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좌담회 어서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중생소유락어서)
괴로워도 즐거워도
신심 근본으로
승리의 인생을
배경과 대의
〈시조깅고전답서〉는 1276년 6월, 니치렌(日蓮) 대성인이 쉰다섯살 때 미노부에서 쓰시어 가마쿠라의 중심 문하인 시조 깅고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별명은 〈중생소유락어서〉입니다.
1274년 대성인이 유배지 사도에서 돌아온 뒤, 깅고는 결의에 불타 주군 에마 씨를 절복했습니다.
그런데 에마 씨는 대성인을 적대하는 고쿠라쿠사 료칸을 신봉하였기에 깅고를 점차 멀리했습니다.
또 깅고는 시기심에 찬 동료들에게서 근거도 없는 비방을 당하는 등 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법화경 수량품의 ‘중생소유락(衆生所遊樂)’ 경문을 들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제목을 부르는 이외에 진정한 유락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법화경(어본존)을 수지하는 이외에 진정한 유락은 없고 법화경 약초유품의 ‘현세안온(現世安穩) 후생선처(後生善處)’는 이 일을 말한다고 단언하셨습니다.
게다가 어떠한 현인이나 성인도 난을 피할 수 없고, 어려움이 없는 인생은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남묘호렌게쿄라고 꿋꿋이 불러 어본존을 향한 강성한 신심으로 일어서라고 촉구하셨습니다.
이 어서를 받은 뒤 깅고는 대성인의 지도대로 끈기 있게 주군을 성실하게 모셨습니다. 그 결과 주군의 신뢰를 회복하고 이전보다 세 배나 더 많은 영지를 받는 등 훌륭한 승리의 실증을 보였습니다.
본문
시조깅고전답서
어서전집 1143쪽 5행 ~ 6행
고(苦)는 고라고 깨닫고 낙(樂)은 낙이라고 열어서 고락 함께 아울러 생각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계시라.
이 어찌 자수법락(自受法樂)이 아니겠느뇨. 더욱더 강성한 신력(信力)을 다하실지어다.
통해
고는 고라고 깨닫고 낙은 낙이라고 열어서 괴로워도 즐거워도 남묘호렌게쿄라고 끝까지 부르세요.
이것이야말로 자수법락이 아니겠습니까.
더욱더 강성한 신력을 불러일으키세요.
어구해설
【자수법락(自受法樂)】 ‘스스로 법락을 받는다’고 읽는다. 법락은 부처의 깨달음을 누리는 최고로 절대적인 행복을 말한다. 스스로 묘법의 공덕인 진정한 안락을 받는 일이다.
포인트 강의
고민한 만큼 경애도 열린다
어떠한 때에도 끝까지 창제하는 일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법화경 수량품에 ‘중생소유락’이라고 있듯이 온갖 괴로움과 어려움을 모두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불법(佛法)입니다. 배독어서 앞부분에 법화경의 ‘현세안온’이라는 글을 들어 묘법 근본으로 살아가는 이외에 유락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온’은 고민이나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들을 유유하게 이겨내는 경애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러한 경애를 열 수 있을까요.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괴로워도 즐거워도 남묘호렌게쿄를 끝까지 부르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는 고라고 깨닫고”는 살면서 괴로움을 피할 수 없으므로 그렇게 각오하고 괴로움을 내려다보라는 말씀입니다.
“낙은 낙이라고 열어서”는 ‘아, 감사하다. 기쁘다’고 솔직하게 기쁨을 만끽하고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괴로울 때도 즐거울 때도 늘 유연하게 제목을 부르면 반드시 행복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묘법의 공덕을 스스로 누리는 ‘자수법락’이고 그러려면 강성한 신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괴로울 때는 괴로운 대로 제목을 부르면 됩니다. 길은 반드시 열립니다. 신심으로 뚫지 못할 막힘은 결코 없습니다. 자기만의 작은 고뇌나 주위의 잡음에 휘둘려 청춘을 초라하게 보내고 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광선유포라는 대원을 향해 달리는 청춘은 크게 고민한 만큼 경애를 크게 열어 복운을 크게 쌓을 수 있습니다. 고생해서 구축한 여러분 자신의 생명은 무엇에도 부서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창제 근본으로 광선유포를 위해 힘써 무너지지 않는 자신을 만들어 갑시다.
이케다 선생님 지침에서
● 신이치는 이어서 “다만 세간의 유난(留難)이 닥치더라도 문제 삼지 말지어다”(어서 1143쪽)라는 부분을 강의했다.
“신심을 하면 세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거나 비난하고 중상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경문과 어서에 씌어있는 그대로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그러한 ‘세간의 유난’을 두려워하고 농락에 놀아나 일희일우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 바로 다음에는 “현인, 성인도 이 일은 피할 수가 없다”고 씌어 있습니다. 정의를 관철하면 난(難)이 일어난다. 이것이 도리입니다.
따라서 어떤 말을 듣든 어떤 처사를 당하든 ‘어서 말씀 그대로다. 드디어 난이 일어났구나. 좋다, 싸우자!’ 하고 결심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이 길’을 ‘정의로운 창가(創價)의 대도(大道)’를 당당히 완주하기 바랍니다.”
모두 눈동자를 빛내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신이치는 이어서 “고(苦)는 고라고 깨닫고 낙(樂)은 낙이라고 열어서 고락 함께 아울러 생각하여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고 계시라”는 부분을 말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박해와 숙명의 폭풍이 휘몰아쳐 고뇌에 시달릴 때가 있습니다. ‘고’에 부닥쳤을 때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도망치거나 물러서지 말고 ‘좋다. 신심으로 물리치자’는 마음으로 오로지 창제에 힘써야 합니다. 또 즐거울 때나 기쁠 때도 어본존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목을 불러 더 큰 환희를 낳는 인(因)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고락 함께 끝까지 창제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정진하고 신심을 지속하는 속에 숙명전환도, 인간혁명도 있습니다. ‘제목을 부를 때가 가장 즐겁고 기쁘다’고 실감할 수 있다면 신심이 강성한 사람입니다.”
강성한 신심은 강성한 기원이고 지속적인 창제다.
‘창제 제일의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겁내지 않는다. 물러서지 않는다. 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불굴의 투혼과 환희의 불꽃이 가슴속에 새빨갛게 불타오르기 때문이다.(소설 신 인간혁명 제28권 대도)
● 시조깅고는 니치렌 대성인이 다쓰노구치에서 처형 당하시려고 할 때 맨 먼저 달려갔습니다. 대성인이 타고 계시는 말의 재갈에 매달려 대성인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다면 자기도 할복해 죽어 대성인과 함께 하려고 한 강신자입니다.
사자(師子)의 길을 일직선으로 걸은 강하고 강한 신심의 문하입니다.
그 깅고에게조차 대성인은 '더욱더 강성한 신심을'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더욱더'입니다. 과거가 아니라, '지금부터'입니다.
'신력(信力)'입니다. '신(信)'은 '힘'입니다. 인간이 가진 최고의 에너지인 것입니다.
신력과 행력(行力)에 의해 어본존의 불력 * 법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심(信心)'이야말로 우주를 회전시키는 근원의 힘과 일상생활을 단단하게 결합시키는 비술(秘術)입니다. (영원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하>)
- 법련 2018년 11월호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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