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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상청은 일기예보 청이 아니라 중계(中繼) 청이란 별명이 붙었다. 예보라 한다면 문자 그대로 적중률이 있어야 하는데 거의 맞지 않는 예보가 많다 보니 생긴 별명이다. 매월 떠나는 순례와 걸음 여행, 하필 당일 상당량의 비가 온다는 예보가 나왔다. 또 중계인가 하며 동북아와 관련된 기상관련 자료를 검색하다. 고민에 빠졌다. 이번만큼은 적중률이 높게 나왔다.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그래도 결행을 하게 되었다. 그 배후엔 오랜 산중 경험이 도움을 주었다. 단 자신에게 조건을 달았다. 강우량에 따라 계획을 수정한다. 순례단 한사람 한 사람 세심하게 관찰한다. 이상징후 발견 시 즉시 되돌린다. 가급적 걸음여행 코스는 현지 상황에 따라 우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휴가철을 감안, 차량 동선을 경기 동북부 방향으로 잡았다. 양평 - 용두리 - 서원면 유원리- 풍수원으로 잡았다. 서울에서 풍수원까지 약 240리 길이다. 그리고 풍수원에서 월정사 일주문까지 다시 240여리다. 왕복으로 계산하면 천리길이 오늘 움직이는 동선의 길이이다. 7시 30분에 도착한 풍수원 성당, 우리를 반기는 것은 오래된 느티나무 한그루, 성당 역사와 같이 한다.
새벽이라 그런지 바람도 잠결 같다. 쉼없이 내리는 비를 피해 성당 현관 케노피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현관문 핸들을 비틀었다.끔쩍 안한다. 다시 한 번~~ 여전하다. 총무님이 다가오자 좌우측면 문을 확인해 달라 부탁한 후 잠시 기다렸다. 나무문 안에서 철걱소리가 들린다. 문을 살짝 밀었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수녀님이셨다. 조신한 걸음 걸이로 제대를 향해 가셨다. 동선을 살펴 보니 가장자리를 댁해 걸음을 옮기셨다. 예절이 살아 계셨다. 우리도 역시 보고 챙기고 실천 할 일이다.
개인적인 묵상과 기도가 한 동안 이어졌다. 참례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비는 더욱 더 거칠어 졌다. 기단석은 이미 물이 먹었고 붉은 벽돌을 타고 오를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일기가 불순한 상태에서도 욕심이 났다. 십자가의 길 기도처와 ,묵주기도 동산이 있는 산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쏟아지는 비. 감당이 안된다, 간략한 기도를 선택해 함께 모여 드린 후 다시 산상에서 물러 섰다.
스피커가 설치된 철탑을 오르시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보통 굴뚝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놓고 떠나시는데... 하실 말씀이 많으신지 스피커 철탑을 오르신다. 요즘처럼 정보의 홍수에 몸살을 앎은 적이 없었다. 유익한 정보를 교환하고 일상적인 생활 안에서 적극적인 편리한 문명의 이기로 사용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보통신기는 어느새 인권을 유린하고 악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흉기로 변했고 더욱 더 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서로 볼 수 없을 때 깍듯하게 예의를 더 더욱 지켜야 하는 것이 도리인데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사진은 총무님이 산상에 내려오는 중 찍은 사진이다.
풍수원에서 약 20분 정도 소요되는 곳에 금대리란 마을이 있다. 오래된 느티나무가 곁에 있고 배경엔 육중한 산이 있다. 그리고 앞에는 농토가 공소 뜰처럼 동에서 서쪽 방향으로 부채같이 펼쳐저 있는 곳이다.오래된 공소다. 공소 현관문 재질이나 모양이 횡성 성당문을 닮았다. 어느 부부가 봉헌한 문이다. 연신 같은 양의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밖으로 문을 열면 문이 빗물에 상할 것 같아 고심하며 흰지를 살펴보니 안과 밖으로 다 접을 수 있는 기능이었다. 안으로 접어 놓은 후 순례단 형제, 자매님들 입당을 도왔다. 고작 몇걸음이며 동서남북 벽을 마주 볼 정도의 좁은 공간이다. 그러나 답답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목공예를 이용하여 설치한 감실과 제대, 섬세하면서도 마음을 끌어 당기는 아름다움이 있다. 오늘에야 비로서 알았는데 파스칼 형제님이 어느날 목공예를 배우고 있다고 하셨는데.. 글세 이 작품의 주인공이 스승이시란다. 아하~~ 좋은 인연은 어디를 가나 다시 만날 확율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에게 소흘하면 안된다. 이곳에서도 묵상과 기도는 이어졌다. 그리고 횡성 성당을 향해 다시 길을 재촉하였다.
반갑게 다가 오신 주임 신부님, 우중에 남성 구역 형제들과 배론으로 피정차 떠나신다고 말씀하신다. 작은 nap -sack을 메고 계셨다. 오랜 세월 최전방에서 군종신부로 재직하셨던 영향 때문이실까. 남다른 국가관과 애국 정신을 지니고 계신 신부님이시다.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국가가 없는데 우리들의 신앙이 제대로 될리가 있나요. 나라를 사랑합시다. 나라 없는 설음을 겪어 보지 않았던가. 침략으로 온 국토가 초토화 된적도 있지 않은가. 국가와 국민의 국가관에에 대하여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횡성을 떠나 새말 IC를 이용하여 영동고속도로 올라섰다. 안흥이나 치악을 찾을 때 많이 다니던 길이었다. 비는 멈출줄 몰랐다. 예비로 작성해 놓은 생각한대로 진부성당으로 차를 몰도록 이영관씨에게 부탁하였다. 진부성당 마리아홀을 빌려 점심을 배식하고 나눔하는 것이 현재 기상조건으론 가장 이상적 판단이었다.
차에서 내려 성전으로 들어 가자 기도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 조바심이 나는데 주모경이 들리고 마침성가가 들렸다. 그리고 노크를 한 후 사정을 이야기하자 지금 막 주임신부님께서 내려 오셨다가 사제관으로 가셨다고 한다. 사제관으로 인터푼을 눌러도 응답이 없었다. 어느 자매님이 총무님과 전화를 통화를 하시더니 총무님이 곧 오신다고 알려 주셨다. 잠시 총무님께서 차를 타고 오셨다. 반가움으로 악수를하자 총무님은 활달하게 안내해 주시며 다 사용해도 좋다고 하신다. 신부님 점심을 묻자 식사전이라 하셔서 상을 봐 총무님께 드렸다. 잠시 후 주임신부님께서 오셔서 격려해 주시고 사제관으로 올라 가셨다.
같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환대를 받는다 생각하니 뭉쿨한 감정이 물결친다. 우리 집에 온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지 않은가! 60여차 순례와 걸음 여행을 주관하면서 알게 모르게 은총의 힘을 수없이 느껴 온 것은 사실이다. 뒤 마무리를 한 후 성물방으로 가 8월 매일미사책 한 권을 샀다. 그것도 일반적인 크기의 갑절 크기의 책으로 선택하였다. 폰드가 커 읽기가 편할 것이란 생각에서다. 매월 스스로 발행하는 순례& 걸음여행 월보도 글씨가 너무 작다는 불평이 있었는데 그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가격은 평균 사이즈 보다 500원 비싸다. 오후 일정은 걸음 여행이다. 아직도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이른 아침 보다는 눈에 띄게 줄어 들기 시작하였다.
직립 인간에게 걷는다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걷는 일은 아주 소중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과거와 달리 현대인들은 각종 문명 이기의 영향으로 점점 걷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대신 고열량의 음식을 섭취할 기회가 많다 보니 지방이 온몸에 축척되어 건강을 악화 시키게 된다. 자신의 건강 이상 유무에 대하여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다. 어느 날 무엇인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병원을 찾는 것도 스스로 인지한 덕분이다. 걷게 되면 작은 병들은 자연치유가 가능해지고 현대병과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고정신적으로도 이완되어 스트레스도 사라진다. 각종 오염으로 가득 찬 도시를 떠나 창조적인 질서인 자연 속에서 도반들과 함께 유쾌하게 오랜 시간 걷다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에 활력이 깃드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아호는 우보(友步)다 걸음을 친구 삼아 걷는다는 뜻과 친구들과 함께 걷는다는 뜻이 함께 들어 있는 호다. 그리고 음이 같은 우보(牛步)라 하기도 한다. 오르막에서는 성미가 급해도 천천히 올라야 한다. 그래야 끝까지 갈 수 있게 된다. 느릿한 마음으로 소처럼 걷는 자연의 길 만 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숲 안으로 난 아름다운 길을 걷다 보면 정신과 마음이 명료해 지고 환희심이 생긴다. 그런 경험을 오래시간을 통해 쌓으면 생각과 행위 조차도 아름다움으로 순치되어 모든 것이 편안해 진다. 그리고 걷는 일에 요란한 준비는 필요 없다. 편안한 복장과 신발, 그리고 도시락과 물 한 병만 있으면 된다. 걸어서 하늘까지 갈 수 있는 마음의 환경이 조성된다.
치유의 전나무 길을 우중에 걷는 일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한다. 피톤치드가 공기와 함께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유영하는 순간이 바로 비 오는 전나무 숲이다. 보고 듣고 마시고 느끼는 것들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환경이 비가 내리는 숲이다.
숲은 살아 있었다. 우린 그것을 생기(生氣)라 표현한다. 걸으며 숲 안으로 들어 갈수록 생기라는 단어가 가슴에 와 닺는다. 도시에서는 닫혔던 모든 것들이 모두 열려 생기 있게 만들어 주니 우리들은 행복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 살아 있는 숲, 숲은 잠들어 있지 않고 살아 있었다. 숲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하고 그 안에서 사색하고 기도하며 걷는 순간은 새로운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기쁨이기도 하였다.
만월교 앞. 전나무 숲,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건강한 숲은 그 안을 찾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물한다. 도시에서 문명은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격을 나누고 인위적인 분별력으로 담을 쌓지만 숲은 자유이고 해방이며 소통이다. 갈수록 문명은 사람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넣지만 자연은 구원의 손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매순간을 인간 본연의 빛과 표정으로 표현한다. 비가 내림으로서 부정적인 축면도 있지만, 오히려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숲을 보면서 사람들과 다틈 보다는 친교가 더욱 더 간절하다는 생각을 갖을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람을 통해 편해 지려면 우선 배려하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
대부분 전망대 위치는 조망권이 탁월한 위치에 설치한다. 이곳에서 오대천을 바라보면 큰 강을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강수량이 많은 여름에 특히 더 강물처럼 느껴진다. 오대산이란 지명은 북대, 남대, 동대, 서대, 중대라는 지형적인 특색에서 생긴 이름이다. 적멸보궁 중심으로 연꽃처럼 산세가 형성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불가에서는 그 산에서 나오는 물을 오대산(五臺山) 산수명(山水名)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명명하고 있다. 동대 청계수, 서대 우통수( 우통수는 한강의 시원지라 부른다) 남대 총 명수, 북대 감로수, 중대 옥계수, 그리고 문수보살 성전인 상원사 물을 지혜 수라한다. 이와 같은 물이 합수가 되어 흐르는 천이 바로 오대천이다
선재길 다리 입구에 도착하자 일기의 불순으로 오늘 폐쇄한다는 설명과 함께 출입문이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예상한 대로였다.
금 강교 부근에서 대기하는 차를 불러 모두 승차한 후 오대산 산장으로 이동하였다. 산장에서 따듯한 차를 시켜 한 모금씩 마시며 쉬어 가기로 하였다. 이곳에 걸을 수 없는 형제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걷는 형제들의 일정에 맞춰 상원사 주차장으로 이동하도록 계획을 잡아주고 나머지 인원은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가는 곳곳 길은 폐쇄되어 우회하며 결국 상원사 입구 관대걸이 있는 곳까지 도착하였다.
관음 보살 다음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보살은 문수보살이고 지혜를 상징한다. 석가의 왼쪽에 서서 오른쪽의 보현보살과 삼존상을 형상한다. 반야경을 결집하여 편찬하여 경전을 손에 쥔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화염경에서 비로자나 불의 협시 보살로서 보현보살과 삼존불의 일원이 된다. 보현보살이 이 세상에 뛰어 들어 구도자의 모습으로 활동할 때 문수보살은 사람들에게 지혜의 좌표다. 특히 문수보살은 연꽃이나 경전을 손에 쥐고 있다. 이에 비해 보현보살은 자비를 상징한다. 가장 중요한 보살로서 부처의 이법(理法)을 실천하여 중생을 교화 시키고 중생들의 수명을 연장 시켜주는 덕을 지녔으나 문수보살보다 우리나라에선 유명세를 타지 못하였다. 화엄경 입법 계품에서 선재 동자가 깨달음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계기도 문수보살의 안내로 시작된다. 여행에서 만나는 58명의 선지식인 중 마지막으로 만나는 보살이 바로 보현보살이다. 끊임없는 구도의 노력에서 얻은 깨달음을 이 세상에서 실천으로 완성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보살이다. 다시 정리해 보면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여 마침내 성불하는 중생을 보살이라 하는 것이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지이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에 보천과 효명의 두 왕자가 창건한 진여원(眞如院)이라는 절에서 시작된 사찰로, 조선 세조가 이곳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질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와 같이 상원사는 문수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절로,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동자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고개는 약간 숙인 상태이며 신체는 균형이 잡혀 있다. 머리는 양쪽으로 묶어 올린 동자머리를 하고 있으며, 얼굴은 볼을 도톰하게 하여 어린아이같은 천진스러움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넓은 어깨에는 왼쪽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가로질러 옷자락이 표현되어 있고, 가슴에는 구슬장식이 늘어져 있다. 옷주름은 신체의 윤곽에 따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엄지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왼손은 엄지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을 거의 맞닿을 듯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왼쪽 다리를 안으로 접고 오른쪽 다리를 밖으로 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대좌(臺座)는 마련되지 않았다.
최근에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에 ‘조선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 12년(1466)에 이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유래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조선 전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천음회향(天音回香) 上院寺 동종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졌다. 경주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중 하나이며, 크기는 높이 167cm, 입지름 91cm이다.
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종 몸체의 아래 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유곽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 네 곳의 유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을 새겼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구슬과 연꽃 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비는 가끔 내리다 다시 멈추고 다시 내리고 반복하는 사이를 이용하여 목우당(牧牛堂) 뜰에 서서 산사의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문수전 뒤 산기슭 소나무과 여러 수종과 만초의 어룰림 공간이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육지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리는 나무는 침엽수들이다. 물론 풀이 먼저 들어 온 후 나무가 들어 오지만, 그리고 다시 활엽수들이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하며 소나무는 산 상부쪽으로 자리 이동하고 자기들끼리 군락을 형성하며 거대한 고목으로 성장해 나간다. 그리고 소나무들이 내뿜는 특유의 향취 영향으로 풀들은 그 아래에서 생존은 어렵다. 그래서 소나무군락지 아래를 보면 대부분 휭하니 비워 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된다. 그러나 상원사 문수전 뒤 기슭은 초목이 적당하게 어울려 상생의 아름다운 숲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상원사를 올 적 마다 동종을 보고 문수동자상과 고양이 석상과 서체들을 즐겨 찾아 보지만 빼 놓지 않고 긴 시간 동안 문수전 퇴마루에 걸터 앉아 보는 곳이 바로 문수전 뒤 숲이다. 월정사 전나무 숲 길에서 평화를 얻는다면 선재 길에서 지혜를 얻고 문수전 뒤 숲에서 상생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소나무과 수종들이 깨달음을 얻은 성자라면 만초(萬草)들은 깨달음을 전해 받아 삶의 지혜를 전수받고 속세의 세계을 자비와 평화의 세상으로 만들어 나가는 속세인들이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飛天한 동종(銅鐘)의 소리는 하늘의 소리가 되었으나 되돌아와 향(香)이 되어 흩으러 지고 (天音回香) 千古의 智慧는 깨어 있는 마음이 된다는 내력 앞에 잠시 섰었다. 전나무 숲길을 포함한 내가 걸어온 길을 살펴 보기 위함이었다. 누구에게나 발자취는 평생 자신을 따라 다닌다. 어제가 없는 삶은 오늘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깨달음이 없는 삶은 온전한 삶도 될 수 없다. 늘 자신을 진리안에 놓아 두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함께 깨달음의 길을 걸은 삶의 도반들에게 감사드린다.그리고 순례자들을 반갑게 맞아 주시고 여러 형편을 도와 주신, 풍수원, 금대리, 횡성성당, 진부성당 신부님, 수녀님, 형제, 자매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인내와 겸손과 존경의 마음으로 떠나는 순례와 걸음여행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언제나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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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자연에도 힐링~
마음도 힐링~
건강, 행복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