 이런 예를 들고 말한다.
蓬生麻中 不扶而直,
봉생마중 불부이직,
白沙在涅 與之俱黑.
백사재열 여지구흑.
쑥이 삼밭에서 자라게 되면 떠받쳐 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며, 흰 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모두 검게 된다.
난괴(蘭槐)의 뿌리는 백지(白芷)라는 향초가 되는데, 이것을 사람의 오줌에 적셔두면 군자들은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며, 일반 사람들도 그것을 차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백지의 본질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을 적셔둔 오줌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거처함에 있어서 반드시 좋은 곳을 골라야 하며, 교제함에는 반드시 선비와 어울려야 한다. 이는 사악한 사람의 영향을 막고, 정도(正道)에 다가가기 위함이다.
난괴(蘭槐)는 향초(香草)의 이름으로 다년생 초본 식물로서 흰 꽃이 핀다. 열매는 타원형이며, 뿌리는 굵고 크며, 진통 작용을 한다. 싹은 란(蘭)이라 부르고 뿌리는 지(芷)라 부른다.
주자(朱子)의 소학(小學)과 기타 경전 중에서 알기 쉬운 내용들을 추린 아동용 사자소학(四字小學)에서는 붕우(朋友)편에 약간 다른 표현으로 나온다.
蓬生麻中 不扶自直,
봉생마중 불부자직,
白沙在泥 不染自汚.
백사재니 불염자오.
쑥이 삼 가운데서 자라나면 붙들어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지고, 흰 모래가 진흙에 있으면 물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더러워진다.
蓬生麻中 不扶自直
봉생마중 불부자직
삼 밭 속에서 난 쑥은 도와주지 않아도 절로 곧게 자란다는 뜻으로, 실제 환경요인의 중요성이나 벗과의 교제를 경계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어 온 구절이다. 近墨者黑 近朱者赤(근묵자흑 근주자적)과 함께 오랜 세월동안 자신을 단속하는 용도로부터 건전한 교우관계와 자신의 주변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용도로 사용해 왔던 것이다.
白沙在泥 與之皆黑
백사재니 여지개흑
흰 모래가 진흙 속에 있다면 서로 함께 모두 검어진다는 뜻으로, 역시 재차 환경요인의 중요성을 중심으로 교우관계의 지침으로 활용되어오던 구절이다. 언제나 자신의 의지여부와 관계없이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자신의 삶의 자세를 돌아보고 자성(自省)의 가치를 엿볼 수 있는 그런 구절들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삼천지교(三遷之敎)의 맹모(孟母) 고사로부터 마중지봉(麻中之蓬)이나 귤화위지(橘化爲枳)나 근묵자흑(近墨者黑) 등 자신이 위치한 삶의 영역과 방향 속에서 환경요인의 중요성에 대한 잠언이나 그에 따른 논지들은 오랜 세월동안 무수하게 다루어 왔던 바른 인간형을 만드는 기본적인 척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낱 액자 속의 구절로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삶의 가치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그 잠언의 가치를 너무도 작은 한 방향에서만 바라왔기 때문이다.
사기(史記) 권60 삼왕세가(三王世家)
한무제(漢武帝)의 다섯 째 아들인 광릉왕(廣陵王) 유서(劉胥)는 성품이 거칠고 방종(放縱)하여 먹고 놀기만을 즐겼기 때문에 무제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훗날 한무제가 죽자, 제위(帝位)는 8살 된 막내아들 유불릉(劉弗陵), 즉 역사에서 말하는 한 소제(昭帝)가 계승하였으며, 대장군 곽광(곽光)이 정치를 보좌하였다.
한편 유서는 자신에게 황제의 자리가 돌아오지 않은 것을 매우 불만스럽게 여기고, 무당을 불러 어린 황제 소제가 일찍 죽도록 저주하는 굿을 하였다. 그런데 소제가 2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유서는 대장군 곽광이 자신을 황제로 옹립해 주리리라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곽광은 한무제의 장손인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를 황제로 옹립하였으나, 유하는 즉위한지 27일만에 황제감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폐위되고, 한무제의 증손자 유순(劉詢)이 제위에 올랐으니, 그는 한나라 선제(宣帝)였다.
선제는 등극한 후, 황실(皇室)의 우애와 정의를 위하여 광릉왕 유서의 네 아들들에게 조정의 영토를 나누어 주었다. 이후 유서는 멋대로 행동하며 권세를 부렸으며, 초왕 유연수와 결탁하여 모반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모반이 사전에 발각되자, 대부들과 관리들은 그들을 모두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선제는 숙부인 유서를 차마 죽이지 못해 사면하고, 유연수만을 처형하였다. 유서가 사면된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아들 유보가 죄를 범하여 사형되고, 자신도 아들 때문에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선제는 유서의 작위를 박탈하라는 영을 내렸다. 그후 유서는 다시 무당을 불러 선제가 일찍 죽도록 저주하며 모반을 꾀하다가 발각되어 자살하였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 사건를 두고 이렇게 논평하였다. “옛책에 이르기를 쑥이 삼밭에서 자라면 곧게 받쳐주지 않아도 자연히 곧게 자라며, 흰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진흙과 같이 검게 된다(蓬生麻中, 不扶自直. 白沙在泥中, 與之皆黑)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것이 위치한 곳의 영향 때문이다.”
四字小學 朋友篇
사자소학 붕우편
人之在世 不可無友 以文會友 以友輔仁.
인지재세 불가무우 이문회우 이우보인.
사람이 세상에 있으면서 친구가 없을 수 없으니,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인을 도와라.
友其正人 我亦自正 從遊邪人 我亦自邪.
우기정인 아역자정 종유사인 아역자사.
바른 사람을 벗하면 나도 저절로 바르게 되고, 간사한 사람을 따라서 놀면 나도 저절로 간사해 진다.
蓬生麻中 不扶自直 白沙在泥 不染自汚.
봉생마중 불부자직 백사재니 불염자오.
쑥이 삼 가운데서 자라나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지고, 흰모래가 진흙에 있으면 물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더러워 지느니라.
近墨者黑 近朱者赤 居必擇隣 就必有德.
근묵자흑 근주자적 거필택린 취필유덕.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검어지고 주사(朱砂)를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게 되니, 거처할 때엔 반드시 이웃을 가리고 나아갈 때엔 반드시 덕있는 사람에게 가라.
擇而交之 有所補益 不擇而交 反有害矣.
택이교지 유소보익 불택이교 반유해의.
사람을 가려서 사귀면 도움과 유익함이 있고, 가리지 않고 사귀면 도리어 해가 있느니라.
朋友有過 忠告善導 人無責友 易陷不義.
붕우유과 충고선도 인무책우 역함불의.
친구에게 잘못이 있거든 충고하여 착하게 인도하라. 사람이 잘못을 꾸짖어 주는 친구가 없으면 의롭지 못한데 빠지기 쉬우니라.
面讚我善 諂諛之人 面責我過 剛直之人.
면찬아선 첨유지인 면책아과 강직지인.
면전에서 나의 착한 점을 칭찬하면 아첨하는 사람이고, 면전에서 나의 잘못을 꾸짖으면 굳세고 정직한 사람이다.
言而不信 非直之友 見善從之 知過必改.
이언불신 비직지우 견선종지 지과필개.
말을 하되 미덥지 못하면 정직한 친구가 아니다. 착한 것을 보면 그것을 따르고 잘못을 알면 반드시 고쳐라.
悅人讚者 百事皆僞 厭人責者 其行無進.
열인찬자 백사개위 염인책자 기행무진.
남의 칭찬을 좋아하는 자는 온갖 일이 모두 거짓이고, 남의 꾸짖음을 싫어하는 자는 그 행동에 진전이 없다.
荀子 勸學篇 第一
순자 권학편 제일
君子曰; 學不可以已.
군자왈; 학부가이이
군자(나)는 이르노니 “학문은 도중에 중단해서는 안 된다.
靑取之於藍 而靑於藍 冰水爲之而寒於水.
청취지어남 이청어남 빙수위지이한어수.
푸른빛은 쪽이라는 풀에서 짜내지만 원료인 쪽보다도 더 푸른빛을 하고 있고 얼음은 물로써 되었지만 물보다도 차다.
木直中繩 輮以爲輪 其曲中規.
목직중승 유이위륜 기곡중규.
먹줄로 그은 직선과 일치하리만큼 곧은 나무라도 힘을 가하여 구부려서 바퀴로 만들면 컴퍼스로 그린 원과 합치한다.
雖有槁暴 不復挺者 輮使之然也.
수유고포 부복정자 유사지연야.
더구나 그 나무가 제아무리 뙤약볕에 말려도 다시는 곧은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것은 구부린다는 행위가 그 나무의 본성을 그와 같이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故木受繩則直 金就礪則利.
고목수승즉직 금취려즉리.
따라서 나무는 먹줄로 그은 직선에 맞추어 깎으면 곧게 되고 쇠는 숫돌에 갈면 예리하게 된다.
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 則智明而行無過矣.
군자박학이일삼성호기 즉지명이행무과의
인식능력으로서의 지혜는 사물을 올바로 판단하게 되고 행위에도 허물이 없게 되는 것이다.
故不登高山 不知天之高也.
고불등고산 불지천지고야.
말할 필요도 없이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하늘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 모를 것이다.
不臨深谿 不知地之厚也.
불림심계 불지지지후야.
깊은 산골짜기를 내려다보지 않으면 땅이 얼마나 두꺼운 것인지 모른다.
不聞先王之遺言 不知學問之大也.
불문선왕지유언 부지학문지대야.
마찬가지로 선왕이 남기신 훌륭한 말씀을 듣지 못하면 학문이 위대한 것임을 모를 것이다.
干越夷貉之子 生而同聲 長而異俗 敎使之然也.
간월이맥지자 생이동성 장이리속 교사지연야.
간, 월, 이, 맥 등 이민족 국가의 아이들은 태어났을 때는 우리들의 아이들과 같은 고고의 소리를 내지만 성장하면 말을 비롯하여 풍속 습관이 사뭇 달라지는 것은 교육이라는 것이 그들을 그와 같이 한 것이다.
吾嘗終日而思矣.
오상종일이사의.
나는 일찍이 혼자서 종일토록 사색에 잠긴 일이 있었다.
不如須臾之所學也 吾嘗跂而望矣 不如登高之博見也.
불여수유지소학야 오상기이망의 불여등고지박견야.
그러나 잠시 동안의 공부함만 못하였고 나는 일찍이 발돋움하고 먼 곳을 보았지만, 차라리 높은 곳에 올라가서 멀리 그리고 드넓게 보는 것만 못하였다.
登高而招 臂非加長也 而見者遠 順風而呼 聲非加疾也 而聞者彰.
등고이초 비비가장야 이견자원 순풍이호 성비가질야 이문자창.
높은 곳에 올라가서 손을 흔든다고 갑자기 팔이 길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멀리서도 잘 볼 수 있고 바람 따라 소리 지른다고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는 것은 아니지만 멀리서도 잘 들을 수 있다.
假輿馬者 非利足也 而致千里 假舟楫者 非能水也 而絶江河.
가여마자 비리족야 이치천리 가주즙자 비능수야 이절강하.
수레나 말을 빌려 달리면 걸음이 빨라서 천리나 먼 길을 거뜬히 온 것이 아니며,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면 헤엄을 잘 쳐서 강을 건너온 것이 아니다.
君子生非異也 善假於物也.
군자생비리야 선가어물야.
군자라고 날 때부터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이 아니고, 다만 학문이라는 외물의 힘을 잘 빌렸기 때문이다.
南方有鳥焉 名曰蒙鳩.
남방유조언 명왈몽구.
남녘에 새가 있었는데 이름 하여 몽구라 하였다.
以羽爲巢 而編之以髮 繫之葦苕 風至苕折 卵破子死.
이우위소 이편지이발 계지위초 풍지초절 난파자사.
깃을 모아 보금자리를 만들고 머리카락으로 얽어서 갈대에 매달아 두었건만 바람이 심하여 갈대가 꺾어지자 알은 깨지고 새끼는 죽었다.
巢非不完也 所繫者然也.
소비부완야 소계자연야.
집은 튼튼하게 지었지만 매어 두는 자리를 잘못 고른 탓이다.
西方有木焉 名曰射干.
서방유목언 명왈사간.
또 서녘에 나무가 있는데 그 이름은 야간이라 하였다.
莖長四寸 生於高山之上而臨百仞之淵.
경장사촌 생어고산지상이임백인지연.
줄기라야 4치밖에 안되었지만 높은 산꼭대기에 뿌리를 박은 데다 깊이가 백 길이나 되는 깊은 못을 내려다 보고 있으니 그 야간의 모습이 웬만큼 먼 곳에서도 눈에 잘 띄었다.
木莖非能長也 所立者然也.
목경비능장야 소립자연야.
그것은 야간의 줄기가 길어서가 아니라 서 있는 자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物類之起 必有所始, 榮辱之來 必象其德.
물류지기 필유소시 영욕지래 필상기덕.
사물의 일어남에는 반드시 시초가 있고, 영욕이 올 때는 반드시 그 덕에 따르는 것이다.
肉腐生蟲 魚恬生蠹, 怠慢忘身 禍災乃作.
육부생충 어념생두 태만망신 화재내작.
고기가 썩으면 벌레가 생기고 생선이 마르면 좀이 생기듯이, 게으르고 성미가 느려 제 몸을 잊으면 재앙이 오는 것이다.
强自取柱 柔自取束, 邪穢在身 怨之所構.
강자취주 유자취속 사예재신 원지소구.
강한 나무는 제 스스로 기둥감이 된 것이며, 칡넝쿨 같이 부드러운 나무는 제 스스로 밧줄이 된 것이니 모든 것은 제 탓인 것이다.
施薪若一 火就燥也, 平地若一 水就溼也.
시신야일 화취조야 평지약일 수취습야.
나무는 똑같이 널어 놓아도 불은 마른 쪽으로 타들어 가고, 땅은 평평하게 골라도 물은 습한 데로 스며들 것이다.
草木疇生 禽獸群焉 物各從其類也.
초목주생 금수군언 물각종기류야.
초목도 같은 것끼리 자라고 금수도 같은 것끼리 무리 지을 것이니 만물이 다 끼리끼리 모이는 것이다.
是故質的張而弓矢至焉 林木茂而斧斤至焉
시고질적장이궁시지언 임목무이부근지언
그러므로 과녘이 세워져야 화살이 꽂이고 나무가 무성해야 도끼도 내닫고,
樹成蔭而衆鳥息焉 醯酸而囗聚焉
수성음이중조식언 혜산이국취언.
그늘이 짙어야 새가 날아들고 초가 시어져야 초파리가 꼬인다.
積土成山 風雨興焉, 積水成淵 蛟龍生焉,
적토성산 풍우흥언, 적수성연 교룡생언,
한줌의 흙이 모여 산이 되면 풍우가 일고 작은 물이 모여 못이 되면 용이 살 듯,
積善成德 而神明自得 聖心備焉.
적선성덕 이신명자득 성심비언.
선행을 쌓고 덕을 이루면 신명을 통하여 스스로 성인의 마음씨가 갖추어질 것이다.
故不積蹞步 無以至千里, 不積小流 無以成江海.
고부적규보 무이지천리, 불적소류 무이성강해.
그러므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지 아니하면 천리 길을 갈 수가 없고, 작은 물을 모으지 않으면 바다와 같은 큰물을 이룰 수 없다.
騏驥一躍 不能十步 駑馬十駕 功在不舍.
기기일약 불능십보 노마십가 공재불사.
아무리 준마라 할지라도 단번에 천리를 뛸 수가 없고 아무리 느린 말이라도 쉬지 않고 열흘을 달리면 준마를 능히 따를 수 있다. 성공은 쉬지 않고 계속하는 데에 있다.
鍥而舍之 朽木不折 鍥而不舍 金石可鏤,
계이사지 후목불절 계이불사 금석가루.
깎다가 그대로 버려두면 썩은 나무도 못 자르고 깎고 또 깎으면 금석이라도 새길 수 있을 것이다.
蚯螾無爪牙之利 筋骨之强 上食埃土 下飮黃泉 用心一也.
구인무조아지리 근골지강 상식애토 하음황천 용심일야.
지렁이는 손톱도 어금니도 없고 단단한 근육과 뼈도 없으면서 언제나 땅속에서 진흙을 먹고 지하의 물을 마시면서 사는 것은마음을 오로지 한 군데 쏟기 때문이다.
蟹六跪而二螯 非蛇蟺之穴無可寄託者 用心躁也.
해육궤이이오 비사선지혈무가기탁자 용심조야.
게는 여섯 개의 다리와 두 개의 집게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뱀이나 물뱀의 구멍이 아니면 몸 붙일 곳이 없음은 너무나 마음이 초조하기 때문이다.
是故無冥冥之志者 無昭昭之明 無囗囗之事者 無赫赫之功.
시고무명명지지자 무소소지명 무국국지사자 무혁혁지공.
그러므로 안 보이는 어둠 속에 힘을 기울여야 밝은 명예를 얻고, 남이 모르는 가운데 노력을 쌓아야 혁혁한 공을 이룰 수 있다.
行衢道者不至 事兩君者不容.
행구도자불지 사양군자불용.
두 길을 동시에 걸어가려는 사람은 결국 어느 한 길도 가지 못하고 두 임금을 섬기려는 사람은 어느 임금에게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目不能兩視而明 耳不能兩聽而聰.
목불능양시이명 이불능양청이총.
눈은 두 가지를 동시에 보지 말아야 잘 보이고 귀는 두 가지를 동시에 듣지 말아야 잘 들린다.
螣蛇無足而飛 梧鼠五技而窮.
등사무족이비 오서오기이궁.
등사라는 용은 발이 없어도 잘 날고 날다람쥐는 다섯 가지 재주를 지니고 있어도 쓸모없는 것이다.
詩曰; 尸鳩在桑 其子七兮 淑人君子.
시왈; 시구재상 기자칠혜 숙인군자.
시경에도 이르기를; 뻐꾹새 뽕나무에 새끼 일곱을 두었네. 기르는 법 한결 같네.
其儀一兮 其儀一兮 心如結兮 故君子結於一也.
기의일혜 기의일혜 심여결혜 고군자결어일야.
한결같은 그 모습, 한결같은 그 모습, 마음조차 변함없네. 군자는 오직 한 가지 도(道)에만 마음을 써야 한다.
昔者 瓠巴鼓瑟而流魚出聽 伯牙鼓琴而六馬仰秣.
석자 호파고슬이류어출청 백아고금이육마앙말.
옛날에 비파의 명인 호파가 비파를 타면 물속에서 놀던 물고기마저 귀를 기울이며 들었고 거문고의 명인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천자가 타고 있는 말조차도 흥겨워 여물을 먹으면서 그 소리에 고개를 들고 듣고 있었다.
故聲無小而不聞 行無隱而不形.
고성무소이불문 행무은이불형.
소리란 아무리 작아도 들리지 않는 법이 없고 인간의 행실은 아무리 은미해도 세상에 들어나지 않는 법이 없다.
玉在山而草木潤 淵生珠而崖不枯 爲善不積邪 安有不聞者乎.
옥재산이초목윤 연생주이애불고 위선불적사 안유불문자호.
옥이 묻혀 있는 산에는 초목마저 윤기가 흐르고 보석이 잠겨 있는 못에는 언덕마저 마르지 않는 것이니 선행을 쌓으면 소문이 왜 안 나겠는가?
學惡乎始 惡乎終.
학악호시 악호종.
학문이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가?
曰其數則始乎誦經 終乎讀禮 其義則始乎爲士 終乎爲聖人.
왈기수즉시호송경 종호독례 기의즉시호위사 종호위성인.
학문하는 순서는 먼저 시경, 서경 등 경전을 외우는 데서 비롯하고 예기를 정독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며 그 목적은 군자가 되는데서 비롯하여 성현이 되는데서 끝나는 것이다.
眞積力久則入 學至乎沒而後止也 故學數有終.
진적력구즉입 학지호몰이후지야 고학수유종.
참으로 오래오래 힘서 행하면 학문의 도에 들어가는 것이니 학문이란 생명이 다할 때라야 끝나는 것이다.
若其義則不可須臾舍也.
야기의즉부가수유사야.
학문의 순서에는 끝이 있다 해도 그 목적은 잠시라도 중지하지 못할 것이다.
爲之 人也 舍之 禽獸也.
위지 인야 사지 금수야.
학문을 하면 사람이 되지만 이를 버리면 금수에 불과한 것이다.
故書者 政事之紀也; 詩者 中聲之所止也; 禮者 法之大分 群類之綱紀也.
고서자 정사지기야; 시자 중성지소지야; 예자 법지대분 군류지강기야.
학문의 순서로 시서를 시작으로 든 것은 서경은 정치의 기록이요, 시경은 정서의 표현이요, 예기는 법의 근본인 동시에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관습의 근원인 것이다.
故學至乎禮而止矣 夫是之謂道德之極.
고학지호례이지의 부시지위도덕지극.
그러므로 학문은 예기에서 끝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도덕의 극치인 것이다.
禮之敬文也 樂之中和也 詩書之博也 春秋之微也 在天地之閒者畢矣.
예지경문야 낙지중화야 시서지박야 춘추지미야 재천지지한자필의.
예기의 경건함과 악경의 우아함과 시경과 서경의 광대함과 춘추의 정확성에서 천지간의 모든 이치는 끝나는 것이다.
君子之學也 入乎耳 箸乎心 布乎四體.
군자지학야 입호이 저호심 포호사체.
군자의 학문하는 것을 보면 옛 성현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면 이것을 마음에 새겨 온몸에 퍼지게 되고 행동으로 나타난다.
形乎動靜 端而言 蝡而動 一可以爲法則.
형호동정 단이언 윤이동 일가이위법칙.
그리하여 일거일동이 모두다 그대로 법칙이 되는 것이다.
小人之學也 入乎耳 出乎口.
소인지학야 입호이 출호구.
그러나 소인의 학문이란 귀로 들으면 곧 바로 입으로 토하고 만다.
口耳之閒則四寸 曷足以美七尺之軀哉.
구이지한즉사촌 갈족이미칠척지구재.
귀와 입 사이는 불과 4치밖에 안 된다. 어떻게 7척의 몸인들 아름답게 지닐 수 있겠는가?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
옛날 학자들은 오직 자기 몸을 닦이 위하여 학문에 힘썼으나 요즘 학자는 남을 위해 공부한다.
君子之學也 以美其身; 小人之學也 以爲禽犢.
군자지학야 이미기신; 소인지학야 이위금독.
군자의 학문은 자기 몸을 훌륭하게 하려는 것인데, 소인의 학문은 저를 금수로 만들뿐이다.
故不問而告謂之傲 問一而告二謂之囋.
고불문이고위지오 문일이고이위지찬.
그러므로 소인은 묻지 않는 일을 남에게 말하기를 좋아하니 이런 것을 경망스럽다 하고 한 가지를 묻는데 두 가지씩 대답함은 말이 많다고 한다.
傲囋非也 君子如響矣.
오찬비야 군자여향의.
경망스러운 것도 안 되고 말이 많아도 안 되니 군자는 질문을 받으면 메아리와도 같이 바로 응하되 그 물음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終)
▶ 蓬(쑥 봉)은 형성문자로 莑(봉), 蘕(봉)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逢(봉)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蓬(봉)은 풀 이름으로 쑥, 뜸, 과일의 껍질, 봉래산, 흐트러지다, 떠돌아다니다, 성(盛)하게 일어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쑥 아(莪), 쑥 나/라(蘿)이다. 용례로는 물건을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든 모양을 봉루(蓬累), 수북하게 난 쑥을 봉과(蓬科), 쑥이 삼밭에 섞여 자라면 저절로 곧아진다는 봉직(蓬直), 쑥대머리를 봉두(蓬頭), 머리털이 마구 흐트러져 어지럽게 된 머리를 봉수(蓬首), 소심한 마음이나 잘고 좀스러운 마음을 봉심(蓬心), 헙수룩하게 흐트러진 머리털을 봉발(蓬髮), 쑥대로 만든 화살을 봉시(蓬矢), 정처 없이 방랑함을 봉정(蓬征), 쑥 따위가 더부룩하게 무성한 모양을 봉보(蓬葆), 쑥으로 만든 삿갓을 봉립(蓬笠), 구름 따위가 성하게 일어나는 모양을 봉발(蓬勃), 쑥으로 지붕을 이은 문이란 뜻으로 가난한 사람이나 은거하는 사람의 집을 봉문(蓬門), 쑥이 뿌리째 뽑혀 바람에 굴러다닌다는 뜻으로 정처없이 떠돌아 다님을 봉전(蓬轉), 쑥이나 가시덤불로 지붕을 이었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의 집을 이르는 말을 봉필(蓬蓽), 쑥대강이같이 헙수룩하게 흐트러진 머리털에 성긴이라는 뜻으로 노인의 용모를 봉두역치(蓬頭歷齒), 쑥대강이처럼 텁수룩하게 흐트러진 머리털을 봉두난발(蓬頭亂髮), 봉래와 약수의 차이라는 뜻으로 아주 큰 차이가 있음을 비유한 말을 봉래약수(蓬萊弱水), 쑥처럼 흐트러진 머리와 때묻은 얼굴이라는 뜻으로 외양이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고 무관심함을 봉두구면(蓬頭垢面) 등에 쓰인다.
▶ 生(날 생)은 상형문자로 풀이나 나무가 싹트는 모양에서 생기다, 태어나다의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生(생)은 생명이나 삶 또는 어른에게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로 나다, 낳다, 살다, 기르다, 서투르다, 싱싱하다, 만들다, 백성, 선비, 자기의 겸칭, 사람, 날(익지 않음), 삶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출(出), 있을 존(存), 살 활(活), 낳을 산(産)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죽을 사(死), 죽일 살(殺)이 있다. 용례로 살아 움직임을 생동(生動), 목숨을 생명(生命), 살아 있는 동안을 생전(生前),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생존(生存), 말리거나 얼리지 않은 잡은 그대로의 명태를 생태(生太), 자기가 난 집을 생가(生家),생물의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생활 상태를 생태(生態),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사로 잡음을 생포(生捕), 태어남과 죽음을 생사(生死), 먹고 살아가기 위한 직업을 생업(生業), 활발하고 생생한 기운을 생기(生氣),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생모(生母), 끓이거나 소독하지 않은 맑은 물을 생수(生水), 사람을 산채로 땅에 묻음을 생매장(生埋葬), 생명이 있는 물체를 생명체(生命體), 이유도 없이 공연히 부리는 고집을 생고집(生固執), 날것과 찬 것을 생랭지물(生冷之物), 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생구불망(生口不網),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생기사귀(生寄死歸), 삶과 죽음, 괴로움과 즐거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생사고락(生死苦樂), 살리거나 죽이고, 주거나 뺏는다는 생살여탈(生殺與奪), 학문을 닦지 않아도 태어나면서 부터 안다는 생이지지(生而知之) 등에 쓰인다.
▶ 麻(삼 마)는 회의문자로 엄호(广; 집)部와 부수를 제외한 나머지 글자 林(파; 삼의 껍질을 벗김)의 합자(合字)이다. 집안에서 삼 껍질을 벗긴다는 뜻을 나타낸다. 그래서 麻(마)는 삼이나 성(姓)의 하나로 삼, 참깨, 베옷을 일컫는 말, 삼으로 지은 상복(喪服), 조칙(詔勅), 조서(詔書), 노도(국악기의 하나), 근육이 마비되는 병, 마비되다, 마비시키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삼베로 만든 옷을 마의(麻衣), 굵고 거친 삼실로 짠 큰 부대를 마대(麻袋), 삼베 또는 삼실로 짠 천을 마포(麻布), 삼씨를 마자(麻子), 삼의 뿌리를 마근(麻根), 삼의 잎을 마엽(麻葉), 사람처럼 만든 허수아비를 마아(麻兒), 삼하늘소의 어린벌레를 마충(麻蟲), 생삼으로 거칠게 삼은 신을 마리(麻履), 실내 오락 도구의 한 가지로 마작(麻雀), 껍질을 벗긴 삼대를 마골(麻骨), 삼 껍질을 찢어 꼬아 만든 실을 마사(麻絲), 삼씨를 짜서 만든 기름을 마유(麻油), 마고라는 손톱이 긴 선녀가 가려운 데를 긁는다는 뜻으로 일이 뜻대로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마고소양(麻姑搔痒), 삼밭에 나는 쑥이라는 뜻으로 구부러진 쑥도 삼밭에 나면 저절로 꼿꼿하게 자라듯이 좋은 환경에 있거나 좋은 벗과 사귀면 자연히 주위의 감화를 받아서 선인이 됨을 마중지봉(麻中之蓬) 등에 쓰인다.
▶ 中(가운데 중)은 지사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물의 한가운데를 상하로 통하는 세로 금으로 중심, 중앙의 뜻과 형제를 위로부터 차례로 伯(백), 仲(중), 叔(숙), 季(계)라고 일컬을 때의 仲(중)으로서 쓰인 것이다. 또는 깃대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中(중)은 ①일부 한자로 된 명사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의 뜻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과정임을 나타냄 ②등급 같은 것을 상중하 또는 대중소로 구분할 경우 그 가운데 등급 중등 ③중국 ④장기판에서 끝으로부터 둘째의 가로줄을 이르는 말 ⑤마음 ⑥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가운데, 안, 속, 사이, 진행, 마음, 심중(心中), 몸, 신체, 내장(內臟), 중도(中途), 절반, 장정(壯丁), 관아의 장부, 안건, 가운데 등급, 중매, 중개, 중국, 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둘째, 다음, 가운데에 있다, 부합하다, 일치하다, 맞다, 맞히다, 적중시키다, 급제하다, 합격하다, 해당하다, 응하다, 뚫다, 바르다, 곧다, 가득 차다, 이루다, 이루어지다, 고르다, 고르게 하다, 간격을 두다, 해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깥 외(外)이다. 용례로는 중도에서 끊어짐을 중단(中斷), 한가운데를 중심(中心), 사방의 중심이 되는 곳을 중앙(中央),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 중추(中樞), 일이 되어 가는 동안 중도(中途), 치우침이나 과부족이 없이 떳떳하며 알맞은 상태나 정도를 중용(中庸), 두 사물의 사이를 중간(中間),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둠을 중지(中止), 중간에서 이어줌을 중계(中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중립(中立), 돌에 박힌 화살촉이라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중석몰촉(中石沒鏃), 일을 하다가 끝을 맺지 않고 중간에서 그만 둠을 중도이폐(中途而廢), 중립을 취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중립불의(中立不倚), 터무니없는 말로 헐뜯거나 남을 해치려고 속임수를 써서 일을 꾸민다는 중상모략(中傷謀略)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