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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걷는 성삼재 – 만복대 코스는 원래 백두대간의 시작구간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3월에 대간산행을 시작할 때 이곳에 찾아 오는 것이 맞지만 그 때는 지리산을 비롯한 전국의 국립공원이 산불 예방기간이라서 탐방이 금지되어 있어 이 다음구간인 노치마을에서 수정봉을 오르는 코스에서 시작했었다. 이렇게 미뤄두었던 지리산 서북능선길을 우리는 호남에서 시작하여 경남 경북을 지나고 충청북도로 올라가기 전에 다시 되돌아와 걷게 되었다.
거의 한달 째 계속되는 찌는 듯한 무더위가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한여름이다. 어제 포천 백운산 산행을 할 때는 바람 한 점 없는 산길에 모든 짐승들과 풀나무가 숨을 죽이고 있는데 철모르는 인간들만이 비지땀을 흘려가며 산길에 먼지를 일으켰다. 얼려간 물도 떨어져 갈 즈음 매미 우는 소음 사이로 계곡물 떨어지는 청량한 소리가 들렸을 때 가슴속에는 마침내 소나기가 내렸고, 진흙탕에 몸을 비벼대는 들짐승들처럼 우리는 계곡물속에 빠져든 채 핏줄속에 흐르는 더위를 씻어 내었다.
그랬었는데. 그 낮은 산행에서도 더위로 허덕였는데 우리나라에서 두번 째로 큰 산인 지리산에 간다고 하니 걱정하는 눈치를 던진다. 아무리 백두대간 코스라지만 이 더운데 몸상하게 뭐하러 가느냐고. 나도 사실 은근히 걱정이 되긴 했나보다. 햇볕이 화살처럼 쏱아지는 벌판길을 걷는 상상을 해 본다. 온 몸에 고슴도치처럼 햇볕살이 박혀 헐떡거리는 모습을 그려 본다. 천왕봉을 오르는 돌길을 머리에 떠 올리며 우산을 쓰고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막상 집을 나설 때는 우산도 잊어 버렸고 모자조차 챙기지 못했다. 산행길에 모자를 집에 두고 나선 것이 근래 들어 벌써 두 번째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햇볕을 가려줄 최소한의 도구로서 제일 싼 것으로 모자를 또 하나 장만했다.
버스는 지리산 IC를 빠져나와 국도와 지방도로를 달려 마침내 지리산 계곡길로 접어 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김종진 회원님이 뱀사골이라 알려준다. 뱀처럼 구불 구불한 길은 계곡을 옆에 끼고 올라 간다. 계곡 초입부터 맑은 계곡물에 몸을 던지고 더위를 식히는 피서객들로 붐비더니 뱀사골 버스 터미널을 지날 때는 터미널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차량으로 뒤엉켜 있다.
산행 들머리인 성삼재(姓三재 1,070 m )에 11시 30분쯤 도착했다. 성삼재 휴게소 주차장은 승용차와 버스로 가득 차 있고 고음의 스피커에서는 차량정리하는 멘트가 연신 흘러 나온다. 주차장에서 오른쪽 산능선위로 노고단 통신탑이 두 개 뾰족하게 올라와 있고 그 왼쪽으로 높은 봉우리는 물기를 잔뜩 머금어 무거운 구름을 이고 있다. 그 봉우리가 반야봉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반야봉에 걸린 구름은 우리가 산행하는 동안 줄곧 그 상태로 남아 있었다.
길가에 핀 흰여로가 우리를 반겨준다. 여로(藜蘆)는 70년대 유행했던 TV 드라마 여로(旅路)와는 좀 다르다. 꽃의 색깔에 따라 흰여로, 자주여로, 푸른여로가 있는데 이번 산길에서는 흰여로만 눈에 띈다.
하늘말나리는 허리에 치마를 두르고 꽃은 하늘을 보며 여름을 찬양한다. 마치 하와이 원주민 아가씨들이 해변에서 나뭇잎 치마를 두르고 합장하는 모습이다.
산골의 가난한 며느리의 고달픈 전설을 간직한 며느리밥풀꽃이 이제 막 피기 시작한다.
먹을 것도 변변치 않은 옛날 산골마을에 시집을 와 뜨거운 여름날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와 조상 제사를 모시려고 밥을 짓다가 밥알이 뜸들었나 맛을 본다며 밥알 두 개를 입에 넣었을 때 며느리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시어머니가 보았다.
어른들도 함부로 먹지 못하는 쌀밥을 훔쳐먹은 년이라 심하게 구박하는 통에 자괴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만 세상과 작별하였다. 그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에 해마다 이맘때면 밥알 두개를 입에 문 며느리같은 꽃이 피어나 살았을 적 한을 호소하고 있다. 며느리밥풀꽃은 변종이 많아 새며느리, 털며느리 등 종류가 다양하다.
꽃은 물레나물과 비슷하지만 크기가 작은 고추나물이다. 열매가 고추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른다.
산길은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계속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섬진강을 거쳐 남원까지 올라 온 소금배를 묵어 두었던 고리가 매어져 있었다는 (작은)고리봉(1,248)을 거쳐 묘봉치로 가는 길은 간간이 전망이 트이는 나무그늘길이다. 구름이 햇빛을 가린데다 여러 종류의 활엽수 나뭇잎이 또 다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서북쪽에서 볼어오는 바람은 능선길에 설 때마다 제법 강하게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우리가 만복대를 오르는 날이라 복을 받는 것이라며 시원해진 날씨를 고마워한다. 오는 길에 버스안에서 한문희 대장님 말씀이었다. 우리는 복을 받는 것이라고. 고도가 100 미터 높아질 때마다 0.6도의 기온이 내려간다고 한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서울의 찌는 듯한 날씨에 비해 엄청나게 시원한 지리산의 날씨를 즐긴다.
바위채송화꽃이 커다란 바위를 완전히 덮고 있다. 바위는 꽃이불을 덮고 아주 신났다.
흰여로는 산길가에 자주 보인다. 그 동안 꽃대를 올리고 봉오리를 맺은 지 꽤 오래인데 이제서야 흐드러지게 피었다.
산수국은 이제 피기 시작했지만 앞으로 이 삼 주는 계속 피고 지길 반복할 것이다. 산길에 좋은 친구이다.
햇볕이 드는 양지쪽에는 메마른 땅이라도 억척스럽게 자라나는 큰뱀무가 있다. 잎새가 무우잎과 닮았으나 무우가 아니라서 뱀무라 하는데 뱀무는 큰뱀무보다 작고 울릉도에서 자란다고 한다. 큰뱀무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큰뱀무꽃은 전에 삼도봉에 올랐다가 해인리로 하산했을 때 해인리 길가에 벌써 많이 피어 있었는데 높은 산일수록 늦게 핀다.
화장한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민망한데 큰뱀무꽃은 자세히 보면 더욱 아름답다.
생활환경이 큰뱀무와 매우 비슷한 짚신나물이다. 산길 양지바른 곳에는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짚신나물은 이른 봄에 새순을 나물로 먹는데 매우 질겨서 푹 삶아서 무쳐 먹는다.
죽은 조릿대 사이를 비집고 등골나물이 자리 잡았다.
등골나물꽃은 활짝 피었을 때보다 조금 덜피었을 때 더 이쁘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가 ?
큰까치수염이 길가에 많이 피었다. 목이 흰 까치를 닮았다고 하여 까치수염이라고 부르는데
수영처럼 신맛이 나서 큰까치수영이라고도 한다.
한동안 산꾼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느라 수고가 많았던 일월비비추는 이제 자기 할 일을 다했다며 무대 뒤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 수고 많았다. 이제 좀 쉬고 단단한 열매를 익혀서 후손을 봐야지 ~
길가 그늘에 개갈퀴꽃이 안개꽃처럼 피어 있다.
꼭두서니과의 개갈퀴는 숲속 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
꽃만 보면 누가 이 꽃을 파리풀이라고 하겠나. 청순한 분홍빛 꽃색을 보면 처녀꽃이라고 불러야 할 듯 하다.
뿌리를 짓찧어 밥에 섞어서 두면 파리가 달려들어 먹고 잠들어 죽는다고 하여 파리풀이라 부른다.
묘봉치(卯峰峙 1,089)에서 짧은 점심휴식을 가졌다. 어딜 가나 지명의 유래를 생각하다 보니 묘봉치 주변에 무덤(묘)이 있는지 두리번 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하수의 태도다. 인터넷 검색은 많은 정보를 쉽게 가져다 준다. 하지만 쉽게 얻은 정보는 보편적인 오류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 묘봉치에 관한 설명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 묘봉치에서 달궁으로 가는 방향으로 암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묘봉암(卯峰庵)이었고 그 암자의 이름을 따서 이 고개 이름을 묘봉치라 불렀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묘할 묘(妙)자를 써서 이 고개의 주변 풍광이 묘하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아쉽게도 그 내력에 대한 설명은 없다. 지형을 살펴보면 이 묘봉치는 일반인들의 교통로로는 사용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양쪽으로 정령치와 성삼재와 같은 넓은 고개가 있어 대부분의 그 고개를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다만 산동마을과 심원마을간 왕래하는 사람들은 멀리 정령치로 돌아갈 필요가 없으니 이 고개를 지나다녔을 것으로 보인다. 묘봉(卯峰)은 다른말로 하면 토끼봉이다. 지리산 주능선에는 토끼봉이라는 봉우리가 있는데 이 묘봉치를 거쳐 심원마을로 그리고 이어서 토끼봉으로 오르는 코스와 결부시키는 것은 무리한 억측인가 ?
묘봉치 고갯마루에는 큰뱀무꽃이 지고 열매가 달려 있고
부지런한 쑥부쟁이꽃이 피고 있다.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마을의 대장장이 (불쟁이)에게 아파 몸져누운 마누라와 많은 딸이 있었다. 맏딸은 늘 아픈 엄마와 가족을 위해 쑥을 뜯으러 다녀 사람들은 쑥을 캐는 불쟁이딸이라며 쑥부쟁이라 불렀다. 여느 날과 같이 산에서 쑥을 캐는 소녀는 올무에 매어 허우적거리는 사슴을 발견하고는 불쌍하다며 올무에서 풀어 주었다. 사슴은 고맙다며 은혜를 꼭 갚겠다며 숲속으로 사라졌다.
또 한참을 가다가 멧돼지 잡으려고 파 놓은 함정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젊은이를 보고는 칡덩굴을 내려주어 구해주었다. 훤칠하게 잘 생긴 청년에게 마음을 빼앗긴 쑥부쟁이에게 그 청년은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내년 가을에 다시 찾아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그러나 한 번 가버린 청년은 돌아 오지 않고 쑥부쟁이는 마음의 병을 얻어 몸까지 야위어 갔다. 소녀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산신령께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
그 기도가 통한것인지 쑥부쟁이 앞에 전에 자신이 구해준 사슴이 나타나 소녀에게 세개의 구슬을 건네주면서 그 구슬을 물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고는 다시 숲속으로 달아났다. 소녀는 구슬 한 개를 입에 물고 어머니의 병이 낫게 해달라고 빌자 정말로 어머니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두번째 구슬을 입에 물고 자신이 구해준 그 청년을 보게 해달라고 빌었다. 쑥부쟁이 앞에 정말로 그 청년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청년은 이미 결혼하여 아이까지 있었다. 마음씨 착한 쑥부쟁이는 세번째 구슬을 입에 물고
그 청년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잘 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나서도 쑥부쟁이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고 나물을 뜯으러 산에 갔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절벽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소녀가 떨어진 절벽 위에는 해마다 배고픈 가족이 먹을 수 있는 나물이 수북이 자랐는데 사람들은 쑥부쟁이의 마음이 담긴 풀이라 하여 쑥부쟁이라고 불렀다. 보라색 빛이 감도는 꽃잎은 사슴이 전해준 구슬주머니이고 그 안에 노랗게 담겨 있는 것은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이라 여겼다.
산마
첫댓글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 입니다.
그날 지나간 흔적속에 대단한 야생화의 갈론을 보고 있습니다.
양산박 님께 박수를 보냅시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네. 우리가 걸어간 발자국 워를 또 누군가가 밟고 지나갈거고 이렇거 또 수백년이 흐르겠지요. 우리는 흐르는 세월의 아주 작은 부분을 만지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