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모리타니안>
1. ‘사실’을 근거로 만들어진 영화는 짜릿하고 감동스럽다. 더구나 내용이 정의의 회복이라든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면 감동의 크기는 더욱 커진다. 주위에서 수없이 벌어지고 목격되는 약자의 고통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무력감의 원천이다. 특히 거대한 권력과 관련되었을 때, 집단적인 복수의 광기에 사로잡혀 벌어졌을 때, 기묘한 법적 논리에 의해 강자들이 살아남을 때, 인간은 절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나타나는 약자의 승리는 우리들이 삶에 갖는 희망이며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야 하는 의욕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2. 2020년에 만들어진 영화 <모리타니안>은 2001년 911테러의 용의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미국이 비밀리에 만든 ‘콴타나모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 곳에 불법적으로 감금된 수많은 이슬람인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특히 모리타니 출신의 한 남자에 관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북아프리카 모리타니 출신인 슬라비는 불법적으로 체포되어 콴타나모 수용소에 감금된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알 카에다 훈련에 참여했고, 수많은 이슬람인들을 알 카에다에 가입하도록 독려했다는 것이다.
3. 영화의 시작은 미국적 정의의 실현에서 시작된다. 연방대법원은 미국 사법제도 치외 지역에 있는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진 ‘인신보호’에 대한 불법성을 문제시했고, 당시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였던 낸시 홀랜더는 수용자 중 하나인 슬라비의 석방을 위한 재판에 착수한다. 한 쪽이 부당한 감금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시도였다면, 다른 한 쪽에서는 그를 죽이기 위한 군검찰의 계획 또한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재판을 위한 자료는 초반에는 모두에게 금지되었다. 변호사도, 검사도, 일급비밀이라는 이유로 열람할 수 없었다. 사건의 진실에 대한 자료가 없는 재판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변호사와 검사는 자료 열람을 위해 치열한 노력을 전개한다.
4. 결국 법원의 자료열람 명령을 통해 접하게 된 관타나모의 진실은 끔찍했다. 슬라비에 대한 혐의는 명확하게 적시되지 않았으며, 다만 추정된 혐의를 통해 그를 감금했고, 범죄를 자백받기 위하여 끔찍한 고문과 회유가 가해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없자, 어머니를 체포해 관타나모에 감금시키겠다는 협박까지 자행한다. 결국 슬라비는 잔혹한 협박에 못이겨 범죄를 자백하는 문서에 사인한다. 그렇게 관타나모에서는 한 인간의 범죄를, 그 곳에 감금된 대부분의 사람들의 범죄를 조작한 것이다.
5.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열람된 비밀 문서를 통해 밝혀지는,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복수심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잔혹한 고문의 자행 그리고 그것을 허용하고 권장한 미국의 최고 권력자들의 민낯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공식적인 문서에 기록된 내용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정의가 철저하게 붕괴되는 기록이었다. 진실을 밝히려는 변호사의 분노와 슬픔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또 다른 반전이 등장한다. 바로 검사의 결정이었다.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사형을 목표로 기소를 준비하던 검사는 밝혀진 비밀문서를 읽고 나서 모든 것이 조작되었고, 미국의 정의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이후 그는 ‘반역자’라는 주위의 비난을 무릅쓰고 기소를 포기했으며, 또한 군검찰에서도 사직한다. 양 극단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두 사람이, 밝혀진 ‘진실’ 앞에서 진정한 정의와 인간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 것이다.
6. 결국 2008년 진행된 재판을 통해 슬라비의 불법구금이 인정되었고 석방이 결정된다. 하지만 또 다른 반전이 전개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에 불복하고 항고를 진행시켰으며 그의 석방은 8년이 지난 2016년에서야 이루어진 것이다. 그 사이에 어머니는 사망했고 그의 고통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정의와 인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고 선포했던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여전히 정의가 실현되지 못했던 사실은 하나의 아이러니였다. 어쩌면 그것은 미국을 지배하고 있던 집단적인 복수심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7. 영화는 정의와 진실을 위해 싸워나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영화의 핵심은 사건에 대한 보고가 아니다. 거대한 사건 속에서 무너지고 파괴되었던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수용소 휴식 시간에 얼굴을 볼 수 없는 동료 수감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와 절망이 교차한다. 누군가는 끝을 알 수 없는 절망 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무리하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도 쉽게 용서할 수 없는 911테러의 악몽 속에서 미국인 대부분은 이슬람인들을 똑같은 잔혹한 범죄자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들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의 진실과 정의에 힘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인간의 희망을 믿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적 상상이 아닌 현실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감동은 더 클 수밖에 없다.
8. 영화 마지막 장면은 실제의 슬라비의 모습과 후일담을 소개한다. 선한 인상의 주인공은 2016년 석방 이후 모리타니로 돌아와 미국의 변호사와 결혼했고, 관타나모의 고통을 기록한 <관타나모 일기>를 통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부부는 자녀를 두었음에도 따로 떨어져 살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그의 미국 체류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20년에 걸친 치열한 투쟁과 그 속에서 만들어진 우정은 먹먹하면서도 진한 느낌을 전달한다. 법정 진술 때 슬라비는 아랍어로 ‘자유’와 ‘용서’는 같은 말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용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무척이나 매력적인 말인 듯하다. ‘자유’는 내면에 어떤 고통이나 분노 그리고 욕망이 있는 한 도달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정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인간의 자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첫댓글 영화처럼 스스로의 정의에 충실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