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간다... 장가 간다... 우린 이런 말 많이 하기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뜻은 아시는지효?
시집 간다는 말은 신랑의 아버지 집으로 간다는 뜻이고 장가 간다는 말은 각시의 어머니 집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흐흐흐~ 혼인을 하면 하는게지~ 장모의 집으로 가는 건 무슨 일이며~ 시아버지 집으로 가는 건 또 뭔 일이라효?~
<시집>이라는 말은 생긴지 250여 년 정도이구~ <장가>라는 용어는 생긴지가 최소한 1500여 년 이상 되었다구 함다. 원래 우리민족은 모계중심 가족제도를 채택한 민족입니다. 그 유래는 조선시대<남귀여가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원래 우리 민족은 혼인을 하면 여자 중심으로 혼인이 이루어집니다. 즉 씨받을 남자를 골라서 여자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 같이 사는 형태입니다.
그러니까 고구려 시대에 <데릴사위> 혼인제도가 널리 성행했는데~ 우리민족이 채택한 혼인제도는 <데릴사위제도>와 매우 비슷하지만 차이점이 명확하게 있습니다.
혼인하고 낳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장모의 집으로부터 분가하여 따로 일가를 창립했는데~ 그 점이 데릴사위제도와 다른 점입니다. 데릴사위제도는 아예 분가를 못해요.~ 걍 늙어 죽을 때까지 장모집에서 같이 사는 거임.~
그래서 이 땅에서 장가 간 남자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분가 사투전을 치루었다고 함다. ㅋ~ 분가 사투전?~ 남자는 분가를 해야만 사람답게 살 수가 있었습니다. 분가에 실패하고 장모의 집에서 탈출을 못한 채~ 한을 품고 늙어 죽은 남자들 참 많았다구 함다.~ 이유가 뭘까효?
장모의 집에서 사는 사위의 지위는 더도 덜도 아니고 <무임금 머슴>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낮이면 돈 한푼 못받고 일해야 하구~ 밤이 와서 지친 몸으로 좀 쉴려구 누우면~ 잠깐도 아니고 장시간에 걸쳐~ 남김 없이 씨를 쫘악 뽑히니~ 그렇게 밤마다 탈진하여 기절하다시피 쓰러지는 게~ 사위의 생활이라욤.~ ㅋ~
마 그렇게 고생을 하더라도 그 고생의 댓가로 남는 게 좀 있으면 불쌍한 삶이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다고 칩시다. 이짓은 세월 가도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여.~ ㅋ~ 사위의 지위로 장모의 집에서 사는 처지가 이렇다 보니 분가에 목을 매달게 되는디~ 분가 할 때 남자도 물론 자신의 친가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분가의 중추적 역할은 여자가 자신의 집으로부터 재산을 할당 받아서 독립하여 따로 일가를 창립했다고 함다. 아무튼 남자 입장에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오직 분가 말고는 미래 비젼이 없었다구 함다.~
거기다~ 업친데 덥친다구~ 장모에게까지 가끔 또는 늘~ ㅋ~ 육보시를 해야 하는 경우가 꽤나 흔하게 있었다구 함다.~ 무슨 개소리?~ ㅋ~
사실임다. 조선 법률이라고 해봐야 경국대전 하나 뿐인데효.~ 여자도 이혼 청구가 가능하다고 함다. 그 이혼 사유는 두 가지 임다. 처가 혈족들에게 폭행을 행사한 경우와 장모와 간통한 경우를 여자의 이혼 청구 사유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요상스런 이유 같지효?~ 한 번 살펴볼까효? 일단 아이를 일찍 낳고~ 즉 장모가 젊어서 큰누나 수준이고~ 이단 한 집에서 오래도록 들쑤시면서 같이 살고~ 삼단 장모는 집안의 댓빵... 댓빵 눈에 사위는 심심풀이 노리게 수준이라~ 긴세월 생활 여건이 그렇다 보니~ 장모가 사위를 건드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지요.
그럴리가? 사위가 먼저 도발을 했긋지~ 정말 그랬을까효? ㅋ~ 집안에서 아무런 끗발이 없는 사위가 집안의 댓빵 장모를 도발하면 바로 죽음임다. 그렇지만 장모는 집안의 댓빵이니 장모 눈엔 사위가 가장 만만하고~ 생활 속에서 쉽게 건드리기 편리한 여건이라~ 걍 식구들 눈 피해서 늘 가끔~ ㅋ~ 한 번씩 건드리고 잘 챙겨주는 척 꼬드기면 아무 일 없는 거라~
과연 누가 주도를 했을까효?~
그리구 이런 짓이 사회 전체에 만연하지 아니 하고 흔치 아니 한 일이라면~ 오또케 법전에까지 명시되었을까효? 그것두 많은 사유도 아니고 딱 두 개만~ ㅋㅋㅋ~
어느 쪽 입장을 비난할 뜻은 없구요.~ 머 장모도 딸도 사위도 죄다 이해함다.~ 흐흐흐~
이렇게 우리 민족은 모계중심 가족제도를 기나 긴 세월동안 실현하고 살았음다. 그런데~ 조선을 건국한 후 정도전이 <친영제도>를 주창하였습니다. 혼인하면 시댁에서 사는 걸로 하자는 주장인디~
백성들이 그 무슨 해괴한 짓인가 하는 반응이었다구 함다. 백성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문정공 조식>이 장가 아닌 시집 가는 행사를 간소화 하는 가정의례준칙을 공표하기도 했습니다. 시집 가는 행사 절차의 원형은 오래된 중국 남송 <주자가례>를 따르는데~ 절차가 허벌나게 복잡하니까 이를 간소화 하여 혼인하구 아내 집에서 3일만 살고 시댁으로 가서 살라는 건데~ 백성들이 아무도 따르는 사람이 없었다구 함다.
일단 여자가 가정을 만들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여건은 머니 머니 해두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자기집 환경이 최고라~ 이것이 바로 모계중심 가족제도를 채택한 민족이 추구했던 핵심 이익이었습니다.
여자가 불편하기 짝이 없는 남편 집에 가서 아이 낳아 키우면서 편하게 산다는 건~ 당연히 가능하지 않으니까욤.~
그렇게 살면서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조선 중기 즈음, 그러니까 조선 건국 후 무려 250여 년이 흐른 후 즈음~ 아조 드물게 장가 아닌 시집을 가는 경우가 간혹 생기더니~ 조금씩 시집 가는 케이스가 늘어났다고 함다.
물론 혼인하고 3년 또는 그보다 조금 더 장모의 집에서 살다가 친가로 돌아가는 절충적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 시점 즈음부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50~300여 년 전 즈음이니 그 때 비로소 시집이라는 말이 생겼고~ 남권에 비하여 대등하거나 우월했던 여권이 그 때 즈음부터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구 함다.
그렇게 하여~ 200~300년 정도~ 험난한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나라 여성들은 조선이 망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나면서 불과 50~60년 만에 남권을 단숨에 짓밟고~ 오늘 날의 여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오랜 옛날~ 기나 긴 세월 동안 누렸던 남권 대비 대등 또는 우월했던 과거의 그 여권 보다 더욱 더 나아질 조짐을 보임.
전해지는 옛 사료를 살펴보면~ 가난한 집안에 여아가 태어나면 차라리 자라지 말고 죽기를 바랐다고 하니~ 혼인의 부담이 여자측에게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충분히 짐작케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때욤?~ ㅋ~ 권리는 크지만 책임 부담은 없는 무소불위의 여권으로 변모한 것이니~ 한마디로 여성천국이쥬~ 흐흐흐~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안녕하세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고맙습니다.
우리민족의
혼인제도 잘 읽었어요~
남자가 장가가서
개고생한 역사가 있네요...
여권신장이 많이 된
현대사회지만
남자
여자
각자도생의
시대가 된듯합니다.
의지 안하고
혼자 스스로 서야하는...
힛~
감사합니다~~~😊😍😄
ㅋㅋ~
각자도생...
아조 훌륭한 표현임다.
의지?
의지 안하면 혼자 죽으면 되고
의지하면 같이 죽게 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선진국 즉 국민이 돈을 좀 만지는 나라에서는
성교만 하기로 하구~
삶은 각각 별도로 산다구 함다.
수십년 전부터~
이것이 <풍요의 비극>임다.
풍요를 버려면~
인간미는 저절로 생깁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리 못한다고 합니다.
ㅋ~
고맙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