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공주시.
후기 백제에 공산성을 도읍으로 정한 이래 서울(개성,한양)과 호남을 잇는 교통 요충지이자 지역 중심지였다.
영남대로 라인이 충주에서 대전으로 그려지고 호남선마저 피하게 된 상황에서도,
1931년까지 무려 30년 가까이 충남도청이 자리잡고 있었을 정도로 세력이 굉장했던 곳이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천혜의 방어요새에 사통팔달 발달한 교통으로 인하여 각종 문물이 집결했던 세월이 무려 1,500년.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경부선-호남선 존재 하나만으로 모든 기능을 빼앗기고 단번에 쇠락한 비운의 도시다.
지금은 대전의 1/10도 채 되지 않는 자그마한 규모지만 옛 영광의 자긍심만큼은 곳곳에 남아있다.
공산성, 무령왕릉 등 백제 유적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충남 각 방향으로 흩어지는 대부분의 국도와 고속도로가 모두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비록 철도도 없고 고속도로조차 2003년에서야 들어온 비운의 땅이지만,
적어도 충남 내에서만큼은 교통의 요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곳.
그를 대표하는 버스터미널이 말많고 탈많은 도시의 일대기를 대신 서사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해가 떨어지는 저녁 무렵에 공주라는 익숙한 땅에 들어왔다.
가뜩이나 저녁 시간대라 사진 찍기도 불리한데 시내에 진입하려는 순간 비가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일주일 내내 쏟아진 장마비가 잠시 그치려나 했건만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신호를 보내는 모양이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무척이나 당황스럽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
가방으로 비를 가리고 한 손으로 셔터를 겨우겨우 누르면서 사진을 찍는다.
주변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날이 저물기 전에 빨리 해치워야겠다는 일념으로.
복잡한 차량을 뚫고 새로 생긴 '공주종합버스터미널'을 렌즈 너머로 구경한다.

3년 전에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 발도장을 찍었었는데 (링크 :http://cafe.daum.net/busmania/3Cbp/42),
그 당시에는 정말 막장이다 싶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만을 구경시켜 주었다.
매표소는 문닫고 입구는 막아놔 돌아들어가야 했고 관리 하나 되지 않아 낡고 지저분했던 터미널의 모습...
규모는 거대했지만 너무도 더러웠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데,
그에 비하면 새로 생긴 종합터미널은 무척 깔끔하고 간결하다.
앞에 보이다시피 입구에 비막이 지붕과 자전거 주차장도 만들어 주었고,
입구쪽에 택시 승차장을 만들어놓아 이용객들이 바로 이동할 수 있게 센스도 발휘한게 인상적이다.

사진 왼쪽 뒷편에 큼지막한 건물이 예전 시외버스터미널이다.
주소지는 금강 북쪽의 최근에 떠오른 신도심(신관동)으로 공주대가 자리잡은 젊은 동네이기도 하다.
원래 지역주민들이 '신터미널'로 구분해 부를 정도로 20년이 채 안된 젊은 터미널이었지만,
사업자가 망하고 관리도 제대로 안 된 탓에 승객·기사의 불만이 극에 달하여 결국 2009년 고속터미널 자리에 새로운 터미널을 세웠다.
그래서 이전 후에 규모가 커지는 대부분 지역에 비하여 공주의 터미널은 오히려 규모가 축소가 되었다.

바람막이 지붕 안에서 찍은 사진.
옆으로 택시가 줄을 지어 서 있고 버스에서 내리거나 마중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입구는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그럭저럭 되는 크기다.

입구로 들어가면 양 옆에 상점들이 줄을 지어 있고 정면에 매표소와 그 뒤로 맞이방이 있는 구조다.
예전 고속버스터미널보다 약간 큰 정도로 시외 시절에 비하면 형편없이 작은 규모다.
하지만 시설이나 서비스는 오히려 훨씬 좋아졌다고나 할까.
승차장 비닐칸막이에서 표를 사야했던 시절에 비하면 정말 눈부신 변화다.

대합실 왼쪽엔 화장실이, 오른쪽엔 편의점이, 기둥에는 ATM기계와 TV가 자리잡고 있다.
위에는 금호고속의 수상경력을 진열하면서 자기 회사를 과시(?)하는 홍보물이 걸려있는데,
국내 버스업계의 최고봉이라지만 보는 입장에선 약간 손발이 오글거린다.

매표소 옆엔 승차권 자동발매기도 설치가 되어있다.
여기서 전국 각지로 연결되는 모든 버스의 승차권을 구입할 수 있지만,
자동발매기보다는 대부분 매표소에서 표를 받으면서 끊는 경우가 많다.






공주의 시외버스 시간표 목록인데, 충남 각 지역으로 연결되는 버스는 무척 발달한 편이다.
대전에서 서해안권으로 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청양, 예산, 보령, 부여로 가는 버스가 특히 많은 편.
하지만 이들보다 규모가 큰 아산행 버스는 찾아볼 수 없다는게 정말 아이러니하고,
충남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의 연계가 너무 부실하다는게 치명적인 단점이다.
동서울, 남부행을 비롯 일부 수도권 노선이 있기는 하지만 영호남쪽으로 가는건 단 하나도 없다.
더욱이 철도가 없는데다 천안논산을 통해 호남과 비슷한 영향권에 속하는걸 감안하면
부산, 대구, 광주, 전주행 노선조차 없다는건 단연 충격적이다.
공주를 본사로 두는 삼흥, 금남 등 일부 업체들의 텃세 때문에 못 뚫는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남부로 가려면 무조건 대전에서 환승을 해야하는데 호남의 경우는 >자형으로 돌아서 가야하니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터미널까지 옮긴 상황에서 전혀 변화가 없다는건 좀 문제가 아닐까 싶다.


강남으로 가는 고속버스 노선은 꾸준한 배차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고속노선과 마찬가지로 우등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일반과 우등의 요금 차이가 900원밖에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 좋다.
대개 1.5배까지 차이나는 우등요금이 여기선 차이가 거의 없는건,
아마도 유독 발달한 남부, 동서울행 시외버스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공주대와 공주사대 등등 대학생 수요도 만만치 않다는 것도 한 몫 한다.

여느 터미널과 마찬가지로 각 노선별로 승차장을 정리하였는데,
한쪽 구석엔 기사님 휴게실과 컴퓨터까지 비치되어 있다.
규모만 작은 유스퀘어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살짝 든다.

승차장은 예전 고속터미널 시절과 거의 차이가 없다.
때문에 수시로 들어오는 시외와 고속노선이 한데 엉켜 언제나 혼잡하고,
부족한 공간 때문에 기사까지 뜰 정도로 또다시 문제가 되고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보완은 해야겠지만, 옆에 주차장과 구터미널 부지가 넓게 깔려있으니 아예 답이 없는 것도 아닐거다.

빨간 차량의 물결로 뒤덮였던 3년 전과 달리 지금은 각양각색의 버스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데,
역시나 공간에 좁아 본사를 두고 있는 삼흥의 경우 옆 주차장을 주요 부지로 쓰고 있다.
시설은 훨씬 좋아졌지만, 공간 부족문제는 더 심각해진 지금의 모습이 마치 양날의 검을 보는 듯 하다.

날이 어두워지고 비까지 쏟아져 미처 다 보지 못한채 버스에 급히 몸을 옮겼다.
운이 좋게도 마지막 일반고속 차가 걸려 조금이나마 돈을 절약하여 갈 수 있었다.
차창 밖으로 부슬부슬 내리는 비, 그걸 하염없이 지켜보는 사람들.
어디서나 익숙한 터미널 풍경이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특별하게 다가온다.

주차장을 나오고 슬슬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조용히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잠을 청할까 하는데 익숙한 풍경이 차창 밖으로 들어온다.
무려 구터미널 앞으로 차가 지나간다.
당황한 나머지 급하게 카메라를 꺼내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조용히 셔터를 닫고 물이 들어가 뻑뻑해진 카메라를 조용히 가방 안에 집어넣는다.
서울에서 정읍까지 명절마다 내려갈 때, 고속도로가 막히면 이따금씩 국도로 갈 때가 있었다.
그 때마다 공주를 거쳐갔는데 동생과 나와 둘이서 '공주?ㅋㅋㅋ'하면서 이름가지고 장난쳤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별 볼일 없는 시골동네구나 하고 지나쳤지만,
세월이 흘러 공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되면서 조금 특별한 곳으로 각인된 것 같다.
일제가 철도를 놓은 이후 조선의 도시 구조가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심했던 곳이 충청도였다.
공주, 충주, 청주, 홍주 네 지역중 유일하게 청주만 살아남았을 정도니까.
그 중에서 유일하게 수도가 되었고 가장 규모가 컸던 공주.
하지만 지금은 대전에 종속되어 살고 있는 조그만 도시에 불과하다.
아마 그러한 몰락과 변화를 버스터미널이라는 존재가 여러 번의 변화를 거치면서 조금이나마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의 터미널도 온전치만은 않은 모습인데.. 과연 20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너무도 궁금하다.
첫댓글 매일 가는 곳이라 제 눈에는 참 익숙하네요, 여담이지만 15~20년전 유성터미널 시간표를 보면 공주방면이 배차시간을 평균적으로 따지다보면 거의 1분 30초마다 한대씩 있었습니다. 그만큼 손님도 많았구요 지금은 1일 120회정도의 대전~유성~공주 운행을 하고 있지요,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많은 횟수로 명맥만을 잇고 있습니다. 제가 봤던 전라도권 노선은 예전에 없어졌지만 금남고속에서 운행하던 공주~논산~금마~여산~삼례~전주 1일 1회 노선이 있었지요..어떤 노선이든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지다보면 없어지기 마련이네요..
제 입장에서는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된 사례라고 봅니다. 처음 터미널 이전개업하고서 첫 날 동서울,남서울,인천이 하나의 홈으로 묶여있는데 동시에 세대 모두 아침8시 정각차였던것입니다. 그래서 홈배정이 잘못되어 큰 소리나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옆에 삼흥고속 부지같은경우는 항상 예비차나 정박차들이 들어오는곳이라 터미널 운행차량들과의 주차공간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공주터미널이 이전되고 초창기에 안 좋은 뉴스가 몇 번 올라와서 약간의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고, 그 것을 글 후반부에 언급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저 또한 매우 긍정적으로 봅니다. 훨씬 깔끔하고 세련되고, 무엇보다 표끊고 버스타기가 편해졌으니까요. 호남권 노선이 하나 있긴 있었군요. 하지만 1일1회에 완행노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저것만 가지고 수요를 판단하기는 조금 애매한 면이 있죠. 청양, 부여 등에서 환승수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도시 노선 하나쯤은 있어도 크게 상관 없을 것 같습니다. 대전-공주 노선이 지금도 많은데, 예전엔 줄배차 수준이었다는게 정말 놀랍기도 하네요. ^^
삼흥에서 운행했던 공주~부여~서천~장항~군산도 아침 첫차시간대에 "편도" 1회있었지요.
같은 운영사가 운영을 해서 그런지 승차장 입구 간판 등 여러 부분이 광천터미널과 같은 양식으로 제작되어 있는게 눈길이 갑니다. 날씨도 안 좋은 날에 다녀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같은 금호인데도 예전 고속터미널과 이웃 논산, 유성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유스퀘어와 너무 비슷해요.
언제부턴가 광천터미널의 양식이 금호터미널이 운영하는 모든 터미널의 표준양식이 되가고있죠..
저도 터미널 입구 글씨체 보고 금호에서 운영하는건가 했는데 맞군요 ^^
예 금호에서 운영합니다 ^^
진짜 미니유스퀘어같은 느낌이 드네요..학교에서 백제에대하여 레포트쓰러갈때 항상 공주를 들려부여를 가고했는데...지금은 정말 깨끗하고 단계적이라고봐요
예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나아졌죠..!
공주에서 4년 살다 이제 아산에 사는데요... 자주 왔다갔다하니 너무 불편합니다만 아산-공주 사이에는 천안이라는 나름의 대도시?가 버티고 있으니 아산 직통을 뚫기란 쉽지 않을 거 같아요... 공주-유구-아산이라도 뚫어줬음 하지만 수요가 적겠죠..
설마설마했는데 공주-아산을 오가는게 하나도 없을 줄은 몰랐습니다. 몇 편이라도 뚫렸으면 좋았을 텐데요..
수고하셨습니다.
비도 많이 오는데...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늘 들려주셔서 저 또한 고맙습니다.
호남지역 갈때는 유성에서 갈아타죠
그렇군요.. 꽤나 번거롭겠어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자가용이 발달하면서 대부분 지역 버스배차가 많이 줄어들고있죠.. 하지만 공주는 그렇게 줄어들었어도 배차가 꽤나 조밀하더군요. 하루빨리 부지를 확장했으면 좋겠네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정말 깔끔하고 좋더군요. 경산도 저렇게 바뀐다면 참 좋겠네요~_~
의외로 아산-공주 수요가 많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천안이라는 도시 때문이지요. 아산도 이제는 천안 환승 체제로 굳혀져가고 있습니다. 아산까지 들어오던 노선들이 점점 횟수를 줄여가고 있지요. 용남 노선 배차간격 보시면 알겁니다.
아산 인구는 날로 늘어나는데 수요가 점점 줄어든다는게 의외네요. 천안 환승이 유용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바로 가는데 더 편한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