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의미의 안경은 13세기 말 이탈리아의 유리공들이 만든것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1450년 쿠텐베르크의 활자 발명 이후 책이 싼값이 많이 풀리자 안경 또한 덩달아 많이 팔렸다고 하는군요. 뭐 서양의 안경 역사야 다들 조금만 찾아 보시면 잘 아실 정도로 자료가 널려 있으니 할 이야기가 없고 전 조선의 안경에 대해 말해 보려고요.
한반도에 안경이 언제부터 들어왔는지 정확히 기록된 바가 없어 잘 알수는 없습니다만 대략 임진왜란을 전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학봉 김성일의 안경 유물 때문입니다. 기존에는 임진왜란 시기나 이후에 안경이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 유물의 발견으로 임란 이전에 이미 안경이 들어온 것으로 수정되었죠 왜냐하면 김성일은 임란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으니 죽은 사람이 안경을 쓸 일은 없는거죠, 따라서 그 이전에 쓴 안경이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이 안경이 중국에서 수입된 것인지 아니면 수입된 유물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생산된 제품인지는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만 최소한 1600년대에는 안경이 생산되고 있었으며 특히 경주남석안경은 그 유명세가 대단했습니다. 경주남석안경은 경주 남산에서 생산되는 수정을 가공해 렌즈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선교사 제임스 게일의 서적에서 이 경주남석안경은 당시 미국돈으로 15달러나 하는 고급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후 식민시기때는 대량생산되어 값이 떨어집니다)아무튼 조선이 무역국이 아니라서 수입되는 안경 수도 적었을 뿐더러 생산되는 안경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희귀한 물건이고 또 값도 비싸 안경의 보급은 상당히 더뎠습니다, 특히나 안경이라는 것이 기능의 의미보다 권위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더더욱 안경 보급에 딴지를 거는 형태가 되어 버렸죠, 사실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에 사회적으로 안정과 발전을 겪으면서 안경이 이전시대 보더 널리 퍼졌고 정조 스스로도 안경을 착용하였으나 역시 보통 사람들은 안경을 쓰기 힘들었습니다.안경의 까다로운 예절
사실 돈이라면 어떻게든 마련하기 마련입니다, 특히나 안경이 패션의 아이템으로 쓰일수도 있고 또 어두운 눈을 밝히는 실용적인 목적이 있으니 정말 필요하다면 어떻게 하든 마련하겠죠, 허나 이것이 그리 쉽게 퍼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예절 때문이었습니다. 안경이라는 것 자체가 노인들이 사용하기 마련이었고 그러다 보니 안경의 의미가 <지성과 권위>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은 함부로 안경을 쓰지도 못했으며 안경을 쓰더라도 어른 앞에서는 벗어서 보이지 않게 해야 했습니다 또 다수가 모이는 자리에서 안경을 착용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어떤때는 눈이 나쁘지 않아도 아랫 사람 앞에 나갈때 안경을 써서 권위를 보인 일도 있었습니다.안경이 권위와 예절을 표현하는데 사용된 예로 유명한 것중에 하나가 마지막 임금이었던 순종 입니다, 순종은 안경이 없으면 잠시의 생활도 하기 힘든 지독한 근시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버지 고종 앞에서는 절대 안경을 쓰지 않았지요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헌종시절 이조판서 조병귀가 (헌종의 외숙) 대비 앞에서 안경을 쓰고 있는 것을 목격한 헌종은 조병귀를 크게 나무랐다고 합니다 그러자 조병귀는 너무나 부끄러워 그날로 목숨을 끊어 버렸다고 하지요 또다른 것으로 임오군란 후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던 김기수는 시력이 전혀 나쁘지 않은데 섬나라 오랑케에게 권위를 보여야 한다며 일본인이 모인 자리에는 꼭 안경을 쓰고 나갔던 사례도 있었습니다.시대마다 지역마다 달랐던 안경의 의미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안경이 지성과 권위를 상징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안경은 천박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유럽에서는 안경을 쓴다는 사실이 그리 달갑지 않았던 고로 되도록 작게 만들어 필요한 때만 쓰려고 했습니다, 손잡이가 달린 안경 (필요할때 손잡이를 이용해 잠깐 눈에 대고 보는거죠)이나 외알 안경이 나온 이유가 바로 그러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안경을 되도록 고급 재질로 만들어 그런 나쁜 이미지를 상쇄 시켜려 했죠. 헌데 그러다 보니 되려 안경이 패션 아이템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지성과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되던 안경 입니다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별로 좋지 않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안경잽이라는 말로 놀림을 받기도 했고 아침에 첫 손님으로 안경 쓴 여자가 택시를 타면 재수없다고 승차거부를 하는 일도 상당히 많았습니다.이렇듯 별것 아닌 물건에도 여러가지 인간의 생활문화가 담겨져 있습니다, 조선에서는 400년 넘는 안경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널리 퍼지지 못한 것이 문화적 요인때문이었다는 것도 그렇고 권위의 상징이던 것이 재수없는 것으로 변화되기도 하였고 감추려고 하는 것에서 패션 아이템이 되기도 하는 것을 본다면 물건 하나가 주는 여러가지 의미의 변화가 참 신기하기까지 합니다.P.S : 첫번째 사진은 가장 오래된 안경 유물인 김성일의 안경이고 두번째 초상화는 1911년 그려진 황현의 초상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