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26]‘아버지의 원적’은 시인의 고향
서울서 여러 번 만났던 중견 시인이 지난해 가을 신작시집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을 보내왔다. 1967년생, 전주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원적이 임실 오수면 주천리 현풍곽씨 집성촌이다. 아직도 90여가구가 살고 있는 큰 마을이다. 그동안 시집을 서너 권 펴냈는데, 시골마을에 대한 시가 한두 편씩 있었다. 아무래도 시인의 고향마을은 아버지의 원적인 모양이다. 역시 그래야 시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기도 하다. 주천리는 우리 마을에서 4km쯤 떨어져 있는데, 화젯거리가 많아 실제 답사를 한 적도 있다.
첫 번째 재밌는 것은, 마을 뒷산 이름이 노산魯山인데, 수양대군(세조)가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노산군으로 강등, 청룡포로 귀양보내는 것에 승복하지 못한 열다섯 가문의 선비들이, 산이름이 노산군을 연상시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곳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동네 가운데 제각祭閣 편액이 ‘귀로재歸魯齋’인 것만 봐도 그들의 단종에 대한 단심丹心을 짐작할 만하다. 또 하나, 고절高節한 선비들의 한을 풀어주는 양, 욕심부리지 말고 하루 조금씩 술을 마시라는 듯 ‘술 솟는 샘(酒泉)’이 있어 ‘술내기(수레기) 마을’이라 불렀다고 했다. 어느 외지인이 한번에 엄청 술을 퍼마시는 뒤부터는 술이 샘솟지 않는다는 전설이 구전되어 내려오는 마을.
신작시집 한 켠에 자리한 <노둔한 사람들>이란 시를, 오늘에사 처음으로 남향 사랑채 툇마루에 기대어 감상했다. 시상과 시주제도 좋고, 무엇보다 시가 잘 짜여 있어 기쁘게 전재한다.
일 년에 두 번 혹은 세 번 찾는
선산이 있는 임실군 오수면 주천리는
아버지의 아버지 더 먼 아버지 적부터
대대손손 이어 살았다는 현풍 곽씨들의 집성촌
술이 솟는 샘이 있다는 그래서
술내기 마을이라고도 불렀던 이 마을은
평범하고 볼품없는 산자락에 있는데
폐위된 왕 노산군魯山君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열다섯 가문의 선비들이 무작정 내려와
이 척박한 산간벽지 노산 기슭 한편을
거처로 삼았다는데
그중 한 집안이 지었다는 제각 귀로재歸魯齋는
먼 북쪽 노산을 바라보고 있다는데
이른 아침부터 추적추적 진눈깨비 내려
축축이 젖어드는 어느 겨울날 창가에 서서
문득 그 사람들과 그 어진 마음을 헤아린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친 밥상을 들인 누추한 집에서
시대와 불화하며 끝끝내 은둔의 삶을 택한
그래서 심상하고 초라한 산을 닮은
둔하고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
내 몸 어디에도 그 노둔한 피가 흘러
나 역시 보잘것없고 무던하지만
어느 대목과 마주서면 앙버티며
고집스럽게 살아가는 것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산간벽지 작은 마을, 상하고 초라한 산을 닮은, 시대와 불화하며 은둔의 삶을 택하여 살아가는 ‘둔하고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이 마치 눈에 보이는 것같지 않은가. 둔하고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을 노둔魯鈍하다고 한다. 그 노둔했던 사람들의 한참 먼 손자인 시인의 몸 어딘가에도 멀고 노둔한 아버지들의 ‘노둔한 피’가 흐른다는 것을 어찌 의심할 것인가. 그러기에 '어느 대목과 마주서면 앙버티며 고집스럽게' 배고픈 시詩를 평생 보듬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시인은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등의 문학연구서를 펴냈으며,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으로 오래 일하다 최근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역량있는 작가이다. 아래 링크주소의 <오수사람>이란 시를 감상해도 좋으리라. https://cafe.daum.net/jrsix/h8dk/292?q=%EA%B3%BD%ED%9A%A8%ED%99%98%20%EC%98%A4%EC%88%98%EC%82%AC%EB%9E%8C%EB%93%A4&re=1
번역가이자 시인이며 소설가였던 오탁번 선생은 폐교된 모교부지를 구입,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문학관을 꾸며 노년의 삶을 즐기다 얼마 전 돌아가시기도 하지 않았던가. 고향 없는 시인, 소설가, 수필가는 슬픈 일이고 비극적이다. 시인은 그래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아닌가. 곽효환 시인이 아버지의 원적을 시의 고향으로 삼고 시작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잍 터. 그의 정진과 성취를 바라는 마음 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