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지폐의 등장은 한세기를 겨우 웃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장한 지폐는 1893년(고종 3년)에 만들어진 ‘호조태환권’이라는 지폐이다.
이 지폐는 제조를 관장했던 부서인 호조에서 당시 화폐로 쓰고 있던 엽전을 회수해 지폐로 바꾸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지폐는 화폐 업무를 담당한 일본인들의 운영권 다툼 때문에
인쇄는 되었지만 발행은 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1904년에 우리 정부 허락 없이 일본 제일은행권이 발행된다.
제일은행권이 발행된 이후 그 유통량이 증가되었으나 우리나라 정부요인이나 재야 지식인들은
일본의 조선에 대한 화폐 침략의 선봉에 서게 됐다고 인식하고 제일은행권 유통 배척 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여러 지폐들이 발행됐지만 한국의 지폐라고 볼 수 없고,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1일부터 사용된 100원짜리 조선은행권이 한국 최초의 지폐라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 지폐의 역사는 일본의 침략과 맞물려 시작된 기구한 운명이었다면,
지폐 속에 등장하는 인물 또한 다양한 애환이 서려 있다.
1956년에 발행된 500환권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인물 도안이 중앙에 위치하면서
반으로 접혀져 수모를 준다며 초상의 위치가 바뀌었다.
1962년 5월 16일 발행된 100환권 지폐에는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아들이 저금통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지만
발행 20여일 만에 통화조치 때 새로운 화폐가 발행되면서 폐기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25일 5만원권 신권을 공개했다. 10년을 끌어 왔던 고액권 발행의 논란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논란 속에 있는 것은 인물이다.
5만원권의 신사임당은 ‘부계혈통에 앞장선 여성’으로 화폐 인물로 적당치 않다는 주장 속에
‘시대에 앞서 나갔던 인물’ 등으로 주장이 엇갈린다.
1973년 서양인의 얼굴로 세종대왕이 1만원권에 등장한 뒤 현재의 도안으로의 변경에 공감했다면,
화폐 속 논란의 신사임당은 두 패로 나눠진 듯한 현재의 우리 사회구조의 갈등을 대변하는 듯하다.
전강준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