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탄생의 비밀
① 임마뉴엘 칸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은 서양 근세 철학의 대표적인 저술이다. 또한 독일 철학의 위대한 업적이다.
그런데 칸트의 철학적 발전과정에 큰 변화가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른다. 즉 그의 철학은 ㉠독단주의(전통적 형이상학) 시기 ㉡ 회의주의 시기 ㉢ 비판주의 이고 ㉢ 시기에서 순수이성비판 실천 이성비판 그리고 판단력 비판이라는 3대 비판 저서가 나타난다.
㉠부터㉡까지 과정은 다 알고 있다. 칸트 스스로가 이를 밝히고 있다. 흄의 회의주의를 알고 나서 독단의 잠에서 깨어 났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문제는 ㉡과㉢의 과정이다. 이를 암시하는 그의 일기에는 큰 광명이 주어졌다 라고 썼다. 학계에서도 이 큰 광명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
② 독단주의 : 객관적인 증거 없이 임의대로 신, 영혼, 우주 등 초감성적인(supersensory) 실체들에 대해서 체계적인 진술을 시도하는 것, 이런 철학들 종래의 형이상학
비판주의 : 초감성적인 실체를 세우기 전에 먼저 인식의 한계를 세우고 그런 기초 위에서 진리를 규명하는 철학
칸트가 볼 때 종래의 형이상학은 독단적이다. 인간의 인식의 범위를 벗어난 신, 우주, 영혼 등에 대한 서술. 그러나 철학=과학이다. 라이프니쯔-볼프 류의 형이상학은 과학이 안된다.
그런데 칸트 역시 이런 독단주의 철학의 세례를 받고 연구, 집필을 했다. 그러다 그는 영국 경험론, 회의주의 철학을 접하고 난 뒤 독단의 잠에서 깨어 났다고 고백했다.
③ 흄의 회의주의 (scepticism)
회의주의, 진리는 없다, 세상과 나 자신 모두 의심한다.
핵심 : 인과율의 부정 모든 과학이론은 원인-결과 관계에 의존하는데 흄의 견해는 인과(causality) 라는 개념이 자연적이 아니고 인위적이라는 것. 즉 원인과 결과 사이에 필연성(necessity)가 있을 때 이를 인과율이라고 하는데 실은 이런게 사물에는 없다는 것이다. 사건 ⓐ 햇빛이 난다 ⓑ 돌이 따뜻해진다. ⓐⓑ의 전후 관계는 인정하지만 인과관계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확률이나 개연성 등은 인정한다.
인과율과 반드시(필연성)은 철학, 과학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활동의 기초를 이룬다.
④ 칸트 역시 이런 인과율과 초감성적인 실체에 의존하는 독단주의 철학에 빠져 있다가 흄의 세례를 받고 난 뒤 역시 회의주의에 빠진다. 회의주의에 빠지면 철학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심지어는 자신이나 우정 등에 대해서도 믿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큰 빛이, 광명이 나에게 왔다 는 쾌재를 불렀다. 그 후 그는 독단주의를 지양하고 비판주의 철학을 완성한다. 이것이 곧 순수이성비판이다.
⑤ 순수이성비판의 핵심 개념은 선험적 통각 transcendental apperception 이라는 것이다.
통각은 자기 의식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같은 인물이라는 이유는 자기의식 때문이다. 또는 자아정체성 이라고도 한다. 이는 개인적인, 경험적인 통각이다.
그러나 한편 보편적인 자기의식 선험적인 통각도 있다.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ego cogito ergo sum 는 데카르트의 의식도 선험적 통각이다.
이런 선험적 통각을 칸트는 인식의 최고의 원리라고 한다. 이를 통해서 다양한 경험들이 하나의 대상으로 정립이 된다. 이를 다양성의 종합적 통일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서 칸트는 독단주의와 회의주의 둘 다를 피하고 인식론을 정립한다.
⑥ 이를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한다. 우리의 인식이 대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대상이 인식 주관 즉 선험적 통각을 통해서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큰 빛이었다.
⑦이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칸트보다 조금 빨리 나온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의 책 에밀 이라는 책이다. 이는 교육학의 고전이다. 그런데 그 안에 나오는 작은 부분 즉 사보이 신부의 고백이라는 부분이 있다. 이는 극히 철학적인 논문이다.
여기서 루소 역시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 (고립적인 자아) 를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감각적 대상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고 한다.
루소는 데카르트와는 달리 쉽게 자신의 바깥세계도 의심하지 못한다고 했다. 나의 감각은 ego cogito 처럼 명백하다. 자기의식처럼 감각도 확실하다. 여기서 감각은 물질의 세계를 말한다. 루소는 감각 혹은 물질은 내가 마음대로 파괴하거나 제거할 수 없는 독자적인 존재라고 했다. 즉 나도 외부 세계도 모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양자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⑧ 루소는 지성(=I or ego)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루소(Rousseau)에 의한 자아의 기능은 예를 들어 판단이나 비교를 들 수 있다. 이 자아의 능력은 "내 감각을 수집(연결)하고 판단하고 비교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 안에 있다. 철학에서 감각이란 실은 외적인 사물을 말한다.
⑨이런 적극적인 자아, 감각을 연결하고 비교하고 판단하는 자아 혹은 나 의 기능을 통해서 루소와 칸트는 종래의 독단론을 극복한다. 단 후자는 전문 철학자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칸트의 선천적인 통각 에 해당한다. 외부적인 감각을 하나의 대상으로 결합하는 기능이다.
⑩ 칸트는 자아의 단순한 연결, 종합 기능을 넘어서서 종래 논리학의 범주들 (긍정, 부정, 단일성, 다양성, 실체성, 인과성 등) 등을 자아의 기능으로 본다. 이 자아는 선천적인 자아이다.
이를 칸트는 선천적 오성(이성)의 기능이라고 한다.
루소
내 감각을 연결하고 비교하는 그 정신의 힘에 어떤 이름이 주어지든 간에 - 그것을 주의력, 명상, 성찰, 또는 당신이 좋아하는 무엇이라 부르든 - 그것이 그 감각의 대상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에밀)
그러나 칸트는 루소에 의한 자아의 수집(연결)기능을 주체 자체의 결합기능으로 재해석했다.
모든 표상 중에서 결합의 표상은 사물을 통해서 주어지지 않고 주체 자체만으로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자기 활동의 행위이기 때문이다.(C.P.R B 130)
⑪ 이런 과정을 통해서 칸트는 선험적 관념론의 세계를 구성한다. 이는 물질 혹은 외부 세계 감각의 독자성을 부정하지 않고 도리어 이들 재료가 외부에서 주어지기는 하지만 우리의 인식주관 즉 선험적 통각의 통제를 받아서 객관적 대상으로 정립됨을 밝혔다. 이는 루소가 제기한 능동적 이성 혹은 선험적 통각 개념을 더욱 밝힌 것이고 또한 데카르트의 주관주의를 완성한 것이다.
https://youtu.be/cPRStY0fU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