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 周星馳 Stephen Chow
주님은 여전히 웃겨주신다!
“난 상처받지 않아. 난 이미 상처투성이야!” _<파괴지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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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주성치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주성치만이 갖고 있는 박애사상(?) 때문이다. 주성치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그들은 대부분 모자라거나 별볼일없는 사람들이다. 배를 잡고 웃게 만드는 그의 영화 저변에 깔린 감정이 사실 슬픔이라는 것을 눈치채기란 무척 쉬운 일이다. 만약 주윤발이 신이라면 주성치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시는 ‘주님’ 같은 존재다. 일명 ‘모레이 타우’라고 불리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설정들이지만 그의 영화는 이상하게 심금을 울린다. 주님의 초창기 영화의 웃음 포인트들은 패러디 개그에서 비롯된다. <서유기> 시리즈 중 하나인 <서유기 선리기연>(1994)에서 볼 수 있는 <동사서독> <중경삼림> <동방불패> 패러디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웃겨서 눈물이 난다. 눈물이야말로 웃음의 포인트라는 것을 아는 이가 바로 주성치다.
1988년 <벽력선봉>으로 데뷔한 그는 주윤발 주연의 <도신: 정전자>를 패러디한 <도성>(1990)으로 흥행배우가 됐다. 그가 주윤발을 흉내낸 ‘인간 슬로모션’ 연기는 압권 중의 압권이다. <도학위룡>(1991), <신정무문>(1991), <심사관>(1992)을 비롯해 공리와 공연한 <당백호점추향>(1993), 그리고 주성치의 최고작으로 손꼽히는 <서유기>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그의 썰렁개그는 90년대 초반부터 성룡의 영화세계를 위협할 만큼 초강력 파워를 자랑하며 홍콩영화 시장을 잠식했다. 주성치는 코믹연기뿐 아니라 각본, 제작, 연출 등 1인4역의 제작자로도 유명하다. <희극지왕>(1999) 이후로 기술적으로 좀더 진지해진 그는 <소림축구>(2001)에서 각본, 주연, 제작, 감독 1인4역을 맡아 큰 성공을 거뒀다. 이로써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한 그는 쿵후 액션 블록버스터 <쿵푸 허슬>(2004)를 통해 다시 한번 뛰어난 엔터테이너로서 기량을 발휘했다. 물론 엉성한 세트, 형편없는 비주얼로 일관했던 주성치의 초기작들과 비교하면 2400만달러짜리 <쿵푸 허슬>은 몹시 훌륭한 반찬이어서 송구할 따름이다. 그러나 루니툰을 아무렇지 않게 패러디하는 컬트적 감성과 과장된 연기, 그리고 ‘루저를 향해 바치는 희망의 메시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나름의 세계관은 그의 마니아들을 열광케 하기 충분했다. 이제 아무리 “뽀로뽀로미~!”를 외쳐도 과거의 주성치로 돌아갈 순 없을 것이다. 중국의 유인우주선을 소재로 한 SF영화 <장강 7호>가 그의 차기작이라니 저예산 코믹 컬트영화 보기는 영영 글렀다. 하지만 영원히 고갈될 것 같지 않은 그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좀체 사그라지지 않는다.
양조위 梁朝偉 Tony Leung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눈빛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스쳤다면 우리의 인연도 달라졌을까?” _<204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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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현대의 소시민적 삶, 양조위. 1962년생인 그는 주성치와 동갑이지만,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동사서독>(1994)의 맹인검객, <해피투게더>(1997)의 동성애자, <화양연화>(2000)의 불륜에 빠진 남자, <무간도>(2002)의 스파이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어떤 배역을 맡아도 깊이 있고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우울한 듯 슬픈 눈빛이다. 눈빛 하나로도 정확한 감정을 표현해내는 그는 비슷한 시대에 활동했던 여타의 만능 엔터테이너들과 달리, 꾸준히 연기 외길인생을 걸었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해상화>(1998)와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던 그는 2000년 <화양연화>로 칸의 남우주연상 주인공이 되었다.
18살 때부터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녹정기> <대운하> <의천도룡기> 등의 드라마를 거쳐 <청춘차관>(1985)으로 영화계에 데뷔한다. 다수의 무협, 형사물에 출연하던 그는 오우삼 감독의 <첩혈가두>(1989)로 스타로 등극하지만 정작 자신의 끼를 제대로 발휘한 것은 작가주의 감독 왕가위의 영화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아비정전>(1990), <동사서독>, <중경삼림>(1994),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2046>(2004) 총 6편의 왕가위 영화에 출연하며 ‘왕가위의 페르소나’라고 불리기도 한다.
최근 <상성: 상처받은 도시>에서 형사로 분한 그는 다시 오우삼 감독에게로 돌아왔다. 바로 20년간 오우삼이 꿈꿔왔다는 영화 <적벽대전>에 출연하게 된 것. <삼국지>의 하이라이트인 적벽대전을 소재로 한 <적벽대전>은 한국·중국·일본·대만·미국 5개국 합작 영화다. 금성무(제갈량), 장첸(손권), 장풍의(조조)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역대 아시아 영화 최대 규모인 7천만달러(648억원) 제작비가 투자된 초대형 블록버스터다. 양조위는 제갈량 역을 제안받고 고사했으나, 주윤발로 예정됐던 주유 역을 맡아 고민 끝에 영화에 전격 합류했다. 주윤발과 양조위를 동시에 보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양조위에 대한 기대는 한층 부풀려도 괜찮을 것 같다. <삼국지> 시리즈로는 이례적으로 유비가 아닌 주유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는 까닭이다. 오우삼과 양조위, 게다가 <삼국지>라니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유덕화 劉德華 Andy Lau
천왕의 전성기는 그치지 않는다
“조조, 우리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는지 하느님께 빌어봐.” _<천장지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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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화는 가수도 아니고 배우도 아니여~. 이건 단지 비꼬는 말은 아니다. 그는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다. 화려한 외모에 곽부성, 장학우, 여명과 4대 천왕으로 불릴 만큼 타고난 가창력, 타고난 연기력의 소유자이자 영화제작자, 영화사 음반사 사장, 홍콩 최대의 미용그룹을 경영하는 사업가의 면모까지, 그를 설명하는 수식은 참으로 많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는 홍콩영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뛰어난 연기파 배우다. 1982년 <채군곡>으로 영화에 데뷔한 그는 지금까지 약 14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그의 최대 장점은 출연한 영화의 수만큼이나 연기 폭도 다양하다는 점이다. <정고전가>(1991), <복성고조2: 칠복성>(1985) 같은 코미디부터 <신조협려>(1991) 같은 고전무협, <지존무상>(1989), <천장지구>(1990)의 남성적인 액션, <아비정전>(1990), <열혈남아>(1988) 같은 섬세한 드라마, <묵공>(2006) 같은 묵직한 사극을 그는 거뜬히 소화해내고 만다. 생각해보라. 드레스를 입힌 오천련을 오토바이에 태운 채 적과 싸우던 남자와 <도신: 정전자>(1989)의 껄렁거리는 양아치를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겠는가.
유덕화의 전성기는 끝이 없을 듯하다. 그는 현재 한중 합작 무협 블록버스터인 <삼국지-용의 부활>을 촬영 중이고 진가신 감독의 <투명상>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전자는 <흑협> <성월동화>의 이인항 감독이 14년간의 기획 끝에 만드는 작품이며 할리우드의 신성 매기 큐가 공동 주연을 맡았다. 후자는 홍콩 무협영화의 전설 장철 감독의 <자마>(1973)의 리메이크작으로, 이연걸, 금성무 등과 함께 출연한다. 두 영화는 각각 2007년 말과 2008년에 개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