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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자체에 대한 상반된 논리
◎ 찬성론
기본적으로 “지난 2003년 8월에 정부는 FTA 추진 로드맵이라는 걸 추진했고, 그때 경제장관 회의를 거쳐 국무회의까지 보고가 됐다”며 “이 로드맵을 보면 단기적으로는 1, 2년 안에 싱가포르, 아세안, 멕시코 이런 나라들하고 FTA를 체결하고 3년 이상의 중기 목표로 미국, EU, 중국 같은 거대 경제권하고 FTA 체결을 추진하기로 돼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망에 따르면 추진 일정에 무리가 없으며, 오히려 한-미 FTA가 농업이나 서비스 분야에는 다소 피해를 주겠지만 우리의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리며, 경제산업 제도와 관행을 질적으로 개선시키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주장한다. 외교통상부는 “한-미 FTA는 세계 최대 미국 시장의 안정적 확보와 투자유입 증대, 우리 경제, 사회 시스템 전반의 업그레이드와 국가 경쟁력 제고, 대외신인도 제고 등 단순한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찬성론에서 나오는 흔한 비유가 조선시대 문호 개방이다. ‘우리는 19세기 초 이 땅에 통상을 요구하며 문호 개방을 강요했던 미국을 기억하고 있다. 신미양요(1871년)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미국이 직접 상선을 이끌고 군대를 동원, 통상을 요구한 사건이다. 이때 조선이 그들과의 대화에 성공하여 일찍 통상에 나섰다면 조선의 근대화는 더 빠르게 진행되었을 것이며, 이후 역사 전개는 또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지 않았나 한다.’(국정브리핑)
◎ 반대론
우선 급박한 일정을 들 수 있다. 정부가 내년 3월까지 협상을 타결지은 뒤 2008년부터 발표시킨다는 시간표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간 교역규모 35억 달러인 칠레와 FTA 협상을 개시해 타결하는 데 3년1개월이 걸렸고, 국회 비준을 거쳐 발효되기까지는 4년7개월이 소요됐다. 그런데 이 정부는 교육규모 720억 달러로 칠레의 20배가 넘는 미국과 1년1개월 만에 FTA 협상을 타결짓고 1년10개월 만에 발표시키겠다는 것이다. 시간표 자체가 무리다.” (신문 사설)
동시에 한-미 FTA가 ‘제2의 IMF’로 불릴 만큼 국가 경제, 사회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다. 가장 심각한 분야가 농업이다. “한-미 FTA로 축산, 곡물, 채소, 원예 등 농업 분야는 모두 쑥대밭이 될 것이고, 그 결과 농촌 인구 350만 명 중 절반은 농촌을 떠나야 할 것이다.”(김성훈 전 농림부장관 인터뷰) 의료비와 약값 폭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부정적인 효과의 대표적인 선례는 1994년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멕시코. ‘멕시코 정부는 NAFTA를 통해 과대한 북미시장을 개척하고 고용기회도 늘 것이라고 선전했다. 외견상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 2003년 멕시코 수출의 90%, 수입의 85%가 미국을 상대로 이뤄졌다. 멕시코와 미국 양방향의 해외 투자도 급증했다. 그러나 반대 효과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에서 가벼운 경기 후퇴가 일어나도 엄청난 침체를 겪게 됐으며 사회 양극화도 심해졌다. 성장률 3%, 불안정 취업률 25%, 빈곤층 인구 비율 40%가 협정 12년째인 멕시코의 초라한 성적표다.’(신문 칼럼)
실상 농업 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문제들도 속속 내놓고 있다. 예를 들면 제조업 분야의 대미수출이 늘어나도, 한국의 관세율이 훨씬 높기 때문에 똑같이 관세가 철폐되면 대미수입이 대미수출을 훨씬 초과할 것이라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이는 한국을 만성적인 대미적자의 늪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
서비스 시장 개방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고용증대 효과도‘정부의 일방적인 꿈’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은 직접 한국에 들어와서 고용과 투자를 해야 하는 서비스분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 대신 론스타와 같은 인수합병(M&A) 방식만 활성화 될 것이며, 그럴 경우 오히려 이윤극대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많아져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캐나다에 대한 미국 직접투자의 97%가 M&A자금이었다는 수치도 학자들 사이에서 제시됐다.
우리 정부가 한-미 FTA의 효과에 대해 유리한 통계만 골라서 인용하는 문제도 지적된다. 최근에는 정부가 한, 미 FTA의 추진 근거로 제시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서 대미 무역수지 흑자 감소폭이 무려 72억7천만 달러로 추정되자 이를 뺀 채 발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비난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잠복한 반미 논쟁
FTA에 대한 찬반 논란은 개방뿐만 아니라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곧잘 연결된다. 찬성론은 이를 애써 부각시키고 나무란다. ‘21세기 첨단시대에 느닷없이 경제식민지 타령이 튀어나오는 게 기가 막힐 뿐이다. 어떻게 세계 11위 경제대국에서, 제3세계조차 내팽개친 낡은 종속이론이 버젓이 리바이벌되는가. 어떻게 자칭 진보주의자의 입에서 “우리가 미국의 막강한 자본력을 감당할 능력이 있느냐. 애초부터 한, 미 FTA는 그만두는 게 낫다.”는 발언이 나올 수 있는가. 누구보다 진취적이어야 할 진보세력이 얼마나 심각한 패배주의에 빠져있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신문 사설)
이념논쟁으로 비화시켜 국론 분열을 야기하는 보수층의 의도를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한, 미 자유무역협정은 무수한 정책 영역 중의 한 사안에 불과하다. 여기서 내려진 특정인의 가치 판단으로 그의 이념을 규정할 수는 없다. 외교안보 영역의 동맹파가 협정의 조기 체결을 반대할 수도, 그 영역의 자주파가 이를 찬성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념이 아니라 정책이 문제다.’ 이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주제이다.
한-미 FTA , 양이냐 질이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FTA는 ‘Free Trade Agreement’의 약자이다. 여기서 협정(Agreement)이란 쌍방간의 동등하고 주체적인 합의를 전제로 한다. 협정은 국가와 국가, 업자와 업자 사이의 일을 협의하여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6월 5일부터 워싱턴서 열리는 첫 협상에 맞춰, 한국에서 40~50여명의 시위대가 워싱턴을 방문해 원정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 시위대는 미국의 60여개 단체가 연대할 것이며, 미 무역대표부(USTR)쪽과의 면담도 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이 이렇듯 시위를 벌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대한민국 고위관료들은 한미 FTA가 결정되면 국민 총생산이 0.5%증가하고 수출은 폭증하여 일자리가 창출되며, 국민들은 지금보다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한다.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가 철폐된 대한민국은 외국계 기업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 이루질 것이다. 이로 인해 외국인의 직접투자는 늘어날 것이고 이것은 고용증가, 경제발전, 국민 소득의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과연 정부의 장밋빛 주장은 현실로 다가 올 것인가?
국민의 건강을 담당하는 의료보험과 생활을 담당하는 공공재는 그 나라 국민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는 전국민이 단일한 공보험이 있는 독특한 사례의 보험제도를 가지고 있다. 질병치료비의 60%을 공보험이 담당하고 있고 앞으로 이 공보험보장률을 높여 복지국가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한미 FTA는 기업의 이익을 국민의 건강보다 우선시 하여 이 조장률을 낮추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민간보험사와 경제부처의 이해관계는 일치했고, 정부와 시장경제론자들은 한미 FTA를 조속히 협정하려고 한다.
수도와 전기 등의 공공재도 사기업화하라고 미국은 요청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전형적인 경제 식민지화의 첫 발이다. 현 미국 부통령 딕 체니의 벡텔회사에게 상수도 사업권을 볼리비아 정부는 팔아 넘겼다. 이어 볼리비아의 수도요금은 폭등했다. 사기업들은 본질적으로 이윤추구가 목적이다. 그들은 국민들의 삶의 질과 양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윤이 없으면 사기업들은 이윤이 창출되는 곳으로 떠난다.
한국 정부가 한미 FTA 추진을 공식 표명한 지난 2월 초, 스위스는 미국과의 협정 추진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한국과 스위스의 무역의존도는 70%와 77%이다. 한국의 수출 대상 1위와 2위는 중국과 미국이고, 스위스는 독일과 미국이 1위, 2위이다. 한국과 스위스는 농산물 주요 수입국 G10 그룹의 회원으로서 농업이 취약하다는 공통점도 있다. 재정경제부와 <이코노미스트 스위스>의 자료를 보면 한국과 스위스의 농민 인구 비중이 7.8%, 2.9%였고, 농업의 GDP 비중은 3.2%, 1.5%였다.
한미 FTA 협정을 통해서 한국이 경제 전체로는 몇 퍼센트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농업이나 기타 다른 곳에서는 몇 십 퍼센트 큰 타격이 올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양적 성장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 다수의 전체적 삶의 질은 낙후와 패망으로 치달을 것이다. 이것은 양과 질의 차이다. 스위스 정부는 숫자보다 전체적인 질을 택했다. 그들은 미국과의 협정 추진을 보류하였다.
내가 대통령이었을 때, 우리 당이 집권했을 때, 무엇을 했다는 성과주의는 이제 떨쳐야할 일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그 누군가가 꼭 자신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정책적 우를 범하지 않고 최소화하려면 철저한 준비와 대책이 있어야 한다. 양보다는 질적인 성장과 발전을 모색하는 선택으로 한미 FTA는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한미 FTA는 전혀 서두를 문제가 아니며 오랜 시일을 걸쳐서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 문제이다.
한-미 FTA를 ‘제2 IMF’라 하는 이유
1999년 볼리비아의 코차밤바에서는 시민들이 수도꼭지를 밧줄로 꽁꽁 묶어둬야 했다. 아이들이 장난으로라도 꼭지를 틀어놓으면 큰일이 날 정도로 물값이 폭등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 수도요금이 월급의 20%였다. 볼리비아 정부가 상수도를 딕 체니의 미 벡텔사에 팔아넘긴 결과였다. 상수도 민영화는 볼리비아만의 일이 아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이후 캐나다에서는 시장이 시민들도 모르게 호수를 통째로 기업에 팔아넘겨 큰 문제가 되었고, 수도를 놓아두고 강에서 물을 긷던 어린아이가 악어에 잡아먹히는 일이 세계 도처에서 생긴다. 물을 팔아 먹어? 무슨 봉이 김선달 이야기인가 할 수 있으나 이 일이 지금 한국에서도 일어나려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바가 바로 이 ‘상수도 민영화’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이 어찌 상수도 사유화뿐이겠는가. 미국은 한국전력이 공적규제를 받고 있다고 발전 부문의 기업매각을 요구하고 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는 한국가스공사의 분할매각을 빨리 진행하라고 요구한다. 미국 정부는 공공서비스를 공기업이 운영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의 방해이고 투자장벽’이라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직결된 물, 전기, 가스 등을 기업에 팔아넘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다.
물이나 전기, 가스 등 공공서비스가 민간기업에 넘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부가 말하는 대로 경쟁을 통한 요금 인하와 서비스 질의 향상이 돌아올까? 외환위기 이후 부분매각 조처로 엘지(LG)에 매각된 안양 열병합발전소에서는 한꺼번에 20%의 전기 요금 인상을 요구한 바 있다. 최대이윤 추구가 목적인 민간기업에 사실상의 독점부문인 공공서비스를 맡겨놓으면 공공요금의 폭등이 일어나는 것은 세계적으로 확인된 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또한 교육과 의료의 ‘무역장벽’ 제거를 요구한다. 3월 말 미국무역대표부가 발표한 무역장벽 보고서에서는 인천 등 세 곳의 경제자유구역을 개방의 표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은 경제자유구역을 전국화하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학교와 병원은 영리법인이 되어 등록금과 의료비를 자기 마음대로 올려받을 수 있게 된다. 병원만 보자면 건강보험증을 안 받는 귀족병원이 생기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식 의료의 한국 이식이다. 미국의 의료비는 어떨까? 맹장수술이 1000만원, 분만료가 700만원, 사랑니 하나 뽑는 비용이 100만원이다. 국민소득 차이를 고려해도 의료비가 한국의 열 배가 넘는다. 유학생들이 사랑니를 뽑으려면 한국에 왔다 가는 게 비행기 값 빼고도 이익이라는 것은 농담이 아니다. 오죽하면 체육시간에 아이들이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그 치료비가 엄청나 학교재정에 문제가 생길까봐 체육시간에 자습을 시키는 학교가 미국에서 문제가 될까?
외환위기 때 한국 정부는 수많은 공기업을 헐값으로 국외기업에 매각하였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이제 그때 기업에 팔아치우지 않은 공적서비스 분야를 몽땅 기업에 넘겨주자는 것이다. 이 협정의 결과는 수도요금, 가스, 전기요금, 그리고 교육비, 의료비의 폭등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제2의 외환위기라고 부르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상수도를 팔아넘기려던 볼리비아의 로사다 대통령은 민중의 항의에 계엄령까지 동원했으나 결국 벡텔사가 볼리비아에서 쫓겨난다. 로사다 대통령도 2003년 가스까지 미국기업에 넘기려다 결국 민중들의 손에 쫓겨났다. 이것이 볼리비아만의 일일까?
- 우석균 /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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