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동네 한 바퀴 - 문경시편 / 12.30(토) 19:10 방송
제251화 다정하다 새재 길 – 문경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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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한 한 해의 끝
2023년 마지막 동네 한 바퀴는
기쁨을 전한다는 뜻을 가진 문희경서의 고장
문경으로 떠난다.
백두대간의 가장 긴 산줄기를 가지며
동서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영강이 흐르는 내륙도시 문경은
문경새재라는 최고의 고갯마루를 품은 산악동네.
굽이굽이 산맥처럼 이야기가 물결치는 그곳엔
고비, 고비 고개 넘어
더 찬란한 내일을 기약하는 기운찬 이들이 산다.
척박하지만 햇살 좋은 곳에 뿌리내린 씨앗은
모진 비바람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문경이라는 터전을 선택해
오래도록 자신만의 세계를 펼쳐가는 진귀한 삶들을
송년 기획 <동네 한 바퀴>에서 만나본다.
▶ ‘길(吉)한 옛길’ 문경새재를 걸으며
예부터 문경새재는 ‘벼슬길’이었다.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연결해 아랫동네 선비라면
한양을 가기 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
뜻이 흉한 추풍령, 죽령과는 달리
그 이름에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고
기뻐한다’라는 길한 의미까지 가졌으니
산이 험준하다 한들 어찌 안 갈 수 있을까.
고개 너머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기대하며,
때론 수없이 주저앉아가며 가는 그 길은
이제 잘 닦인 경북 대표 트래킹 명소가 되었지만
그 길고 긴 역사는 새재 주위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줄기에 남아있다.
문경새재 제2~3관문 코스를 걷던 이만기는
다듬이질 소리에 발길을 멈춘다.
산속에 웬 다듬이질을 하는 여인들이라?
알고 보니 문경새재 아리랑 비 옆에서
아리랑 가락을 전하는 중이라는
문경시 보호문화유산 송옥자 보유자.
제자들과 함께 이 노래를 잇는 건 한 맺힌
조상들의 얼을 지키고 싶어서란다.
선비, 보부상... 구슬프지만 더 창창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수없이 가사를 바꿔 불렀을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 길을 오갔을지. 그 간절한 마음들을 상상하며
이만기는 한 해, 한 고비...
문경새재의 길을 넘어본다.
▶ 아버지의 폐역을 되살린 바리톤의 꿈
불정동 옛 철길을 따라 걷다가 그림 같은 간이역 하나를 만난다.
영강에서 나온 자갈로 만들어졌다는 아담한 폐역,
불정역. 이곳은 석탄 수송로로 이용되다가 폐광과 함께
역할이 끊기며 한때는 지역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는데
지금은 이 역을 되살린 이가 7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다.
가장 기억이 선명한 유년 시절,
최상균 씨는 역장이던 아버지를 따라 불정역 관사에 살았다.
그 어린 소년에게 산과 들로 둘러싸인 역은 마음의 고향이었고
빛나도록 순수하던 한때의 공간. 매일 문경새재를 보며 저
고개 너머엔 어떤 세상이 있을까 궁금해하던 소년은 바리톤이 되어 반세기,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살며 80여 개국을 유랑하고 늘 불정역을 그리워했다.
그렇게 예순, 여행하듯 살던 남자는 연어가 회귀하듯 역으로 돌아와
결국 그곳을 작은 오페라 인형 극장으로 꾸몄다.
아직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생의 마지막 꿈을 이곳에서 펼치고 싶다는 한 폐역 역장,
그의 동화 같은 삶을 들어본다.
▶ 세상의 온기가 되다, 문경의 광부들
석탄 하면 보통 강원도 정선, 태백 등을 떠올리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석탄 광산은 문경에서 시작되었다.
자연히 문경 주민들의 대부분은 광업에 종사했고
산업화를 주도했던 사업인 만큼 1960~80년대까지
문경은 지역 전체 인구가 15만 명 가까이 됐을 정도로 번성한 도시였다.
하지만 매일 꼬박 8시간, 8km의 굴로 들어가 더 많은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 더 깊고 위험한 곳으로 들어갔던
광부들의 삶은 어디 밝기만 했을까.
마스크 한 장 못 끼고 일하던 시절, 목숨을 걸고 했던 광산 생활로
여든이 가까워지는 오늘까지 광부들은
짧은 숨을 몰아쉬며 그날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캤던 석탄들이 한 가정마다 온기가 되었다는 것.
그 온기로 국민들이 그 사납고 거친 겨울을 났다는 것이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삶의 이유가 되어준단다.
지금도 연중행사처럼 삼겹살에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며
동료들과 까만 먼지를 털던 그때를 회상하는
문경의 광부들을 만나 옛이야기들을 나눠본다.
▶ 문경의 작은 인도, 청년 사장과 ‘빠니뿌리’
문경읍 구도심엔 도무지 이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한 인도 간판 하나가 걸려있다.
2년 전 청년 정착 프로그램에 참여해 문경에 와
홀로 인도 음식점을 차렸다는 주인 전찬우 씨는 28살 앞날이 창창한 청년.
호쾌한 웃음만큼 즐거움이 가득한 그의 가게엔
이름도 낯선 인도 요리, 빠니뿌리가 나온다.
다문화 거리도 아니요, 세계 요리 골목도 아닌 이곳에서
문경 주민들을 상대로 한 인도요리라... 이거 가망이 있는 사업일까?
11살에 처음 인도로 가족 여행을 가 인도의 매력에 빠져
유년 시절을 인도에서 보낸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힌디어 전공을 한 후
늘 인도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문경에서 한 달 살이를 하게 되고,
세계 요리의 황무지 같은 이곳에 뜬금없이
인도 문화를 정착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목적은 더 다양한 연령층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가게에서의 새로운 맛, 체험을 통해 다채로운 영감을 얻길 바라는 것.
종교도, 인종도, 문화도 다양한 인도에서
그가 느꼈던 매력을 전파하려는 무모한 도전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라는데. 언제까지가 될진 모르지만
할 수 있는 날까지 이 재밌는 실험을 계속해보고 싶다는
인도 사랑 청년의 빠니뿌리를 맛본다.
▶ 경북 1경을 따라, 진남역 철로 자전거
1955년부터 가은역과 문경역으로 가는 석탄 수송 열차들을 맞이했던 진남역.
1994년 폐광 이후로 진남역의 철로에 더는 열차가 다니지 않지만,
2004년부터 국내 최초의 철로 자전거가 대신 그 길을 지키고 있다.
이곳의 백미는 단연 경북 1경인 진남교반을 볼 수 있다는 것.
더불어 영강의 수려한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편도 25분의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데.
언젠가 수많은 광부들이 오갔을 진남역
탄광 길을 오가며 깊어가는 문경의 겨울을 만끽해본다.
▶ 맨손으로 고기를 잡는 아버지의 애끓는 부정(父情)
상주시에서 발원해 문경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
영강. 이곳에는 한겨울에도 매일 맨손으로 고기를 잡는 한 아버지가 있다.
근처에 식당을 운영하며 오직 100% 생물로만 매운탕을 끓인다는
그의 철칙은 23년째 이어지고 있다는데,
그가 도구도 없이 이 강에 뛰어든 덴 이유가 있다.
막 가정을 꾸렸던 37세에 직장을 잃고 강으로 나온 그는
불현듯 어릴 적 이 영강에서 고기를 잡던 어린 날의 자신을 떠올린다.
유독 고기잡이에 재능이 있어 학교 선생님조차 밀어주던(?)
그의 재능은 수산과 진학으로까지 이어졌지만
어려운 형편에 학업을 중단하고 남들을 따라
‘하고 싶은 일’보단 ‘할 수 있는 일’로 갔다.
하지만 그 ‘할 수 있는 일’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순간,
그는 남은 생을 ‘내가 잘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재능은 역시 고기를 잡는 일.
그때부터 삼 남매 아버지 세국 씨는 가정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 거친 강물로 뛰어들었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견딜 수 있었던 건 역시 자식 때문.
특히 어릴 적부터 총명했던 둘째 딸은 어려운 형편에도
자신의 꿈을 찾아 캐나다에서 약학을 전공했다는데.
허나 몇 년간 협심증, 뇌경색으로 건강이 안 좋아진 아버지가 걱정되어
귀국한 딸은 현재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의 식당을 함께 돕고 있다.
물론 그 모습을 보는 아버지 마음이 그저 기쁘기만 할까.
건강을 회복하며 다시 강으로 나가는 아버지의 어깨엔 늘 삼 남매의 미래가 달려있다.
강으로 갈 수 있는 그 날까지 자식의 영원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싶은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의 매운탕 한 그릇은 부녀의 마음이 담겨 유독 더 뜨겁고 깊다.
▶ 실리콘 밸리에서 산골 양조장으로 온 부부
산 좋고 물 맑기로 이름난 문경엔 좋은 술도가가 많다.
그중에서도 가은 아자개 장터에 터를 잡은 한 작은 양조장이 있었으니,
이곳의 주인은 50대 부부.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귀농해
15년 농사를 짓다가 막걸리를 만들게 된 지 5년째란다.
내로라하는 직장의 반도체 연구원으로 부족한 것 없던 부부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책 한 권에 용기를 얻어 연고도 없는 문경으로 돌연 터를 잡았다는데.
해본 적 없는 농사는 당연히 수월할 리 없었고 방황하던 그때,
희양산자락 아래 술 좋아하는 이웃들을 위해 술이나 만들자 싶어
그들이 생산한 쌀로 술을 만들었다가 예상치 못한 진로를 찾았단다.
과연 이공계 출신의 계산적인(?) 두뇌와 낭만을 꿈꾸는
예술가적 성향이 이 막걸리 제조와 딱 맞았던 것.
덕분에 동네 사람들은 유기농 쌀을 소비해 좋고,
부부는 농사 안 지어서 좋고, 만든 술은 또 농부들에게 돌아가니
상부상조가 이런 게 아닐까. 이제야 비로소 이곳에 온 삶이
만족스럽다는 부부의 술 향기 그득한 발걸음을 함께 해본다.
▶ 98세 현역 방짜 유기장이 전하는 삶의 의미
주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닌, 일일이 망치로 두드려 만드는
방짜 유기는 수십 번의 공정을 거치는 힘의 예술이다.
수천 번의 매질, 그리고 표면을 벗겨내는 가질을 통해
회색빛 방짜 유기는 황금색을 띠며 작품이 된다.
문경의 한 소나무 숲 옆에는 3대가 운영하는 방짜 유기 공장이 있다.
가장 전통 방식으로, 6명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이곳엔 굉음과 불꽃이 연신 반복되는데,
그 과정을 총괄하는 이른바 원대장(방짜 유기 총괄장)은
98세 이봉주 옹. 매일 9시 출근해 퇴근까지 꼬박
작업장을 지키는 그는 누가 뭐래도 현역 자리를 놓지 않는다.
또렷한 말씨, 꼿꼿한 허리만큼 더 놀라운 건 방짜 유기를 향한
이봉주 옹의 굳은 의지. 21세에 홀로 월남해
동향 출신 사람에게 기술을 배우면서 시작된 방짜 유기 일은
유독 시대의 흐름을 타며 위기가 많았다는데.
그 고초를 다 겪으며 그가 깨달은 건 계속 쉬지 않고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요강, 대야부터 시작된 방짜 유기는 소 방울,
귀이개, 안마기 등 다양한 분야로 뻗어가고 있다.
백수를 앞두는 나이에 이젠 일을 좀 놓을 법도 하지만
그에게 방짜 유기는 장수의 비결이자 인생 그 자체.
힘닿는 그 날까지 손끝의 그을음을 달고 살 거라는데.
또 해를 넘겨 내년이면 99세, 이봉주 옹이 깨달은 삶의 의미와
국민들을 향한 한 어른의 지긋한 덕담을 전해본다.
2023년의 마지막 <동네 한 바퀴> 송년 기획 경상북도 문경시 편은
12월 30일 토요일 오후 7시 10분
[251화 다정하다 새재 길 – 경상북도 문경시] 편에서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