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받은 사람의 고백
디모데전서 1:12-17
들어가며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라는
말씀이 잘 보여 주듯이 사도 바울은
‘은혜의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말로 다 할 수 없이 풍성한 은혜를 받았으며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잘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받은 은혜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은혜에 대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주님이 주신 은혜 덕택에 자신이
어떤 존재로 변화되었는지에 대해 감동적으로 고백합니다.
바울이 고백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살펴봄으로
우리는 어떤 은혜를 받았고 그러기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 속으로
1.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무엇으로 주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까? (12절)
12절을 봅시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이라고 말한 후에 언급하는 것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입니다.
그런데 12절 제일 앞부분에 나오는
“나를 능하게 하신”이라는 표현을 생각해 보면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신을 능하게 하신 것이고,
둘째는 자신을 충성되이 여기신 것이고,
셋째는 자신에게 직분을 맡기신 것입니다. 물론 이 셋은 사실 하나입니다.
주님은 바울을 충성되이 여기셔서 그에게 사도 직분을 맡기신 것이고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직분을 받은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직분이 어떠한 것이든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셨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직분에 합당하게 섬길 수 있는,
또 그 직분의 가치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 역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2. 바울이 그것에 대해서 주님께 감사를 드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특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3-14절)
13-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바울이 말한 “내가 전에는…”이라는 말에 주목해 봅시다.
바울이 주님께 직분을 받기 전, 아니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기 전에는
그저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였습니다.
예수님과 그 분의 복음을 비방했으니 비방자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교회를 박해했으니 박해자였으며,
박해하면서 많은 그리스도인을 폭행했으니 폭행자였습니다.
과거의 자기 모습을 고백한 바울은 “(그러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이 비록 예전에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믿지 아니할 때 알지 못하고 행한 일이라고 여겨 긍휼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행한 일만 놓고 보면 바울은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행 9:4)
바울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는데,
예수님은 자신을 박해한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박해하고 예수님에게 폭행을 가했으니
어찌 죽어 마땅한 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주님은 바울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그가 믿지 않았을 때, 모르고 행한 모든 악한 일들을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선 문제에서 보았듯이 오히려 그를 충성되이 여겨 사도의 직분을 맡기셨고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까지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성경이 말하는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거저 주어진 선물’을 뜻합니다.
바울 자신에게는 전혀 받을 자격이 없었는데
주님이 긍휼히 여겨 참으로 크고 풍성한 선물을 주셨기에
그 은혜를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 많은 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 자격이 없었는데도 주님이 큰 은혜를 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감사가 풍성하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바울은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미쁜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말이며 그 말과 관련해서 바울은 자신이 어떤 존재라고 말합니까? (15절)
15절을 봅시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미쁘다’라는 말은 ‘믿을 만하다’라는 뜻의 우리말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믿을 만한 말,
신뢰할 만한 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로서는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 말입니다.
너무나 많이 들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우리가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잘 모를 수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는 말씀이 가지는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우리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 말이 얼마나 고귀하고 값진 말인지를 알았기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라고 했습니다.
감탄문입니다. 그 말이 가진 의미를 알면 감탄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말입니다.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했을까요?
너무 겸손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물론 그런 면도 있습니다만 또 다른 점도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임하셨다면
그 예수님으로 가장 큰 유익을 누리는 사람은 가장 큰 죄인일 것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예수님이 바로 자신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음을, 죄인 중에 괴수인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그 말에 대해서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있습니다.
‘산이 높은 것’을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것으로,
‘골이 깊다’는 것을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자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으면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습니다.
거꾸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면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높고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소망 없는 죄인이었으며, 바로 나 같은 죄인,
바울의 고백처럼 죄인 중에 괴수 같은 나를 구하기 위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에 대해서 깊은 감사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4. 바울은 자신이 긍휼을 입은 까닭이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16절)
그의 고백은 어떤 내용으로 마무리됩니까? (17절)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하나의 본보기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심으로써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사람들’에는 우리도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를 믿어 영생을 얻게 된 것은 주께서 바울에 대하여 그러셨듯이,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한없는 긍휼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주님 앞에서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인지,
그런 우리를 주님이 얼마나 긍휼히 여기시고 참아주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 은혜로 구원함을 받고 영생을 얻은
우리는 내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며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인생임을 늘 고백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17절을 봅시다.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송영, 즉 찬양으로 마무리됩니다.
우리도 은혜받은 사람으로서 늘 하나님께 합당한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바울의 고백 가운데 가장 감동적이거나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 나는 하나님께 어떤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받은 최고의 은혜가 무엇인지 나누어 보십시오.
한 주간의 실천/ ‘내가 받은 은혜’를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각각 한 명에게 고백하기
마무리하며
바울의 고백이 말해주듯이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지,
하나님이 그런 나를 얼마나 놀랍게 변화시켜 주셨는지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 크게 다가옵니다.
나를 변화시키시기 위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깊이 깨닫고 그 은혜로
한없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