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에서- 만남과 짧은 여행記 / 이산
아직은 푸른 산골짜기에 메밀꽃이 하얗게 피어있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일행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1일 오후 12시 20분.
남제천 나들목에서 내린 일행들을 만나 서로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곧바로 꼬불꼬불한 산골길을 따라 남제천 IC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제천시 금성면 중전 마을을 찾아 갔다.
아침에는 금방 비가 올 듯 흐렸던 하늘이 쾌청하게 개이고 흰 구름마저 푸른 산위로 두둥실 떠있는 산촌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우리 일행이 찾아 간 곳은 두엄냄새가 배인 두멧구석 마을이다.
호박 넝쿨이 얼기설기 지붕을 타고 올라간 널찍한 행랑채 방으로 들어갔다.
이런 두멧골에 있는 토속음시점이지만 그 이름이 제법 널리 알려져 있는 집이다.
예전에 시골집 외할머니와 같은 그 집 안 노인네가 음식을 나르는 것을 도와주고, 주방에는 덕스럽게 생긴 중년의 주인댁이 음식을 만들었다. 이쪽저쪽 방에도 손님들이 있는 것을 보면 주인댁의 음식솜씨가 별나기는 한 것 같다.
음식솜씨 만큼이나 인심도 후했다. 일행들이 맛깔스런 반찬을 몇 가지를 더 청해도 군말 없이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곁들여 나오는 푸짐한 오곡찰밥은 이 집에서만 나오는 특별메뉴이다.
역시 충청도인심은 알아줄만 하다.
일행은 오리와 닭백숙을 뜯으며 그 동안의 안부와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의 소식과 어릴 적 이야기들을 오순도순 주고받으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즐거운 점심식사를 마치자 오후 2시10분에 뜨는 유람선을 타기 위해 곧바로 청풍유람선 나루터로 가기로 했다.
충주호 수변경관 중 가장 아름다운 코스가 청풍에서 단양 장회나루까지의 경치이다.
청풍나루에서 장회나루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데 1시간 정도 걸린다.
일행은 마치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처럼 약간은 들뜬 기분이었다.
물결을 가르며 배가 청풍나루터를 출발하여 청풍대교(橋)아래를 지나자 남한강 좌우로 펼쳐진 금수산(錦繡山) 절경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빼어났다.
옛날에 퇴계 이황이 소나무와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선 산을 보고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비단 錦(금)자’에, ‘수놓을 繡(수)자’를 써서 금수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 말이 조금도 과장되지 않은 경치이다.
옥순대교를 지나 옥순봉과 구담봉은 충주호의 하이라이트다.
장회나루에서 영주를 부득이 가야하는 친구 한 사람을 내려놓고 손을 흔들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장회나루를 돌아서 다시 청풍으로 되돌아오면서 바라본 경치는 글자그대로 한 폭의 동양화가 파노라마처럼 전개되었다.
하얀 뭉게구름이 떠있는 파란 하늘과 유람선이 지날 때 넘실대는 푸른 물결의 남한강과 금수산의 기암절벽이 어울려 연출하는 수려함은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청풍명월의 절경이다.
오후 3시가 지나서 청풍호유람선이 청풍나루로 배를 대자 갑자기 시커먼 구름이 서쪽 하늘에서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하늘은 금방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차에 올라타자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비즈니스 관계로 서울에서 뒤늦게 달려오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막 원주를 지났으니 곧 도착할 거라면서 금성면 소재지에 있는 ‘손두부 마을’식당에서 만나자고 했다.
일행들도 차에 올라타고 금성면소재지로 향했다.
면소재지 앞 도로옆에는 방금 전에 도착한 친구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순두부마을’ 식당에 들어가 앉자마자 소낙비가 느닷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날씨와 일행의 이동 간에는 묘한 타이밍이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일행은 손두부와 녹두빈대떡을 안주로 동동주를 마셨다.
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친구들과 둘러앉아 술잔을 나누는 분위기가 제법 그럴듯했다.
그곳에서 늦게 도착한 친구와 반가움에 넘친 인사를 나누었다.
어디를 가나 웃음이 넘치는 자리이건만 미련을 떨치고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고 있었다.
일행은 모처럼 고향을 찾았음으로 내친김에 의림지를 가기로 했다.
제천을 남에서 북으로 횡단하여 의림지로 향했다.
의림지에 도착해 보니 그 곳은 빗방울이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일행은 최근에 새로 만든 인공폭포와 분수대를 돌아보고 폭포아래를 내려다보며 예전에 소풍을 다녔던 기억들을 회상했다.
그때 골프선약이 있어 부득이 일행들과 합류하지 못했던 또 다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왕이면 자기의 산막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 시간에 자기도 산막으로 가고 있는 중이니 그곳에서 만나자는 제의였다.
의림지를 둘러 본 다음, 일행은 다시 강원도 산골에 있는 그의 산막을 향해 출발했다.
오후 6시가 넘어서 그의 산막에 도착했으나 그 친구는 미처 도착을 못했다.
서둘러 오고 있는 그와 전화를 통화한 후 그곳에서 ‘황둔막국수’로 소문 난 집으로 갔다.
원주 신림에서 주천을 지나 영월과 평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는 예로부터 이곳을 지나는 길손들이 많은 곳이다.
따라서 일찍부터 길가에는 주막집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집이 바로 소문난 “황둔막국수 집”이다.
그 집의 주인할멈이 젊은 새댁시절부터 시작한 주막집 주모였다. 이제는 돈도 많이 벌어서 원주시내에 아들이 “황둔막국수 분점”을 열었다고 한다. 아무튼지 그 주막집 덕분에 소문이 난 강원도 산골마을이 이제는 도로 양옆으로 시골장터를 이루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곳이 원래 황둔 막국수로 이름이 났는데, 지금은 길 양옆으로 ‘황둔찐빵’집이 늘어서 있다. 원주시 치악산너머에 있는 ‘안흥찐빵’ 이 찐빵의 원조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곳 ‘황둔찐빵’도 성황을 누리고 있다.
지금의 아이들 입맛에는 맞지 않지만 옛 것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는 어른들에게는 인기가 있어 이곳에서도 현지에서 판매뿐만 아니라 전국에 주문을 받아 택배로 보낸다고 한다.
일행은 황둔막국수 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막국수와 돼지 왕족발을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올 무렵에 친구 내외가 도착했다. 그 친구의 안식구는 초등학교 두 해 후배이므로 몇몇을 빼고는 모두가 구면이었다. 일행은 또 한 차례 돌아가면서 손을 잡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일행은 왕족발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부딪치며 연신 건배를 했다.
미안하게도 술을 제일 좋아하는 친구가 오늘의 운전기사임으로 그는 눈물겨운(?) 금주를 해야만 했다.
일행은 막국수마저 맛있게 먹고 난후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시간은 밤 9시가 넘었다.
밖으로 나오자 자상한 친구내외가 일행과 만나기전에 미리 주문한 택배상자에 넣은 “황둔찐빵”을 앞앞이 한 상자씩을 선물했다. 모두들 개근상을 받는 학생들처럼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었다.
일행은 제각각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밤늦은 시각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강원도 두메산골인 황둔에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다행이 비는 오지 않았다.
누군가 좌석에서 말했었다. “이제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고, 싫은 것은 싫은 것이야” 하고. 어쩌면 이 말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 하자는 말일 것이다.
아무런 꾸밈없는 소박한 마음이야 말로 서로를 편안하게 해 준다. 오늘의 만남에 참석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동심의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 편안한 시간들을 함께 했다. 이는 이제는 모두가 인생의 완숙한 나이에 이르러 일상의 시름을 벗어난 달관된 인생관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들 깊은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것과 같이 너그러운 마음들이기에 일행은 또 다른 제2의 동심으로 돌아 갈 수 있었다.
이러한 모임의 기회가 많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여름의 끝자락에서 이루어진 짧은 만남의 여행기(記)를 마친다.
(200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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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고 섭섭하네... 육군 소장의 스케줄 때문에 흑...흑... 그래도 브리핑은 잘 되었지... 다음엔 꼭 낄께...
정말 아쉽게 되었네. 친구가 없는 자리라서 그런지 꽤나 친구 이야기들을 하더군..ㅎㅎ 추진한 일이 잘되었다니 기쁘네. 사실 친구가 부재한 일에 모두가 아쉽게 생각하네. 그 중에 특히....이하생략ㅎㅎ
대신 즐거운 친구도 있었다. 이자기가 김자기가 될뻔했지..조심해라
언젠가 가족여행을 간적이 있어 대명콘도에서 묵은적이 있었는데,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청풍호반을 돌아본적이 있다. 산수의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했었는데, 글을 읽고 사진을 보니 더욱 그곳이 생각 나는군. 올 가을 단풍놀이로 청풍호반의 절경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