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은 출퇴근 수단이다, 장소를 이동하는 교통수단이다, 다 맞다, 근데 여행의 수단도 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지하철완전정복시리즈.
드디어 이 시리즈가 세 번째를 맞게 되었다. 저번의 2호선,5호선에 이어 이번은 6호선을 달려주게 되었다. 그 이유는? 6월달이기 때문에 6호선!!
잘못했다. 사죄드린다. 100% 농담이었다. 사실 6호선에는 독립투사를 비롯해 외국인 선교사까지 이 나라를 위해 평생을 바친 분들과 연관이 있는 장소들이 많다. 때문에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에 맞추어 6호선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신기하게 숫자까지 딱 맞게 되었다.
그러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이 여름, 지하 깊이 서늘한 6호선과 함께 달려보도록 하자.
* 본 기사에 소개되는 곳들의 순서는 지하철 6호선 노선도에서 '서에서 동'으로 움직이는 동선을 기준으로 했다. 그러니까, '응암 순환' 방면에서 '봉화산'방면으로 이동하는 루트다.
노선도를 확인하며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 |
6호선역사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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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휘원 (숭인원)
3번 출구로 나가서 길을 따라서 우회전한 뒤 고가도로 밑의 횡단 보도를 건너 직진하면 길 끝에 다시 횡단 보도가 나온다. 그 횡단보도를 건너 세종대왕 기념관 정문의 오른쪽으로 200m 정도 내려가면 표지가 보인다. |
영휘원과 숭인원은 아주 아담하고 조용한 공원 같은 분위기다. 원은 왕의 왕세자와 그 비의 무덤을 일컫는 것으로써 영휘원에는 순헌 귀비가, 숭인원에는 그녀의 손자인 이진(1921-1922)이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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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영휘원과 숭인원
순헌 귀비(1854-1911)는 민비시해 이후에 고종황제의 총애를 받아 의민 황태자를 낳았다. 신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양정의숙과 진명 여학교 등을 설립하였고 숙명 여학교의 설립에 기부하는 등 근대사학 발전에 크게 공헌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의민 황태자의 아들인 이진은 일본에서 태어나 의민 황태자 내외와 귀국하였을 때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할머니와 채 한 살도 살지 못하고 죽은 손자가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이다(다행히도 할머니는 손자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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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같은 분위기로 애기를 데리고 마실나온 분들이 많았다
왕족들의 무덤이지만 현재는 공원처럼 이용되고 있는 영휘원의 조용한 벤치에 앉아 보면 이곳이 무덤이라는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다. 나무가 많아 그늘이 우거져 있고 우물물처럼 차가운 물이 나오는 식수대가 있어서 그런지 한가로이 산책 나온 사람들이 꽤 있다. 더위에 지치거나 혼자서 조용히 생각을 하고 싶을 때 찾아가면 안성맞춤일듯하다.
이런 사람 꼭 가라 !!
홍릉 수목원에 일요일에 갔다가 빠꾸 맞은 사람
학교 근처의 데이트 장소를 찾고 있는 고대 학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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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1번 출구로 나와 쭉 직진하면 터널에 못 미쳐 입구가 보인다. |
‘석굴암’하면 으례히 경주의 석굴암을 떠올리시는 분들, 서울에도 석굴암이 있다는 것은 모르셨을 터. 약 1200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서울 보문사에 가면 석굴암이 있는데 이 석굴암은 1970년에 만들기 시작해서 완공까지 근 2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총 2,400톤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화강암이 사용된 이 석굴암은 경주의 석굴암과는 달리 문이 세 개인데 공간이 모자라 팔부 신장이 생략되었다고 한다. 팔부신장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신장으로 여러분들도 야차, 아수라, 가루라 등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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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세군데 나있는 보문사의 석굴암
보문사는 고려1115년 예종10년에 창건되었지만 일제 강점기에 황폐화되어 광복이 되면서 중건되었기 때문에 옛날 건물은 현재 조선 영조 때 건축된 대웅전이 유일하다고 한다. 대웅전외에 현재 유형 문화재인 그림을 세 점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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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짙은 보문사의 경내
보문사가 남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1972년에 창단된 동양 유일의 비구니 종단인 보문종의 본사라는 것인데 관리가 잘 되고 있어 경내가 참 깨끗하고 아담하다. 과거 조선 시대의 억불숭유 정책으로 서울의 많은 절들이 산에 있지만 보문사에 오면 녹음이 짙고 매우 고요하므로 산속에 자리잡은 절에 가기 힘든 불교 신자분이 기도하러 오시기에 좋을 듯 싶다. 덧붙여 보문사의 부처님 오신 날의 연등행사는 제법 장관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 꼭 가라 !!
부처님 오신 날에 연등행사를 보고 싶은 보문역 근처의 주민들
경주까진 가지 않고도 석굴암을 보고 싶은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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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 외국인 묘지 공원
7번 출구로 나와 첫번째 골목에서 좌회전한 뒤 오른쪽으로 50m쯤 내려가면 나오는 골목길을 따라 좌회전하면 고가도로 밑으로 표지판이 보인다. |
마포구 합정동의 외국인 묘지공원은 조선시대 양화진 나루터를 수비하던 양화진영이 있던 곳으로 1860년에 조성되었는데 이 곳에는 한국의 은인으로 추앙 받는 헐버트 박사를 포함해 조선말 고종 때부터 우리나라를 위해 공헌한 언론계, 교육계, 종교계 외국인 인사들 500여명이 묻혀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H.B.헐버트)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 (R.캔드릭) 등 그들이 생전에 남긴 말들은 사명 의식에 가득 차 자못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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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풍경의 합정 외국인 묘지
그러나 이 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묘지의 한 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묘들로 부모를 따라 머나먼 이역 땅에 와서 죽음을 맞은 어린이들이 묻혀 있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가슴이 찡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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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들의 무덤이 한 곳에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는 개인의 사연이 새겨져 있는 묘들이 많아 어떤 희망들이 이 사람들을 머나먼 한국까지 오게 했을지 상념에 젖게 한다. 한 때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모두 겪으며 인생을 꾸려가던 사람이 이제는 여기에 누워 있다고 생각하면 나와 상관 없는 타인의 죽음이라는 생각을 뛰어넘는 어떤 애잔함이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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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새겨진 고인의 삶과 죽음의 사연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100년이 넘는 동안(묘지 안에는 100주년 기념 교회가 있다) 공원은 아름드리 나무들과 꽃들로 아름답게 꾸며져 묘지라기보다는 외국의 어느 아름다운 공원을 산책하는 평화로운 기분이 드는데 이국적 풍경을 촬영하기 위해 영화관계자들이 이따끔씩 찾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사람 꼭 가라 !!
역동하던 개화기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
선교사나 해외 지역으로의 자원 봉사자를 꿈꾸는 사람
죽음 앞에 평화롭고 싶은 사람 |
절두산성지(순교기념관)
7번 출구에서 한강 방향으로 곧장 10분 정도 걷는다. |
한국의 근대사와 맞물려 천주교 역사에 큰 아픔으로 남아있는 절두산 순교를 기념하는 성지다. 1866년 병인년, 대원군이 가톨릭교 탄압의 교령을 포고하자 국내에 있던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학살당하고 수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국내 신도 8,000여명도 죽어야 했다. 그때 수많은 사람이 이 자리에서 목이 잘려 숨졌기 때문에 ‘절두산’이라 불리게 됐다.
절두’, 많은 이들의 머리가 잘렸던 곳에서 100여년 전에 신앙을 지키려 목숨을 바친 자들과 오늘날 자기 밥줄을 지키려 신앙을 버리는 자들을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1966년에 병인박해 100년을 기념하는 절두산 순례성당과 순교기념관이 지어졌고 이듬해 절두산 성지 ‘사적 399’호로 지정됐다. 기념관엔 교회사 관련 유물과 문헌자료, 민속품 등을 전시하고 있고 기념성당엔 성인 28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기념관 바깥에선 천주교 신자들에게 가해졌던 고문 형구들,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 김대건 신부의 동상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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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상
천주교 신앙을 마음에 품은 자들과 한국 근대사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자들은 한 번쯤 방문할만한 곳이라 할 수 있다. 근처의 선유도공원과 함께 ‘합정나들이’를 계획해도 좋은 코스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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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 꼭 가라 !!!
천주교 신앙을 마음에 깊이 품은 사람
한국 근대사와 천주교 역사의 한 단면을 목도하고픈 사람
선유도 가는 사람 중에 시간 넉넉한 사람
강바람을 좋아하는 사람 |
여기까지가 6호선의 역사유적이다. 짧다고 생각하시겠지만 6호선도 짧기 때문에 다른 호선에 비해서 역사 유적이 많지 않고 크게 가치가 없는 역사 유적은 생략하였음을 밝혀둔다.
출처 : 노메드 뚜르르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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