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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2:44-52
찬송가 199장 ‘나의 사랑하는 책’
신명기 32장은 모세의 노래를 담고 있습니다. 모세의 노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이스라엘의 패역함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노래의 마지막 가사가 ‘속죄하시리로다’로 끝나며, 이스라엘의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이 결국 그들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노래는 31장 30절과 32장 44절을 액자의 테두리 삼고, 그 안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노래가 끝난 뒤 모세가 결론적 해설을 덧붙이는 장면과 하나님께서 모세의 죽음을 예고하시는 장면 두 가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모세의 말(44-47)
(44)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
44절은 여호수아가 모세와 더불어 지도자의 자리에 선 것을 보여줍니다. 31장에서 이미 위임식을 마쳤기에 모세는 여호수아를 적극적으로 세워주고 있습니다.
44절은 모세의 노래를 ‘말씀’으로 부릅니다. 이처럼 모세의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율법입니다. 신명기라는 율법을 시로 요약해둔 것입니다. 이러한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렸습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곳에 스스로를 노출시켜야 합니다. 매일 소음을 넘어 굉음이 울리는 현대사회에서 지금 우리는 어떤 소리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세상이 부추기는대로 자기 욕망의 소리를 따라 살다보면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릅니다(약 1:15).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적극 노출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생명에 이르는 삶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45-46) 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모세가 전한 말씀은 모세 한 개인의 말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자신이 ‘증언’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울려퍼지자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3가지 책무가 주어졌습니다.
첫째는 ‘너희의 마음에 두고’입니다. 이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마음은 한 사람의 중심을 가리킵니다. 말씀은 귀로 듣는 것을 넘어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이로써 모든 삶의 정황에 말씀이 적용되도록 해야합니다.
둘째는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1차적으로 기성세대인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최종목적지가 우리 자신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통로이고, 자녀 세대에게로 흘러가야 합니다. 기성세대만 하나님의 말씀을 명령받고 구원에 이르러서는 안됩니다. 자녀 세대에게도 그 말씀은 명령되어 그들 또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셋째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입니다. 신약의 예수님께서도 승천 직전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a).”라며 말씀은 들음을 넘어 행함으로 열매맺어야 한다고 동일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녀가 율법을 지켜 행하게 하려면 부모가 율법을 지켜 행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자녀 주변에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자녀 스스로 말씀을 지켜 행할리 만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믿는지는 입술의 고백이 아닌 삶의 행동이 그 믿음을 증명하고, 자녀는 부모의 삶을 보고 배웁니다.
모세가 가장 먼저 이 세 가지를 행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받아 자기 마음에 두었고, 출애굽 2세대인 자녀 세대에게 끝없이 전하여 명령했고, 그들의 삶에 지켜 행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32장의 모세는 임종을 앞둔 노인입니다. 즉, 모세는 임종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자녀에게 가르쳐 명령하고, 그들이 그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모세가 먼저 그 삶을 살았기에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출애굽 2세대도 말씀 위에 자신들의 삶을 얹었고, 그 순종의 역사가 여호수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삶의 중심에 말씀을 두고 행해야하며, 가정에서 자녀나 손자에게 말씀을 가르쳐 행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나아가 교회학교 자녀 세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명령하여 가르치고, 그들이 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현재 교회학교에서는 열여덟분의 선생님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자녀 세대를 잊어버리고, 나 자신이 말씀의 최종목적지가 되어 삶을 마감하게 된다면 곧 다가올 한국기독교 200년은 밝지 않을 것입니다. 가정에서든, 교회학교에서든, 어떤 자리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세대에게 어떻게 전할지 고민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기성세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모세가 왜 그토록 자녀 세대에게 하나님 말씀을 명령하여 지키게 하라고 했는지 그 이유가 나옵니다.
(47)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47절의 ‘이는’은 앞서 나온 율법의 모든 말씀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율법이 헛된 일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다바르’는 말이라는 뜻도 지니기에 새번역 성경은 “율법은 단지 빈 말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의 생명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왜 모세는 굳이 ‘빈 말이 아니’라는 말을 했을까요?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빈 말’로 여기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빈 말과 생명의 말을 바르게 구분하고 있는지 돌아보길 원합니다. 난방비 인상, 집값 폭락, 전쟁, 지진 등 살림살이가 옥죄어오고, 흉흉한 소식이 들려올 때 우리는 무엇을 빈 말로 여기고, 무엇을 생명의 말로 여깁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넉넉한 물질 중 어떤 것이 우리를 구해줄 생명의 말로 다가옵니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목을 죄어올수록 더욱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의지해야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그럴 때 물질을 포함한 각종 세속적 가치관이라는 빈 말을 생명이라 여기다가 희망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진정 소망의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이사야 60장 2-3절입니다.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세상에 흑암이 짙어질수록 참된 그리스도인을 향한 사회적 요청은 커져만 갑니다. 진리와 생명의 사이드에 굳게 서서 블라인드 사이드에 놓인 영혼의 곁을 지켜주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모세는 율법을 준수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의 방식이 곧 차지하게 될 땅, 가나안에서의 생존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49절에서 그 땅 곧 가나안을 하나님이 주는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셨기에 그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그 땅에서의 날이 장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땅이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는 것을 잊고, 하나님을 빈 말로 여기고, 가나안 풍습과 문화를 생명의 말로 여긴다면 이내 약속의 땅에서 내쳐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거주하는 땅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잊을 때 생명을 잃습니다. 잊음은 잃음이 됩니다.
이렇게 모세의 말이 끝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48)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증언을 마친 바로 그 날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마음이 있는지, 그리고 그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겠다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용기가 있는지 여부입니다. 혹시 우리의 학식과 숱한 경험들이, 아니면 우리가 쌓아올린 의로운 업적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와 마음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자신을 말씀 위에 올려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인간의 말이 아닌 온 세상을 창조하신 광대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49)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바림 산맥의 높은 봉우리인 느보 산에 올라 가나안 땅을 바라보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느보 산은 해발 약 800m의 높이로 날이 맑으면 서쪽으로 100km 떨어진 대해(지중해)까지 보였기에 모세는 가나안 땅을 한 눈에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이 때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땅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자리인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고 명확하게 인식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회사 내 직책, 자녀 육아, 학업, 부모 봉양 등의 자리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리로 여기고 계십니다. 바른 신앙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섬깁니다. 잊음은 잃음으로 이어지기에 우리는 날마다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마땅히 섬기며 생명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50)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그런데 형 아론의 죽음을 언급하며 예고하십니다. 모세도 아론처럼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잠깐의 시간차만 있었을 뿐 죽게 되는 것은 동일합니다.
모세가 형의 죽음을 기억하듯 우리도 먼저 떠나보낸 고인들을 기억하며, 우리도 그들과 같이 잠시의 시간차만 있을 뿐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직시하고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모세는 시편 90편 12절에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먼저 별세한 이들의 죽음과 더불어 한 분의 죽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밝혀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공포 너머의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의 소망 아래 매일을 기쁨과 감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모세의 죽음을 예고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는지 또 다시 말씀하십니다.
(51-52)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는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않았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새번역 성경은 모세가 범죄한 것을 ‘믿음 없는 행동’을 했다고 번역했습니다. 모세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믿고, 바위를 향해 말해야 했지만 지팡이로 내리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모세는 하나님을 드러내야 할 자리에서 자신의 어떠함을 드러낸 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드러내야 할 때 온전히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모세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바라볼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셨을 뿐만 아니라 미리 죽음을 예고해 주심으로 33장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며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습니다.
블라인드 사이드에서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삶의 이유도 모른채 방황하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건져주시고, 생명과 진리, 용서의 사이드로 옮겨주셨습니다. 게다가 우리 인생이 유한함에서 끝나지 않고, 영원함으로 이어지도록 크신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었듯이 우리 또한 먼저 별세한 이들처럼 시간차 죽음을 맞게 될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정해진 기한을 살고 있음을 아는 지혜를 갖고, 오늘 하루를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있고 가치있는 보석들로 가득 채우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내가 이기었노라 승리를 선언하신 영원한 부활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가득 담고, 말씀이신 그분을 자녀 세대에게 끝없이 전하여 그들이 지켜 행하도록 돕고, 죽음을 넘어 부활의 소망으로 가득찬 인생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기도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생길에서 말씀으로 생명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자신이 말씀의 최종 목적지가 되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유한한 인생이 자녀 세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흘려보내는 일에 온전히 쓰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죽음 너머 부활의 날, 말씀으로 연결되었던 우리와 자녀 대대손손 모두가 한 분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자리에 선포되었을 때 내가 해야할 3가지는 무엇인가요?
2. 내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 세대에 흘려보내고 있는 일은 무엇이며, 없다면 어떻게 흘려보낼 수 있을까요?
3. 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야 할 곳은 어디인가요?
4. 내가 이기었노라 승리를 선언하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승리로 가꾸어가는 삶은 어떤 삶인가요?
(작성 : 강동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