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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2)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죄는 법(法)이다/ 인간의 의지의 힘은 법(法)의 힘을 이길 수 없다(롬7:15-8:2)
<사도 바울에게 계시된 로마서에서의 법(法)>
고후12:1-2절은 “1 자랑하는 것이 물론 내게 유익하지 아니하나 내가 주의 환상들과 계시들로 나아가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았는데 그 사람은 십사여 년 전에 셋째 하늘로 채여 올라갔느니라(몸 안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며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았는데 그 사람은 십사여 년 전에 셋째 하늘로 채여 올라갔느니라” 이 한 사람은 사도 바울 자신이다. 그가 셋째 하늘에서 본 것은 하늘의 모형이다. 이를 본 후 쓴 것이 바울 서신 13권(특히 로마서가 대표이다)과 교회(고전12:12-27)이다. 구약에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늘의 설계도(히8:5)를 보고 모세오경과 성막을 지었다.
특별히 모세오경이 바울 서신 13권을 통하여 재해석되었고 신구약이 접목된 것이다. 그리고 성막이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로 재해석됨으로써 신구약의 많은 해석상의 난제들이 해결되고 일치를 이룬 것이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을 다녀온 후 쓴 성경 최대의 걸작품이다.
그러나 이 법(法)은 거의 이천 년 동안 그 본뜻이 닫혀있다가, 불과 100년 전에 웟치만 리에게 계시된 것이다. 중국의 성자 웟치만 리의 글들을 거의 섭렵한 나는, 그분을 내 영적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중한 스승으로 여긴다.이제 그분에게 온 모든 계시와 글들이 내 안에서 어김없이 생명으로 자라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법, 생각의 법, 죄의 법을 거처, 법의 결론은 생명의 영(성령)의 법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신약의 결론 중의 하나이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 위에 계시로 열려 나간다>
죄는 우연히 혹은 어쩌다가 한 번 범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죄를 지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짓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끊임없이 죄를 범하므로, 나에게 죄는 법(法)이다. 내가 생각 안에서 선(善)을 행하려고 할 때마다 내 안에 죄(=악)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눈을 열어주셨을 때, 그는 죄를 대적하려는 자신의 모든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바울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노력해 왔는가? 자기 생각 안에서 선을 행하려고 노력해 왔다.
사람의 의지는 생각 안에 있는 선(善)의 법에 따라(롬7:22-2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스스로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육신=타락한 몸)를 통해서 이러한 선을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죄가 거하는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인간의 의지로는 죄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의지로 죄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하늘의 모형을 봄으로써 이 비밀이 계시 되기 시작한 것이다. 바울은 이제 죄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즉시 자기 의지가 무익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바울은 “죄의 법”이 자신 안에 거하는 “죄(罪)”이고, 자신과 함께 있는 “악(惡)”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의지로는 결코 법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계시한 로마서가 없다면, 우리는 아직도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믿음과 구원 사이에서 버둥거릴 것이다.
사도 바울의 계시를 정확히 깨달은 나의 존경하는 스승님은 그분의 삶의 체험을 통하여 이를 해석하셨고(재(再) 계시), 이제 수많은 세월과 고난을 통하여 나에게 그 의미를 다시 계시하시고(재 재 계시), 스승을 통하여 나에게 주신 재 재 계시를 통하여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다시 열리며 진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계시를 통한 계시의 전달이다!
이 계시를 통하여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열리고 또 열려 나간다. 내 글을 읽고 있는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요즘 누가 이런 긴 글들을 읽겠는가? 그러나 불과 몇십 명의 독자들이 있어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의 차례임을 깨닫는가? 바울의 계시 위에 내 스승님의 계시가 더해지고, 그리고 나에게 또 다른 체험을 통하여 계시를, 그리고 다시 당신에게 이렇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 당신의 깨달음을 갈망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 위에 계시로 더욱 열려 나간다. 성령께서 주시는 하나님 말씀의 다양한 복된 내용이 이렇게 살아 열려 나감을 이제 이해하시겠는가? 그러므로 가톨릭처럼 말씀을 교리로 왜곡하여 고정하거나, 교단의 벽 안에 가두어버리면 그것은 큰 죄이다.그보다 더 큰 죄악은 없다. 하나님의 자비를 통하여 “죄”가 “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곧 인간의 의지로 죄를 이기려는 노력이 얼마나 무익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이 사실을 미처 깨닫기 전에는 무수히 결심과 패배를 거듭하게 되며, 죄책감과 무기력에 빠져든다. 인간은 유혹을 받으면, 이를 악물고 이기기로 결심하지만, 결국은 실패를 반복한다. 그다음에 또 유혹을 받게 되면, 지난번에는 그의 의지가 약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어떤 이유로든 다시는 범죄 하지 않겠다고 더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결심을 굳게 하여도, 여전히 실패하고 만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의 결심에 뭔가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유혹을 받을 때는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
그는 지금까지의 반복된 패배 때문에 자신의 결심을 믿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에게 ‘오,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번에는 죄를 범하지 않게 도와주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나 기도를 드리고 일어섰을 때는 또다시 실패하고 만다. 그는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해도 죄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 해답은 인간이 아무리 의지적으로 결심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법”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롬7:24절에서 바울은 “오,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겠습니까?”라고 절규하는 것이다.
<법을 이해하기 위한 예>
1) 예를 들어, 나는 평소에 30킬로그램의 역기를 들 수 있는 사람인데, 지금은 10킬로그램의 가벼운 역기를 들고 있다고 하자. 30킬로그램의 역기를 들 수 있는 사람이 10킬로그램의 역기를 들고 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10킬로그램의 역기를 계속 들고 있어야 한다면, 그 역기를 들고 있는 손에도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매초, 매분, 매시간 그것을 끌어당긴다. 중력은 결국 내가 그 10킬로그램의 역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시간이 갈수록 역기가 더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기 자체의 무게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법(法)이 당신을 이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법은 사람을 이긴다. 이 법의 힘은 계속 작용하여 당신을 견딜 수 없게 만들고 만다.
2)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자기 성질을 절제하지 못하고 화를 잘 내는 것은 누구나 쉽게 범하는 죄이다. 이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당신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심히 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 그럴 때 그것은 가슴을 온통 휘저어 놓은 것처럼 기분이 언짢아진다. 그러나 그가 계속 그런 모욕적인 말을 한다면, 당신도 화가 나서 그를 욕하면서 분을 참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은 바로 절제를 잃어버린 상태이다.
그러나 당신의 이러한 태도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당신은 그렇게 맞대응하여 화를 낸 것을 후회하기도 하고, 믿는 이로써 부끄럽기도 하고,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그를 맞대응하여 화를 내고 욕을 하지 않고, 참고 용서하겠다고 결심한다.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고 당신은 단단히 다짐할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한 후 당신은 용서받았음을 믿을 것이다.
이제 당신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고, 다시는 화를 내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 그런데 또다시 싫은 소리를 듣게 되면 불쾌감이 치솟지만, 화내지 않으리라 결심했으므로 참고 참는다. 그러나 이것이 더 이상 계속되면 가슴속이 소용돌이치며 견딜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크게 감정이 폭발하고 만다. 참아왔던 분노가 일시에 크게 폭발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이렇게 감정을 폭발할 수 있는가? 당신은 주님 앞에 나아가 용서를 빌면서 앞으로는 절대 화를 내지 않겠다고 또다시 약속한다. 그러나 얼마 후면 또 그런 일이 반복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죄가 아니라 죄가 법이기 때문이다. 범죄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법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깨달음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살인을 한다면, 그것은 큰 죄이다. 그러나 그가 매일 살인을 한다면, 이것은 살인의 법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매일 성질을 낸다면, 그의 나쁜 성질이 그에게 하나의 법이 된 것이다. 사람이 죄를 범하는 것은 어쩌다가 우연히 되는 것도 아니고, 단 한 번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3) 그런데 인간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무수히 범죄 한다. 거짓말을 하는 자는 계속 거짓말을 하고, 부정을 행하는 자들은 계속 부정을 행하며, 또 음행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음행한다. 또 절도범은 계속 절도 행각을 하고, 성미가 까다로운 사람은 끊임없이 화를 낸다. 왜 그럴까? 사람 속에는 사람이 다스릴 수 없는 “죄의 법”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당신의 눈을 열어 그 죄가 하나의 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이다. 이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 결코 승리는 멀리 있지 않다. 죄를 단순히 행위의 문제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다음에는 그 죄를 이기기 위해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저항할 것이다. 그러나 모두 소용없는 일이다.
죄의 권세는 강하고 항구적이며, 인간의 힘은 약하고 신뢰할 수가 없다. 무의식 속에서 작용하는 트라우마도 죄이다. 그래서 죄의 권세는 늘 승리하고, 우리는 늘 실패한다. 죄의 승리는 하나의 “법”이고, 우리의 실패 역시 “법”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생각 안에서 선을 행하고자 할 때, 언제나 악도 함께 자동으로 작동한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 “법”, 곧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나는 당신이 죄의 본질을 분명히 깨닫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만일 이 법을 깨닫는다면, 당신은 많은 고통과 슬픔에서 해방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죄가 법이고 우리의 의지로 그것을 이길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만이 우리는 참된 승리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법을 발견하는 것은 큰 축복이다. 우리가 이 패배의 법을 스스로 발견하기까지는 무수한 패배와 절망을 체험해야 할 것이다. 아주 완전히 패배하고 망가져서 도저히 자신의 의지로는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 멀지 않아 죄는 의기양양하게 그 위력을 뻗치면서 그것이 하나의 법임을 선언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제까지 자신의 의지력을 믿었던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죄가 법이라면, 이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것에 저항할 수 없다. 우리 의지의 힘은 “법”의 힘을 이길 수 없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배움이다.(계속)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죄는 법임을!!!
죄를 우리 힘으로는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인정하고 두손 두발 다 듭니다~
오직 생명의 성령의 법만이 죄를 이길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