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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살랑이는 우포늪 가는길 |
8. 우포늪 四季
윤혁
태고의 도자기
옛물 가득하여
수면에 비친 눈들
꿈꾸듯 선명하다
봄볕 수줍게 저 바닥까지 내려가
아기 발가락 꼼지락거린다
하품하던 두루미 해맑은 얼굴 찍어 올린다
태산은 청산을 한짐지고 날마다 빠져서
항아리 속은 신기한 것 마술처럼 토해내어
청뱀 한 마리 풍요를 등에 업고 수면을 맴돌면
자라꽃 손짓하듯 요염하다
갈잎은 이맘때 와서 먼 길 아득 뱃길 띄어보자는 소금쟁이
키 큰 버드나무 멀리까지 배웅하며 바람 인다
냉정히 꼿꼿한 자세로
무아지경 속으로 길하나 내며항아리에
빠지는 청둥오리
모른다 사철 매운 청솔로 군불 떼고 있는 토평천
9. 우포에서
이인성
남편의 바람기로 마음 아파하는 친구가 안쓰러워
늪으로 갔었다 둑 아래는 봄볕이 따스했다
답답한 마음 풀려고 엉엉 울기도 하고
소리도 질러 보지만 늪가의 풀들만 놀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발 아래 이리 저리 나뒹굴고 있는
우렁 껍질들 속이 비었다 꼭 내 신세 같구나
가만히 물어오는 친구의 눈에 젖어 있는 늪이 보인다
아마 남편 밥해주러 갔을꺼야
둘은 웃었다 우렁각시 되어
먼 발치에서 황소개구리 한 마리도 꺽꺽 웃고 있었다
10. 우포늪에서 보내는 편지 31
임신행
이 세상 어디나 뒤늦은 걸음은 있습니다.
죽은 듯 엎디어 있던 땅강아지, 호랑나비, 북쪽비단노린재,된장잠자
리, 게아재비, 물장군, 애딱정벌레가 어정거리고 나와 간지러운 햇살
에 긴 하품을 뭅니다.
늙은 들뽕나무 허리춤에서 겨울을 난 호랑거미가 떠벌이 쥐똥나무
와 토박이 소나무 사이의 하늘에다 지은 집을 수리하고 있습니다.
호랑거미는 곤충일까요? 아닐까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곤충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육식성의 동물입니다. 이 땅의 배운 자들처럼 배운만큼 일
은 않고, 어려운 국민의 피땀을 먹는 육식성의 동물입니다. 그것도
살아 있는 곤충만 먹습니다. 씹거나 삼키지 않고 그 흉한 입에서 독
을 내어 산 것을 녹여 그 즙을 남몰래 쪼옥쪼옥 빨아 먹습니다. 하늘
에다가 집을 짓고 사는 호랑거미의 집은 여의도 ㅇㅇ의사당을 닮았
습니다. 거미의 천적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대모벌입니다. 대모벌
은 거미의 목덜미에 독침을 찔러 거미를 기절 시킵니다. 결코 거미
를 죽게는 하지 않습니다. 기절한 거미를 끌고 집으로 가는 치열한
노동력, 그 노동력은 이 땅의 어미들의 서러운 모습입니다. 대모벌
은 집에다 모셔 놓은 거미의 뱃속에 알을 낳고..... 새끼들은 죽지 않
은 거미의 속살을 파먹고 자랍니다.
저 서늘한 생의 풍경!
아시지요?
거미들도 하늘에 집을 짓지 않고, 돌 틈에, 돌 사이 썩은 나무에 터
를 잡고 사는 거미가 많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늘에다 집을 짓고 산다고 우스댈 것이 아닙니다.
땅에 집을 짓고 사는 거미가 더 많습니다.
경덕왕 요마루에 앉았던 기왓장이 세월에 떠밀려 우포 늪 둑까지 오
며 깨졌습니다. 깨진 기왓장! 그 밑에 사는 깡충거미가 나들이를 합
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사냥하는 깡충거미의 발걸음이 바쁜 우
포늪 오후, 바다에서 열심히 그물을 치고 사는 어부나, 땅을 일궈내
는 저 농부들도 때로는 대모벌이 될 수 있음을......
어떻게 위정자들은 모를까요?
노을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저 진달래 불꽃같은 노을 아래서 두 손을 모읍니다.
오, 하느님, 부처님 그들을 긍율히 여기소서.
그들은 참으로 가엾은 미물입니다.. ·····
11. 우포늪에서 보내는 편지 32
임신행
양파같이 곱게 늙은
양파 같은 할머니가 양파 밭이랑에서
양파처럼 뽀얀 궁둥이를 내놓고
양파처럼 앉아 오줌을 눕니다.
아직은 오줌 줄기가 드센 양파 같은 할머니!
저 할머니의 옆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뽀룡 뽀룡 새 잎을 내미는 미루나무에 기대고 섰던
나는 미루나무를 얼싸안고
들개처럼 오줌을 눕니다.
미루나무가 가볍게 진저리를 칩니다.
나도 덩달아 진저리를 칩니다.
찬란하게 빛을 내며 혜성 하나가 화왕산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사월의 우포늪에
오시면 누구나 들개가 됩니다.
사랑을 찾아 훠이 훠이 나다니는
들개가 됩니다.
걸음 한번 하시어
시원히 오줌을 누실 여유는 없으신지요?
12. 우포늪에서 보내는 편지 33
임신행
마른 줄 풀로 어지러운 우포늪 둑길을 따라 오토바이가 무자치처럼 달려옵니다.
우포늪 둑을 타고 오며 마른 줄 풀을 어지럽게 흔들었던 오토바이가 멈춥니다.
은박지상자가 먼저 내립니다.
"짜장면 어데서 시켰소?"
청요리 집 만옥정 주인 할아버지의 쉰 목소리가 물꽃이 피듯 번져납니다.
"여기다, 여기"
양파 밭을 손보던 할머니가 손짓을 합니다.
무당벌레로 엎디어 일하던 농부들이 무당벌레처럼 꼬물꼬물 모여듭니다.
"야, 넌 맨 날 휴지부터 먼저 주노? 시킨 자장면을 먼저 주지."
할머니가 타박 아닌 타박을 합니다.
"가스나야, 입 닦고 손 씻으라고 준다 아이가"
둘이는 초등학교 동기동창으로 이렇게 나이테를 만들어 갑니다.
"내가 어데 금 뱃지 단 놈이가 더럽지도 않은 손 씻고 입 닦구로"
할머니의 트집입니다.
"서양 것들은 이걸로 밑구멍 닦는데 우린 조디 닦고"
유어면 성주사가 한마디 거듭니다.
"바쁘다며 길가면서도 햄버거를 우쩍우쩍 먹는 그 깐 녀석들이 어떠하던 우린 짜장면 묵고
조디(주둥이) 닦고 버리지 말고 나중에 그걸로 밑구멍 닦으면 좋잖아요,
세상에 식어서 좋은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서 묵자.
식은 짜장면은 똥 돼지도 싫어합니다."
연변에서 소금보다 더 짠 돈 몇 푼 벌러 온 장씨가 어서 먹자고 벌쭉 웃습니다.
양파밭머리에서 점심 먹는 소리가 창포 잎처럼 퍼렇습니다.
그들의 말소리는 머지않아 물억새꽃으로 피겠지요.
13. 다시 우포에서
하현식
흐르는 것은
아늑한 물살만이 아니다
깊은 내장 속의 온갖
눈부신 비밀도
푸른 빛깔을 내며 일렁인다
아무리 가슴 깊숙이 숨겨도
끝내 감추어지지 않는
그대 눈빛
거대한 시간이 되어 출렁인다
아득한 하늘에 닿을수 없는
뜨거운모순의 날개를 퍼덕이며
그대
허공을 둥둥 날아오른다
진리를 쏟아내는 지혜로운 입술이
말을 뱉지 않아도
조용한 문장으로
맑은 햇살 속에 환하게 열려 있다
불타는 여름 한낮
내밀한 영혼을 자아올리는
그대
다만 느린 물결을 꿈꾼다
14. 우포늪 너머
임신행
이른 아침부터
우포늪 방축 너머
유어마을 아주머니들의 상수리 이파리 같은 웃음소리가 헤픕니다. 읍내로
이어진 코스모스 꽃길을 따라갑니다.
코스모스들은 산들거리고
아주머니들 머리 위에는 저마다 깨, 마늘, 고추, 콩, 조, 수수들이 이야기
보따리로 올망졸망 앉아 있습니다. 더러는 누렁이도 끌고 갑니다. 돈하고
바꿀 열망으로 걸음이 활기찹니다.
뒤질세라 붉은 양파 포대를 그득 실은 경운기가 꽁무니로 파란 도우너스를
흘리며 세차게 달려갑니다.
탱~탱….
소리가 먼저 풀섶을 흔듭니다.
경운기는 그냥 가지 않습니다. 달려가며 산골아이 속내 같은 달개비꽃,
구절초, 도라지꽃, 호박꽃, 박꽃, 제비붓꽃, 이지풀, 억새꽃, 초롱꽃, 며느리
밑씻개꽃, 새꽃, 바랭이꽃, 달맞이꽃 들을 만만하게 흔들고 갑니다.
길에서는 늘 한걸음 물러나 있는 노란 탱자와 단감과 알밤들이 눙치듯
경운기를 향해 눈웃음을 보냅니다.
3,8,13….
창녕 5일장을 향해 가슴 설레며 달려가는 모습이 우포늪 물억새 사이로
비칩니다.
청둥오리 떼처럼 줄지어 장 보러 가는 아주머니들 어깨 위로 햇솜 같은
흰구름이 떠갑니다.
늪에는
성급하게 첫 나들이를 한 고방오리 한 쌍이 머뭇머뭇 자라풀 사이를 거닐고
있습니다.
10월의
우포늪 부들들은 흔들리며, 흔들리며 지난 여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겨울
나그네 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들고 있습니다.
첫댓글 기회되면 우포늪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아름다운 우포늪 고운글과 함께감 합니다..
저도 말로만 듣던 우포늪의 풍경에 매료되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