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항에서

[素人]

밤새 걸어온 물길 사나운 표정이다
가출한 듯 골골이 대문 밀치고 나선 흙탕물
바다 판판한 이맛빼기에 고단한 짐 풀어놓는다
시퍼런 회초리 감아 들고 뭍의 종아리 후려치지만
이미 엎질러진 황토빛깔 주단(綢緞) 주인의 너른
마당 줄기차게 휘덮고 있다

누구라도 끝은 있어 이제 그만 장마의 끝물
보일 듯도한데 얼어붙은 장마전선 아직도 지루한
교전중이다 해초(海草)가 그리워 야윈 살집의
영덕 대게 수족관 유리벽 긁어대고 이따금 찜솥 수증기
훅훅 물큰한 살 냄새 끼치면 차가운 소주 한 잔의
유혹 발정(發情)하곤 했다 노련한 갈매기 물웅덩이
저벅거리며 죽지 세운 채 어둠 속 노리고 오가는 손
뜸한 강구항 횟집 낮은 지붕 위로 번들거리며
물바람 지나간다

덤빌테면 덤벼봐, 언제고 물줄기 거두워 지고
흥청이는 여름 침 튀기며 지폐 쌓이는 우리들의 대목
어김없이 찾아올거야 차곡차곡 축제의 디데이
임박하는걸 지금 비록 가게 앞 늙은 수캐마냥
생식(生殖)도 귀찮아 초저녁잠 혼곤해도 때만 되면
검푸르게 일어서는 물결 하얀 파도의 이빨로
그녀 엉덩이 사정없이 물어뜯을걸

바람에 쓸려 온 부표(浮漂) 모랫벌 서성이고
해금(解禁)되지 못한 고깃배 저희들끼리 키들대며
파적(破寂) 즐기는데 해안도로 석축(石築) 아래
뻐등뻐등한 바늘잎 키워내는 갯풀처럼 나도
이제 막 일어서는 중이다

[김제남]

강구항 다녀오셨군요. 어쩜 비릿한 바닷내음 이리도 잘 표현하셨는지 부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