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의 천태산(天台山)은 산줄기 개념으로 보면 이른바 두승지맥에 해당하는 산이다. 두승산(444m)에서 북쪽으로 뛰둥산(150m)을 지나 천태산(197m)이 위치한다. 천태산은 행정구역상 동쪽으로는 이평면 창동리와 산매리, 남쪽으로는 덕천면 도계리, 서쪽으로는 영원면 은선리와 운학리로 나뉜다. 가을날 평일 오후에 천태산의 동쪽 사면을 둘러보기로 한다. 바로 이평면 창동리와 산매리 지역이다. 천태산은 지질학적으로는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된 산지이다. 지하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굳어 이루어진 대보화강암(大寶花崗巖)이 풍화를 받아 지면으로 노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천태산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은선리 5층 석탑과 고분군(古墳群) 등이 조성될 수 있었다.
천태산 정상으로 오르는 여러 경로가 있지만 가장 쉽게 오르는 등산로가 백운사(白雲寺) 입구에 있다. 여기서 0.2km를 오르면 치마바위라고 부르는 너른 바위가 나타난다. 일명 마당바위라고도 한다. 산 중턱에 너른 바위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덕천천 주변의 황금 들판이 내려다보였다. 치마바위를 살펴보니 천 명 이상이 들어가 서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천태산 주변에 있는 이평중학교, 영원초등학교 등 여러 학교에서 이곳 치마바위를 소풍 장소로 삼았다고 한다. 이평중학교를 졸업한 분의 증언에 따르면 학교 소풍날이면 전교생이 이곳으로 올랐다고 하니 거의 천 명에 가까운 숫자였다. 지형학적으로는 판상절리에 의한 박리(剝離) 현상이 나타난다. 마치 양파껍질처럼 바위의 겉면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정표를 보니 여기서 다시 0.8km를 오르면 천태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산 정상까지 오르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다음에 오르기로 한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백운사라는 사찰을 들렀다. 여기에는 고려시대 석불입상이 모셔져 있었다. 백운사의 이름은 가까운 산매리 산매(山梅)마을의 옛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산매마을의 원래 이름은 백운동(白雲洞)이었다.
백운사 초입에는 몇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이 있는데, 거의 폐촌 지경이어서 지금은 행정상 산매마을에 포함된다고 한다. 마을 이름은 장춘(長春)인데, 상당히 로맨틱한 이름이다. 일명 노래골이라고도 한다. 천태산 치마바위 아래에 있는 장춘마을은 풍수지리상 옥녀창가혈(玉女唱歌穴)이라고 한다. 예쁜 여자가 노래를 부르니 ‘노래골’이 되었다. 한자로는 가동(歌洞)이 된다. 치마바위가 있어서 그런지 예로부터 무속인들이 많이 찾아왔다고 한다. 예로부터 바위가 있는 곳은 기도처가 되기도 한다. 한편 치마바위를 찾아 노래를 부르며 놀던 사람들이 봄날이 너무 빨리 가는 아쉬움을 달래는 말로 “봄아! 좀 더 놀고 싶으니 좀 더 길게 있어 다오.”라고 하면서 긴 장(長) 자에 봄 춘(春) 자를 붙여 마을의 이름을 장춘(長春)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작명이 아닐 수 없다.
천태산 자락을 찾게 된 가장 큰 목적은 치마바위에 오르는 일과 더불어 어진화가로 유명한 석지 채용신 선생의 묘를 찾아보는 일이었다. 채용신 선생이 남긴 초상화는 정읍시립박물관에서도 전시된 적이 있다. 조선시대 마지막 어진화가 채용신 선생(1850-1941)은 말년을 신태인읍 육리에서 보냈다. 묘소는 원래 평강채씨 선산이 있는 익산시 왕궁면에 있었으나, 공단 개발로 인하여 이곳 정읍시 이평면 산매리 410-12번지 평강채씨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2016년에 이장되었으니 올해로 10년이 지났다.
평강채씨 묘역 내에 있는 비석에서 채용신이라는 이름을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다시 검색하여 찾아보니 비석에 새겨진 이름은 본명인 동근(東根)이었다. 묘비에는 通政議官平康蔡公東根之墓 淑夫人全州李氏(통정의관평강채공동근지묘 숙부인전주이씨)라고 되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말년을 정읍에서 보내고 결국은 정읍에 잠들게 되었으니, 정읍과 질긴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배우 채시라의 5대조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예술의 끼가 5대를 이었으니 놀랍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