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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 김정희 선생님과 역관 출신의 제자 우선 이상적 선생과의 변치 않는 의리가 담긴 세한도에 관한 내용 입니다.
또한 학문에 대한 열정이 유배지에서도 끊이지 않았음을 엿볼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로 의리를 이야기 한다.
의리는 눈 밝은 이들을 포함해서 뭇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사이 올바름에 대한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의리란 누구의 강요나 특정한 조건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존재하면서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발휘되는 마음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친구사이, 스승과 제자, 군신간의 이 의리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기광사와 성중의 의리, 후대에 백탑파로 알려진 벗들의 마음, 퇴계와 고봉의 간의 의리는 사람 사귐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오늘 그렇게 가슴 따스한 이야기를 추사의 세한도를 통해 다시 만난다.
추사 김정희는 금석문과 글씨와 그림으로 조선후기를 휘어잡았던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다.
물론 그중에는 세한도의 작가로도 한 몫 한다.
[세한도]를 통해 한 물건 혹은 사건 하나에 담겨진 이야기를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지 세삼 놀라게 된다.
추사 김정희의 8년간의 제주도 유배생활. 절대 고독과 맞대면해 하루하루를 보내던 김정희에게 마음을 전해 준 사람은
누구일까? 거센 바람과 무서운 파도가 돛단배를 집어삼킬 듯한 험난한 뱃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주도를 찾아와 준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소치(小癡) 허유(許維, 1808∼1893)와 역관(譯官) 이상적이었다. 세한도를 낳게 한 이상적은 김정희의 문인으로 만학(晩學)과 대운(大雲)이란 책을 중국에서 구해 제주도로 보내 주었다.
그 당시의 김정희는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한 채 언제 사약을 받고 죽을 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 런 김정희에게 귀한 책을 보내 준다는 것은 여간한 각오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상적은 자신의 안위는 생각지 않고, 오로지 스승에 대한 의리만을 생각하여 두 번이나 책을 보내 주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냉랭한 세태에서 선비다운 지조와 의리를 훌륭히 지켜내었다.
김정희는 제자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고마웠다.
그래서 세한도를 그려 인편을 통해 보내 주었다. 제주도에 유배된 지 5년째 되던 해였다.
이 그림은 세한도의 또 다른 주인공 이상적의 인품을 겨울에도 잎이 시들지 않는 송백(松栢)에 비유해
칭찬하고, 이어서 마음을 담은 발문(跋文)을 특유의 추사체(秋史體)로 써 그림 끝에 붙였다.
세한도를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은 말이 있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 는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세한도가 창작되어진 동기이며 세한도에 담긴 중심 사상인 동시에
김정희의 마음이다.
그러기에 세한도에는 김정희가 겪은 귀양살이의 험난함은 물론 당대 선비들의 마음이 담긴 문화적 산물이다.
그림에 담긴 시대정신을 비롯하여 작가의 사상과 학문의 지향점, 그리고 인간관계까지 두루 섭렵하는 기회가
된다.
그림 한 점이 창작되어지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한승원 작가의 초의를 통해 소치와 초의, 김정희의 관계, 김영회의 조희룡 평전, 유홍준의 완당평전 등을 통해 주섬주섬
들었던
김정희의 학문과 삶에 비해 세한도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김정희라는 인물은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다.
<세한도〉오른편 아래 구석에는 주문방인朱文方印 유인遊印이 한 과顆 찍혀 있다.
그 인문印文은 '장무상망 長毋相忘' 이다.
'오래도록 우리 서로 잊지 말기를!'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가슴에 맺히는 말인가?
학문과 사상의 가치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따스한 마음을 일깨워 주는 신분을 초월한 스승과 제자의 우정과
선비들의 의리에 대해 알게 하는 세한도를 다시금 바라보게 된다. |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