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9.공감5시
제목:귀둔리
1.오늘은 귀둔리에 대해서 소개해 주신다고요. 귀둔리 좀 생소한 지역인데요. 먼저 어디에 있는 지역인지가 궁금합니다.?
귀둔리는 인제군 인제읍에 속한 정말 첩첩 산중입니다. 주변에는 온갖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설악산의 한 줄기라 할 수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설악산의 절반 이상이 인제군에 포합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줄기의 하나라 할 수 있는데요. 귀둔리 주변에는 점봉산, 망태암산, 곰배령, 가칠봉, 가리봉, 주걱봉 등이 바로 옆에 빙 둘러 있습니다. 그야말로 산 속에 있는 산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곰배령, 점봉산 하면 귀에 익숙할 것인데요. 바로 귀둔리 옆에 있는 귀둔리 사람들의 삶이 배어 있던 그런 곳이지요.
2. 귀둔리로 가는 길은 어떻게 되나요?
귀둔리로 가는 길은 인제읍에서 기린면 방면으로 가다가 보면 한계령, 북리, 귀둔리가 함께 쓰여 있는 이정표를 만나게 됩니다. 그 길로 조금 들어가면 북리라는 곳이 나오고요. 북리를 지나 산계곡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가면 오른쪽 돌 표석에 귀둔리라는 이정표를 볼 수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빠지지 않고 곧장 가게 되면 필례약수가 있는 필례계곡을 지나서 한계령으로 오르는 길과 만나게 됩니다. 정말 경관 하나는 아름답습니다.
귀둔리에 이르면 산속에 아담하게 마을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산속 마을 치고는 꽤나 크지요.
3. 산속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 정말 가보지 않아도 상상됩니다. 그런데 귀둔리라고 할 때 귀둔의 뜻은 어떻게 되나요?
귀둔을 인제 지역 사람들은 ‘귓뚠이’라고 발음을 하더라고요. 그냥 우리처럼 귀둔리라 하지 않고요. ‘귓뚠’이라고 세계 발음을 합니다. 그 발음을 들으면 왠지 ‘귓가에 있는 둔덕’처럼 아주 외진 마을이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래서 지명유래 책을 찾아봤더니, 귀둔의 옛 이름이 ‘이둔(耳屯)’ 또는 ‘이탄(耳呑)’이라고 했습니다. 귀 이(耳)자를 쓰고 진칠 둔(屯)이나 감추다 또는 숨기다는 뜻의 탄(呑)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귀 뒤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동네에 가서 귀둔의 뜻을 물으면 옛날 서울에 있던 어떤 귀한 사람이 이곳에 와서 숨어 지내서 귀둔(貴屯)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귀둔이라고 할 때 한자가 귀할 귀(貴)자에 진칠 둔(屯)자를 쓰거든요.
그런데 귀둔리의 지명유래를 찾다가 보니, 상당히 재미있는 사실이 있었어요. 곧 군량동(軍糧洞), 군량밭, 쇠물안골, 쉰질매버덩 등이었습니다. 군량동은 군사 군(軍)자에 양식 량(糧)자를 쓰는 데요. 그 뜻을 “쇠물안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군량을 생산해 내는 밭이 있었다고 한다.”고 했고요. 군량밭은 “군량동 앞에 있는 7만여 평의 밭으로 의병난 때 의병들이 양식을 쌓아 두었다고 전해 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쇠물안골은 “의병난 때 의병들이 소와 말을 먹이던 곳”이라 했고요. 쉰질매버덩은 “필례 동쪽에 있는 버덩으로 의병들의 소와 말을 쉬게 하였던 곳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지명들이 의병과 연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 의병이 어느 시대 의병인지 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지명으로 굳어질 정도면 꽤나 오래된 시절이었던 것으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귀둔은 ‘귀 뒤에 있던 작은 들’이 형성된 곳으로 어느 시대 나라를 되찾고자 모인 의병들이 잠시 머물러 있던 곳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4. 귀둔리의 이야기를 들으니, 역사적으로 상당히 의미심장한 곳임을 알 수 있군요. 재미있는 전설도 있을 것 같아요?
의병에 대한 전설이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오로지 지명으로만 남아 있어 아쉽고요. 용소와 점봉산에 얽힌 전설이 있습니다.
용소는 용숫골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곰배골 동북쪽에 있는 소(沼)인데요. 원래는 이곳에 큰 바위가 있었고, 그 바위 위에 날개가 달린 용마가 올라와서 큰 소리를 내며 하늘을 향해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울던 용마가 울지 않았는데요. 그 뒤로 바위가 있던 곳에 큰 소(沼)가 생겼습니다. 깊이가 무려 600척이나 된다고 합니다. 1척이 30cm이니, 그 깊이가 엄청남을 알 수 있지요. 그렇게 그곳에 소가 생긴 후 많는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 용마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소를 용마가 살고 있는 용소라 불렀고요. 이 지방에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들면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살아있는 개를 잡아 피를 소에 흘러내리면 바로 비가 내렸답니다. 신성한 곳을 씻어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5. 그럼 용소가 요이 산 것이 아니라, 용마가 살고 있는 것이네요. 점봉산 전설은 어떻게 되나요?
점봉산(點鳳山)은 인제읍 귀둔리와 기린면 진동리와 양양군 서면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산입니다. 높이가 해발 1,424m나 되는 높은 산이지요. 이 산에는 돈을 찍어내던 이야기가 전합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점봉산 산속에서 사수전이라는 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망치질 하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습니다. 그 소리가 “점봉산 돈 닷 돈, 점봉산 돈 닷 돈”이라고 들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참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해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관가에서 알게 되어 몰래 돈을 만들어 내던 사람이 잡혀 처형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6. 참 뭐든 몰래 해서는 곤란하겠지요. 그런데 귀둔리는 산촌이잖아요. 이 마을의 특산물이 있을 듯한데, 어떤 것이 있나요?
귀둔리는 아무래도 산에서 나는 산물이 특산물이겠지요. 제가 올해(2017) 2월 17일에 귀둔리에 들어가서 마을사람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마을회관에 갔더니, 남자분들은 모두 마을회의에 참석하고, 할머니 몇 분이 회관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분들 가운데 연세가 제일 많은 분이 윤영순이라는 82세 된 할머니였습니다. 윤영순 할머니는 평생을 일만 하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도 점봉산에 가서 산나물을 아주 많이 뜯었다고 했습니다. 나물이 많이 날 때는 산에 올라 산막을 치고 나물을 뜯어 삶아 말려 지고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산에 가서 며칠 동안 지내면서 산나물을 뜯는 것이지요.
산막은 어떻게 치냐고 그러니, 돼지우리 같다고 하더라고요. 돼지우리처럼 나무를 베서 대충 짓는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울을 치고, 아궁이를 만들어서 불을 때고, 웅크리고 자고, 날 새면 나물을 뜯었답니다. 밥은 밖에서 불을 지펴 해 먹고요. 사람 같지도 않았다고 해요. 돼지우리 같은 막 위에는 비닐을 쳐서 이슬과 비를 피하고요. 함석을 가져가서 솥을 걸고, 나물을 뜯어 삶아 널어 말렸다가 지고 내려온답니다. 참나물은 묵나물이 되지 않아서 싱싱한 것을 그대로 뜯어 내려와 팔고요.
어떨 때는 조금 더 뜯으려고 마을에서 점봉산까지 두 번이나 반복을 했는데요. 그때는 허기가 지고 너무 힘들어 몸이 움직이지 않아 정말 죽을 것 같았다고 합니다.
산나물 뜯어 팔며, 자식들 키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았구나 하는 느낌이 가슴에 다가와 울컥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도 시골에 살아서 잘 압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고생을요. 달빛을 낮 삼아 일을 했으니까요.
7. 산나물이 나는 시기가 어떻게 되나요?
산나물은 얼러지가 조금 있으면 눈을 뚫고 나옵니다. 참 부드럽고 맛있는 나물입니다. 국을 끓이면 미역국보다 더 부드럽습니다. 본격적인 나물은 아무래도 5월은 돼야 합니다. 큰 산 나물은 5월 중순 이후가 돼야 본격적으로 출하됩니다. 점봉산 일대의 마을 귀둔리, 북리, 진동리 등의 지역은 산나물을 재배도 많이 하고요. 진동리에서는 축제도 합니다. 택배를 통해 전국으로 유통된다고 하니, 5월 경 주문을 하면 싱싱한 나물을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돼지고기를 삶아서 곰치에 싸먹는 맛은 가히 일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