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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4.22. 원명정사 법문
13. 6조 혜능(六祖惠能)
6조 (가되실)혜능대사가 나무를(3세때 아버지를 잃고 어린나이에 ) 해서 편모를 모셨는데, 하루는 나무를 짊어지고 객점들이 있는곳에 이르러 어떤 나그네가 <금강경>의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문장을 외우는 것을 들으시고 마음이 곧 송연하여 그 나그네에게 묻기를 “이것은 어떤 법이며 어떤 사람에게 얻었습니까?”하자 나그네가 말하기를 “이것은 <금강경>이라고하며 황매산의 홍인대사에게 얻었노라.”하고
[강설에 보탬: 어리나 비범한데가 있음을 알아 금자 한덩이를 줘서, 어머니가 살도록 남겨드리고 노자돈 몇푼은 가지고]
6조 대사가 바로 황매산 동선사에 가시니 홍인 대사가 한번 보시고 묵묵히 알아보셨다.
[강설 보완:황매산 7백명 문도를 거느리고 있던 홍인대사를 찾아가서 화상의 높은 도를 배우고자 찾아 왔습니다”하니
“어디서 왔는가?”하시자 “영남에서 왔습니다”하니
“영남은 오랑케들인데 성불할 수 있겠는가?”하자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불성에야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하니 법기임을 알아보시고 큰소리로 꾸짖고“방아찧는 일이나 하라”하고 내쫓으셨다.]
6조 대사가 (몸이 가벼운지라)돌을 짊어지고 방아를 찧고 계시다가
[강설 보완:어느날 5조 홍인대사께서 학인들의 견처를 점검해서 법을 전하고자 일대포고를 했다.
“대중들은 들으라. 각자의 깨달은 바를 나에게 보이라.
내뜻과 계합하면 의발과 법을 전하여 제6조가 되게 하리라.”하였다.
당시 수좌였던 신수가 당연히 6조가 될 것이라고들 추측하여 아예 모두들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신수도 확신이 서지 못해 남몰래 벽에다 게송을 써 붙혔다.
신시보리수 심여명경대
시시근불무 물사야진애
몸은 보리(覺)의 나무요
마음은 명경대와 같으니
수시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
먼지가 묻지 않게 하라.
이것을 본 5조께서
“후세에 이 게송을 따라 그대로 수행하면 좋은 과를 얻게 될 것이다”하고 수행인들이 보도록 벽에 붙혀 두도록 했다.
방아만 찧고 있던 노행자가 어느 사제승이 외우는 신수대사의 게송을 듣고“어구는 훌륭하나 깨달음의 진의는 증득하지 못했구나”하고 글을 모르는 그는 거사에게 부탁해서 자기의 견처를 땅바닥에 써 달라 했다.
보리본무수 명경역무대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
菩提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 또한 대가 없으니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곳에 티끌때가 끼리오?
이것을 본 학인들이 쑤근대는 것을 보고 5조가 그 게송이 노행자의 것임을 알고 짐짓 신발로 지워버리면서 이것도 아니다”한 후
방아를 찧고 있는 노행자에게 가서 “방아는 다 찧었느냐?”하시니
“예. 방아는 다 찧었으나 키질(인가)을 하지 못했아옵니다”하자,
주장자로 방아고를 세 번 치시고 돌아서 가셨다.
그 뜻을 아는 노행자가 밤에 조실로 찾아가니 방의 불빛이 밖으로 세어 나가지 못하게 병풍으로 가려놓고
“금강경”을 가지고 대의와 요긴한 대문들을 강설해 주셨고 “응무소주 이생기심”에 이르러 확철대오 하였다.(용)
드디어 의발과 발우를 전하시며“이것은 대를 이어 나에게 이르른 사자상승(스승→제자로 이어지는)의 증표로 주신 것인데,
이제 앞으로는 다시는 이 의발을 전수하지 말고 그치라.
법이 크게 일어날 것이니라. 유형의 물건으로 법난쟁탈이 벌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니라”하시고
“너는 이 밤으로 대중의 눈을 피해 남쪽으로 피신하라.
대중이 너에게 법이 전해진 것을 알면 너를 헤칠 것이니라.
아무쪼록 멀리 산속으로 가서 懷字든 곳을 만나면 머무르고 會字든곳을 만나면 숨었다가 인연시절이 익으면 그때 법을 펴도록 하라”하셨다.]
드디어 가사와 법을 받으시게 되어
[구강나루까지 같이 오신 5조께서 친히 노를 잡고 배를 저으시니 6조께서“청하옵건대 화상께서는 앉아 계십시오.
노는 마땅히 제가 젓겠나이다.”하니
“아니다. 마땅히 내가 건네주리라.”하시자
“제가 어두웠(迷)을 때는 스승(師)께서 건네 주셨사오나 깨달(밝은)은 뒤에는 스스로 건너는 것이 옳은가 하나이다.
‘건넌다는 것은 비록 하나이오나 그 쓰임은 같지 않나이다(家風)’혜능이 변방에 태어나 사투리가 많사오나 스님의 법 내리심을 받아 이제 이미 깨달았으니 마땅히 자성을 스스로 건진 것이옵니다.”하니
“그렇다 앞으로 불법이 너로 말미암아 크게 행해질 것이다.
네가 떠난 뒤 3년 후면 나는 세상을 버릴 것이니 너는 잘 가되 속히 법을 설하지 말 것이니 불법을 일으킴이 쉽지 않을 것이다”하셨다.
이튿날 늦게 이 사실을 안 대중들이 5조를 찾으니 5조께서“법이 노행자에게로 갔노라”하시자
노행자를 잡아 의발을 빼앗기 위해 앞다투어 사방으로 흩어져 달려갔다.
그중 제일 앞장서 노행자를 뒤쫓은 이가 도명(혜명대사)스님이였다. 그는 원래 무장출신으로 우람한 체격과 날래고 힘이 장사인 승려였다. 그가 대유령 고개에 이르러 6조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쫓아가“노행자는 조사님의 의발을 거기 놓아라”하자
6조는 의발을 바위 위에 놓아두고 몸을 숨겨서 말하기를
“이 의발은 석가세존에서 달마대사로 이어 전법의 신표로 전해 받은 것인데 어찌 힘으로 가질 수 있겠느냐? 힘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면 가져가 보아라.”했다
도명이 의발을 집어들려 했으나 끔쩍도 하지 않자 온힘을 다했으나 어림도 없자 두려운 생각이 들어 진땀을 흘리며 잘못을 깨닫고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간청했다.
“행자님 소승은 결코 의발을 탐내 쫓아온 것이 아니라 오직 불법을 구하고자 했을 뿐이니 원컨데 이 몸을 불쌍히 생각하시어 법을 일러 주시옵소서”하니 몸을 숨기고 있던 6조가 몸을 나타내어 바위 위에 단엄하게 앉아서“갸륵하오. 그대가 진정 법을 구한다면 내가 기꺼이 법을 설하리다.”하고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을 때 그대의 진면목은 무엇인가?”하니 도명이 활연히 깨닫고 다시 3배를 드리고 물었다.
“옛부터 내려오는 비밀한 말 뜻 밖에 또다른 의지가 무엇입니까?”하니
“내가 지금 설한 것은 결코 비밀한 뜻이 아니요, 비밀한 뜻은 그대 스스로의 면목을 마음으로 밝히(반조)는 바로 그 곳에 있노라.”하자
여기서 만가지 번뇌가 쉬고 생각 끊어진 자기 본래 면목이 드러난 경지를 확철히 깨달아 얻은 후.
“행자는 저의 스승이오니 저는 오늘부터 행자의 제자가 되겠나이다”하니
“그대와 나는 5조 문하에서 함께 수행한 바니 그대는 5조의 문인이요”하였다.
도명이 뒤 쫓아오는 무리들에게“이쪽이 아니다. 다시 딴 방향으로 찾아보자”하여 무리를 다른 쪽으로 이끌었다.]
남쪽으로 가서 (5조의 지시대로)懷集, 四會에서 숨어 계시다가 조계에 이르러서 大法雨를 퍼부으시니 배우는 이들이 천 명 이상이었다.
(강설 보완: 남으로 내려간 6조는 산속에서 사냥꾼들 사이에 함께 운둔 생활을 하면서 그들이 잡은 짐승가운데 산놈은 몰래 풀어주고 그들이 끓여먹는 고기 냄비 갓에 채소를 넣었다가 이것을 먹었다. 이것을 육변채(肉邊菜)라 한다.
16년 후 광주 법성사에 이르러 승려들이“깃발이 움직이는가?
바람이 움직이는가?”하는 논쟁을 옆에서 보고 있다가“기가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오직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니라.”하자
마침 이 광경을 지켜보던 주지 인종법사가 범상치 않음을 보고
“법이 남쪽으로 왔다고 하던데 그대가 바로 6조가 아니요?”하니“그렇습니다”하므로 의발을 보여 주기를 간청하여 친견한 뒤 삼배를 드려 청해서 열반경요초 강의를 들었는데
현현밀밀한 설법에 감복하고 아직 6조가 속인이라 삭발을 하여 법명을 혜능이라 하였다.
그로부터 6조가 법을 설할때면 인종법사는 단하에서 법문을 경청하게 되었다. 그 이듬해 쌍봉산 조계산 보림사를 개설하여 법을 펴기 시작했다.
28년간 그 법을 이은이가 43인이요.
도를 깨달아 범부를 면한 이가 천 수백이나 되었다.]
(측천무후의 자)중종이 신룡 원년에 명령을 내려서 이르기를 “짐이 慧安대사와 申秀대사 두 스님을 청하여 궁중에서 공양하고 만기의 여가에 매양 일승법을 탐구하니 두 스님이 아울러 추대해서 이르기를‘남방에 혜능 선사가 있어서 비밀히 홍인 대사로부터 의발과 법을 받았으니 그이에게 나아가 물으라’고 천거하거늘 지금 내시 설간을 보내어서 조서를 가지고 달려가서 영접하여 청하오니 원컨대 스님은 자비한 생각을 두셔서 속히 나와서 상경하소서.”하였으나 6조께서 표를 올려서 질병을 핑계로 사양하시고 산속에서 마치기를 원하셨다.
설간이 말하기를“서울의 선덕들이 모두 이르기를‘도를 알고자 하면 반드시 모름지기 좌선해서 정을 익혀야 될 것이니 만약에 선정을 인하지 않고는 해탈을 얻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알지 못하겠으니 스님께서 말씀하신바 법은 어떻습니까?”하니
6조 스님이 말씀하시기를“도를 마음으로 말미암아 깨닫는 것이거늘 어찌 앉는 것에 있으리오?”경(금강경)에 이르기를‘만약 여래를 앉거나 눕는 것으로 본다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것이다.’무슨 까닭이냐? 어디로부터 온 바가 없고 또한 가는 바가 없음이라. 생멸이 없는 것이 곧 여래의 청정선이며 모든 법이 비고 고요한 것이 곧 여래의 청정하게 앉음이라. 구경에 증득함이 없거늘 어찌 하물며 앉는 것이랴?”
[강설 보완: ‘어느 분은 좌선을 위주로 해서 익히는 따위의 방법으로 지도하는 것은 애매한 짓이라는 것이다’했으나
그렇지 않는 것이니 앉음으로 정을 얻고자 한다는데 국집함이 곧 깨달음이 아니며 수단이므로 목적한 바는 깨달음에 있음인 것을 강조하신 것임~.
살아서는 눕지 못하고 죽어서는 앉지 못하는데 앉음에 국집 하여서 만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함~]
설간이 말하기를“제자가 돌아감에 주상께서 반드시 물으실 것이니 원컨대 화상께서는 자비로 마음의 요긴함(心要)을 가리켜 주소서.”(“돌아가 도를 배우는 이들에게 아뢰어 한 등이 백천등의 불을 켜서 어두운 자가 밝아짐으로써 밝음이 다함이 없는 것과 같게 하소서(한 등(설간)→ 백천 등(여러학인) ”하니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는 밝고 어두운 것이 없음이라.
밝은것과 어두운 것이 곧 번갈아 바뀐다(代謝)는 뜻(義)이니, 밝고 밝아 다함이 없다는 것 또한 곧 다함이 있는 것이니라.”(“상대로 이름을 세운 때문이니(밝음↔어둠).유마경에 이르기를‘법은 견줄데 없으니 상대가 없기 때문이라’하였다.”
설간이 말하기를 “밝은 것은 지혜에 비유하고 어두운 것은 번뇌에 비유한지라 도를 닦는 사람들이 만일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어서 깨뜨리지 아니하면 비롯함이 없는 생사를 무엇에 의지하여 벗어날 수가 있겠나이까?”하자 6조께서 이르기를 (강설 보완:“번뇌가 곧 보리니 둘이 없고 다름이 없도다. 만일 지혜로써 번뇌를 깨뜨리려 하면 이것은 2승의 견해로)”
“만일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어서 깨뜨리려 하는 것은 이것이 곧 이승의 작은 어린애인 양수레, 사슴수레 등의 근기라 높은 근기의 대지혜는 모두 그와 같지 않느니라.”하였다
설간이 말하기를“어떤 것이 이 대승의 견해입니까?”6조께서 이르시기를“明과 無明이 그 성품이 둘이 없으니 둘이 없는 성품이 곧 이 실상이다
[강설 보완: 밝은 것과 밝지 못함(無明)을 범부는 둘로 보나,
지혜로운 이는 그 성품이 둘이 아님을 요달 하나니 둘 없는 성품(無相)이 곧 실다운 성품이니,]
실상은 범부와 어리석은 곳에 있어도 줄어지지 않고, 성현에 있어도 늘어나지 않으며, 번뇌에 머물러 있어도 산란하지 않고, 선정에 있어도 고요하지 않음이라. 단멸도 아니고 항상하는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며, 중간과 그 내외에 있지를 아니하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性과 相이 如如하여 항상 머물러서 변천하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道라고 말한다.”하셨다.
[강설 보완: 끊어지지 않으며 항상 하지도(작용) 않으며, 변천(옮겨지고 변)하지 않음.
(어느 분이 실상이란 것은 자성, 자체, 체성이란 뜻으로 바로 無明을 가르키는 말이다 했는데 아닌 것이니 실상은 있는 그대의 진실상을 가리킴 또 실상은 斷, 常 두가지가 다 아니라는 것이다 했는데 이 논리도 옳지 못하니 법의 실상은 항상 함과 덧없음이 동시임)]
설간이 말하기를“스님의 말씀하신바 불생불멸이 어떻게 외도와 다릅니까?”6조께서 말씀하시기를“외도가 말한바‘불생불멸’이라고 하는 것은 멸을 가지고 생을 그치고 ,생을 가지고 멸을 나타내는 것이라.‘없어지는 것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고 생기는 것이 생기는 것이 없다.’고 말하거니와 내가 말하는 ‘불생불멸’은 본래 스스로 생김이 없으며 지금도 또한 없어짐도 없나니 외도와 같지를 아니하니라. 네가 만약에 心要를 알고자 한다면 다만 온갖 선과 악을 모두 생각하지 아니하면(무분별) 자연히 청정한 마음바탕(心體)에 들어가서 담연하고 항상 고요하여 묘한 작용이 항하의 모래수와 같을 것이니라.”하니
설간이 6조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활연히 크게 깨달았다.
[강설 보완: 절하고 사직하여 대궐에 들어가 조사의 말씀을 기록하여 아뢰었다.
황제가 조사에게 수정발우와 마삼(고려제품의 최고급비단)가사를 드리고 소주자사에게 명하여 도량을 중축하고 국은사’라 하였다.]
6조께서 대중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끝없이)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며 밝기는 태양과 같고 검기는 칠통 같으며, 항상 동작하고 작용하는 가운데 있으나 동작하고 작용하는 가운데도 거두어 얻지 못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겠느냐?”사미 신회가 대중에서 나와 말하기를“모든 부처님의 근본자리이며 신회의 불성입니다.”하자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한 물건이라고 불러 말하는 것도 오히려 맞지 않다 하였거늘 어찌 능히‘본원과 불성이 라’고 부르느냐?”
[강설 보완: 네가 이제 돌아가 한지방의 지도자가 되더라도(그렇게 알음아리로 알아서는) 다만 하나의 知解종도(무리)를 이룰 뿐이리라.”(그러나 이 신회가 나중 조계돈교를 크게 넓히고 현종기’를 지어 세상에 행하게 한 명안종사가 됨.
남악회향은 처음 숭산의 혜충 안국사를 뵈니 조계에 가서 뵙고 물으라하여 6조를 찾아서 뵙고 예배를 하니
“어느곳에서 왔는고?”하니“숭산 입니다”하자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시니
“설사 한물건이라 해도 곧 맞지 않나이다”하자
“도리어 닦아서 증득 하느냐? 아는냐?”하시니
“닦아 증득함은 곧 없지 않사오나 물들어 더럽혀짐은 없나이다”하니“다만 이 더럽혀 물들지 않는 것을 모든 부처님이 두호(지님)하시는 바이니 너도 이미 그러하고 나 또한 이 같으니라. 서천에 반야다라께서 예언하시기를 ‘너의 발아래 한 망아지(마조)가 나와 천하 사람들을 밟아 죽이리라.’하셨으니 마땅히 마음에 두고 모름지기 속히 설하지(때를 기다려)말라”하셨다.]
열반에 이르러 6조께서 게송을 또 이르시기를
올올불수선 등등불조악
적적절견문 탕탕심무착
태연(움직임이 없음)하여 선함도 닦지 않고
완만(원만)하여 악도 짓지 않으니
적적하여 보고 들음이 끊어져(분별×)
초연한 마음이라 집착할 것이 없도다.
[와륜스님이 게송으로
와륜은 재주가 있어
능히 온갖 생각을 능히 끊었으니
경계를 대해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
보리가 날마다 자라도다. 한 것을 듣고]
“이 게송은 마음자리를 밝히지 못한 것이니 만일 이렇게 행하면 얽히기만 더하리라”하시고]
또 이르시기를
혜능은 재주를 부릴 것이 없으며
온갖 생각을 끊지 않았네
경계를 대함에 마음이 수시로 일어나나니
보리인들 어찌 자랄 것인가? 하셨다.
또 이르시기를
생각 있음에 생각이 삿됨을 이루고(분별심)
생각 없음에 생각이 곧 바름이니라(무심무념-반야발현)
[강설 보완: 라고 게송을 마치시고
단정히 앉아 계시다가 삼경에 이르러 홀연히 문인들에게 이르시되 “나는 간다”하시고 세수76세에 천화하셨다.
서로 진신을 모시고자 하여 향을 사루고
“향의 연기가 가르키는 곳이 조사님의 모실곳으로 되어 지이다”하였더니 향연이 조계로 곧게 뻗음에 의발과 법체를 조계로 옮겨 모셨다.
조정에서 감국대사라 시호하고 다음해에 다시 진공국사 보각선사, 원명선사로 대대로 추종했다.
소주자사 위거와 문인들이 대사의 어록을 펴니 이것이 육조단경인 것이다(육조단경: 법보단경, 단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