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지음, 돌베개 출판.
희망 없는 삶 속에서, 생을 깨닫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제목만으로도 어떤 이야기일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한 감옥살이가 아닌 무려 20년간 수감 생활을 하며 가족에게 보낸 저자의 편지라는 것에 놀라웠다. 일반적인 무기징역수라면 미래가 약속되지 않은 삶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저자는 지식인이었던 만큼 삶을 놓지 않고 하루하루 수양을 하며 책을 읽고 정진해 나아가는 정신력이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편지들을 읽으며 사람과 삶에 대한 관찰, 사유, 사색의 깨달음들을 미약하게나마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사람은 나무와 달라서 나이를 더한다고 해서 그저 굵어지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젊음이 신선함을 항상 보증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노'가 원숙이, '소'가 청신함이 되고 안 되고는 그 연월을 안받침하고 있는 체험과 사색의 갈무리 여하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p.280)
인생은 누구나 한번 살다 죽는다. 인생을 잘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그런데 그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저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는다고 다 성인(聖人)이 되는 건 아닌 거 같다.
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매일같이 싸웠고, 아니 매일 싸우지는 않으셨겠지만 내게 남아있는 대부분의 기억은 싸웠던 기억뿐이다. 그리고 불같은 성미의 아버지는 본인의 기분이 안 좋거나 자신의 성미를 건드리면 자식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셨다. 또 매를 들기도 했고 집 밖으로 내쫒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나는 미래에 대한 꿈이 없었다. 되고 싶은 것도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를 혼나지 않고 안전하게 살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그저 흘러 흘러만 갔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부모 곁을 떠나고 싶었고 혼자 살기는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다행히 사랑하는 남자가 옆에 있어 결혼했다.
결혼을 하고는 전업주부를 자처했다. 일하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나의 엄마와는 다르게 전업주부로 집에 있으면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내 맘처럼 키워지지 않았다. 평소에는 잘해주고 예뻐하다가도 아이가 떼를 쓰거나 울면 받아주지 못했다. 순간순간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나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몸서리쳐지게 내가 싫었다. 아이를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육아가 힘들어지면서 나는 심리 상담센터를 찾았다.
그때부터 나는 내 인생을 다시 살기 시작한 것 같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나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육아서도 읽고 학부모 강연도 들으러 다녔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건 들어도 일시적이라고 말하며 변화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노력이 내 몸 안에 조금씩 쌓인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꾸준히 변화시키기에 가장 좋은 것이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다. 나에게도 독서가 필요하지만, 아이가 책을 읽고 자라서 나와는 다르게 현명하게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십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변화했을까? 나 스스로 부정적이던 생각들과 말투들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왜 나만 그런 어린 시절을 겪어야 했냐며 억울해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나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누구나 크든 작든 시련을 겪는 게 인생이고, 나는 조금 이른 시기에 겪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어린 시절 덕분에 오히려 더 일찍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며 살게 되었으니 오히려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지금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괜찮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책을 다 읽고 난 주말, 친정에서 엄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책을 읽고 생각이 많았던 중이라 그랬을까? 우리 엄마에게도 인생을 살면서 터득한 나름의 철학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살아가는 길이 다... 있더라. 나라고 힘든 날 없었겠니. 그럴 때에도 다 살아가는 길이 생기더라. 힘들고 어려운 날 지나 보니 ‘삶은 다 살아가는 길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티비에 보면 힘들어서 죽는 사람들이 있던데 그 고비를 못 참고 죽음을 선택하는 거 같더라. 그때를 견디면 다 살아가는 길이 있는데….”
엄마에게는 나보다 더 다사다난했던 과거가 있다. 육십 평생을 고단하게 살아온 사람은 누구나 철학을 가지게 되는 걸까? 아니,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기에 터득할 수 있었던 걸까? ‘나무는 겨울에도 자라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사실(p.381)’처럼 엄마는 힘겹게 살았기에 훨씬 단단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단한 삶 속에서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내는 사람들 모두 대단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첫댓글 다시 읽어도 어머님 말씀은 참 감동입니다. 그걸 기억하고 기록해서 철학으로 명명해주는 딸이라니, 제가 다 뿌듯합니다. 영경쌤, 좋은 글 써주셔서 + 성실하게 퇴고까지 해주셔서 감사해요 :-)
아주 사소한 부분) 제목에서 삶이 두번 나와서 하나는 생, 혹은 인생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희망 없는 삶 속에서 생의 의미를 깨닫다' 어색한가요? 한번 고려해주세요. 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 문장은 아주 힘이 있는데 다음 단락에서 '나는'이 또 나오니 살짝 지루해지는 감이 있어요. 역시 동어반복. '결혼을 하고는 전업주부를 자처했다.' 이렇게 바꿔도 되지 않을까요? 사소한 제안입니다.
와~ 정인 샘,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조언까지 주셔서 감사해요~
좋네요! ‘희망 없는 삶 속에서, 생의 의미를 깨닫다’
다른 것도 잘 반영할게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