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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29 - 고사리의 여름 2
S#1. 마을전경
늦은 오후.. 마을의 모습...
시골 마을다운 스케치 몇 개..
S#2. 마을노인 집 마루
종대, 오디오와 오실로스코프를 연결해 놓고 오디오 상태를 점검하는 중이다.
종식이 옆에서 신기해서 보고 있다.
할머니 : 참말로 요상한 기계도 다 있구마이.
종대 : 냉수한잔 먹구잡은디요.
할머니 : 그려. 냉수만 줘서 쓰겄는가. 감자 삶은 것도 있을 거인디.
할머니, 부엌으로 들어간다.
종식 : 이것이 뭐하는 건디?
종대 : 오실로스프라는거인디 회로에 문제가 있는지, 작동이 제대로 되는지 알아보는 기계구먼.
종대가 조작하는 것에 따라 오실로스코프가 작동한다.
종대 꼼꼼이 살펴보는데..
할머니 : (E) 아따 감자가 실허다. 이거 좀 먹고 혀.
종대, 보면, 할머니가 쟁반에 감자 소쿠리와 물주전자를 받쳐들고 오고 있다.
종대 얼른 나서서 쟁반을 받아든다. 그런데 할머니가 종대의 뒤를 보더니.
할머니 : 너 시방 뭣하고 있냐.
뒤에서 기기들을 만져보던 종식이 놀라서 일어나다가 넘어지면서 오실로스코프를 넘어뜨린다.
그 위로 엉덩방아를 찧는 종식.
할머니 : (역시 동시에 놀라서 들고있던 감자 소쿠리 떨어드리고 오디오 쪽으로 붙으며) 워미 워미 저걸 워쪄.
종대, 달려들어 종식을 치우고 오실로스코프를 일으켜세워 보면... 뭔가 고장이 나있다.
종식, 겁을 먹고 저만치 피해서 본다.
종대, 얼른 체크해보지만 고장이 난 듯 계기판 바늘이 전혀 동작을 하지 않는다.
할머니 : 뭐여. 우리 라디오는 성한겨? 별일 없는겨?
종대 암담해서 고개를 든다.
S#3. 분교 전경 (저녁무렵)
자현소리 : 어?..어디갔어? 어디갔지?
S#4. 분교 여자 교실
자현이 짐더미를 마구 헤치며 찾고 있다.
옥주 : 뭐가 없어졌어?
자현 : 내 오실로스코프 못 봤어?
옥주 : 아니. (옆의 지민을 보며) 봤어?
지민 : 거기 어디 있었잖아.
자현 : 선배! 선배님!! (하며 뛰어나간다)
S#5. 수돗가
남희(저녁쌀을 씻고있는), 만수(양파를 까고 있는), 중희(버너에 불을 붙이고 물냄비를 끓일 준비), 저녁준비에 한창이다.
자현이 후다닥 뛰어오더니.
자현 : 중희선배가 치웠어요?
중희 : 뭘?
자현 : 오실로스코프.
중희 : 아니. 교실에 없어?
자현 : 우와 클났다 클났어. 그거 실험실에서 빌려온건데.
중희 : (그제야 사테를 감지하고 일어난다) 뭐야 없어진거야?
S#5-1. 운동장 교문 일각
경진이 배낭을 등에 맨 채 교문을 들어서다가 멈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운동장 가운데를 본다.
거기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서서 떠들고 있다. 저만치 정태와 민재가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인다.
경진, 빙긋 웃으며 멈춰선 채 보고 있다.
S#6. 운동장 중앙 일각
민재와 정태가 다가서고 있다.
거기 야채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선 명환이 자현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자현 : 분명히 선배님이 건드린 거 아니죠?
명환 : 그걸 내가 왜 건드리냐. 느네 여자 교실에 있었잖아.
자현의 옆에는 재명과 마이클, 대욱도 서있다.
대욱 : 이건 도둑이야. 도둑이 든거라구.
재명 : 다른 건 없어진 거 없어?
마이클 : 오우 드디어 사건이 생겼어. 안그래도 심심했어. 인제 도둑 잡기 시작하자. 도둑 잡는 거 재밌어.
민재 : 아니 잠깐 가만들 있어봐. 무조건 도둑을 만들면 어뜩해. 자현이 너 분명히 교실에 놔둔 거 맞어? 잘 찾아봤어?
자현 : 야 열뻗쳐 죽겠는데 멍한 질문 좀 하지 마. 내가 찾아보지두 않고 이렇게 방방 뛰겠냐.
명환 : 다른 애들한텐 다 물어봤어? 누가 지금 쓰고 있는지도 모르잖아.
S#7. 교문 일각
구경하고 있던 경진이 문득 옆을 돌아본다. 종대가 오실로스코프를 안고 옆을 지나쳐 가고 있다.
S#8. 운동장 일각
애들 여전히 떠들고 있다.
대욱 : 여기서 이럴 게 아니고 일단 목격자를 찾아보자구. 그거 작은 기계도 아닌데. 들고 갔으면 누군가 봤을 거 아냐.
자현 : 누군지 내 손에 걸리기만 해봐. 그냥... (하다가 멈칫해서 본다)
애들 자현의 시선을 따라 돌아보면 종대가 오실로스코프를 들고 가다오고 있다.
자현 : 내꺼다. 아이구 내 오실로야..
달려들어 기계를 뺏어든다.
민재 : 니가 이걸 갖구 갔었냐?
대욱 : 야 임마. 그걸 말두 없이 갖고 가면 어뜩하냐?
자현 : 어 이거 왜 이래. 이게 왜 깨져있어. (오실로를 점검하며)
종대 :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내민다) 고장냈으니께 이 돈 받아요.
대욱 : 뭐야?
종대 : 받아요. 모자라면 말하고.
마이클 : 오우 재미없어. 도둑이 아니잖아.
재명 : (얼른 마이클을 잡아당겨 조용히 시키고)
민재 : (나서며) 너 순서가 틀렸어. 우선 이걸 왜 말없이 가져갔는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 되는거 아냐?
경진 : (E) 돈을 준다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
모두 돌아보면 거기 경진이 배낭을 들고 다가오며 방글방글 웃고 있다.
(경진은 편하게 해주세요. 과장은 절대 말고.. 이 연기자 원래 성격이 이런가보다 싶게 아주 편하게..)
정태 : 아니 이게 누구야. 민경진.
경진 : (웃으며 흉내내어) 아니 이게 누구야. 김정태.
정태 : 야아 너.. (반가와서 다가서는데)
경진 : 잠깐 이거부터 처리하고 회포를 풀자고. (배낭을 내려놓더니 종대에게) 내가 건네줄게요.
(종대가 내밀고 있는 돈 뺏더니 민재에게 억지로 넘겨 주며) 이민재군. 수리비 받았으면 됐지 왜 사람을 치사하게 만드냐.
받어받어. (종대에게) 이럼 됐죠?
종대, 무뚝뚝하게 보다가 돌아서 가버린다.
민재 : 어이 잠깐.. (그러다 경진을 보면)
경진 : (정태에게 양손바닥을 펼쳐보이며) 아직 살아있었구나. 명태동태 김정태.
정태 : (웃으며 역시 양손바닥을 들어 두어번 마주쳐주며) 언제 돌아온거야? 이 도깨비야.
다른 애들 멍해서 보고 있는데, 명환만 웃으며.
명환 : 선배는 눈에 안 뵈냐.
경진 : 아이구 선배님. (구십도로 절하며) 소녀 무사히 돌아왔사옵니다.
(상체를 일으키다가 명환이 들고 있는 바구니에서 오이 하나 들어 한 입 먹는데)
만수 : (E) 거기 누구야. 거기 혹시 민경진이라는 도깨비 아니냐?
만수가 달려오고 있다.
경진 웃으며 마주서더니 둘이 마주보며 우하하 웃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둘 다 진지한 얼굴로. '해가 떠도 만수(경진) 달이 떠도 만수(경진) 만수가(경진이) 최고야 아자아자'
노래에 맞춰서 똑같은 율동을 하고는 마지막 아자아자 부분에서는 서로의 엉덩이를 두 번 부딪힌다.
그리고는 아하하 웃어댄다.
버엉하거나 웃으며 보는 아이들.. 중에 민재가 어이없어 바라보고 있다.
S#9. 남자교실
모두 둘러앉아 저녁식사 중이다. 각자 식판들을 들고 바라보는 곳에 경진이 일어서서 자기 소개 중이다.
경진 : 물리학과 4학년이라고 할 수 있는 민경진입니다. 원래 미스터 동아리의 초창기 멤버였습니다만 3학년때 교환학생으로
스탠포드 공대에 갔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습니다. 석학의 집 미순언니에게 물어봤더니 다 이리루 왔다고 해서
무조건 찾아왔고..그리고 이렇게 저녁을 얻어먹게 되었습니다. 오늘 식사당번에게 감사드리고.. 잘 먹겠습니다.
웃음소리와 박수소리..
만수 : 설마 너 빈손으로 온 건 아니겠지.
경진 : 아이구 내가 누굽니까. (하며 준비했던 봉지를 처억 꺼내든다) 여러분을 위한 사랑의 선물이 준비되어있습니다.
만수 : 아이구 이쁜 거.
벌써 달려들어 봉지에서 꺼낸다. 열 개 남짓한 열쇠고리다.
만수 : 야야 이게 뭐냐.
정태 : (옆에서 하나 가져가며) 열쇠고리잖아. 좋은데.
만수 : 최소한 스탠포드 티셔츠 정도는 갖고 와서 나눠야 되는 거 아냐.
하면서 자기가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눈다. 아이들 하나씩 받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분분한데..
이만치서 나란히 앉아 식판을 들고 있던 박교수. 이교수.
박교수 : (이교수에게) 아주 씩씩한 학생인데요. 하하.
이교수 : 2학년때 내 강의도 하나 들은 적이 있는데요. 저 애 땜에 진도 나가기가 아주 힘들었어요.
박교수 : 왜요?
이교수 : 어찌나 질문이 많은지. 게다가 한번 질문하면 아주 끝장을 보곤 했거든요.
박교수 : 이야아. 그건 내가 아주 좋아하는 학생상인데.. 물리과라구 했나요? 아깝네...
이만치의 민재 마악 받은 열쇠고리를 보며 혼자 웃는데..
그 때 물주전자를 들고 뒤늦게 들어온 마이클이 남들이 받는 열쇠고리를 보며.
마이클 : 어어 내껀? 마이 키홀더는 어딨어. 만수형.
만수 : 없어 임마. 선착순이다 선착순.
마이클 울쌍이 되서 민재 옆에 주저앉는다.
마이클 : 모두 나만 미워해. 마이클 물 떠와. 마이클 청소해. 마이클 선물 없어.
민재 : (할수없어서 자기 열쇠고리를 내주며) 이거 가질래?
마이클 : 정말? 오우 민재형. 천사야. 나는 민재형같은 남자가 되는 게 꿈이야. (고리를 받아서 뽀뽀를 한다)
민재 웃고, 밥을 먹는다.
민재는 못 봤지만. 저만치서 명환, 중희와 얘기하며 밥을 먹던 경진이 슬쩍 이쪽을 보고 있다.
S#10. 수돗가 밤
이제 어두워진 사방. 랜턴을 비춰놓고 만수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옆에는 세수를 하러 나온 옥주와 지민.
옥주 : 그럼 민재 오빠나 정태오빠하구 아주 친했겠네요.
만수 : 친했지. 특히 민재하고는 아주우 특별한 사이였지.
지민 : 특별한 사이라니요. 이상한 사이를 말하는 거에요?
만수 : 어떤 특별한 사이냐. ..니들 민재가 화를 잘 낸다고 생각하냐?
지민 : (옥주에게) 민재오빠 화 잘내?
옥주 : 진짜로 화내는 건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만수 : 그렇지? 민재 화 잘 안내는 애야. 워낙에 속이 깊은 애잖아. 걔가.
지민 : 그런데요?
만수 : 그런데. 경진이는 유일하게 민재를 화내게 만드는 애다. 이렇게 파악하면 돼.
옥주 : 그럼 사이가 나빴다는 얘기잖아요.
만수 : 꼭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좌우지간 난 민재가 경진이 땜에 꼭지가 도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봤지. 암. 히히히.
생각만해도 우습다는 듯이 웃는다.
S#11. 학교건물 입구 / 밤
민재 나가려고 신발을 신는데.
경진 : (E) 니가 지금 어디에 뭐하러 가는지 알아맞추면 뭐 줄래?
민재 : (돌아본다)
경진 : (옆으로 와서 신발을 신으며) 응? 뭐 줄거야?
민재 : 내가 어디에 뭐하러 가는데?
경진 : 아까 그 남자애 집에 돈 돌려주러 가지. 맞지?
민재 : (체..웃고 마는)
경진 : (손을 내민다) 줘.
민재 : (한심해 보다가) 뭘 받구 싶은거야?
경진 : 열쇠고리.
민재 : 뭐?
경진 : 아까 내가 준 거 도로 내놔. 그거 받고 싶어.
민재 : 어.. 그건.. (당황하는데..)
경진 : (앞서 걷기 시작하며) 그러게 왜 남이 준 선물을 함부로 다른 사람 주고 그러냐?
민재 : (옆을 걸으며) 봤..어?
경진 : 넌 말이지. 너 혼자 착한 사람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상처주는 경향이 있어.
민재 : 넌 아직도 그 궤변 늘어놓는 버릇 못고쳤냐?
경진 : 난 지금 질량불변의 법칙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거라구. 사람 사이의 감정에 있어서 질량불변의 법칙.
민재 : 일년만에 만나서 시비거는 거부터 시작하는거야?
경진 : (멈춰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아이구 아직 시차적응이 안되네. 근데 너 그 애한테 찾아가서 말이 먹힐 거 같니?
돈 도로 주면 그앤 감사히 받을 거 같애?
민재 : 고견이 있으면 들려주시죠.
경진 : 내가 그애라면 아주 화가 날거 같은데? 뭐야. 너 그렇게 돈 많냐? 너 지금 나를 동정하는거야? ...이렇게 생각할거라구.
민재 : (뚜웅해서 경진을 보는)
S#12. 관사마당의 평상 / 밤
가운데 밀어놓아주는 찐 옥수수.
최선생 : (밀어놓아주며) 좀 식었는데 들어봐.
그 앞에 앉은 민재와 경진.
경진 : 잘 먹겠습니다. (씩씩하게 말하고 하나 집어들어 먹기 시작)
민재 : (돈을 두손으로 밀어놓으며) 죄송합니다. 선생님께서 대신 좀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최선생 : 글세.. 종대는 나하고 잘 알긴 하지만....
민재 : 저희들이 실수를 했습니다. (경진을 힐끗 노려보고) 어떤 녀석이 사정도 모르고 냉큼 받아버렸어요.
다시 갖다줘도 안받을 거 같아서..
경진 : (모른 척 옥수수만 먹고 있는)
최선생 : 종대가 자네들 기계를 고장냈다면서. 그럼 당연히 수리비를 물어야하는 거 아닌가.
민재 : 아닙니다. 저희들이 얼마든지 고칠 수 있구요. 그리고 이 돈은 저희들보다는 종대한테 더 필요할 거 같은데요.
최선생 : 왜 그렇게 생각하지?
민재 : 예? (당황했다가) 실은 종대네 집안 사정을 좀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하고 동생하고 셋이만 좀... 어렵게 사는 거 같던데..
최선생 : (좀 웃고 생각해보더니) 내가 우리 아이들하고 잘 하는 놀이가 있는데 말이지.
민재 : 놀이..요?
최선생 : 상대하고 입장바꾸기 놀이.
경진 : (여전히 먹는데만 열중해있다)
최선생 : 학생도 한번 해볼래? 학생이 종대라고 생각해보는거야. 학생이 할머니하고 동생하고 셋이만 어렵게 사는 처지라고 쳐봐.
지금 공업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어. 그런데 서울에서 온 대학생들의 기계를 만지다가 고장을 냈어. 어떻게 하겠어?
민재 : ... (마지못해) 수리비를 물겠습니다.
최선생 : 그런데 그 대학생이 학교선생한테 그 돈을 놓고 갔어. 돌려주라고 말이지. 어떤 기분이 들겠나?
민재 : (대답을 못하다가) 더러운 기분이 되겠죠.
최선생 : 어때 이 놀이 재밌지? 우리 애들은 아주 재미있어 하든데. 대학생들한테는 좀 유치한가?
민재, 난처해서 앉았는데.. 경진은 남처럼 앉아서 씹던 옥수수를 꿀덕 삼키더니.
경진 : 민재야.
민재 : 왜. (돌아보는)
경진 : 이.. (이를 드러내보인다)
민재 : 뭐하냐 너.
경진 : 옥수수 낀데 없나 봐봐. 이거 먹으면 꼭 잇새에 낀단 말야. 이이...
민재 어이없고, 최선생 보기 창피한데. 최선생은 웃고 있다.
S#13. 분교 전경 / 밤
S#14. 여자교실 / 밤
모기향 끝에 치익.. 피어오르는 불꽃. 지원과 지민이 이곳저곳에 모기향을 피우고 있다.
주욱 팬하여 보는 기분... 옆에서 옥주는 작은 손거울을 보며 콧등이 벗겨졌는지 살피는 중이다.
그 옆에서 남희가 노트북을 켜고 뭔가 일을 하고 있고.
한 구석에서 자현이 오실로스코프를 수리하고 있다.
S#15. 교무실 / 밤
만수가 혼자 앉아서 음악책을 보며 장구를 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정작 소리는 엉망인데 입으로 내는 효과만 그럴 듯 하다.
문이 벌컥 열리며 명환이 너무나 시끄러워서 들여다보지만 만수는 아주 열중해있다.
그 외에 밤의 모습들이 더 보여줘도 좋겠습니다. 외등에 모여드는 벌레들이라든지..
S#16. 냇가 / 밤
정태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올라오다 보면 진수가 냇가에 앉아있다.
정태 : 너두 씻으러 온거야? 조심해. 물이 장난아니게 차다.
진수 : 난 아까 씻었어요.
정태 : 그럼 뭐하러 거기 앉았어. 모기한테 헌혈하고 싶냐. (가려는데)
진수 : 형 나하고 얘기 좀 할래요?
정태 : 얘기라.. 좋지. (옆에 앉으며 수건을 탁탁 쳐서 벌레를 쫓는다)
진수 : 형.. 지원이 누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정태 : (의외라서 보더니 웃는) 뭘 어떻게 생각해 임마.
진수 : 우린 친구 사이다.. 이런 식의 시시한 대답은 안하겠죠?
정태 : (진수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한숨을 쉬더니) 듣고 싶은 대답이 뭐야?
진수 : 형이 지원이 누나한테 관심이 많은 거 알아요. 근데 그게 어떤 식의 관심인지 알고 싶어요.
정태 : 관심에도 여러 종류가 있냐?
진수 : 단지 지원이 누나가 특이한 사람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 이상인지 그 정도는 대답할 수 있지 않나요?
정태 : 너야말로 내가 지원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거야?
진수 : ...난 지원이 누나한테 친구라든지 선후배로 관심을 가진 게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정태 : 거 자식 말두 참 어렵게 하네. 그러니까 넌 지원이를 여자로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라이벌인 거 같아서 불안하다.
그 얘기잖아.
진수 : 난 지원이 누나가 변하는 게 싫어요. 형은 지원이 누나를 자꾸 변하게 만들고 싶어하잖아요.
그건 제대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봐요.
정태 : (성가신 듯 얼굴을 비비고 물을 내려다보다가) 고씨 아저씨가 생각나는군.
진수 : (돌아본다)
정태 : 언젠가 공사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만난 아저씨야. 난 벽돌 나르는 일을 했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어.
그래서 계속 우거지상을 하고 있었나봐. 그랬는데.. (웃더니) 한번은 고씨아저씨가 내 머리통을 퍽 갈기면서 이러시는거야.
야 이 미련한 놈아. 어째서 자꾸 숫자를 세냐. 머리통 굴리지 말고 그냥 일해. (진수를 돌아보는)
진수 : (이해가 안되서 보는)
정태 : 내가 그러고 있었거든. 한지게 나를 때마다 이게 몇번째인지 세고. 벽돌이 얼마나 남았는지 세보고.. 그러니 매번 괴로웠지.
진수 : 무슨 말인지 요점만 말해줄래요?
정태 : 계산하지 말고 그냥 사는 게 어때. 넌 컴퓨터 앞에서 계산하는 걸로 충분히 지겹지 않냐? 사는 건 그냥 살아봐.
저기 물 흘러가는 것처럼. 니가 암만 계산을 해봐야 남아있는 벽돌이 줄어드는 건 아니라고.... 아직도 이해가 안돼?
진수 : ....
정태 : 안되면 말고.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다)
S#17. 분교 전경 / 새벽
그 새벽빛에 서있는 분교. 그 위로 울려퍼지는 요란한 자명종 소리.
S#18. 입구 쪽
재명이가 거의 반쯤 자면서 걸어나오고 있다.
마이클이 역시 반은 자면서 재명에게 반쯤 얹혀서 나오고 있다.
운동장에는 대욱이 하품을 하며 쌀쌀한 공기에 가벼운 몸풀기를 하고 있고.
S#19. 복도
옥주와 지민이 거의 졸며 걸어나온다.
옥주 : 지민아.
지민 : 말해. 언니.
옥주 : 우리 도망갈까.
지민 : 그래 언니.
옥주 : 더 이상 화장실도 못참겠고. 모기한테 뜯기는 것도 못 참겠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못참겠어.
지민 : 맞어 언니..
S#20. 화장실 건물 일각
중희가 휴지를 들고 하품을 하며 걸어와 화장실 건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멈춰서 귀를 기울인다. 어디선가 들리는 코고는 소리.
중희 화장실 뒤로 돌아가본다.
거기 만수가 화장실 벽에 딱 붙어서서 선 채로 깊이 잠이 들어있다.
S#21. 운동장
집결해있는 아이들, 더러 웃으며 한곳을 보고 있다.
중희가 만수의 귀를 잡아끌고 오고 있다.
만수 : 아..아퍼. 놓구 가요오.
중희 : 내가 놓으면 고대로 서서 잘거 아니냐.
중희, 만수와 무리에 합류해서 선다.
명환 : (만수를 한 번 째려보고는) 오늘 작업은 마을 대청소, 야산 풀베기, 과수원 거름주기다. 먼저 마을 청소 지원자?
만수의 손이 제일 먼저 번쩍 들려진다.
지원, 남희, 옥주, 재명이 이어 손을 들고, 진수, 손든 지원을 보며 자신도 손을 든다.
명환 : 지원이, 진수, 옥주, 재명, 그리고 남희씨가 마을대청소 좁니다. 남자가 모자란 거 같으니까 나도 여기 붙겠어요.
만수 : 저는요?
명환 : (무시하고) 야산 풀베기 조 지원자?
만수, 다시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든다.
이어 자현, 민재, 정태, 중희가 손을 든다.
명환 : 민재, 자현이, 정태..그리고 중희가 맡아주면 되겠고..
만수 : (들었던 손을 흔들며) 정만수가 빠졌는데요
명환 : (무시하고) 다음 과수원 거름주기조는 자동적으로 대욱이 지민이 마이클..그리고 정만수가 되겠군.
만수 : 왜 맨날 나만 거름더미랑 싸워야돼요?
명환 : 정만수.
만수 : (불퉁) 네.
명환 :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이 있는거다.
만수 : (으이씨..해서 명환을 보고)
명환 : 자자 오늘도 화이팅!
아이들 : 화이팅!!
아이들 흩어지는데 민재, 문득 옆의 지원에게..
민재 : 경진이는 아직 자는거야?
지원 : 아니. 일어나보니까 없든데?
민재 : 어제 그 교실에서 잔거는 맞지?
지원 : 응 내 옆에서 잤어. 아주 재밌는 친구야.
민재, 운동장을 둘러본다. 물론 보이지 않는다.
지원 : 그앤 과학고 출신이 아니라면서.
민재 : 경진이? 어 그 친군 일반고에서 왔지. 왜.
지원 : 그냥.. 어쩐지 공대생같지 않은데가 있드라구.
민재 : 뭐가?
지원 : 말하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가.. 일이학년때 못 만나봤던 게 아쉬워.
(웃더니 주위를 둘러보고) 여기서 벌써 사흘짼가.. 어째 학교가 그립다. 넌 안그러니?
민재 : 학교 얘기하지 마. 학교 하면 대학원 시험이 생각나잖아. 그 생각만 하면 심장마비 걸릴 거 같다야.
민재 불퉁한 얼굴로 저만치 모여서 떠들거나 하품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본다.
S#22. 캠퍼스 전경 / 아침
그위로 들리는.
처장 : (E) 그 학생 이름이 민경진이라고 하든데요.
S#23. 처장실
처장과 서교수가 앉아서 차를 마시며..
서교수 : 네 맞습니다. 2학년때 제가 지도교수였죠. 경진이를 아세요?
처장 : 그 학생의 아버지하고 좀 알지요.
서교수 : 경진이 아버님이라면.. 공학박사라고 들었는데요.
처장 : 예 지금 보스턴대 교수지요. 어머니는 옥스퍼드에 재직중이구요. 거기서 동양문학을 가르친다구 들었습니다.
서교수 : 아 그러니까 부모님이 미국 영국에 떨어져 계신거네요.
처장 : 그렇게 온 가족이 떨어져 지낸 게 꽤 오래되는 모양이에요. 그 학생 아버지가 걱정이 되는지 나한테 전화를 해왔어요.
무남독녀래는데 왜 걱정이 안되겠어요.
서교수 : 그럼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도 경진이가 부모님하고 떨어져 지냈던 모양이지요?
처장 : 할머니댁에서 자랐다고 하드군요. 하여간 그 친구가.. 아 그 학생 아버지 말이에요. 자기 연구 말고는 세상에 통 관심이
없는 친군데 이번에 전화를 해왔드라 이겁니다. 자기 딸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니까 잘 좀 지켜봐 달라고 말이에요.
서교수 : 경진이가 외로움을 많이 타요? 글세요. 제 보기에는 언제나 씩씩한 아인데. 걔 별명이 아마 도깨비였을거에요.
처장 : 도깨비요?
서교수 : 장난치는 걸 하도 좋아해서 친구들이 그렇게 부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처장 : 호오.. 도깨비요. 하하하.
S#24. 석학의 집
손님은 별로 없고, 미순이 막 손님이 나간 테이블을 치우며 얘기중.
그 뒤를 백곰이 찻잔 하나를 들고 따라다니며 대꾸중.
미순 : 전에 있던 캠폴이 그 녀석 땜에 수명이 한 오년은 줄었을거에요.
백곰 : 무슨 짓을 했는데요. 알려주시면 미리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겠습니다.
미순 : 수도 없죠 뭐. 오토바이 타고 캠폴과 숨바꼭질하기.
백곰 : 숨바꼭질을 해요?
미순 : 내가 알기론 한번도 안잡혔어요. 나도 경진이 그 녀석 오토바이 타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이건 아주 묘기대행진이드라구.
그러니 캠폴의 솜씨로 잡을 수가 있나.
백곰 : (투지를 불태우며) 그리구요.
미순 : 한번은 캠폴 차에다가 본드를 붙여놨었지.
백곰 : 차에 본드를요?
미순 : 아마 말도 안되는 이유루다가 스티커를 끊었던 모양이에요. 그 다음날 아침. 캠폴차의 문짝에 본드를 붙여놔가지구.
아이구 그때 캠폴이 펄펄 뛰든거 생각하면..
백곰 : 아니 그런 학생을 그냥 놔둔단 말입니까?
미순 : 증거가 없는데 어뜩해요 그럼. 우리두 그저 추측만 할 뿐이지. 이 학교에서 이런 짓을 할 애는 경진이밖에는 없다..이렇게.
백곰 : 어허 아주 요주의 인물이구만.
진영 : (옆에서 미순이 치운 쟁반을 받아들며) 그 얘기두 해주셔야죠. 캠폴 아저씨 머리염색해준 거.
미순 : 맞어맞어. 한번은 캠폴이 낮잠을 잤던가봐요. 고새에 그이 머리칼에다가 페인트루 염색을 해버렸드라구.
백곰 : (자기 머리칼을 만져보는)
미순 : 그래서 그거 지우느라고 휘발유로 머리 감았다고 하든가? 신나였나.
진영 : 그 아저씨 곱슬머리여서 엄청 고생했을걸요.
백곰 : (수첩을 꺼내들며) 이름이 뭐라구 했지요?
미순 : 민경진. 하여간 댁도 조심하는 게 좋아요. 아예 첨부터 친해놓든가. 괜히 스티커 끊을 생각은 마시라고.
S#25. 마을 전경 / 낮
S#26. 종대의 방 / 낮
종대, 돈을 넣어두곤 하던 책장을 주루루 펼쳐본다. 거기에는 천원짜리 몇장밖에는 남아있지 않다.
그 때 밖에서 들리는 소리. 종식이 꺄아 비명을 지르며 깔깔대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종대, 찡그리고 무시해서 책을 다시 있던 장소에 넣는데..
경진 : (E) 나의 발칸포를 받아라. 우다다다다다..
종식 : (E) 나는 에네르기파다. 이야압.
경진 : (E) 으윽 비겁하다. 기습을 하다닛. 거기 서라..
종식 : (E 비명소리와 함께 우당탕탕 뭔가 넘어지는)
종대, 일어나서 문쪽으로 가더니 문을 벌컥 연다.
S#27. 종대네 집 마당
경진과 종식이 서로 물을 뿌려가며 장난을 치고 있다. 둘 다 벌써 물에 흠뻑 젖어있다.
둘 다 도망치고 공격하느라 마당의 그릇들이 발에 걷어차이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종식은 수도꼭지에 연결된 호스로 물을 뿌려대고 있고 경진은 대야에 담긴 물을 바가지로 퍼서 뿌려댄다.
그러다가 피해 도망치던 종식의 호스가 꼭지에서 빠져 버린다.
경진 : 으하하하 이제 항복을 하시지. (물바가지를 들고 다가선다)
종식이 비명을 지르며 마루 쪽으로 도망치고,
경진 : 나의 레이저포를 받아라. 비유우웅.
물을 끼얹는데, 종식의 뒤에 있던 마루의 종대에게 뿌려져버린다.
종대 화가 나서 보는데 경진은 종대에게는 관심도 없이 종식을 따라 뛰어가며.
경진 : 비겁하게 피했어!
쫓아가는데 종식.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다가 물이 남은 대야를 들어 그대로 경진에게 뿌려버린다.
경진.. 으으.. 물을 뒤집어 쓰고 서서 얼굴을 닦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종대를 돌아본다.
종대 어이없어 보고 있는데.
경진 : 너두 같이 할래? 하고 싶지?
S#28. 관사 마당
일하는 옷차림의 박교수가 흥겨운 걸음으로 나오다가 문득 멈춘다.
저만치에 이교수와 최선생이 있다.
박교수 반갑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려다가 멈춰서 본다.
이교수와 최선생은 언쟁을 하는 중이다.
이교수 : 넌 지금 자격지심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아니야?
최선생 : 자격지심이 아니고 교육지심이라고는 생각 안해?
박교수 안절부절하다가 슬그머니 어딘가로 몸을 숨겨버린다.
이교수 : 니가 정말 교육자라면 니 제자들을 위해서도 이런 기회를 받아들여야지.
최선생 : 글세 말은 고마워. 말은 고마운데 우리 애들 다 데리고 느네 대학에 가서 견학을 시켜주는 게 쉬운 일일 거 같어?
이교수 : 내가 학교측에 다 말해놓겠다고 했잖아. 여러 가지 연구실도 다 구경할 수 있게 해놓고.. 그리고..
최선생 : 좀 현실적으로 생각해봐. 우리 애들 아무리 분교래도 몇십명이야. 걔들 데리고 가려면 버스 한 대는 빌려야돼.
숙박비는 또 어떻게 하구.
이교수 :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그 비용 내가 다 대겠다구. 나두 고향을 위해서 뭔가 할 기회를 줘.
최선생 : 너는 고향을 위해서 뭔가 하니까 기분이 좋겠지. 그렇지만 우리 애들은.
남의 돈 받아서 견학하는 거 당연한거라고 가르칠까?
이교수 : 왜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니?
최선생 : 난 아이들에게 반듯하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중이야. 과학공부도 좋고 세상 구경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제대로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 내 말이 틀린거 같애?
하는데 뭔가 와장창 넘어지는 소리.
둘 다 놀라서 돌아보면 박교수가 옆의 쇠스랑 정도를 쓰러뜨리고는 미안해서 헤헤거리다가.
박교수 : 아 저.. 계속하세요. 저는 애들 일하는 데 찾아가는 중인데요. 본의 아니게 두분 말씀하시는 거 잠깐 들었는데.. 뭐랄까..
에에.. 어쩐지 연인들의 말다툼같아서 보기가 좋네요.
이교수 : 뭐에요?
박교수 : 다녀오겠습니다. (후다닥 둘을 지나쳐 가는)
S#29. 계곡 혹은 개천 일각
박교수와 명환네 조가 마을 청소 중이다. (지저분한 계곡이나 개천 등지를 청소하는 것)
명환. 남희. 진수 지원. 재명 옥주. 더러운 것들을 긁어내고 쓸어담고..한쪽에 세워둔 리어커에 싣고..
그런데 옥주는 아무래도 더러운 물에 발을 담그기가 어려워서 기슭에 서서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지원이 일을 하다가 돌아보고는.
지원 : 거기 서서 일이 되니?
옥주 : 나도 이러구 싶지는 않은데.. 난 무섭다구.
지원 : 뭐가.
옥주 : 그 물 속에 뭐 있어?
남희 : 들어와 보면 알잖아.
박교수 : (명환을 돌아보더니) 도와줘야겠는데.
명환 : 알겠습니다.
박교수와 명환이 옥주에게 다가온다. 옥주 긴장해서 보며..
옥주 : 왜요. 뭐요. 재명아아..
박교수와 명환이 달랑 옥주를 들더니 아예 물에 빠뜨려버린다.
옥주 비명을 지르며 재명을 보는데. 재명은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박교수 : 어때 이젠 안 무섭지?
옥주 울기 직전이 되서 엉망이 된 옷차림을 돌보고 있다.
박교수 : (썩 기분이 좋아서 손을 털며) 과학이란 게 바로 이런거야. 몰랐을 때는 무섭지만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면
하나도 무섭지 않게 된다고.
옥주 : 이게 무슨 과학적 증명이에요. 몸으로 증명하는 거지.
박교수 : 어허 그거 몰라? 최고의 과학은 인간의 몸이야. 인간 그 자체!
S#30. 야산 일각
중희가 잡초가 가득 실린 리어카를 끌고 정태와 민재가 밀고.. 한곳을 향해 돌진해간다. 거기 잡초더미가 있다.
하나둘 셋 여엉차 리어카를 엎어서 잡초를 쏟아내고는 기분이 좋아진다.
문득 중희가 두리번거리더니.
중희 : 근데 우리조의 여자는 어디갔어?
민재 : 자현이요? 어디 갔지?
정태 : 좀 전까지 저기 있었는데..
S#31. 마을길
경운기가 달려오고 있다. 운전석에 자현과 마을 청년이 같이 타고 있다.
현재 운전은 자현이가 하는 중. 완전히 신이 나서 운전을 하는 중인데 쉽지는 않다.
점점 속력을 높히고. 옆의 청년이 불안해하고..
자현, 울퉁불퉁한 길에 제어력을 잃어버리나 싶더니 다음 순간.. 경운기가 어딘가에 쳐박힌다.
S#32. 과수원
(차밭에도 거름을 준다면 차밭도 좋겠음) 경운기에 가득 실려있는 거름더미.
대욱 지민 마이클이 거름주기를 하느라고 땀을 빼고 있는데..
대욱이 거름을 갈쿠리로 끼얹다가 자기 몸에 끼얹고 으윽.. 털다가 화가 나서 한 곳을 돌아본다.
저만치 보이는 곳에 부녀회장을 비롯한 마을 여인들이 몇이 앉아있는데 저마다 꽹과리며 장구를 들고 있다.
그 앞에 선 만수. 거의 세미나 발표하는 자세로.
만수 : 사물놀이는 꽹과리 징 장구 북. 이 네가지 악기로 연주를 하는 음악을 말합니다. 사물놀이의 기본 장단에는
별거리달거리장단. 법고놀이 장단. 길군악장단, 쌍진풀이 장단 등이 있습니다.
에 그럼 지금부터 각 장단의 리듬을 들려드릴테니까 잘 들어보세요.
여인들 : (모두 지겨운 표정으로 만수를 보고 있다)
만수 : 먼저 별거리달거리.. 이건 덩더더덩 더더더덩 덩더더덩 더더더덩 ..요기서 덩은 한박자. 더는 반박자에요.
자 다같이 해봅시다. 덩더더덩 더더더덩.
여인들 : (별로 신은 안나지만 입으로) 덩더더덩 더더더덩.
만수 : 좋습니다. 다음 법고놀이장단. 이건 더엉덩더 덩더더덩 여기서 더엉은 한박자 반입니다. 자 다같이 더엉덩더 덩더더덩.
여인들 : (따라해보지만 뒤죽박죽이다)
부녀회장 : 아이구 근디 장구 들고 앉아서 원제까지 입으루만 장단을 부를겨?
여인들 : (저마다 볼 멘 소리)
만수 :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은 이론이 중요한 거에요. 튼튼한 이론 위에 엉터리 실제없다.
이건 우리 이교수님 말씀이십니다. 그럼 다음 길군악 장단. 덩덩더더덩 더더더더더더덩.
여인들.. 김이 새서 따라하는...
S#33. 야산 근처
내려놓는 커다란 앙푼. 그 안에 들어있는 밥과 상추 등의 야채. 그리고 막걸리.
이장과 며느리인 듯한 젊은 여자. 그 앞에는 난처해서 서있는 민재와 정태. 중희.
중희 : 정말 이러시면 저희가 곤란해집니다.
이장 : 무엇이 곤란혀?
민재 : 새참은 절대 받지 말자는 것이 저희들 규정이거든요.
이장 : 나가 그럴 줄 알았구먼. 재작년인가 왔던 학상들도 그렸어. 물 한사발 안 먹겠다고 버티는 것이여. 그려서 나가 말해줬지.
이 사람들아. 자네들이 그라는 것은 두가지루다가 해석할 수가 있는디. 첫째는 우리를 없이 산다고 무시하는 것이고..
민재 : 아이구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장 : 둘째는 대학서 공부만 배웠지 인간은 못배웠다는 것이다. 시상에 돈이나 학문보다 중요한 것이 인간 사이의 정인디
워째 그것을 모르는가 말이여. 자네들도 그런가?
민재네들 서로 눈치보는..
정태 : (썩 나서더니) 그렇다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이장 : 바로 그것이구만. 아가 막걸리 차게 식혀왔냐.
며느리 : 예.
이장 사발에 막걸리를 따라주며.
이장 : 사실 우리가 일손이 쪼께 부족하긴 혀. 그려도 칠판만 바라보던 자네들이 뭔 농삿일을 알겠는가.
그냥 평생에 한번이라도 이런 일을 해봄서 농촌이 이것이구나..느끼고 가면 그것으로 나는 되었재, 사발들 다 찼지?
세명 : 예 어르신.
이장 : (사발을 들어보이며) 이것이 바로 농촌이여. 농촌 건배여.
일제히 막걸리를 들이키는.. 크으...
이장 : 근디 여그서 정태 학상이 누구여.
정태 : 전데요.
이장 : 오라. 자네구먼. 우리 부녀회장이 사위로 콱 찍어놨담서. 나도 그집 딸내미를 아는데 말여. 요새 처녀들 같지가 않어.
연락처를 줄것인게 반드시 연락을 해보드라고.
정태 : (버엉..)
이장 : 워째 대답이 없어?
민재, 중희 웃음을 참으며 자기들끼리 건배해서 마신다.
S#34. 종대네 마당
마당의 빨래줄에 경진이 입었던 옷들이 널려져있다.
종대가 마당 가운데 우뚝 서있다가 방문쪽을 돌아본다. 거기 경진이 종대 할머니의 옷을 입고 나서고 있다.
할머니가 뒤를 따라 나서며.
할머니 : 아이구 공부하는 학상이 그런 옷을 입어도 되겄는가.
경진 : 이거 의외로 편한데요. (몸빼 바지 펄럭거려보며) 바람도 잘 통하고..(종대에게) 어때. 괜찮지. (모델같은 폼을 잡아보인다)
종대 : (어색해서 시선을 돌리는)
경진 : 할머니 잘 입고 세탁해서 돌려드리겠습니다.
할머니 : 쓸데없는 소리 말고. 참 식사 전이지? 같이 허구 가지.
경진 : 아닙니다. 실은 종대하구 갈 데가 있어서요.
종대 : (돌아보는)
경진 : (종대에게) 이 동네에서 니가 제일 좋아하는 데 좀 안내해줄래?
종대 : 지는 바쁜디요.
경진 : 빼지마라. 내가 아주 중요한 얘기 할 게 있어서 그래. 아주아주 중요한 거야. 너 이 얘기 안들으면 후회할걸.
할머니 : (종대에게) 웃사람이 청을 하는디 싸게 대답을 혀.
S#35. 동네길
할머니의 옷을 입은 경진이 휘적휘적 걸어오고 있고. 그 한걸음쯤 앞을 종대가 뚱한 얼굴로 걸어온다.
그러다가 경진 문득 한곳으로 시선이 간다. 거기 세대 정도의 경운기가 모여서있고. 동네 사람들도 몇이 모여있다.
그 중의 한 경운기 밑에 기어들어가 (혹은 엔진 뚜껑을 열고) 수리를 하고 있는 자현.
장갑 낀 손으로 코를 닦다가 경진을 보고 손을 흔든다.
자현 : 어이 어디 가.
경진 : 너야말로 뭐하는 거야?
자현 : 임시수리점을 열었어. 경운기 하나 고쳤더니 소문이 났나봐.
남자1 : 저 처녀도 기계 수리를 하는가. 이 처녀 솜씨는 캡이여 캡.
경진 : 어이구 저는 그쪽으로는 아는 게 없는데요.
남자2 : 캡이 뭐여.
남자1 : 짱이란 야그여. 짱도 몰러?
S#36. 차밭
넓게 펼쳐져있는 푸르른 차밭... 경진 그 한곳을 거닐다가 차 잎을 하나 따서 입에 넣고 씹어본다. 쓴지 얼굴이 찡그려진다.
뒤에 서있는 종대를 돌아보더니.
경진 : 야 이거 무지하게 쓴데.
종대 : 넘의 밭에 거를 함부로 따먹고 그럼 씁니까.
경진 : 그냥 잎파리 하나 땄는데..
종대 : 이파리 하나는 거저 크는 줄 압니까.
경진 : (두손을 모아보이며) 미안하다. 조심할게.
종대 : 남들은 다 일하러 나갔는데 혼자 이렇게 놀아도 되요?
경진 : 난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거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내가 지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자. ...멋지지?
종대 : ..할말이 있음 해보쇼. 그게 현재 중요한 모양인게.
경진 : 글세.. 별로 할말은 없고.. 야아 여기 진짜 경치좋다. 공기에 차냄새가 밴 거 같아. 음... (크게 숨쉬는)
종대 : 할말도 없음서 바쁜 사람 불러낸겁니까.
경진 : 그럼.. 할말을 만들어내야 겠군. 음.. 무슨 말을 하지. 그래. 너한테서 수리비 받은 남자애 있지? 이민재.
내가 너라면 지금 그앨 찾아가 보겠어.
종대 : (뚱해서 보는)
경진 : 그애가 지금 니가 준 돈 가지고 있거든. 가서 달라고 해. 딴데 써버리기 전에 받아놓는게 낫지 않을까.
종대 : 뭔 소리요?
경진 : 사실은 수리비 받을 필요가 없었거든. 어제밤에 자현이란 애가 그거 혼자서 다 고쳤어.
종대 : ??
경진 : 니가 이런 좋은데 소개해줬으니까 보답하는 마음에서 얘기해주는건데.. 너 아무래도 사기당한 거 같어.
걔들 니 돈 받으면 안돼. 대학생 애들 약은 거 너두 알지? 하여간 머리가 그쪽으로만 발달했대니까.
종대 : 그것이 고장난 게 아니었단 말요?
경진 : 고장은 났으나 아주 간단한거였나봐. 근데 니 돈을 받아먹고 모른척하네. 내가 너라면 당장 가서 돌려받겠어.
종대 : (씨근대며 경진을 보다가) 더 할 말 있소?
경진 : (천진한 얼굴) 음.. 없어.
종대 그대로 몸을 돌려 가버린다. 가는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며 달려간다.
경진, 한건 했다는 표정으로 팔을 들어 기지개를 켠다.
S#37. 야산 근처
민재와 정태네들 아직도 이장과 마주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중.
민재는 손목시계를 보면서 좀 초조한데.
이장이 정태에게 다시 막걸리를 부어주고 있다.
이장 : 이것이 무엇이라고?
정태 : (괴롭지만) 농촌의 맛입니다.
이장 : 옳고. 어른헌티 술을 받았으면 마셔야지.
정태 자세를 돌려서 주욱 마신다.
이장 : (옆에 앉아 보고 있는 며느리에게) 술 마시는 거 본께 어뜨냐. 밭일도 제법 해낼 거 같지 않냐.
며느리는 웃기만 하고.
그런데 달려온 종대, 이장에게 대충 고개를 숙여보이더니 민재 앞에 선다.
종대 : 내 돈 내놓으쇼.
민재 : ..뭐?
종대 : 대학생이나 되가지고 그러는게 아닙니다. 넘의 생돈을 고로코롬 날로 먹으면 속이 편합니까?
민재 : (엉거주춤 일어서는) 돈이라면.. 그 수리비 말이냐?
종대 : 길게 말하고 싶지 않은게. 내 돈 주쇼.
이장 : 느들, 종대헌티 돈 꾼 거 있냐.
민재 : (어이없지만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준다) 저어..니가 갑자기 왜이러는지는 모르겠는데..이 돈 돌려주려고 했던거거든. 근데..
종대 : (돈 받아채서 넣으며) 나도 다 들은 게 있구만이라. 벨 고장도 아닌 것을 가지고 생난리를 치고, 넘의 돈을 사기쳐 먹어라?
민재 : ..사기? 아니 잠깐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니?
종대 : 글고.. 농활을 왔으면 일을 혀야지 대낮부터 술이나 마시고 말여. 내 이럴줄 진작에 알았구먼. 이장님 저 먼저 갑니다.
이장 : 그려..
종대 화난 얼굴로 가버린다.
중희 : 방금 무슨 소리냐. 사기를 치다니.
정태 : 어.. 나는 짐작가는 데가 있는데..
민재 : (끄덕인다) 응. 나도 짐작가는 사람이 있어.
이장 : 워미 잔 비었네. (막걸리 병 들며) 이리 대봐아.
정태 : (어이구...하면서도 사발을 두손으로 든다)
이만치 걸어오던 종대 잠시 걸음을 멈춘다. 그러더니 민재네 쪽을 돌아본다.
마침 이쪽을 바라보는 민재와 눈이 마주친다. 민재의 눈은 선하다.
종대 몸을 돌려 다시 걷는다.
S#38. 과수원
아주머니들이 분분이 흩어져 가고 있다. 만수 황급히 그들을 말리며.
만수 : 벌써 일어나시면 어뜩합니까. 이거 배우셔서 노래하고 싶으시다면서요. 몇번만 더 복습해보죠 네? 덩더더더 덩.
아주머니들 일없어..하며 가버리고.. 그 자리에는 꽹과리와 장구가 몇 개 남겨져 있다.
만수, 머리를 긁으며 서있는데.. 부녀회장이 만수를 툭툭 쳐주며..
회장 : 애썼구먼.
만수 : 지금 바쁘시면 이따 밤에 댁으로 찾아뵐까요. 아니면 마을회관에 모이는 건 어떠세요.
회장 : 열심히 해줘서 고맙구먼. 고맙고.. 다 좋은디. 학상은 뭘 좀 모르는 거 같어.
만수 : 아이참.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 제가 연구한 것의 십분의 일도 알려드리지 못했다구요.
그동안 사물놀이에 관한 제 연구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회장 : 근디 말여. 이 노래가락이라는 것은 말여.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만수 : 예?
회장 : 본디 노래라는 것은 신날라고 부르는 것이여. 근디 연구를 백날 해봐야 신이 날 리가 있겄는가. 이말이지.
만수 : 아니 그렇지만 충실한 이론 위에..
회장 : 학상도 말이여. 덩더덩이 한박자니 두박자니 하기 전에 쇠주 한잔만 들이켜봐. 글고 어깨춤을 춰보는거여. 이렇게 이렇게.
(어깨춤 흉내를 내보이며) 글면 장단은 지절로 나오잖는가. 닐리리야.. 니일니이리야아아.. 덩더덩 덩더더덩.
만수, 영 못마땅해서 보고 있다.
저만치에는 일하던 아이들이 땀을 씻으며 역시 못마땅해서 만수를 보고 있다.
S#39. 분교 전경 / 밤
S#40. 수돗가 / 밤
명환 중희 민재 대욱 마이클 등이 등목을 하고 있다. 웃통을 벗고 엎드린이에게 다른 이가 물을 끼얹어주는 식.
으흐흐.. 찬물에 소름끼쳐하면서도 즐겁게.. 야 바지에 물 들어가잖아.. 등.. 떠들며...
S#41. 교무실 / 밤
교무실.. 주욱 팬하는데 들리는 박교수 소리.
박교수 : (E) 안돼. 나는 반대야.
교무실의 컴퓨터 앞에 진수와 박교수가 나란히 앉아있다.
진수 : 그렇지만 부속이 없이는 업그레이드가 힘들 거 같아요.
박교수 : 그래서 전화를 해가지고 부속을 배달시키겠다고?
진수 : 저희 아버지 회사에서 나오는 것들이니까 염가에 살 수 있을 거에요. 그 정도는 제가 마련할 수 있는데요.
박교수 : 반대. 어이 자네가 몰라서그렇지 여기 최선생님..아주 무서워. 바른생활..알지? 사는 거나 생각하시는 게 바른생활이라고.
진짜 교육자라고 할까.
진수 : 교육자하고.. 컴퓨터 업그레이드가 상관이 있는겁니까?
박교수 : 자넨 잘 모를거야. 그리고 나도 교육자의 한사람으로서 말하는데 자네 전산과지?
진수 : 예 복수전공입니다만..
박교수 : 그럼 이거 프로그램을 잘 정리해볼 수 있겠네. 돈 들이지 말고 순전히 자네의 머리하고 손가락만 써서
업그레이드를 시켜보라고.
진수 : ...예?
박교수 : 그게 숙제야. 기한은 내일 아침까지. 됐지? (일어나 문으로 가며) 역시 교수는 좋아. 시키기만 하면 되잖아.
진수 : (어이없어 보다가) 저 교수님.
박교수 : 질문? 좋지.
진수 : 이 숙제. 다른 학생의 도움을 받아도 됩니까?
박교수 : 거럼. 협동심을 키워주는 것도 교육과제 중의 하나니까. 하하.
S#42. 건물 입구
명환이 수건으로 닦으며 오다 보면 만수가 입구의 불빛에 의지해서 음악책을 펴놓고 장구를 치며 연구중이다.
명환 : 너 그거 또 밤새 뚱땅거릴거냐?
만수 : 그러지 마십쇼. 이래뵈도 우리 학교의 명예를 걸고 하는 겁니다.
명환 : 명예? 니가 일 안할라고 수 쓰는 거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으이그..
만수 : 그게 아니구요. 옆동네에 다른 대학에서 농활을 왔었는데요. 걔네들은 사물놀이를 가르쳐줬대요. 그래서..
말하다 보면 명환은 이미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만수 치이해서 장구를 치는데.. 안에서 나오는 경진. 배낭을 메고 있다.
경진 : (신을 신으며) 만수 오빠. 수고.
만수 : 두고봐라. 이 정만수가 사물놀이의 진수를 보여줄거니까.
경진 : 그게 며칠만에 되는거면 난 물리 안하고 그거 했네.
만수 : 흥. (더 세게 치는)
경진 일어서는데 들어오던 민재와 마주친다.
민재 : 너 잘 만났다. 얘기할 게 있는데.
경진 : 잘 됐네. 가자.
민재 : 가긴 어딜 가.
그러나 경진은 이미 저만치 가고 있다. 민재, 어이없지만 할 수 없이 따라간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만수는 역시 장구보다는 입이 더 정확하게 장단을 맞추고 있다. 덩더더덩 더더더더덩.
S#43. 길 / 밤
밤에 보이는 주위 풍경. 그리고 하늘..
경진이 앞서 오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민재.
민재 : 어디까지 가는거야?
경진 : 조용히 좀 해라. 소리가 안들리잖아.
민재 : 무슨 소리.
경진 : 밤의 산소리.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는 경진. 민재, 한심해서 섰다가 다시 걷는다.
경진의 옆으로 붙더니 경진의 등에서 배낭을 벗겨든다.
경진, 배낭을 내주며 민재를 힐끗 보더니 피식 웃는다.
S#44. 언덕 / 밤
가장 높은 장소. 하늘이 넓게 펼쳐보이는 곳.
평평한 곳에 퍼질러 앉은 경진이 배낭에서 여러 가지를 꺼내고 있다.
물통, 쌍안경. 손전등. 스웨터 하나. 과자봉지. 옆에 앉아 보고 있던 민재.
민재 : 여전하구나. 온갖 잡동사니를 가방에 쑤셔넣고 다니는 거.
경진 : 이 가방은 내 자유를 위한 보증수표야.
민재 : 뭔 뜻이야?
경진 : 이 가방 하나만 있으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 아무 때나. 어디라도.
민재 :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거야? 언제나 떠날 수 있는 준비해놓고?
경진 : 넌 뭐든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재미없어. 누워.
민재 : ...뭐?
경진 : 누우라고. 길게..편하게.. (스웨터를 접더니 베게 삼아 자기가 먼저 누워버린다) 아아 역시 시골은 밤하늘이 제대로구나.
민재 : 내가 할말 있다는 거 말야. 너 종대한테 무슨 얘기했지? 내가 사기쳤다고 했냐?
경진 : (쌍안경으로 하늘을 본다) 맞어. 돈 받으러 왔지? 그럼 됐잖아. 그 돈 돌려주고 싶은 거 아니었어?
민재 : 그렇다구 사기쳤단 말을 했단 말야? 어이 이거봐. 우린 여기 농활로 온거야. 농활 온 학생들이 사기쳤단 말을 남기고 싶어?
경진 : (여전히 하늘을 보며) 아아 시끄러. 입다물고 옆에 좀 누워볼 수 없어?
민재, 머뭇거리다가 에라..해서 옆에 눕는다. 경진 자기가 보던 쌍안경을 민재에게 넘긴다.
경진 :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천체망원경이야. 그런 거 없어두 밤하늘을 더 잘 볼 수 있다는 걸 모르더라구.
뭐해. 봐봐.
민재 : (쌍안경으로 하늘을 본다) 봤다. 그리고.
경진 : 뭐가 그리고야. 이제부터 별을 하나씩 세보는거지. 사람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6천개 정도. 지구를 반으로 가르면 3천개.
지평선 주변을 빼면 대략 2천개 정도는 셀 수 있어.
민재 : 설마 니가 세봤다는 건 아니겠지?
경진 : 하루밤이면 다 셀 수 있어. 몇번 해봤어.
민재 : (쌍안경을 내려 경진을 보며) 너 그런 취미 있었냐? 언제부터.
경진 : 니가 날 알기 전부터. 하긴 지금도 넌 날 잘 모르지만.
민재 : 너 미국에서 외로왔냐? 별이나 세구 살았던거야?
경진 : (여전히 하늘을 보며) 분석 좀 하지마. 그런 거 하지 말고 별이나 보라구. 5분만 입다물고 별을 보면 내가 상을 줄게.
민재 : (피식 웃고) 무슨 상.
경진 : 음.. 5그램의 평화. 10그램의 자유. 그리고 20그램의 행복.
민재 물끄러미 경진을 보다가 쌍안경으로 하늘을 본다.
그렇게 나란히 누워 하늘을 보는 두사람의 모습.. 주욱 빠지고..그들이 보는 하늘의 별.. (자료화면이라도 써서 아름답게..)
S#45. 분교 전경 / 밤
교무실에만 불이 켜져 있고 어둡다.
S#46. 분교 남자 교실
모두 잠들어있다. 민재도 물론 잠들어있음. 진수는 안 보임.
그 중에 정태가 부시시 일어나더니 더듬거려 물병을 찾아 마신다. 막걸리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다.
그 옆에서는 만수가 장구를 머리 위에 모셔놓고 잠들어있다.
S#47. 교무실
창문에 새벽빛이 새어들고 있다.
그리고 교무실 안.. 컴퓨터 앞에 진수가 앉아있다. 그 옆에서 지원이는 노트북을 펴놓고 안의 프로그램을 카피하는 중이다.
둘이 뭔가 얘기를 나누며 프로그램 대한 상의를 한다.
S#48. 운동장 / 새벽
놀이 기구 주변에 동네 꼬마들이 몇이 모여 놀고 있다.
그 중의 한명이 교사 쪽으로 간다. 보던 아이들도 조르르 따라간다.
S#49. 교무실 내부
창문가에 매달려 안을 보는 아이들.. 그리고 컴퓨터 앞의 지원과 진수. 모니터를 같이 들여다보고 있다.
모니터는 새로 부팅이 되고 있다. 그러더니 문제없이 윈도우 프로그램이 뜬다.
진수와 지원, 마주보며 기쁜 미소를 짓는다.
진수 굳은 어깨를 풀며 기지개를 켠다. 옆 교실에서 요란한 자명종 소리가 들린다.
S#50. 아침 운동장
아이들이 모여서 아침 회의중이다.
명환 : 그럼 오늘 작업조는 이상과 같고.. 그리고 남희씨. 우리 예산이 좀 남았다면서요.
남희 : 네. 마을 주민들께서 식품재료를 워낙 싸게 공급해주시는 바람에 농활비가 꽤 남았어요.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그걸로
마을 주민들을 위한 마을잔치를 열까합니다.
아이들 와아 환호를 지르고..
남희 : 각자 마을주민들을 기쁘게 해드릴 아이템을 개발해주시기 바래요. 그리고 오늘 저녁식사조는 남아주세요.
음식 준비를 의논해야 되니까..
자현 : (번쩍 손을 들더니) 저 오늘 작업에 좀 늦게 가도 됩니까?
명환 : 왜?
자현 : 양수기가 고장났는데 그거 좀 고쳐달라고 해서요.
중희 : (옆에서 자현의 어깨를 툭툭 치며) 그래 얼마든지 갔다와. 너 아님 우리 완전히 깡통 공학도들 될 뻔 했잖냐.
대욱 : (손을 들더니) 저도 지원차 함께 다녀오면 안되겠습니까?
정태 : (대욱의 머리통을 때려) 잔말말고 가서 리어카나 빌려와.
대욱 : 우씨..
아이들 삼삼오오 떠들어대는 이쪽에 박교수와 이교수가 서있다.
박교수 : 최선생님은 설득하셨어요? 여기 애들 견학해주는거요.
이교수 : 그 친구 고집을 누가 꺽겠어요.
박교수 : 제가 뭔가 한마디 해도 될까요.
이교수 : (수상해서 보며)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구요.
박교수 : 자고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산이 내게로 오지 않을 땐 내가 산으로 간다.. 그러니까 최선생님이 보고 싶을 때
자꾸 오라고만 하지 마시고 이교수께서 자주 이쪽으로 오시면.. (말하다 보면)
이교수 : (표정이 너무 싸늘하다)
박교수 : 헛소리였슴다. (아이들에게 가며) 얘들아. 오늘 난 어느 조에 끼워 줄거야?
S#51. 마을 전경
마을의 모습... 이모저모 스케치 위로 스피커에서 들리는 이장의 목소리.
이장 : (E) 고사리 주민 여러분. 이장올습니다. 오늘 저녁 6시부터 우리 고사초등핵교 운동장에서..다시 말씀드리겄습니다.
우리 고사 초등핵교 운동장에서 카이트 학상들과 마을잔치가 있겄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겄습니다.
오늘 저녁 여섯시부터 카이트 학상들과 고사 초등핵교 운동장에서 잔치를 하겄습니다.
S#52. 교문 앞길 정도 / 저녁 (오후)
동네 주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S#53. 운동장
이교수의 지휘 하에 명환 중희 등이 스피커를 노트북에 연결하고 있다.
노트북에는 남희가 붙어서 프로그램을 작동하고 있고.
박교수는 다른 학생들과 운동장 가운데 캠프화이어를 준비하고 있고.
민재와 정태 등이 마이크 등을 설치하고 있다. 주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 (시간경과)
학생들이 주민들 사이에 수박이며 음식들을 나누고 있다.
그 때 스피커에서 나는 끼이익 기계음.. 사람들 다 돌아본다.
스피커를 조덜하던 중희. 남희를 돌아보며 끄덕여보인다. 남희 노트북에서 엔터를 친다.
그러자 들려나오기 시작하는 트롯트 음악.. 주민들 시끌벅적 웃음이 피는데. 음악이 다시 꺼진다.
주민들 중에는 종식이와 할머니 부녀회장 등도 자리하고 있고. 명환 마이크에 대고..
명환 : 죄송합니다. 잠시 MP3 음악 실험이 있었습니다. 에 그럼 잔치를 시작하기 전에 이장님 한말씀 해주시죠.
주민들 박수를 치는데. 이장 일어서더니.
이장 : 나를 늙었다고 대우해주는 모양인디.. 나도 마음은 서태지여. 그니께 구닥다리 형식은 빼고 말여. 학생들 춤이나 보여줘.
주민들 와아 웃으며 박수를 친다. 남희 웃으며 프로그램을 고른다.
만수와 마이클, 지민이 앞으로 나서고 있다. 지민은 겉으로는 아주 수줍은 표정이다.
웃으며 박수를 치는 주민들 뒤에 서있던 경진이 문득 한쪽을 돌아본다.
거기 저만치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사 쪽으로 가는 종대의 모습이 보인다.
경진, 자리를 옮겨서 민재 옆으로 간다. 웃고 있던 민재를 툭툭 친다. 민재가 돌아보면 고개짓으로 교사를 가르킨다.
민재가 보았을 때 종대는 교사 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S#54. 교실 앞 복도
걸어오는 종대. 밖에서 들리기 시작하는 신나는 댄스음악.
S#55. 교실 내부
들어선 종대, 두리번거리다가 오실로스코프를 발견한다. 들어서 본다. 여전히 고장이 나있는 그대로이다.
(뭔가 눈으로 보이는 고장이어야 함)
종대, 한숨을 쉬고... 그리고 창문 쪽을 본다.
S#56. 운동장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댄스 음악. 박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음악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고 있고.
만수 지민 마이클 등이 동작도 잘 맞춰서 춤을 추고 있다.
주민들 신이 나서 몇 명은 그들 옆으로 끼어들며 같이 춤을 춘다. 신나게 어우러지는 한판..
S#57. 교사 입구 쪽
종대가 나오다가 문득 보는 곳. 입구에 민재가 앉아서 기다리다가 종대를 본다.
종대 머뭇거리다가 민재의 옆에 떨어져 앉는다. (운동장의 음악은 계속 들리고) 둘 다 말없이 잔치가 벌어진 곳을 보다가..
종대 : 오실로스코프 고장 못 고쳤지라? ..사기라고 혀서 미안하구만요.
민재 : 그래서 수리비를 내겠다고?
종대 : 주면 받아줄라요?
민재 : 받고 그대신 수강료를 낼까.
종대 : (돌아보는)
민재 : 여기서 배운 게 많거든. 논에 피뽑는거도 배우고. 리어카 끄는 것도 배우고..
그리고 공부보다는 사람 사이의 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배우고...
종대 : 나는 어려운 말은 잘 못 알아듣구마요.
민재 : 음.. 실은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 인문계 쪽은 영 꽝이거든.
종대 : (돌아보는)
민재 : (종대에게 다가 앉더니 종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내가 여기 왜 와있는 줄 아냐. 저 다음다음 차례가 난데 말이지.
날보구 춤을 추라는거야. 차라리 느네 논에 가서 피를 뽑구 싶다. 안될까? (애원하는 눈으로 보는)
종대 그렇게 말하는 민재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는다. 민재도 웃는다.
// 잔치 일각
조용해진 가운데 만수가 마이크 앞에 징을 들고 서있다. 날카로운 눈으로 둘러본다.
만수 : 준비됐습니까?
그 앞에 부녀회원들이 각각 꽹과리며 장구 북등을 앞에 놓고 앉아있다.
만수 : 그럼 이제부터 부녀회원들의 사물놀이가 있겠습니다.
부녀회장 : 아니 우리가 뭐 배운 게 있다고 이걸 치란 말여.
만수 : 어허 쐬주 한잔씩들 하셨잖아요. 그럼 장단은 절로 쳐지게 되있습니다. 그럼.. 어험.. 날 좀 보소 날좀 보소 날 좀 보오소오오
부녀회원들 제각각 신이 나서 두들겨대며 노래를 시작한다.
이장이 신이 나서 춤을 추며 나오고 다른 주민들도 그렇고.. 박교수는 물론 학생들도 맞장을 치고..
이만치 나란히 서서 보던 최선생과 이교수. 최선생이 이교수를 툭 친다.
이교수 돌아보더니 새침해서 앞을 보는데 최선생, 무작정 이교수를 끌고 가운데로 나선다. 어머어머 해서 끌려가는 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