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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꼰단냐 대장로(마하테라)
1. 과거생에서의 서원
지금부터 10만 겁 전에 삼계에 빠두뭇따라 부처님(25분의 부처님 중 10번째 부처님)이 출현하셨다. 부처님께서는 10만 명의 비구들과 함께, 많은 중생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여러 마을과 도시를 차례로 여행하면서 탁발하신 다음에 고향인 항사와띠(Haṁsāvatī) 시에 도착하셨다. 그의 아버지 아난다 왕은 아들이 온다는 희소식을 듣고, 신하들과 시민들과 함께 부처님을 환영했다. 왕을 비롯한 군중에게 부처님께서는 법문을 하셨고, 그 법문이 끝나자 어떤 사람은 수다원, 어떤 사람은 사다함, 어떤 사람은 아나함, 나머지는 아라한이 되었다.
왕은 부처님을 다음 날 아침 공양에 초대했다. 다음 날 공양시간이 됐음을 알려서 왕의 황금 궁전에서 부처님과 10만 비구들에게 성대한 음식 공양을 올렸다. 빠두뭇따라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감사하는 법문을 한 다음에 절로 돌아오셨다. 다음 날에는 시민들이 성대한 공양을 올렸다. 세 번째 날에는 왕이 공양을 올렸다. 그렇게 왕과 시민들에 의해서 성대한 공양이 번갈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 당시 현명한 장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미래의 꼰단냐(Koṇḍañña. 憍陳如)이었다. 하루는 사람들이 꽃이나 향 등을 들고 삼보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장자는 그들을 따라서 법문하고 계신 부처님께로 갔다.
법문 중에 부처님께서는 어떤 비구를 가리키시면서,
“나의 법이 지속되고 있는 시대에 남보다 먼저 사성제를 깨달아서 윤회에서 해방된 모든 비구들 중에서 제일”
이라고 선언하셨다. 이를 들은 장자는 ‘저 비구는 정말 위대하다. 부처님을 말고는 저분보다 먼저 사성제를 깨달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미래의 부처님 시대에 나도 저분처럼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사성제를 깨닫는 비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처님의 법문이 끝나자 장자는 부처님께 다가가서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의 내일 아침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초청을 받아들이셨다.
부처님께서 초청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안 장자는, 부처님께 예경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밤새도록 꽃을 매달아서 좌석을 장식하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다. 다음 날 그는 자기 집에서 밥과 죽을 비롯한 진수성찬을 부처님과 10만 명의 비구들에게 대접했다. 식사가 끝난 다음에, 그는 방가(Vaṅga) 지방에서 생산된 부드럽고 두꺼운, 가사 세 벌을 만들기에 넉넉한 옷감을 부처님의 발 앞에 놓았다. 그리고는 ‘나는 자그마한 지위가 아니라 엄청난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높은 지위를 열망한다면 단 하루의 성대한 공양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칠 일간 계속해서 성대한 공양을 올린 다음에 서원을 말씀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장자는 성대한 공양을 칠 일간 계속해서 올렸다. 공양이 끝난 다음, 옷감 창고를 열고 최고급 옷감을 꺼내어 부처님 발 앞에 놓고, 10만 비구들에게도 가사를 드렸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다가가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칠 일전에 제일이라고 선언하신 비구처럼, 저도 미래의 부처님 시대에 황색 가사를 입고 가장 먼저 사성제를 깨닫는 비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씀드린 다음 부처님 발 앞에 예경을 올리면서 엎드려 있었다.
장자의 서원을 들으시면서, 빠두뭇따라 부처님께서는 미래를 보셨다. ‘이 장자는 가장 값진 덕행을 했다. 그의 서원이 달성될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내다보셨다.
부처님께서는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사건을 보려고 하기만 하면 아무런 장애 없이 분명하게 보실 수 있다. 과거나 미래의 모든 사건들은 수천만 겁이라는 장애가 있더라도, 혹은 현재의 사건들이 천 개의 우주라는 장애가 있더라도, 부처님께서 숙고하시기만 하면, 그것들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빠두뭇따라 부처님께서는 지혜로 이렇게 아셨다. ‘지금부터 10만 겁 후에 삼계에 고따마라는 이름의 부처가 출현할 것이다. 그때 이 장자의 서원이 달성될 것이다.’ 그렇게 아신 부처님께서는 장자에게 예언하셨다 “친애하는 장자여, 지금부터 10만 겁 후에 삼계에 고따마라는 이름의 부처가 출현할 것이다. 고따마 부처가 ‘법의 바퀴’라는 법문을 할 것인데, 그 법문이 끝나면, 1억8천만 범천(梵天)들과 함께 너는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을 것이다.”
마하깔라와 쭐라깔라 형제 이야기
10만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계속해서 보시 등의 선행을 한 다음에, 미래의 꼰단냐인 장자는 죽은 다음에 천상계에 태어났다. 악도(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에 태어나지 않고 천상계와 인간계를 오가면서 살아가는 동안 99,909겁이 흘러갔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산 다음에, 지금부터 91겁 전에, 반두마띠(Bandhu-mati) 왕성 성문 근처 마을의 장자 가문에 태어났는데 이름은 마하깔라(Mahākāla)였으며, 그의 동생은 쭐라깔라(Cūla-kāla)였다.
그 시절에 미래의 위빳시 부처님(25분의 부처님 중 19번째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내려와서 반두마(Bandhuma) 왕의 첫째 왕비인 반두마띠(Bandhu-matī)에게 잉태되었다. 그는 출가하여 일체지(一切智)를 갖춘 부처님이 되셨으며, 대범천의 법문 요청을 받고, 누구에게 먼저 법문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동생인 칸다(Khaṇḍa) 왕자와 뿌로히따(Purohita)의 아들인 젊은 띳사(Tissa)를 생각해냈다. 그는 “이들 두 명은 사성제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결정했다. 나아가서 이렇게 결정했다 “그들에게 법문하겠다. 그리고 나의 아버님이신 왕에게도 해 드려야겠다.” 그래서 그는 마하 보디(Mahā Bodhi)에서 공중으로 날아 케마(Khema)라는 사슴동산으로 내려왔다. 그는 칸다 왕자와 띳사를 오라고 해서 설법을 했고, 설법이 끝나자 그 두 명은 8만4천명의 범천들과 함께 아라한의 지위(阿羅漢位)를 얻었다.
위빳시 부처님께서 출가하실 때 따라서 출가했던 8만4천명의 그 나라 사람들도, 이 소식을 듣고 부처님을 찾아와 법문을 듣고 아라한위를 얻었다. 위빳시 부처님께서는 칸다 테라(장로)를 오른쪽 상수제자로, 띳사 테라를 왼쪽 상수제자로 임명하셨다.
이 소식을 들은 반두마 왕은 아들인 위빳시 부처님께 예경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사슴동산으로 가서 법문을 듣고 삼보에 귀의하였고, 다음날 아침 공양에 부처님을 초대한 다음에,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다. 궁전에 돌아온 왕이 큰 정자에 앉아 있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 큰 아들은 세속을 떠나서 부처가 되었다. 둘째 아들은 부처의 오른쪽 상수제자가 되었다. 뿌로히따의 아들인 젊은 띳사는 왼쪽 상수제자가 되었다. 나머지 8만4천명의 비구들도 재가자일 때부터 내 아들 주위에서 시중을 들곤 했었다. 그러므로 내 아들을 비롯한 승가는 그들이 출가하기 전에 모두 내가 돌봐줘야 했으니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하겠다. 그들에게 네 가지 필수품을 공급하는 것을 나 혼자 책임질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겠다.’ 그렇게 생각한 왕은 절의 대문에서 궁전까지 오는 길의 양쪽에 나무로 담장을 만들고 그 위를 덮개로 덮게 했다. 야자수 줄기처럼 굵은 꽃 줄에 황금 빛 별을 달아서 걸어놓게 하고, 닫집도 만들게 했다. 바닥에는 멋진 시트를 깔게 했다. 길 안의 담장 양쪽에는 물이 담긴 항아리를 꽃나무 근처에 놓고, 꽃 가운데에는 향을 놓고, 향 가운데에는 꽃을 놓도록 했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사람을 보내서 식사 시간이 됐음을 알렸다. 비구들을 대동하고 위빳시 부처님께서는 완전히 가려진 길을 따라서 궁정으로 와서 식사를 하고 절로 돌아가셨다. 다른 어느 누구도 부처님의 얼굴을 뵐 수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 음식 공양을 하고 예경을 올릴 수 있겠는가? 아무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시민들 사이에 이런 논의가 일어났다.
“이 세상에 부처님께서 출현하신 지 이제 7년 7개월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음식 공양이나, 예경, 법문을 듣는 것은 고사하고, 지금까지 뵐 기회조차 없었다. 우리에게는 그런 특권이 전혀 없다. 왕은 ‘부처님께서는 오직 나의 부처님이시며, 법은 오직 나의 법이며, 승가는 오직 나의 승가다.’라는 생각으로 혼자 부처님을 숭배하면서 보살피고 있다. 부처님의 출현은 천인(天人)과 범천을 포함한 모든 중생의 행복을 위한 것이지 왕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옥의 불은 왕에게만 뜨거운 것이 아니다. 왕이 우리에게 부처님을 모실 기회를 준다면 좋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왕과 싸워서 보시할 수 있도록 승가를 넘겨받자. 우리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싸우자. 그렇지만 우리 시민들만으로는 할 수 없으니, 우리를 이끌 우두머리를 물색하기로 하자.”
그에 따라 그들은 군대의 총사령관을 찾아가서 터놓고 자신들의 계획을 말한 다음에 이렇게 질문했다.
“장군님, 우리와 함께 하실 겁니까, 아니면 왕의 편을 드실 겁니까?”
그러자 장군이 말했다.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지만 조건이 하나 있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첫 번째 날은 나에게 양보하시오.”
시민들은 그러기로 했다.
장군이 왕에게 가서 말했다.
“대왕이시여, 시민들이 폐하께 분노하고 있습니다.”
왕이 왜 그런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께서 혼자 부처님을 보살펴드리기 때문에 시민들은 그럴 기회가 없다고 불평합니다. 대왕이시여,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그들의 분노는 수그러들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폐하께 도전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왕이 대답했다.
“장군, 나는 전쟁을 하더라도 결코 승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대왕이시여,”
장군은 왕을 번쩍 들어서 옆으로 옮겨 놓으면서 말했다.
“폐하의 군인들이 폐하에게 반기를 들겠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다면 누구를 불러서 진압시키시렵니까?”
“그대가 나의 장군이 아니던가?”
왕이 설득조로 말했다.
“대왕이시여, 저는 시민을 적으로 해서는 싸울 수는 없습니다.”
장군이 말했다.
그제야 왕은 ‘시민들의 힘은 위대하다. 장군도 그들 중의 하나다.’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왕은 이렇게 요구했다. “친구여, 그렇다면 내가 7년 7개월만 더 승가에게 보시하게 해 주게.” 그러나 시민들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왕은 보시 기간을 점차적으로 6년, 5년, 등으로 줄여서 마지막에는 7일이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제 왕이 공양 보시 기간 7일을 요구하는데, 왕과 맞서서 너무 고집을 부리는 것은 좋지 않다.”
반두마 왕은 7년 7개월 동안 할 것을 7일 간에 모두 보시했다. 처음 6일간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했지만, 7일째 날에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성대하게 보시하는 것을 이렇게 소리치면서 보여주었다. “친구들이여, 이렇게 성대한 보시를 그대들도 할 수 있겠는가?” 시민들이 응수했다. “대왕이시여, 그렇지만 폐하의 보시는 우리의 도움이 있어야만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왕은 부처님께 예경 드리고 말했다.
“존귀하신 내 아들 부처님이시여, 나는 부처님과 16만 8천 비구들 모두를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고 내 평생 동안 네 가지 필수품을 지원하리라고 마음먹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부처님을 보살펴 드리게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보시할 권리를 빼앗은 것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습니다. 존귀하신 내 아들 부처님이시여, 내일부터는 그들의 청원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낙담한 왕은 불만스러워하면서 그렇게 애처롭게 말했다.
다음 날, 장군은 사람들과 합의한 대로 부처님을 비롯한 승가에 성대한 공양을 올렸다. 계속해서 시민들은 순서를 정해서 부처님과 승가에 왕보다 더 성대한 공양을 올렸다. 도시 전체 사람들이 음식 공양을 올린 다음에, 성문 근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순서를 정해서 예경을 올렸다.
그러자 마하깔라 장자는 동생인 쭐라깔라와 이렇게 상의했다.
“내일은 우리가 부처님께 예경 올릴 차례다. 어떤 예경을 올려야 할까?”
쭐라깔라가 대답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형님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그러자 마하깔라가 말했다.
“만약 네가 찬성한다면, 우리의 땅 16뻬(미얀마어 ပယ)는 넓이의 단위인데, 1뻬=1.75에이커=약 7,082㎡=2,146평)가 익어가는 벼로 가득 차 있다. 부처님께 걸맞게 지금 막 영근 쌀을 이삭에서 따서 우유죽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어떻겠느냐?”
쭐라깔라가 자기 의견을 말했다.
“형님, 그렇게 해서 이익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저는 반대입니다.”
그러자 마하깔라가 말했다.
“네가 찬성하지 않는다면, 내 몫의 재산을 내가 갖겠다.”
그래서 16뻬의 땅을 8뻬씩 둘로 나누어서 가운데에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리고서 마하깔라는 ⑴ 이삭으로부터 부드러운 벼를 추수해서, 물을 섞지 않은 우유로 밥을 하고, 짜뚜마두(catumadhu. 네 가지 달콤한 것 즉 버터, 꿀, 설탕, 참기름을 섞은 것)를 넣어서, 부처님을 비롯한 한 승가에 첫 번째 음식으로 드렸다. 이상한 일은 벼를 추수한 이삭에 벼가 다시 빼곡히 달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삭에서 제일 처음으로 형성된 벼의 보시이다.)
마하깔라는 다음과 같이 유사한 보시를 했다. ⑵ 제일 먼저 알곡이 부분적으로만 여물은 벼 ⑶ 제일 먼저 알곡이 완전히 여물은 벼 ⑷ 제일 먼저 수확한 벼 ⑸ 제일 먼저 묶은 벼 ⑹ 묶은 다음에 제일 먼저 낟가리로 쌓은 벼 ⑺ 제일 먼저 타작한 벼 ⑻ 제일 먼저 키질한 벼 ⑼ 제일 먼저 창고에 저장한 벼.
이런 식으로, 그는 벼농사를 지을 때마다 제일 먼저의 것으로 아홉 번 보시했다. 그러나 그렇게 보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벼 수확량은 단 한 번도 적어지지 않고, 벼의 양은 전보다 많아지고 크기도 전보다 커졌다. 이것이야말로 꼰단냐 테라의 전생에서의 서원과 연관된 것이다.
2. 마지막 생에서 고행자 생활
미래의 꼰단냐 테라인 덕이 높은 마하깔라 장자는, 부처님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및 자신의 평생 동안을 이런 식으로 선행을 했다. 그는 인간계에서 천상계로, 또 천상계에서 인간계로 왔다 갔다 하면서 천상과 인간의 향락을 누리다가, 우리의 부처님께서 출현하실 무렵, 까삘라왓투 근처의 브라만 마을인 도나왓투(Doṇavatthu)의 부유한 브라만 가문에 태어났다. 어린 브라만은 꼰단냐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자라면서 3가지 베다(Veda. 옛 인도의 성전)와 관상학을 배웠다.
그때 미래의 부처님(보살)께서 도솔천으로부터 내려와서 까삘라왓투의 숫도다나(Suddhodana) 왕의 첫째 왕비인 마하마야(Mahāmāyā)에게 수태되어 태어났다. 이름 짓는 날 왕은 108명의 브라만에게 멋진 새 옷을 선물하고 달콤하고 순수한 우유로 만든 음식을 대접했다. 그는 그들 중 가장 지적인 능력이 뛰어난 브라만 현자 여덟 명을 선발하여 궁정 마당에 차례로 앉게 했다. 그리고서 왕은 어린 태자인 보살을 흰색 린넨 위에 눕혀 놓고 아이의 관상을 보라고 브라만들에게 보여주게 했다.
여덟 명 중 제일 상석에 앉은 브라만이 두 손가락을 V자를 만들어 보이며 예언했다. “만약 이 아이가 재가 생활을 하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입니다. 만약 출가한다면 틀림없이 삼계의 부처님이 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앞의 일곱 브라만은 모두 손가락 두 개를 보여주며 선언했다. 그 여덟 명 중에서 꼰단냐가 가장 어렸다. 예언할 차례가 됐을 때 그는 아주 면밀하게 몸의 특징을 살폈다. (전륜성왕이 될 사람은 발바닥에 전륜성왕 표시가 있어서는 안 되는데, 아이에게 그 표시가 있음을 발견한) 그는 손가락 한 개만 들어 올리고는 대담하게 예언했다 “태자는 결코 가정생활에 파묻혀 있지 않을 것입니다. 태자는 틀림없이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런 다음 현명한 브라만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자기 아들에게 이렇게 훈계했다. “아들아, 나는 이미 늙었기 때문에 숫도다나 왕의 아들인 싯닷타(싯다르타) 태자가 일체지(一切智)를 가진 부처님께서 될 때까지 살 수 없을 것이다. 태자가 부처님께서 되면 너희들은 그의 가르침을 받도록 비구가 되어야 한다.”
숫도다나 왕은 아들을 철저히 보호하면서, 시종들을 비롯한 필요한 것을 모두 제공하면서 아들을 안락하게 키웠다.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태자는 궁전에서 천인처럼 호화롭게 살았고, 스물아홉 살이 되어 지성적으로 보다 성숙해졌을 때, 그는 감각적 쾌락의 허물과 출가의 이익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 라훌라(Rāhula)가 태어나는 날, 시종인 찬나(Channa)를 데리고 왕자의 말 깐다까(Kaṇḍka)에 올라타고, 신들이 열어놓은 성문을 지나서 위대한 출가를 단행했다. 그날 단 하루 밤 동안에 그는 까삘라왓투와 꼴리야(Koliya)와 데와다하(Devadaha)라는 세 개의 도시를 지나서 아노마(Anomā) 강둑에 도착해서, 가띠까라(Ghaṭikāra) 범천이 가져다 준 가사를 입고 수행자 필수품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그는 왕사성(라자가하)에 법랍 60년의 80세인 마하테라와 같은 만족스런 자세로 도착했다. 탁발을 한 다음에, 빤다와(Paṇḍava) 언덕의 그늘에서 식사를 했다. 빔비사라(Bimbisara) 왕이 그에게 자신의 왕국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제안을 뿌리치고, 계속 여행하여 우루웰라(Uruvela) 숲에 도착했다. “오!” 그는 감탄하면서 말했다.
“이 평평한 땅은 아주 쾌적하다! 이곳은 명상에 몰두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장소이다.”
그는 그 숲에 머물면서 고행을 하는 명상 수행을 시작했다.
보살이 출가할 무렵, 꼰단냐를 제외한 다른 브라만들은 모두 죽었다. 가장 젊은 꼰단냐만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 보살이 출가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사망한 브라만들의 아들을 찾아가서 말했다. “싯닷타 태자가 출가했다는데, 태자는 틀림없이 진정한 부처의 지위를 얻을 것이다. 너희들의 부친께서 살아계셨다면 지금 당장 집을 떠날 것이다. 출가하고 싶으면 나를 따라오너라. 위대한 분을 따라서 비구가 되자.” 일곱 명 중에 세 명은 출가를 원하지 않았다. 나머지 네 명만 꼰단냐를 따라서 황색 가사를 입었다.
고행자가 된 다음에, 다섯 명의 수행자들 즉 오비구(pañca-vaggī)들은 마을과 도시에서 탁발을 해 가면서 계속 여행하여 보살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들은
“그는 곧 부처가 될 것이다! 그는 곧 부처가 될 것이다!”
라는 웅대한 희망을 가지고, 보살이 6년간 고행하는 동안 극진히 모셨다. 그런 생각으로 그들은 미래의 부처의 시중을 들면서 주변에 머물렀다.
6년째 되는 해, 보살은 쌀 한 톨, 참깨 한 톨 등만 먹기도 했지만 몸이 녹초가 되고 야위기만 했지, 고행이 성자의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를 얻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세나니(Senānī) 마을에서 탁발해서 밥이나 과자 등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먹었다. 그러자 오비구들은 보살이 수행을 그만두었다고 생각하고 바라나시(Varanasi) 근처의 이시빠따나(Isipatana) 사슴동산을 향해 떠났다.
그렇게 오비구들이 떠난 다음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먹었기 때문에, 보살의 피부와 살과 혈액은 이삼일 안에 정상이 되었다. (깨닫는 날인) 보름날 보살은 장자의 부인인 수자타(Sujātā)가 올린 훌륭한 우유죽을 먹었다. 그리고는 발우를 네란자라(Nerañjarā) 강물에 띄워버리고, 바로 그날 기필코 부처가 되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저녁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칭찬하는 깔라(Kāla) 용왕의 말을 들은 다음에, 위대한 보리수 밑으로 가서 어떤 적에 의해서도 정복되지 않는 금강좌 위에 결가부좌 자세로 동쪽을 향해 앉았다. 네 가지 서원(피부만 남아도 좋다. 힘줄만 남아도 좋다. 뼈만 남아도 좋다. 나의 온몸과 모든 살과 피가 말라 버려도 좋다. 내가 부처가 되기 전에는 이 결과부좌를 절대로 풀지 않겠다.)을 굳건히 세운 다음에, 해가 지기 직전에 마라(마왕)를 물리쳤고, 그날 밤 초경(오후 6시~10시)에 숙명통(전생을 아는 신통력. Pubbenivāsa ñāṇa)을 얻었고, 이경(밤 10시~새벽 2시)에는 천안통(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 Dibba Cakkhu ñāṇa)을 얻었으며, 삼경(새벽 2시~6시)에는 금강석 같이 위대한 그의 위빠사나 지혜로 12연기의 요소(무명(無明), 형성(行, 상카라, 업의 형성), 식(識, 재생연결식), 명색(名色, 정신과 물질), 육입(六入, 眼耳鼻舌身意), 촉(觸, 접촉), 수(受, 느낌), 애(愛, 갈망, 갈애), 취(取, 집착), 유(有, 업의 생성), 생(生), 노사(老死))들을 앞에서부터 뒤로, 뒤에서부터 앞으로 성찰하여, 모든 부처들의 특성인 일체지를 얻었다. 바로 그 금강좌에서 부처님께서는 아라한의 과정(果定. 아라한과의 선정)에 들어 있으면서 7일을 보냈다.
이런 식으로 부처님께서는 일곱 장소에 머무신 다음에 사함빠띠(Sahampati) 범천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누구에게 먼저 법문할까?’를 혼자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그는 스승인 알라라와 우다까가 이미 작고했다는 것을 알았고, 생각을 계속하자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오비구들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그들은 내가 고행을 할 때 나의 시중을 들어주었다. 그들에게 먼저 설법하면 어떨까?’
사실상 고따마 부처님 시대에 꼰단냐 외에 사성제의 의미를 제일 먼저 파악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꼰단냐는 10만 겁 동안 덕행을 쌓아왔으며,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유일하게, 부처님을 필두로 한 승가에 추수할 때마다 아홉 번씩 첫 번째 수확물을 보시했던 것이다.
3. 유일무이한 깨달음의 성취
발우와 가사를 들고 이시빠따나 사슴동산으로 출발한 부처님께서는 오비구들이 있는 장소에 도착하셨다. 비구들은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고 계신 것을 보고 자기들이 의무적으로 하던 시중을 들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부처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시자, 한 명은 발우와 가사를 받고, 다른 한 명은 앉을 자리를 준비하고, 또 다른 한 명은 발 씻을 물을 가져오고, 네 번째 비구는 부처님의 발을 씻겨드리고, 다섯 번째 비구는 부채질하려고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둥근 부채를 가져오는 등 각자가 해야 할 서비스를 해 드렸다.
각자가 해야 할 의무를 마친 다음에 오비구가 부처님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앉자,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지혜를(첨부 참조) 포함한 초전법륜경을 설명하셨다.
마하테라의 새 이름 “안냐시 꼰단냐”
그때 부처님께서는 “꼰단냐 고행자는 내가 수천 가지의 난관을 극복하고 가르치는 사성제를 가장 먼저 깨달았으니, 그는 ‘안냐시(깨달은) 꼰단냐’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다.”라고 생각하시고, 엄숙하게 “안냐시 와따 보 꼰단노(Aññāsi vato bho Koṇḍañño)! 안냐시 와따 보 꼰단노! (아, 꼰단냐가 사성제를 깨달았다! 아, 꼰단냐가 사성제를 깨달았다!)”라고 선언하셨다. 이 엄숙한 선언으로 인하여, 그때부터 꼰단냐 존자는 “안냐시 꼰단냐”라고 불리게 되었다.
4. 사성제를 가장 먼저 깨달은 비구
이리하여 꼰단냐 존자는 부처님께서 깨달은 해인 석가족 기원 103년(석가족 기원 103년: Mahā Era 103. 역주: 서력으로는 B.C. 623년.) 아살하(Āsāḷha, 달의 이름으로 6월-7월에 해당) 보름날 수다원이 되었다. 그 다음날인 16일 밧디야 존자가, 17일에 왑빠 존자가, 18일에 마하나마 존자가, 19일에는 앗사지 존자가 같은 과의 지혜를 얻었다. 20일에는 무아경(비구 일창 담마간다 번역, 『마하시 사야도의 아낫딸락카나숫따 법문-무아특성경 해설』, 불방일, 2021)에 대한 법문을 듣고 다섯 비구들 모두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래서 인간 중에서 아라한은 부처님과 오비구들인 다섯 명의 존자들, 모두 합해서 여섯 분이 되었다.
그때부터 계속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성자의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를 얻은 사람들은, 장자의 아들인 야사를 포함한 55명의 친구들, 깝빠시까(Kappāsika) 숲에서 밧다 왕자 33명, 가야시사(Gayāsīsa) 산에서 불의 설법(첨부 2 참조)을 들은 결발(結髮. 상투) 수행자였던 1,000명 등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성자의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로 인도한 다음, 같은 해 풋사(Phussa, 12월-1월)의 보름날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에 도착하여 빔비사라 왕을 비롯한 11만 명의 브라만 지주들이 수다원과를 얻게 했고, 브라만 지주 만 명을 삼보에 귀의시켰다. 그렇게 부처님께서는 위대한 팔정도와 삼학(계정혜)이라는 가르침을 인도 대륙 전체에 널리 펴셨다. 세월이 지난 다음에, 세존께서는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시면서 부처님의 자리인 법좌에 앉으셔서 법문을 하신 다음에, 가장 연장자인 동시에 사성제를 가장 먼저 깨달은 꼰단냐를 비구 중에서 으뜸이라고 선언하시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성제를 남보다 먼저 깨달은 나의 제자 비구들 중에서도 안냐시 꼰단냐가 으뜸이다.”
5. 아라한이 된 다음의 안냐시 꼰단냐 마하테라
안냐시 꼰단냐 마하테라는 아살하 보름날 아라한위를 얻었다. 그해 부처님께서는 풋사 20일 왕사성에 도착했으며, 마가(Māgha, 1월-2월) 초하룻날에 미래의 상수제자인 사리불 존자와 목건련 존자가 황색 가사를 입었다. 칠 일에 목건련 존자가, 보름날에는 사리불 존자가 아라한이 됐다. 이런 식으로 부처님 시대의 상수제자, 대제자(大弟子), 보통 제자라는 모든 범주의 아라한이 출현하여, 선임자 순으로 줄을 지어 모두 탁발을 다녔다. 부처님께서 법문하실 때에는 한 가운데에 부처님 좌석으로 장식된 법좌에 앉으시고, 부처님의 오른쪽에 법의 장군인 사리불 존자가, 왼쪽에는 목건련 존자가 앉았다.
두 상수제자의 뒤에는 꼰단냐 존자용 좌석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비어 있었다. 나머지 비구들은 꼰단냐 마하테라의 주위에 앉았다. 꼰단냐는 부처님의 법인 사성제를 가장 먼저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나이로 봐도 제일 연장자였기 때문에, 두 명의 상수제자들은 그를 아주 존경해서, 대범천 혹은 거대한 불 혹은 맹독을 가진 뱀으로 여겼다. 자신들이 앞좌석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약간 두려워했다. 그들은 조심스러워했고 쩔쩔맸다. 그래서 꼰단냐 마하테라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두 상수제자들은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1아승지와 10만 겁 동안 바라밀 공덕을 쌓아왔다. 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그들은 조심스러워하고 쩔쩔맨다. 그들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하겠다.” 이것이 꼰단냐 존자의 자리가 비어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게다가 꼰단냐는 영향력이 막강한 마하테라였다. 부처님의 특성과 마찬가지로 마하테라의 특성도 이 우주의 사람들과 1만 우주의 천인과 범천 가운데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므로 천인들과 인간들이 부처님께 향, 꽃 등을 가지고 와서 예경을 드리고, 그 직후에는 꼰단냐 마하테라에게 다가가서 “이 존자는 견줄 데 없는 사성제를 가장 먼저 이해하신 분”임을 상기하면서 예경을 드렸다. 또한 관습적으로 방문객을 맞은 비구는 법문을 하거나 서로 안부를 묻곤 했다. 마하테라는 혼자 과정(果定)에 들어가서 성자의 지복을 누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법문을 한다거나 방문객들과 인사를 하는 것을 번거로운 것으로 생각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인하여 마하테라는 스승과 떨어져 있고 싶어 했다. 그는 여성 브라만인 만따니(Mantānī)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뿐나(Puṇṇa. 역주: 아난다 존자가 수다원이 되게 한 스승)가 유명한 설법자가 되리라는 것을 예견했기에, 브라만 마을인 도나왓투(Doṇavatthu)에 가서 조카를 출가시키고, 그를 세존 주변에 머물도록 하기 위하여 스승과 함께 사는 제자가 되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는 세존께 다가가서 이렇게 말씀 드렸다. “존귀하신 부처님, 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찻단따(Chaddanta) 숲으로 가서 사는 것을 허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허락해 주셨다.
부처님의 허락을 받은 꼰단냐 마하테라는 침구를 꾸리고는, 발우와 가사를 들고 찻단따 숲 속의 만다끼니(Maṇḍākinī) 호수로 갔다. 거기서 마하테라는 8천 마리의 코끼리의 시중을 받으며 살다가, 생을 마감할 때가 되자 부처님께 찾아뵈고 허락을 받은 다음에 찻단따 숲으로 돌아가서 여생을 마쳤다.
첨부 1.
“세 가지 지혜”
역주: 부처님께서는 초전법륜경에서 사성제(고집멸도) 각각에 대해서 세 가지 지혜 즉 사실대로 바르게 아는 지혜인 삿짜 냐나(sacca ñāṇa), 어떤 기능이 행해져야 하는지 아는 지혜인 낏짜(kicca) 냐나, 되돌아봄에 의해서 그 기능이 바르고도 완전하게 행해 졌음을 아는 지혜인 까따(kata) 냐나를 설하셨다. 이 세 가지 지혜가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에 각각 적용되므로 지혜는 모두 열두 가지가 된다.
초전법륜경에서 고성제(괴로움의 진리)의 삿짜 냐나에 해당하는 법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성제다’라고 하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에 대해서, 눈(眼, cakkhu)이, 지식(智, ñāṇa)이, 지혜(慧, 빤냐, 般若, pañña)가, 통찰지(明, vijja)가, 빛(光, āloka)이 나의 내면에 나타났다.”
‘이것이 고성제다’에서 ‘이것’이라는 것은 괴로움 즉 ‘태어남, 늙음, 병, 죽음, 슬픔, 비탄,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 싫어하는 것과의 만남, 좋아하는 것과의 헤어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함’이다. 요컨대 집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가 괴로움이다.
‘이것이 고성제다’라고 아는 것이 삿짜 냐나이다.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특별한 지혜를 ‘눈, 지식, 지혜, 통찰지, 빛’이라고 다섯 가지로 설명하셨지만, 이들은 상윳따 니까야의 주석서에 의하면 지혜의 비슷한 말이다. 왜냐하면 지혜에는 보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눈, 아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지식,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적으로 알기 때문에 지혜, 꿰뚫어 알기 때문에 통찰지, 빛을 발산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빛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설명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서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고성제의 낏짜 냐나에 해당하는 법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 고성제는 바르게 이해되어야 한다.’고 하는……빛이 생겨났다.”
‘이 고성제는 바르게 이해되어야 한다.’라고 아는 것이 낏짜 냐나이다. 고성제를 스스로의 관찰에 의해서 완전히, 바르게, 잘 이해했음을 아는 지혜이다. 즉 고성제에 대해서 어떤 기능이 행해져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는 성자의 도의 지혜를 얻기 전에 알아야 하는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하기 전일지라도, 볼 때 주시함으로써,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고, 생각할 때 주시함으로써, 무상 고 무아를 광범위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을 수행자는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위빠사나 수행 중에도 이 과업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현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서 완전히 주목할 수 있고, 위빠사나 지혜를 완벽하게 계발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주시를 계속하면, 처음에는 잘 모르겠지만, 무엇을 관찰해야 되는지 곧 알게 된다. 이렇게 아는 것이 행해져야 할 기능을 아는 지혜, 낏짜 냐나이다.
고성제의 까따 냐나에 해당하는 법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 고성제는 바르게 이해되었다.’고 하는……빛이 생겨났다.”
까따 냐나는 고성제를 바르고도 완전하게 이해했음을 되돌아봄에 의해서 아는 지혜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과 유사하게, 집성제(괴로움의 원인의 진리), 멸성제(괴로움의 소멸의 진리), 도성제(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진리)를 분명하게 사실대로 바르게 아는 것이 삿짜 냐나이다.
‘고성제는 바르게 이해되어야 한다.’고 아는 것이 고성제에 대한 낏짜 냐나이며, ‘집성제는 제거되어야 한다.’고 아는 것이 집성제에 대한 낏짜 냐나, ‘멸성제는 직접 경험되어야 한다.’고 아는 것이 멸성제에 대한 낏짜 냐나, ‘도성제는 수행에 의해서 계발되어야 한다.’고 아는 것이 도성제에 대한 낏짜 냐나이다.
이러한 네 가지 낏짜 냐나들이 바르고도 완전하게 행해졌음을 아는 것이 각각 고성제에 대한 까따 냐나, 집성제에 대한 까따 냐나, 멸성제에 대한 까따 냐나, 도성제에 대한 까따 냐나이다.
고집멸도 네 가지 진리 각각에 대한 세 가지 지혜 즉 삿짜 냐나와 낏짜 냐나와 까따 냐나를 요약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⑴ 사성제를 도의 지혜를 깨닫는 순간에, 혹은 그 전에, 혹은 그 후에 아는 것이 삿짜 냐나이다.
이것이 ‘고성제다, 집성제다, 멸성제다, 도성제다’라고 바르고도 완전하게 아는 것이 삿짜 냐나이다. 이 지혜는 도의 지혜를 얻기 전에도 나타난다. 수행자가 도의 지혜를 얻기 전에 멸성제나 도성제에 대한 삿짜 냐나를 얻을 수 있는데, 이는 들어서 아는 지혜인 문혜(聞慧)에 불과한 것으로서, 수행의 결과로 실제로 체험하여 아는 지혜인 수혜(修慧)는 아니다.
⑵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무엇을 직접 경험해야 하는지, 무엇을 수행해서 계발하여야 하는지를 사전에 아는 것이 낏짜 냐나이다.
사성제에 대해서 행해져야 하는 ‘괴로움은 완전히 바르게 이해되었다, 원인(갈망)은 제거되어야 한다, 소멸(열반)은 직접 경험되어야 한다, 소멸에 이르는 길(팔정도)은 수행해서 계발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낏짜 냐나이다. 이 지혜는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하기 전에도 일어나고, 도의 지혜가 나타나기 전까지 수행하는 도중에도 일어난다.
⑶ 필요한 기능이 완수되었음을 아는 것이 까따 냐나이다.
세속의 일에 있어서도 해야 될 일이 완수되었을 때 완료되었음을 안다. 마찬가지로 바르게 이해되고, 버리고, 깨닫고, 계발이 완수되는 네 가지 기능이 행해졌을 때, 이 사실을 되돌아봄에 의해서 안다. 이렇게 아는 것이 행해져야 할 것이 완료됐음을 아는 지혜인 까따 냐나이다.
참고자료:
① Translated by U Ko Lay, 『A Great Discourse on the Wheel of Dhamma (Dhamma-cakkappavattana Sutta by The Venerable Mahāsī Sayādaw』, 1995, Buddhasāsana Nuggaha Organization, Mahasi Sāsana Yeiktha, Yangon, Myanmar, 210-240쪽.
② 사문 범라 편역, 『초전법륜경․무아경』위빠사나, 2003, 38-61쪽.
③ 전재성 역주, 『쌍윳따니까야 제11권』,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02, 320-326쪽.
④ 지산 스님 엮음, 『붓다의 길 위빠사나의 길』도서출판 한길, 2005, 118-123쪽)
⑤ http://www.accesstoinsight.org/tipitaka/sn/sn56/sn56.011.than.html
⑥ 사성제에 대해서는 대념처경에 대한 책인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 (보리수선원, 2004) 혹은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 - 대념처경과 그 주석서』 (초기불전연구원, 2004)의 “법(담마)의 관찰” 중의 “네 가지 성스러운(고귀한) 진리” 부분 참고.
첨부 2
“불의 설법”
역주: 한때 세존께서는 가야 지방의 가야시사 산에서 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천 명의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무엇이 불타고 있는가? 눈이 불타고, 형상이 불타고, 안식(眼識)이 불타고, 안촉(眼觸)이 불타고, 안촉으로 인하여 발생한 즐거움과 괴로움, 그리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불타고 있다. 무엇으로 불타는가? 탐욕의 불로 타고, 성냄의 불로 타고, 어리석음의 불로 타고,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으로 불탄다. 귀가 불타고, 소리가 불타고, …… 코가 불타고, 냄새가 불타고, …… 혀가 불타고, 맛이 불타고, …… 몸이 불타고, 촉감이 불타고, …… 마음(意, mind, mano)이 불타고, 법(현상, 마음의 대상)이 불타고, 의식(意識)이 불타고, 의촉(意觸)이 불타고, 의촉으로 인하여 발생한 즐거움과 괴로움, 그리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불타고 있다. 무엇으로 불타는가? 탐욕의 불로 타고, 성냄의 불로 타고, 어리석음의 불로 타고,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으로 불탄다.
비구들이여, 잘 배운 나의 성스런 제자들은 이와 같이 보는 까닭에, 눈도 싫어하고 형상도 싫어하고 안식도 싫어하고 안촉도 싫어하고, 안촉으로 인하여 발생한 즐거움과 괴로움, 그리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싫어한다. 귀도 싫어하고 소리도 싫어하고 …… 코도 싫어하고 냄새도 싫어하고 …… 혀도 싫어하고 맛도 싫어하고 …… 마음도 싫어하고 법도 싫어하고 의식도 싫어하고 의촉도 싫어하고, 의촉으로 인하여 발생한 즐거움과 괴로움, 그리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싫어한다. 싫어하는 까닭에 그것들에 대한 탐욕이 사라져서 해탈한다. 해탈했기에 해탈했다는 지혜가 일어난다.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한 수행은 완성되었고,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났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이렇게 불의 설법을 하셨을 때, 천 명의 비구들은 집착이 사라져 모든 번뇌에서 해탈하였다.
참고 자료:
① 전재성 역주, 『쌍윳따니까야 제6권』,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01, 81-84쪽.
② 최봉수 옮김, 『마하박가1』, 시공사, 1998, 103-106쪽.
③ http://www.accesstoinsight.org/tipitaka/sn/sn35/sn35.028.nym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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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사두사두!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