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국사봉(國師峰, 높이 175m)
▶ 위치- 황산면 원호리 산 66-1
우리면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오고 있는 국사봉은 동부지역에 있다. 제정분리사회 천신(天神)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을 만큼 산의 명맥은 고대사회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려시대에는 남경사신이 제를 지내고, 삼별초 항쟁 때는 김방경(고려시대 명장)이 삼별초와의 전면전을 앞두고 출사 전 대제를 지냈다는 설이 전해온다.
풍수지리에 입각한 국사봉은 그 머리가 백두대간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철마(鐵馬)형의 지세이다.
2) 행치산(行雉山, 높이 175m)
▶ 위치-황산면 연호리 산 133
행치산은 와등마을 원(院)다리개를 지나 앞쪽에 있는 산으로 과거 우리지역 구(舊)도로가 이 산과 통해 있었다.
호남읍지(1895)에는 고려시대 국사봉에서 제를 지낸 남경사신(南京使臣)이 이곳 행차령(行次嶺)을 지났다는 것으로 보아 행치산은 행차령에서 유래 된 것으로 보이나, 주민들은 꿩들이 많이 있다는 뜻에서 행치(行雉)라 불렀고, 예부터 이 산에는 행치포란(行雉抱卵)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오래전 이 산에는 행사(行寺, 행치사)라는 절이 있었다.
3) 한사봉(寒士奉, 높이 160m)
▶ 위치- 황산면 원호리 산 146번지
한서봉은 한새봉, 황새봉이라 불리는데, 국사봉의 바로 옆에 위치한다.
과거에는 지금의 한서봉이 국사봉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최금술의 ‘황산의 뿌리’를 보면 이곳의 지세는 신선이 글을 읽는 선인독서(仙人讀書)의 형국이라 전한다.
4) 부아산(浮兒山, 높이 62m)
▶ 위치- 황산면 외입리 산 59번지
과거 우리면의 남서부에 있는 외입, 부곡, 춘정, 성산마을 일대를 갓바위(입암 笠岩)라 불렀다. 갓바위는 외입마을 뒷산인 부아산 중턱에 있는 큰 바위로, 산의 이름은 갓바위의 모습이 ‘애기 업은 어미의 모습을 하고 있다’하여 부아(浮兒)라 이르게 되었다.
갓바위는 황산남서부의 상징처럼 되어 왔는데, 300여 년 전부터 부아산을 중심으로 외입·송청은 외립암, 춘정·성산은 내립암, 부곡·신곡·소정은 부옥촌으로 분리했으며, 총칭해서 입암이라 칭했다.

5) 관두산(冠頭山, 높이 53m)
▶ 위치- 황산면 남리리 산 1-19번지
관두산은 우리면의 중앙에 위치한 산으로 구전에는 산의 모습이 장군의 투구 2개를 씌워 놓았다고 하여 관이산(冠二山)이라 하였고, 관이산은 관둘산이라 변이 돼 ‘ㄹ’ 이 탈락하여 관두산으로 칭했다.
그런데 세종실록 지리지(1454)에는 관두산의 한자음을 관자산(館子山)으로 표기하고, 이곳에는 성(城)이 있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유래는 전하지 않고 있다.
(6) 명암산(鳴岩-둥둥뫼, 높이 79.7m)
▶ 위치- 황산면 호동리 산 160
명암산은 호동 마을회관에서 보면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
산의 정상 부근에 넓은 바위가 있어 이곳에 올라 발을 구르면, ‘둥둥둥’하는 소리가 난다고 하여 둥둥바위라 칭하고, 이 산을 둥둥뫼(명암 鳴巖)라 부르게 되었다. 명암산의 서쪽 산기슭 부근에는 절골이라는 지명유적이 남아 있다.
(7) 덕암산(德岩山, 높이 72m)
▶ 위치- 황산면 연당리 산 33-1
덕암산은 덕음산(德陰山)이라고도 불리며, 현재 덕암마을의 뒷산이다.
이 산에는 복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고, 바위에는 작은 샘이 있어 혹독한 가뭄이 찾아와도 메마르지 않는다고 하며, 예부터 후사가 없는 아낙들이 찾아 치성을 드리면 곧잘 사내아이를 얻었다.
8) 옥매산(玉埋山, 높이 175m)
▶ 위치- 황산면 옥동리 산1-11
황산면 서부지역에 위치하고 문내면과 인접해있는 옥매산은 수많은 전설이 전해져오고, 해남군의 특산품인 옥돌공예의 원석 생산지로 유명하다.
옥매산은 명반석(옥돌공예 원석- 정수기능이 탁월)과 납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을 중심으로 12계곡이 펼쳐져있다.
12계곡은 용샘골, 배나무골, 감투골, 뒷골, 칼골, 참샘골, 어장골, 장골, 바람골, 새비골, 셋골, 호골 등인데, 예부터 극심한 가뭄이 들면 12곡의 1곡인 용샘골(龍泉골)에서 최근까지 기우제를 지냈다.
(9) 보타산(寶陀山, 높이 105.2m)
▶ 위치- 황산면 관춘리 64-8
보타산은 내산마을의 위쪽에 자리한 산으로 현재 이 산의 뒤편으로는 도장사(道藏寺)가 있다. 본래 이 산에는 백연암(百蓮庵)과 도장사 등 2개의 절이 있었는데, 백연암은 창건되고 백 년 동안 유지하다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내산마을의 보타산(寶陀山)은 중국 불교가 최초로 일어난 보타산(普陀山)성지와 동음(同音)인데, 어떻게 해서 이 산의 이름이 보타산으로 작명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도장사(道藏寺)의 창건과 연관이 있다.
조선후기 윤선도는 보타산의 주위에 호호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다는 지명유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