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 - 비 내리는 팔월, 술 땡기는 날의 서정
인생에 그리고 세상에 우연이란 게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까? 모든 게 계획대로, 또 프로그램대로 돌아간다면 인생의 어느 틈에 설렘이 있고 또 희망 같은 게 자리할 수 있겠나. 문학의 재미란 그러한 우연에 의탁한 삶의 불확정성에 있지 않겠는가. 작열하는 태양에 강가의 나무조차 움츠리는 여름의 한복판, 오늘은 불현듯 낙동강 둑 넘어 우리 마을에도 밤새 비가 내렸다. 예나 지금이나, 젊을 때나 늙어서나 내게 비의 서정은 거부하기 힘든 매혹이다. 쫓아나가 삼겹살에 막걸리 한 잔,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비영화가 땡겼다. 비가 모티브가 되는 영화는 거의 다 본 것 같은데 혹시나 해서 인터넷을 이리 저리 뒤졌다. 「호우시절」, 이게 딱 걸렸다. 2009년에 나온 영화인데 제목조차 낯선 걸 보면 인기는 ‘별로’였던 모양이다. 역시 요즘 세대의 정서에 잘 어울릴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비가 동기화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클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이야기인가?
영화 첫 장면은 비행기 안이다. 기 내에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한 젊은 남자가 읽던 책을 덮는데, 문득 책 사이에 꽂혀있는 엽서 한 장에 시선이 간다. 책은 무슨 시집으로 보이고 엽서는 길가로 커다란 대나무가 늘어선 그림엽서이다. 저 시집과 엽서가 이 영화의 중요한 복선이라는 것을 쉬 예측할 수 있다. 당겨서 말해 버리면 남자가 읽던 책은 두보의 시집이고 옆서의 사진은 청두에 있는 두보초당의 정경이다.
과연, 비행기가 이륙한 곳은 중국의 청두 공항. 그렇게 건설장비회사의 팀장인 박동하(정우성)는 3박 4일의 출장으로 청두에 도착한다. 첫 미팅까지 시간이 좀 남자 동하는 지사장(김상호)의 안내를 받아 먼저 두보초당을 방문한다. 잘 알듯이 두보는 이백과 함께 중국 고전시문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시성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으로서 그의 명성은 빛바래지 않고 있다.
나도 몇 학기 전에 두보의 시를 교양강좌에서 학생들과 같이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인생이 그리도 궁핍하고험난했던 줄, 그때 처음 알았다. 그의 죽음만 봐도 알 수 있다. 두보는 말년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 배를 타고 강위를 떠돌다가 허기진 배에 상한 음식을 먹고 객사했다고 한다. 그나마 58년 인생의 여정 중 가장 안정적이었던 시절이 바로 청두에 초당을 짓고 살던 시절이었다. 이곳에서 4년을 보내며 지은 시가 240여 편 되는데, 모두 주옥 같은 명작이라고 한다. 시가 명작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언젠가부터 저 초당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영화 「호우시절」은 바로 두보가 청두 초당시절 때 지은 「춘야희우春夜喜雨」 중 첫 구절을 따 온 것이다.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 단비 시절을 알아 내리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 봄을 맞아 생명이 싹튼다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 봄비는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 가늘게 소리도 없이 만물을 적신다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 들길과 하늘의 구름 모두 어두운데
江船火獨明(강선화독명) : 강가의 배에 불빛 번쩍번쩍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 이른 아침 붉게 젖은 땅을 보니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 금관성엔 꽃 활짝 피었으리
봄비 내리는 밤의 정취를 그린 시인데, 시인은 시절을 알고 내리는 비를 ‘호우’라며 반기고 있다. 그런데 허진호 감독이 이 시에서 따온 영화제목에는 한 글자가 빠져 있다. 즉, 두보는 호우시절이라고 쓴 것이 아니라 ‘호우지시절’이라고 썼다. 의도적인지 실수인지 알 수 없으나, 두 문구는 뜻이 좀 다르다. 호우시절은 단순히 '좋은 비가 내리는 때'를 말하지만 ‘호우지시절’은 때를 아는 좋은 비라는 뜻이다. 영어 제목은 또 「Good Rain Knows」라고 하여 지를 넣고 있다. 뭐, 영화 감상을 말하며 이런 걸 따지려는 심사는 아니다. 시나 영화나 공히 중요한 것은 비雨. 과연 영화에도 비오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결정적인 상황은 늘 비와 연계되어 있다. 물론 이 비는 일기예보가 말하는 기상학적 비가 아니라 주인공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서정적인 매개로서의 비이다.
영화의 스토리로 돌아가면, 두보초당을 구경하던 동하는 잠시 지사장과 길이 엇갈려 혼자 대나무 길을 오락가락한다. 그러다가 일단의 외국 관광객들 앞에서 두보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한 여인에게 시선이 꽂힌다. 아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그렇게 운명처럼 만난 여인, 메이(고원원)라 불리는데 대나무처럼 청순하고 해사하다. 이 중국 여인은 예전에 동하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함께 공부하던 학생이다. 반갑고도 놀라운 재회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호우시절」의 본격적인 스토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미국유학 시절,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동하와 메이는 뜻밖의 만남에 산책도 하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즐거운 데이트를 한다. 하지만 예리한 눈을 가진 관객이라면 메이의 얼굴에서 2퍼센트 가려진, 뭔가 어두운 그림자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전날을 기억하는 방식이 매우 다르다. 여자와 남자의 의식의 차이일까? 메이는 과거사를 축소 편집하여 기억하고 있는데 동하는 과대 포장하여 기억하고 있다. 동하는 메이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사랑을 고백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 메이는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뗀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들자면, 동하는 첫 키스의 기억을 설렘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메이는 키스 자체를 부정한다. 그러면서도 여자는 그렇다면 키스를 어떻게 했는지 다시 재현해보라며 입을 갖다 댄다. 남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여자의 이중심보이다. 좌우당간 그렇게 두 사람의 데이트는,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매우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된다.
다음날 데이트 때는 메이도 내적 방어벽을 걷어내고 자기도 동하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조심스레 고백한다. 조심스레 고백하는 이유는 알고보니 메이의 복잡한 현실 때문이다. 이것은 뒤에 밝혀진다. 계속되는 대화 속에서 서로 좋아한 두 사람이 왜 헤어졌는지 드러난다. 오해, 사랑에는 역시 오해가 있기 마련. 즉, 동하는 메이가 다른 외국 남학생(Ben)을 좋아하는 것으로 오해했고 메이는 동하가 일본 여학생과 연애한다고 오해한 것이다. 여기서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더 전개시키지 못하고 묻어버린 것이다. 기실 영어로 소통해야하는 한국 남자와 중국 여자의 관계란, 처음부터 장애를 안고 시작하는 사랑이다. 사랑과 언어, 처음에는 눈으로 몸으로 통할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언어의 차이는 해갈되지 않는 뭔가로 남는 것 아닐까?
늦게나마 오해가 풀렸으니 두 사람의 관계가 급진전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일단 허진호 감독의 컨셉이 막장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황순원의 ‘소나기 감성’의 계보를 잇고 있다. 2013년에 나온 로맨스에 키스 이상의 장면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면 말 다했지 않는가. ‘소나기’, 그렇다. 두 사람의 재회가 일회적인 우연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하는 데는 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즉, 두 사람은 설레는 데이트를 하던 중 야외 댄스파티에서 춤을 추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손을 잡고 어느 건물 처마로 뛰어 들어가 비를 피한다. 그리고 대화는 빗물처럼 두 사람의 감성을 파고든다.
새로 드러나는 사실 중에 특기할 사항은 이것이다. 동하는 유학시절까지 시인을 꿈꾸던 문학도였고 메이 역시 문학을 공부하던 문학소녀였다. 메이는 여전히 전공을 붙잡고 있는바, 두보의 시로 박사논문을 막 완료한 상태이다. 그가 청두에서 관광가이드를 하는 이유도 실은 두보초당의 기를 받으며 논문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이유인지 모르나 동하는 메이보다 1년 먼저 귀국하여 문학의 길을 가는 대신 건설회사(두산)에 들어간다. 그리고 오늘의 현실(팀장)에 이른 것이다. 그러한 동하의 현실이 뜻밖인지라 메이가 질문을 던진다.
메이: 난 네가 시인이 될 줄 알았는데?
동하: 알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나도 모르겠어. 처음엔 잠깐 다니려고 했어. 첫 월급을 타면 그만두고 다시 써야지 했는데. 다음 달 월급이 들어오고. 그러다 승진을 하고, 그러니 책임감이 생기고 점점 그만두기 어려워지더라고.
메이: 그거 알아? 난 네가 쓴 시 참 좋아했어.
동하: 메이, 내가 처음부터 널 사랑했다는 걸 지금이라도 증명한다면 뭐가 달라질까?
메이: 동하,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 꽃이 피니 봄이 오는 걸까?
동하: 무슨 뜻이지?
통속한 멜로 장르이나 이 대화는 여러 가지 삶의 진실을 담고 있다. 먼저, 인생이란 게 결코 생각하고 계획한대로 되지 않는다는 보편적인 진리가 언표되어 있다. 시인을 꿈꾸던 유학생이 귀국하여 건설회사의 직원이 되어 살아가는 현실, 전혀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전공과 다른 일로 밥 먹고 살고 있는가? 나만 해도 그렇다. 청춘을 소진하며 붙잡고 있던 공부와는 (거의) 무관한 일로 밥 벌어먹고 있고 그 세월이 강산이 한 번 반 변하도록 이어지고 있다. 물론 후회 같은 걸 담은 언표는 아니다. 과정 자체 만으로도 즐거웠고 외도의 길도 재미 없지는 않았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위 대화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중요한 주제는 이것이다. 어긋난 옛 사랑을 복구하는 것이 가능할까? 남자답게 동하는 이걸 직설법으로 물었고 메이는 여자답게 은유법으로 대답한다. 거의 선문답이다. ‘봄이라 꽃이 피는가, 꽃이 피니까 봄인가?’ 무슨 말인가? 동하는 시인을 꿈꾸었던 인간이 이게 무슨 뜻인지 몰라 뜨악해 한다. 나도 메이의 가슴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해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이 말은 이런 뜻일 것이다. 당신이란 존재가 나타나 내게 사랑이 일었는지, 내 가슴에 사랑이 끓고 있었는데 마침 당신이 거기 있었는지? 그러니까 사랑이 상수인가, 대상이 상수인가? 라는 화두이다. 메이는 사랑이 상수이고 남자는 변수라고 생각한 것 같다. 최소한 그렇게 자기체면을 걸고 있었다. 이게 동하가 나타나면서 흔들린다. 아니,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메이는 동하를 사랑했지만 그가 떠난 뒤에는 다른 남자를 만났고 또 결혼까지 해서 잘 살아왔다. 이 관계가 어떤 곡절을 맞았는지는 뒤에 밝혀진다.
이렇게 비 내리는 중국 청두의 밤, 처마 밑에서 두 사람은 전날의 역사를 복원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서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 하나 더 대두된다. 바로 자전거, 이게 특히 내 시선에 오롯이 포착된 것은 나야 말로 자전거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뭐 눈에는 뭐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 않나 ㅎㅎ.
그러니까 동하는 미국 유학시절 메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고 또 함께 타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귀국하면서 자신의 자전거를 메이에게 물려주고 왔다. 노란 자전거. 그 자전거를 어떻게 했느냐고 묻는데, 메이는 팔아먹었다고 한다. 동하의 두 눈이 실망으로 동그래지는데, 놀라운 것은 자전거를 팔아먹은 이유가 자전거를 못 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에 직접 자전거를 가르쳐 주었고 또 같이 타고 다녔던 자전거를 못 탄다니? 뭔가 석연찮은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여간 두 사람은 소위 ‘필이 꽂혀’ 즐거운 데이트를 하고 마지막에는 깊은 포옹까지 한다. 이때서야 메이는 감정의 빗장을 푼다. “내가 네게 사랑한다고 말한 게 언제인지 알어?”하지만 여기까지. 메이는 동하의 품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3일 간의 출장이 끝나고 다음 날 한국으로 가야하는 동하에게는 너무나 아쉬운 이별이다. 호텔 방에서 잠 못 이뤄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사정은 메이도 마찬가지이다. 단호히 떠나오긴 했지만. 다음날 동하는 지사장의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메이에 대한 아쉬움을 체념 모드로 작동시키고 있는데 메이로부터 전화가 온다. 전해 줄 게 있어 공항으로 오겠다는 것.
공항에 나타난 메이는 동하에게 두보의 시집을 한 권 건넨다. 그전부터 동하가 갖고 싶었던 것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동하는 탑승을 포기하고 메이와 하루를 더 보낸다. 우선 두 사람은 짐을 들고 호텔로 간다. 호텔방, 키스 장면은 강하게 부각되는데 진도가 어디까지 나가는지는 생략되어 있다. 어디선가 허진호 감독은 관객의 상상력에 맡긴다고 너스레를 떤 바 있다. 한참후 동하는 배가 고프다는 메이를 데리고 호텔에서 나와 연장된 데이트를 즐긴다. 스킨십의 수위가 높아지는가 했더니 대나무 밭에서 대놓고 키스도 한다. 오래된 연인처럼 다정하기 이를 데 없다. 하루밤 사이에 만리장성이 무너져 버렸나?
저녁에는 한국식당에 가 밥을 먹는데 비가 쏟아진다. 여기서 우연히 지사장을 만나는데, 한국에 대한 그의 향수가 발동해 삼자는 삼겹살에 소주 판을 벌인다. 그러다가 술기운인지 비의 유혹인지 동하는 메이에게 호텔로 가자고 속삭인다. 이때 메이의 입에서 애끓는 폭탄 발언이 나온다. “동하, 난 결혼한 몸이야!”이럴 때 남자는 어떻게 반응해야할까? 유구무언.
홀로 호텔 방으로 돌아온 동하는 밤을 꼬박 뒤척이다가 다음날 아침 공항으로 가기 위해 짐을 챙긴다. 이때 메이가 공항으로 데려다주겠다며 차를 몰고 나타난다. 공항 가는 길에 충돌사고가 일어날 뻔 하는데, 운전을 하던 메이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린다. 병원으로 간 동하는 메이의 지인으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메이의 남편은 1년 전 사천 지진 때 죽고, 메이는 그 아픔을 극복하지 못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충격이 심하면 의식이 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고, 특히 자전거를 못 타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것. 전화위복인가, 동화에겐? 하여간 이로서 가능성은 다시 열린 셈이다. 운명의 장난인가, 섭리의 이행인가? 지진으로 죽은 남편의 자리에 드러서고 있는 남자가 지진복구를 위해 나타난 옛 사랑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메이는 한국으로 돌아간 동하로부터 커다란 소포를 하나 받는다. 포장을 뜯으니 노란 자전거 한 대가 나타나고, 동봉한 엽서에 이런 구절이 뜬다.
“메이, 답이 늦어 미안해, 여기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어. 아마도 청두에서 내려오는 비인 모양이야. 조만간 만나길 바래. 워 샹 니엔 니 (보고싶어)”
역시 비가 동하의 서정을 이끌고 있다. 이후 메이는 다시 자전거를 배운다. 다시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타인의 도움을 받아 처음부터 배운다. 이는 물론 다시 두발로 서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상징한다. 물론 그 동반자는 동하이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청두 두보초당에 동하가 다시 나타난다. 이번에는 비즈니스 복장이 아닌 가벼운 캐주얼 차림이다. 그를 맞으러 오는 메이가 자전거를 몰고 온다. 몹시 가벼운 복장으로. 얼굴 한구석에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두보초당 입구에서 두 사람이 재회의 재회를 하는 데서 영화의 화면이 닫힌다.
「호우시절」, 이렇듯 이 영화는 시, 비, 자전거를 매개로 국경을 초월한 로맨스를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잘 그린 수채화처럼 청초하고 상큼한데, 역시 그 기조는 비의 서정이다. 그런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보의 시는 영화의 제목이 된 「춘야희우」가 아니라 「강마을」이라는 시이다.
강촌
맑은 강물 한 굽이 마을을 안아 흐르고
강촌의 긴 여름, 일마다 한가롭다
절로 날아가고 날아오는 들보 위의 제비
서로 친하여 가까이 지내는 것은 수중의 갈매기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어린 아이는 바늘 두들겨 낚싯바늘 만드네
병 많은 이 한 몸 필요한 건 오직 약물이니
미천한 이 몸 이것 외에 또 무얼 구하리요
이 시 역시 청두 초당 시절에 지은 것이다. 두보 자신의 이야기이다. 이 칠언율시 8구 중에도 내게 실로 ‘짠하게’ 다가오는 것은 마지막 두 구절. 많은 사람들은 이 시에서 ‘유유자적’, ‘단란’, ‘한가로움’등을 말하지만 생의 종착역엔 역시 병들고 늙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그 전에는 제대로 먹고 살았나? 그렇지 않다. 두보는 24세 때 진사시험에 떨어진 후 관직에 올라 월급 한 번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다. 40대 말에 좌습유라는 말직을 얻어 궁에 들어간 적은 있으나 1년도 안 돼 물러났다. 두보는 거의 평생 처자식과 떨어져 객지를 유랑하며 가난과 고독을 상대로 싸웠다. 실로 눈물겨운 인생 항로였다. 죽고 나서 후대 사람들이 시성으로 받들어 주면 어쩌고 시사詩史로 평가해 주면 뭐하나. 죽기 일 년 전 쯤 두보는 친구에게 몸을 의탁하려고 추운 겨울에 배에 몸을 싣고 담주란 곳으로 가는 중에 「남정」이란 시를 썼다.
봄 언덕에 복숭아꽃에 물들고
구름 같은 돛 달고 단풍 숲을 간다
살기 위해 오랫동안 난리 난 땅 피해
멀리 떠나며 다시 옷깃에 눈물 적신다
늙고 병들어 남으로 가는 날
임금의 은혜에 북녘을 바라보는 마음
백년 한 평생 노래가 스스로 괴롭고
참된 친구는 아직도 만나보지 못했도다
한 평생 시를 썼으나 돈도, 직장도, 명예도, 친구도 없는 생을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니 평생 쓴 시란 게 自苦, 즉 자아의 고통이 아니고 뭐겠는가? 그러니 우리 아직 몸 성할 때, 예전으로 돌아가 3S에 매진할지니, Sarang, Study, Sool이 그것이로다. 특히 Sool 땡기는 사람들, 연락해서 한 잔 하입시더. 여름 다 가기 전에.
술에 관한한 두보도 이백 못지 않은 꾼이었다. 1000편이 넘는 시에 술이 언급되고 있다 하니 가히 주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아파서 누워있을 때도 누가 찾아오면 술판을 벌였다. 인생에 맺힌 한이 많아서인지 대체로 폭주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우리야 그정도는 아니니 조용조용 마셔도 되지 않겠나. 가령 위의 장면처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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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몇 해전 <두보시선> 가르칠 때 나는 <호우시절> 다운받아서 봤어요. 극장 거의 안 가서 다운받아 보는 편이지만 그 무렵 몇 년동안 본 영화 중 가장 좋았습니다. 비오는 날에는 생각나는 영화이기도 하고... 글고... 바로 위 저 장면... 저 완벽한 평온을 깨며 끼고 싶은 사람 아무도 없을 듯... 백만년만의 장면을 보는 관중들의 즐거움을 깨지 마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