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처럼~’펴낸, 장휘옥 오곡도 명상수련원장
스스로를 섬에 가둔 채 마음은 자유롭게 드나들다
▲ 장휘옥 오곡도명상수련원장은 일본 임제종 대본산에서
간화선을 집중수행하며 900여 차례 독참을 받았다.
독참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은 전장에서 마지막 돌격 같다.
울보였다. 몸도 유약했다. 자존심은 강해 대인기피증을 숨기고 살았다.
희망보다 절망이, 현재보단 내세가 아름답게 보였다.
이 형체 없는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쳤다.
꼭 10년 주기였다.
10대에는 대인공포증을 잊고자 수면제 먹고 자살을 시도했고,
20대에는 전공을 바꿔 동국대 불교학과에 학사편입했다.
30대에는 일본 유학을 떠났고,
40대에는 대학에서 강의와 저술 작업에 몰두했다.
높이 날고 싶었다.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생존보다는 자유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기 위해 비상을 꿈꿨다.
경남 통영 외딴 섬 오곡도에 스스로를 가뒀다.
감옥 같은 곳은 오히려 자유를 선사했다.
‘나’라고 여기던 껍데기를 벗어 내동댕이쳤다. 쉽지 않았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나’를 버리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도교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가마다 시게오 세계 석학의 제자라는 허울,
화엄사상 박사라는 이력,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라는 직업,
안정된 생활…….
2002년 훌쩍 대학강단을 떠났다. 교리와 생활이 하나 되는 삶을 원했다.
오곡도에 폐교된 건물을 명상수련원으로 단장했다.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도반 김사업 교수도 뜻을 같이 했다.
주위에선 말렸다. 교수라는 명함,
불교를 가르칠 인재 부족 등이 이유였다. 이렇게 답했다.
“사과를 아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과 성분이나 모양 등에 대해 분석한 설명을 통해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과를 직접 먹어보고 아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과 이론은 잘 알았고 설명도 잘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사과 맛은 각자가 먹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제 사과를 직접 먹어보고 싶습니다.”
자살 시도했던 소심한 소녀
불교학자 보장된 삶속에서
이론·실천 괴리로 고민하다
간화선수행의 길로 들어서
10여년 간 오곡도에서 정진
“직접 먹어 보지 않는다면
사과 맛은 영영 알 수 없다”
오곡도명상수련원이 외형적으로 자리를 잡자
도반과 세계 유명 불교 수행처로 떠났다.
중국 송나라때 선 전통이 남아있는
일본 임제종 대본산 고가쿠지(向嶽寺)에서
미야모토 다이호 방장스님이 지도하는 간화선 집중수행을,
미얀마 양곤 쉐우민 담마수카 토야에서 위빠사나를,
프랑스 틱낫한 스님이 이끄는 플럼 빌리지에서 여름 집중수련회를 참가했다.
결론은 간화선이었다. 도반과 독참(獨參)이 살아 숨 쉬는 고가쿠지를 택했다.
독참은 스승과 제자가 일대일로 만나 화두에 대해 치열한
선문답을 나누는, 진리를 두고 스승과 제자가 한 치 양보도 없이
겨루는 결전장이다.
2003년부터 고가쿠지 간화선 집중수행에 참여했다.
12월의 고가쿠지 간화선 집중수행은 혹독했다.
영하에도 선방은 온기 한 점 없다. 난방을 전혀 하지 않아서다.
땅바닥은 차디찬 돌바닥, 방석 밑 다다미에서 온기는 사치였다.
한 겨울에도 선방 출입문과 창문은 활짝 열어놓는다.
수면은 하루 약 한 시간. 추운 선방에서 좌선하던 방석 위에 앉은 채
모포만 한 장 두르고 잠깐 눈을 붙일 뿐이다.
아침예불 한 시간, 저녁예불 30분,
제창(참구심을 일깨워 선수행에 매진하게 하기 위한 설법)과
식사, 청소를 제외하곤 오로지 좌선이다.
하루 15시간30분 정도 화두에만 몰두한다.
방장스님과 독참은 매일 1인당 5번. 조주 선사의 ‘무’자 화두를 받았다.
독참 때마다 방장스님은 ‘무’를 봤느냐 물었다. 침묵만 흘렀다.
도무지 뭐가 뭔지 몰랐다. “좌선 중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르겠다”고
답하자 죽비 세례가 날아왔다. 분한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그러나 곧 아직도 분한 마음이 일어나는 ‘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절을 올리고 나니 개운해졌다. 후로도 900여회 독참이 이어졌다.
‘무’자 화두를 참구한 지 몇 년이 지났을 때였다.
좌선 중 어느 순간,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모든 것을 알고 느낄 수 있었다.
우주와 대지, 산과 바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살아 있었고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계속 좌선했다.
방금 앉았으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앉은 듯 한없이 평온했다.
현실에서 만물이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을 했으며
그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으로 온몸이 떨렸다.
그 감동은 며칠간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감동은 초심자와 구참자를 대상으로 한
오곡도 명상수련원(www.ogokdo. net)의 집중수행으로 이어졌다.
오곡도를 거쳐 간 사람은 1000여명.
적어도 선수행으로 생활의 변화를 가져왔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방황하다 입대 전 찾아온 대학생은
삶의 용기를 얻었고, 평판 좋은 회사 중견 간부였던 중년은
퇴직 후 수위로 취직해 마다했던 화장실 청소도
솔선수범하며 행복을 찾았다.
▲ 장휘옥 오곡도명상수련원장이 최근 10여년간의 간화선 수행에세이
‘새처럼 자유롭게 사자처럼 거침없이’를 펴냈다.
장휘옥 오곡도명상수련원장은 최근 수행에세이
‘새처럼 자유롭게 사자처럼 거침없이’를 펴냈다.
길을 헤매고 방황하는 이들과 감동을 나누고 싶어서다.
정신적 자유를 갈망한 ‘10년 주기 발버둥’은
60대에 이르러 날갯짓으로 바뀌었다.
그는 오곡도에 앉았지만 창공으로 깃을 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화두 들고 마음속 불성을 향하는 비상의 날갯짓이리라.
최호승 기자
2014년 1월 22일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