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7년 11월 25일 오후 3시 주최 : 국립창극단 문의 : 02)2280-4115~6 (국립극장 고객지원실) 장소 : 달오름극장
공연설명
樂·可·舞를 두루 겸비한 만능 재주꾼 - 김성예 명창
김성예 명창은 1954년 서울 출생으로 연출가 겸 극작가인 아버지 김향과 여성국극의 간판스타였던 박옥진 사이에서 5남 1녀 중 2째로 태어났다.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김성녀가 언니이며, 한양대 국악과 교수인 김성아, 거문고로 활동하고 있는 김성자가 동생이다. 태어날 때부터 예인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김성예 명창은 5살 때 ‘견우와 직녀’, ‘금남의 여왕도’에서 아역으로 여성국극 무대에서 활약하게 된다. 점차 여성국극이 쇠퇴하여 김성예 명창은 17살에 가수로 데뷔. 언니와 함께 ‘비둘기 자매’ 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까투리 타령’ 등 히트곡을 남기기도 했으며, 가수 생활 도중 김소희 명창에게 ‘진국명산’ 등 단가를 배우기도 했다. 30대부터 창극과 마당놀이에서 주역으로 성장하기에 이르고 연극배우, 대중가수, 방송 진행자등으로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악가무를 겸비한 만능 재주꾼으로 대중에게 인식되었다. 김성예 명창의 본명은 김성애(金星愛)이나 2년 전부터 김성예(金星叡)는 예명을 사용하고 있다. 동초제의 대모인 오정숙 명창과의 본격적인 사제간의 인연은 20대부터이다. 다양한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만큼 소리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춘향가 中 옥중가’로 1989년 전주 대사습 판소리 명창부 장원(대통령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시원스럽고 걸쭉하면서도 힘찬 목소리로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재는 사단법인 동초제 보존회 서울 지부장을 맡고 있으며 '김성예 소리방'을 통해 제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재담의 묘미 중시하는 동초제
동초제판소리는 김연수(1907∼1974·1964년 인간문화재 지정)선생이 말년에 새로 짠 소리로 자신의 호를 따서 동초제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편제의 우람한 소리와 서편제의 아련한 소리를 뽑아 만든 소리로 학식이 높은 그는 다섯 마당의 사설을 정리했고 오자한자를 바로잡기 위해 한학자의 자문을 구했다. 임방울씨와 함께 현대 판소리계의 쌍벽을 이루던 김연수는 판소리의 두 핵심인 이면(가사·문학성)과 소리(음악성)중 이면을 중시했다. 30년대 초반 여러 선생들로부터 배운 소리 중에서 좋은 점만을 골라 자신의 소리로 만든 그는 판소리의 창극화를 통해 동초제를 전파하여 연극적인 표현을 중시하여 재담의 묘미를 극대화한다. 특히 그의 동초제는 정교한 너름새(동작), 정확한 사설, 다양한 부침새 기교의 사용으로 합리성을 극대화했다. 사설력을 중시하여 발음이 분명하고 정확하게 구사하며 맺고 끊음이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김성예 명창은 이러한 동초제의 특징을 잘 살려 스승 오정숙 명창에게 배운 소리를 충실히 잇되 ‘자기화된 소리’를 들려주려 한다. 여성 국극을 통해 여 연극적 표현력까지 갖춘 소리꾼 김성예. 듣는 소리에서 벗어나 오감으로 느끼는 소리판을 준비하고 있다.
동초제 계보
출연 조용수 중앙대학교 대학원 한국음악학과를 졸업하고 현 국립창극단 상임단원이다. 1998년 전국 고수대회 대명고부 대통령상 수상하였고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이수자이다.
김청만 국립국악원 민속연주단 지도위원을 역임하시고 (사)새울전통타악진흥회 이사장으로 단국대, 서울예대, 대전대 겸임교수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 5호 판소리 고법보유자로 13살 때 설장구를 잡은 이후 평생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