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인적으로 작가 이문열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문열이 쓴 삼국지는 좋아합니다
본인 생각을 너무 많이 집어넣어서 집중이 깨지는 건 싫었지만
조조와 유비에 대한 그의 시선에는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조조가 전쟁 중에 자기 아들이 내준 말을 타고 도망쳐 혼자 살고 아들은 죽었다는 부분에 대해
이문열이 덧붙인 의견을 인용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때 이문열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아들을 대신해 죽는 건 평범한 필부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목숨의 값을 따져 냉정한 판단을 하는 건 보통의 아버지들은 할 수 없다>
<조조는 본인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따라 전쟁터로 나온 수많은 아들들의 리더이기도 했다>
저 부분을 뜬금없이 떠올린 이유가 뭐냐면
준플옵 4차전 9회에 정우람이 아닌 김범수가 공을 던졌던 상황을 돌아보고 싶어서입니다.
한용덕이 그랬죠
"(정우람 등판을 생각은 했는데) 김범수의 모습이 좋아 그대로 맡겼다" 라고
조조가 혼자 도망친거랑 한용덕이 무슨 상관이냐고요?
좋은 쪽으로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어쩌면 쉴드일수도 있고, 너무 낙관적인 해석일수도 있습니다)
급할때 정우람을 올리는건 다른 9개구단 어느 감독이라도 내릴 수 있는 선택이죠
중계방에서 응원하던 팬 중에 아무나 덕아웃에 앉아 있었어도 "마지막이니까 일단 정우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올 시즌 구원왕 정우람을 놔두고) 24살 영건 김범수를 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한용덕이 인터뷰에서 팬 언급을 굉장히 많이 했죠
팬들께 죄송하다
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져서 때로는 부담된다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줘서 흐뭇하다....그런 얘기들
팬심을, 그러니까 여론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3등 했으면 됐지 뭐" 하면서 욕심을 내려놨을리 없습니다.
준플옵 시작 전 가을야구 관련 인터뷰에서도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우승도 생각한다"는 말을 했었죠.
우리가 (그러니까 관중석에서 응원하던 팬들이) 이기고 싶은 마음이 100이면
한용덕은 그것보다 훨씬 더 이기고 싶었을겁니다.
나는 4년 후에도,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한화 팬이지만
한용덕은 3년 계약 기간이 끝나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많이 이기고 성과가 좋아야 재계약 하는 신분이니까.
그런데도 거기서 (심지어 박주홍은 선발로 쓰고) 김범수로 밀어 붙였다면
한용덕은 정말로 <3년 이후 대권에 도전할 팀>을 만들기 위해 승부수를 던진 것 같습니다.
1점차로 지는데 정우람을 내는 승부수는 누구나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1점을 (우리 말마따나 내일도 없는데) 김범수에게 맡기는 승부수는 아무나 던질 수 있는게 아니죠
그건 승부수가 아니라 직무유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그것 또한 한용덕의 승부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올해 가을야구 결과로 보면 실패한 승부죠)
한용덕이 김범수를 미래의 선발감으로 생각한다는 보도가 많았는데
김범수가 그 속구를 더욱 가다듬어 훌륭한 선발투수가 되기를
그래서 4차전 9회에 김범수를 내보낸 것이 (저만의 쉴드가 아니라) 진짜 승부수가 되기를 한번 기대해봅니다
P.S
이렇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상상하는 이유가 뭐냐면
한용덕이 '승부근성' 부족한 야구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프로선수가 되지 못해 트럭 운전을 하고 전화선을 깔았던 사람
연습생으로 2년 동안 묵묵히 불펜에서 공만 던져준 사람
그렇게 절치부심 긴 시간을 버텨오며 살아남은 사람이 설마 승패에 대한 감각이 부족할까요
그런 감각 없는 사람이 투수 혹사도 없이 전 시즌 8위팀을 +10 3위팀으로 끌어올릴 수는 없었겠죠
김범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공을 던졌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내년에는, 그리고 후년에는 꼭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문득 그렇게 떠나보낸 맏아들 말고도
조비와 조식 등 풍부한 후대를 이룬 조조의
자식농사가 스쳐지나가는군요..
(그런데 유비는.......)
덧붙여 한감독님은 94년 교통사고로
에이스급 선발투수의 구위를 잃었지만..
이후로도 공을 내려놓지 않고 10년을 더 던졌습니다..
매년 계투, 비상용 선발투수로..7승, 8승씩을 쌓아올리며..
굴곡의 대명사... ㅠㅠ
그 94시즌 막판, 16승으로 다승 선두를 달리고 있었는데 불의의 교통사고... 정말 아쉬웠습니다T.T
다른 시선으로 생각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김범수가 막았으면, 더 큰 소득이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있구요.
저도 김범수로 계속 가기에.
공이 나쁘지 않고. 정우람으로 바꿔도 막는다는 보장은 없었을거며, 김범수의 성장을 기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팬들이 생각하기에는, 당장의 성과보다 2~3년후를 생각하는 선수기용을 포스트시즌까지 했어야했나.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포스트시즌은. 그동안 아끼고 아꼈던 선수들이 혹사당해도 성적을 내줘야 하는 경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정우람을 못써서 안쓴게 아니라, 알고도 안쓴거라면.
과연 그 선택이 옳았을지..
2~3년뒤에 봐야겠습니다.
너무 넘겨짚는 것일수도 있으나 포시 운영과 선수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한감은 내년에 본격적인 리빌딩을 염두에 두고, 올해보다 내년이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솟구치는 욕심 꾸욱꾸욱 눌러가며 포시를 도전자의 자세로 마무리하면서 신인급 선수들이 큰 경기를 경험하며 배포를 키울 수 있게 한 건 아닌가... 그렇게 추측해 봅니다. 이건 물론 한감님의 열렬한 팬인 제가 아주 사심 한 가득, 쉴드 만땅으로 풀이해본, 어쩌면 양수가 이해한 조조의 '계륵'일수도 있지만요ㅎㅎㅎ
저는 현재의 짧은 순간도 소중합니다만 더 중요하게 여기는것 즉 내년보다 내후년을 그리고 더 먼 미래까지 쭉 강해질 이글스의 멋진 도약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올시즌 시작 전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분명 목표 이상의 성과를 냈죠. 올해 우리가 4차전에서 이겼다 한들 5차전, 플레이오프를 넘어 한국시리즈에서 두산과 자웅을 겨룬다는건 애초에 만화같은 상상이었을 겁니다. 한용덕 감독이 취임하면서 이야기했던, 임기 마지막해에는 대권을 노려보겠다고 했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런 중요한 순간에 김범수 같은 젊은 선수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죠. 그러기 위해서 당장 이기는 것보다 미래를 생각했을거라 믿겠습니다.
잠깐 빛나고 떨어지는 팀이 아닌, 꾸준하게 건강하게 잘하는 팀이 되기위한 과정이 되길 바래봅니다
가을야구의 마지막 경기를 책임져준 '박주홍,김민우,임준섭,박상원,김범수'가 내년, 그리고 앞으로의 한화를 이끌어주길 기대합니다.
어찌됐던 악몽같던 혹사야구에 분노한 시절보단 훨낫죠
포스트시즌은 날마다 단판 승부입니다. 2-3년 뒤를 생각할 때가 아니라 당장 현실을 생각해서 이기는 야구를 해야죠.
가을야구에서 쥐어짠 팀이 이듬해 폭망하는 사례도 있었죠. 긴 호흡 응원합니다.
동의합니다. 경기당일은 분명 아쉬움이 컸지만, 감독의 심중에는 다음경기, 다음 시리즈, 다음 시즌의 구상이 있었을거라 생각되더군요.
당장의 과실보단 이를 오히려 발판으로 삼아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라고 봤습니다. 그 결과가 미래에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 훌륭한 결실을 맺으리라 믿습니다.
애초에 승부는 내후년에 걸었다고 공표했었죠. 다음시즌 어쩌면 금년보다 성적은 더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후년을 바라보며 지켜보렵니다. 제발 좋은 선발진이 구축되길, 그리고 좋은 야수들이 발굴되길 빕니다.
잘 읽었습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우리팀은 그렇게 준PO를 내주게 되었다고 봅니다 우리가 이기려면 8회 범수가 막아내고 9회 뒤집었겠죠 지는 설정 이기에 설령 정우람 내고도 추가 실점 하거나 정우람 내서 막아 내더라도 9회 동점 못갔지 않았나 위로해 봅니다 내년 더 나은 투수로성장해 갔으면 싶네요
정우람이 요즘 미덥지 못하기도 하죠
저두 혹시나 하며 같은 생각을 했었었네요
분명 이런 큰 경기에서 역할을 해내면 경험치가 확 올라가죠 (올림픽이나 국제대회 나가서 크게 커서 돌아오는 선수들이 많죠)
뭐 그렇다 쳐도 일단 제 생각으론 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이 아쉬움을 내년, 내후년 시즌에 한감독님이 믿고 맡겼던 선수들이 해소시켜주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공감합니다. 다만, 패넌트레이스와 단기전의 승부는 분명 차별두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봤을때도 당장이 아닌 그 다음을 위해서 한 번 믿고 맡겼던 거 같습니다.
저도 의아했던 투수 기용이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일견 이해가 가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