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91)>
91. 백중숙계(伯仲叔季)
맏 백(伯), 버금 중(仲), 아제비 숙(叔), 막내 계(季), ‘백중숙계’는 형제간의 차례를 나타내는 말이다. 맏이-둘째-셋째-막내를 의미한다.
쌍방이 실력이 엇비슷할 때 흔히 난형난제(難兄難弟)라고 말한다. 형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아우라고 하기도 어려울 만큼 비슷하다는 뜻이다. 백중지세(伯仲之勢)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형과 아우는 모습도 닮고, 기질도 비슷하여 누가 더 우월한 지를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적지않다. 서로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 끼리 다툴 때, 용과 호랑이가 서로 다툰다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백중(伯仲)은 본래 형제간의 서열을 일컫는 말이다. 백(伯)은 사람 인(人)과 흰 백(白)을 합친 글자이다. 사람이 흰 것은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나이를 많이 들게되면 귀밑부터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어서 머리가 희게 되고, 눈썹 또한 희끗희끗하게 되기 시작한다. 심지어 콧속의 털까지 희게 된다. 이처럼 사람이 희게 되는 것은 나이가 많다는 뜻이니, 그래서 백(伯)은 나이가 가장 많은 ‘맏이’를 나타내는 글자이다.
버금 중(仲)은 사람이 가운데 있다는 의미이니 둘째를 가리킨다. 숙(叔)은 셋째를, 계(季)는 막내를 가리키는 말로 썼다.
옛날에는 남자의 나이가 스물이 되면 자(字)라는 별도의 명칭을 받는데, 백중숙계의 서열로 자(字)를 삼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자(字)만 보고도 집안에서의 서열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다가 굶어 죽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첫째와 셋째이다. 공자의 자는 중니(仲尼)이다 . 중(仲)자를 보고 공자가 둘째 아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무관인데 첫째 부인에게서 딸만 9명을 두게 되자, 둘째부인을 얻어 아들을 얻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장애인이었다. 그래서 다시 셋째부인을 얻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공자이다. 그러니 공자는 아들로서는 둘째가 되어 중니(仲尼)라는 자(字)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송강 정철(鄭澈)은 넷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자(字)가 계함(季涵)이었다. 이처럼 형제 순서에 따라 자(字)를 지었던 것이다.
남아선호사상이 지배적이었던 봉건시대에는 아들형제를 많이 두는 것이 집안의 자랑이었다. ‘5부자집’하면 넉넉함의 대명사였던 시절이었다. 고려시대 5형제를 둔 집에서 아들들이 오래 살라고 이름 앞에 숫자를 붙여지었다. 이조년(李兆年)-이억년(李億年)-이만년(李萬年)-이천년(李千年)-이백년 (李百年)과 같은 것이다. 고려 충렬왕 때, 이들 5형제는 모두 기량이 뛰어났는데, 그중에도 이조년이 과거에 급제하고 문재(文才)에 탁월했다. 이조년은 달이 배꽃위에 하얗게 비추는 것을 보고 이렇게 시조를 읊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리오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들어 하노라.
:달빛이 배꽃에 내려앉아 더욱 희기만한 데, 은하수는 한 밤중임을 알리고 있구나. 배꽃가지에 서려있는 봄 마음을 소쩍새가 어찌 알겠느냐마는
이렇듯 나의 다정한 마음도 병인 듯하여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벡중숙계는 주 나라 때 생긴 형제의 서열명칭이다. 후세에 오면서 그 구분이 번거로워져서 그냥 큰 아버지는 백부(伯父), 작은 아버지는 숙부(叔父)라고 부르게 되었다. 출생률이 1도 안되는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형제가 여러명이 있가 어렵게 되었다. 백중숙계(伯仲叔季)라는 말도 쓸 기회가 없게 되었다.
며칠 전에 추석명절이 있었다. 오래간만에 일가친척이 모여 안부를 묻는다..
필자가 자랄 적에는 상대방의 아버지를 높혀 부를 때에는 춘부장(春府丈) 이라는 말을 곧잘 사용했다. 요즘은 잘 쓰이지 않게 되었다.
춘(椿)은 참죽나무로서 상상속의 장수나무를 뜻한다. 장자(莊子)는 이 나무가 8천년을 봄으로 삼고, 다시 8천년을 가을로 삼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춘(椿)이라는 나무의 일년은 자그만치 3만 6천년이나 된다.
부(府)는 돈이나 문서를 보관해 두는 창고 즉 큰 집을 뜻한다. 장(丈)은 손에 막대기를 든 모습으로 어른이란 뜻이다.
춘(椿)자에는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고, 부장(府丈)이란 ‘집안의 큰 어른’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춘부장에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다.
또 자신의 어머니를 모친(母親)이나 자친(慈親)이라고 부르고, 남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높임의 뜻으로 당(堂)자를 붙여 자당(慈堂)이나 훤당(萱堂)이라고 불렀다.
자(慈)는 ‘사랑하다’는 뜻이다. 따뜻한 온기를 의미하는 자(玆)와 마음심(心)을 합쳤다. 어미니 마음을 항상 따뜻하기 때문이다.
훤(萱)은 백합과의 원추리라는 풀을 의미한다. 근심 걱정을 잊게하는 풀이라고 망우초(忘憂草)라고도 한다. 고대에 어머니는 북당(北堂)에 거처하였는데, 그 뜰에 원추리를 심은 데서 훤당(萱堂)이라고 불렀다.
춘부장이나 자당 · 훤당에는 이처럼 깊은 뜻이 담겨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퇴색해 가는 말이 되었다. 어려운 한자어보다는 ‘아버님, 어머님’ 같은 쉬운 우리말로 쓰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형제의 서열을 나타내는 백중숙계(伯仲叔季) 역시 퇴색해 가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말이 비록 빛이 바래지기는 해도, 그 본래의 뜻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23.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