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들은 현대 정치학이 놓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시장의 역할과 그 영향력의 범위에 관한 논의다."
"우리는 시장경제를 원하는가 아니면 시장사회를 원하는가? 공공생활과 개인 관계에서 시장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 "
최근에 한 기업이 직원들이 비혼을 선언할 경우 일정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언뜻 보면 그러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인구에 부채질을 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기업으로서는 결혼으로 인한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할까? 비혼 선택이 개인의 자발적인 문제임은 분명해보이지만 그것이 꼭 선인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언젠가 기업 총수의 아들이 야구방망이로 회사 직원을 매질하고 매질한 값으로 상당한 돈을 지불했다고 화재가 된 적이 있었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되는 그런 세상이다. 오늘날 우리는 시장지상주의에 함몰되고 있는 듯하다.
인류가 화폐를 발명한 후 그 쓰임새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 기능의 자율성을 전제한 것이며, 물적 재화가 그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재화는 유형의 재화에서 무형의 재화까지 확대되어 무엇이든 사고팔 수 있게 되었다.
마이클 샌델
그리고 무형의 재화에 대한 거래 중 상당수는 도덕적 문제를 야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장이 사회에서 행사하는 역할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샌델이 말하는 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시장이 지닌 도덕적 한계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며,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있는 사회를 걱정하는 이유는 그것이 불평등과 부패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인 사회에서 빈부격차와 관련되며, 부패는 삶속에서 나타나는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그것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문제이다. 재화의 거래가 이 두 가지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도덕적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샌델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삶과 시민생활을 구성하는 다양한 영역을 어떤 가치로 지배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문제를 사색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사례를 들어 공정성과 부패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새치기, 인센티브 등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검토하고, 이러한 맥락에서 시장이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의 시장과 명명권의 거래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논의가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결론은 유보한 채 활짝 열어두고 있다.
최소한 책에서 제기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공적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그에 대해 숙고할 철학적 틀을 제공하기를 바라고 있다. 시장의 역할과 영향력을 재고하려는 그 어떤 노력이든 두 가지 위협적 방해요소를 인지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하나는 1929년 최악의 경제 실패(경제공황)를 겪고 80년이 흐른 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시장 중심적 사고의 영향력과 권위이고, 다른 하나는, 공적 담론에서 표출된 증오와 공허감이다. 이 둘은 서로 무관하지가 않다.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들은 현대 정치학이 놓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시장의 역할과 그 영향력의 범위에 관한 논의다. 우리는 시장경제를 원하는가 아니면 시장사회를 원하는가? 공공생활과 개인 관계에서 시장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
어떤 재화를 사고팔아야 할지, 어떤 재화가 비시장가치의 지배를 받아야 할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돈의 논리가 작용하지 말아야 하는 영역은 무엇일까? 그런 점에서 샌델이 제기한 논의의 기본적 틀은 경제학적 관점과 도덕적 관점의 대비로 읽힌다.
예를 들어, 공연 표를 대신 구매해주는 행위가 정말 새치기에 해당하는 것일까? 공연을 꼭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반드시 줄을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야하는가는 의문이 든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줄을 설 수 없는 경우 대신 누군가가 줄을 서 줄 수 있지 않을까?
누가 관람을 하더라도 공연 관람자의 수는 동일하다. 그리고 대신 줄을 서 주는 사람은 새치기가 아니라 정당하게 줄을 서서 표를 구한 것이고, 그렇게 구한 표를 줄을 서 준 대가를 얹어서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되판다면 그것이 문제일까?
경제학자들은 대리 표 구매의 정당성에 손을 들어준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며 또는 사회적 효용의 극대화와 연관된다. 전자가 자유지상주의자의 입장이며, 후자가 공리주의자의 입장이다.
그러나 도덕성 측면에서 보면, 줄서기는 기회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줄서기는 간절히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기회를 대리 줄서기로 빼앗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줄서기를 부패의 시각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결국 어느 쪽을 손을 들어주든 그것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의 문제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결국 줄서기를 자유시장주의 또는 공리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할 것인가 아니면 도덕적 관점으로 접근할 것인가의 차이로 읽히기도 한다.
여기서 샌델은 우리 사회가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에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경제학적 입장에서만 다루어지던 시장이 이제는 점차 도덕적 가치를 염두에 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도덕적 경제’라는 용어가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샌델에 의하면 이 사회에는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성, 입학자격, 환경, 노벨상, 사회봉사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처럼 돈으로 구매할 수 없는 것들을 사고팔면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도덕적 가치가 밀려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샌델은 바로 이런 사회적 가치에 대한 함의를 토론을 통해 도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토론이 정치권에서 활발히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경제에 윤리적 관점이 본래적으로 개입되어 있음을 분석해 보이고, 시장이 개입함으로써 변질시키는 인간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경제발전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왔다. 그리고 그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다보니 은연중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젖어 있기도 하다. 시장논리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 우리가 얻은 것은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이다. 이런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한국어판을 감수한 김선욱은 샌델 도덕이론의 핵심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말로 정의하고, 이 책의 내용에 대해 “ 시장지상주의의 확대, 사회의 모든 영역에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현상을 정확하게 겨누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주제가 무거운 탓인지 책 내용이 아직도 명확히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이다. 샌델은 어떻든 지금의 시장지상주의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다만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온갖 재화의 거래로 사회가 도덕적 불감증으로 혼탁해지고 부자 전횡의 무질서에 이르기 전에 1929년 이래로 계속되고 있는 시장 중심적 사고에 일대 혁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시장 사회가 더 혼탁해져서는 안 된다는 경고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