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溪 박희용의 麗陽軒 독서일기 2024년 5월 30일]
KAIST 총장 이광형 박사의 역작인 『미래의 기원』(인플루엔셜, 2024)의
제3부 10장 ‘사상과 제도의 미래’ 아래 제2항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인류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사상적으로 발전시킨 대표적 제도 두 가지가 바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이다. 민주주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왔고, 자본주의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발전을 북돋아왔다.
이보다 가까운 미래에는 기술의 발달로 확장된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해질 수 있다. 법을 제정하거나 국가의 정책을 채택할 때 온라인 전자투표 시스템을 이용한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심화되고 있는 민주주의 문제점들인 포퓰리즘, 정보 지배, 정치 약화, 근시안적 무관심, 불참여 등은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다.」
「포퓰리즘이 증가하는 원인은 경제적 불안과 문화적 요인의 두 가지이다. 자본주의가 다른 이론들을 압도하는 원리가 되면서, 어느 때보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 되었다. 다수의 하층 계급은 자신들은 이용만 당하고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또한 사회 주도층은 자신들의 아픔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문화적으로는 빈부 계층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이념과 학벌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또한 급격한 기술 발전과 인구 변화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지위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이들에게 감각적 구호는 설득력이 있다. 이렇게 눈앞의 이익을 자극하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은 다수의 폭력이 되어, 당장의 이익을 원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원초적으로 만족시키는 정책이 승리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포퓰리즘 우민정치는 결과적으로 인류가 함께 추구하던 선한 가치, 즉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역행하는 결과가 나오기 쉽다.」
「국가 공공의 빚이 커지는 것은 자신과 무관한 일로 치부하고, 당장 자신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의 액수만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장기적으로 나라는 재정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고 말 것이다. 환경문제에 있어서도 전 세계적으로 함께 장기 계획을 세우고 협력해야만 후대에 살 만한 지구를 물려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공동의 장기 목표에 관심이 없는 우민화된 시민들이 투표로 모든 정책을 결정한다면 환경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대중의 표를 의식한 지도자들은 건실한 정책을 만드는 것보다 수사학에 능란한 유창한 연설로 사람들을 자극하는 데에 치중하였다. 그들은 시민들에게 일시적 만족을 제공하는 데에 집중했고, 결국 고대 그리스는 더 먼 미래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멸망했다. 역사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
지금 정치인들이 하는 행태에 딱 맞는 말이다. 그저 국가가 공돈 안 주나 바라고, 그걸 이용하는 포퓰리즘 정객들이 꿋꿋하게 설치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또 다른 요소는 디지털 생활이 일반화되면서 나타난, 정보의 편중과 진실의 소실이다. 현대 사회는 정보가 권력으로서 민중이 아니라 정보가 지배하는 사회, 인포크라시이다. 철학자 현병철은 권력자가 착취하는 대상이 ‘몸과 에너지’에서 ‘정보와 데이터’로 옮겨갔다고 말한다.」
「정부나 거대 기업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SNS와 인터넷 검색, 거리의 CCTV와 금융 기록 등을 통해 대중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이를 지배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CCTV를 보안 기술뿐 아니라 감시 도구로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수백만 대의 카메라가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활용해 대중의 일상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엄청난 정보를 확보한 정부는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을 색출하고 잡아들일 수 있다. 정보와 데이터를 착취당하면 민주주의는 언제든 침해받을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이 다 좋은 데 여러 장의 몇 군데에서 반중적인 관점이 노출되는 문장이 있다. 인포크라시 사회의 예로 꼭 중국을 콕 찝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일당독재를 하는 러시아와 북한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만 해도 거리마다 CCTV가 설치되어 범죄와 사고를 감시하고 있다. 유발 할라리 책도 세계적 베스트 셀러인데, 곳곳에 혐중하는 글이 있어 글보벌시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고도 문명을 지향하는 학자의 태도가 의심스러웠다. 중국이 15억 인구를 통제하려면 인포크라시 기술을 활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선의냐 악의냐는 그 나라의 몫이 아니겠는가.
「인포크라시의 또 다른 문제는 그 무분별한 양과 질에 있다. 거대한 정보가 다양한 경로를 통한 유통 과정에서 충분한 사실 검증이 종종 누락된다. 또 상충하는 정보가 만연해 하나의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무엇을 믿을지 각자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용자의 선호와 패턴을 파악해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개인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필터버블 현상 때문에 사람들은 필터링된 좁은 공간에 갇히게 되어 그것이 전체 세상인 양 착각하게 될 수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보만 접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관점을 지닌 정보는 접하지 않는다면, 고정관념이 강해지고 확증편향이 심화될 수 있다. 그리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은 명백한 증거를 거부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진보와 보수 성향을 가진 모두에게 적용된다. 인포크라시 시대에 필터버블에 갇히지 않으려면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금은 점점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있고 이로써 정치는 힘이 약해지고 있다. 청년층이 노년층에 비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낮은 편이다. 과거에는 모든 것이 정치에 매달렸지만, 이제 경제나 문화, 과학 분야는 정치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한 세계화로 인해 국가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도 정치의 약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흔들고 있는 세력은 금융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주를 직접 생산해내는 1, 2차 산업의 중요성은 갈수록 약화되고, 실물 생산은 하지 않는 3차 산업인 금융이 최고의 권력이 되어가고 있다.
금융 권력은 많은 경우에 회사의 본질 가치나 장기적 건전성보다, 단지 수익을 내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조시 소로시가 이끄는 헤지펀드인 퀀덤펀드가 태국 바트화를 대량으로 공매도해서 바트화 가치가 폭락하고, 그 여파가 한국에까지 번져 1997년 외환위기까지 이어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아르헨티나 국채를 사서 국가의 재정 구조에까지 간섭하기도 했다. 이처럼 금융 권력이 한 국가의 국력을 좌지우지할 만큼 막강해졌다. 글로벌 관점에서 본다면 정치도, 민주주의도 금융 권력 앞에서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IMF 금융위기를 겪을 때 당식시 김대중 대통령이 조지 소르시를 초대해 협조를 요청했던 일이 금융 권력의 힘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다음과 같이 결어한다.
「민주주의 제도를 지금처럼 선용하고 더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드러난 허점들을 보완해 다시 튼튼히 세울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 시민들이 이러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각 개인이 올바른 정보를 접하기 위해 깨어 있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회적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교육과 아울러 기술과 문화, 제도가 필요하다.
이광형 박사가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민주주의 가치와 현실, 미래 발전을 위한 대안을 막힘 없이 시원하게, 자세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뭐 달리 보탤 말이 없다.
그런데, 나도 감정이 있는 인간이므로 욕 한마디 시원히 하겠다.
“배 터지게 훌처 먹더니 조지 소롯이 서더냐? 아마 지금쯤은 퍼석 늙어 겔겔대거나 썩어 黑骨이 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