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원용덕(元容德 1908～1968) 이승만의 오른팔이 된 일제 만주국 군의

[★혁명가☆]

원용덕(元容德 1908～1968)
이승만의 오른팔이 된 일제 만주국 군의

조선국방경비대 초대 사령관, 조선경비사관학교의 교장
1952 부산정치파동을 연출
1953 초대 헌병 총사령관
1953 반공포로 탈출 방조
1954 불온문서투입사건 사주, 김성주 살해․시체유기로 구속


● 베일에 가려진 이승만 정권의 군 실세

흔히 원용덕과 김창룡(金昌龍)을 이승만의 오른팔과 왼팔로 비유한다. 그럴싸한 비유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수뇌부인 이승만이 의도하는 대로 부하들은 수족과 같이 움직인다. 또 수뇌와 수족은 상호 결합되어 일을 함으로써 그 존재 가치가 실현된다. 이런 측면에서 수족과 같은 존재인 원용덕을 살피기 위해서는 그 수뇌인 이승만을 살피지 않을 수 없고 또 그의 협조자이자 경쟁자인 김창룡, 즉 이승만의 왼팔 등 다른 수족도 함께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원용덕 개인의 대표적인 활동에만 국한하려 한다.


그런데 자료를 입수하는 과정에서 원용덕의 신상에 관한 자료가 의외로 적다는 것에 놀랐다. 수십 종의 인명록에도 그의 이름은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인명록들이 등재되는 인물들의 정치․사회․경제적 힘과 명예를 과시하는 수단의 일환으로 간행되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원용덕과 같이 유명한 사람이 실려 있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 자신의 과거 친일 경력이 부끄러워서인가? 그것은 아닌 것 같다. 흔히 우리가 아는 중앙정보부(현 안전기획부), 보안사(현 기무사) 등의 책임자가 당대의 인명록에 오르지 않는 것은 오늘날도 여전하지 않은가. 헌병 총사령관은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두르고 또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는 그런 자리가 아니던가. 그만한 자리에 있고 그런 일을 하는 자들은 자신의 신상명세와 활동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중대한 일과 많은 일을 한다.


최근 들어 박정희(朴正熙) 정권 이래의 중앙정보부나 청와대의 비화를 소개하는 글들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이는 그곳에서 은밀하게 진행된 일들이 그만큼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또한 중대했기 때문이다. 원용덕과 관련된 사실들 역시 그러할 것이다. 원용덕이 헌병 총사령관이 된 이후 거의 모든 사안에 관계했고 또한 막강한 결정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4․19혁명 이전까지 이승만 정권을 지탱하고 있던 핵심 인물 원용덕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더구나 이 글에서 기술된 내용들은 그가 한 행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 의사에서 일제 괴뢰군 장교로

원용덕은 1908년 서울에서 목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본관은 원주(原州)이고 익겸(益謙)을 시조로 하는 시중공파(侍中公派) 계통으로, 본적은 서울시 중구 삼각동이었다. 1931년 그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강릉에서 병원을 개업했다. 그는 서울에서 출생했지만 시중공파의 근거지였던 원주와 영월 등이 속해 있는 강원도와 어떤 연고가 있기 때문에 강릉에서 병원을 개업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강릉에서 병원을 개업한 이듬해인 1932년에 만주로 건너가 일제의 괴뢰군으로 1932년 3월 수립된 만주국의 군대에 군의(軍醫) 장교로 입대했다. 만주육군군의학교(1934년 창설, 4년제)를 정식으로 다닌 것은 아니지만 특임(特任)으로 이 학교를 거쳐 군의로 임명되었는데 해방 당시 그의 계급은 중교(中校, 중좌 혹은 중령에 해당)였다.


그가 어떤 계기로 만주군에 들어갔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의사라는 직업은 정치적 자유와 진출이 제한되던 시기인 일제 식민지시기에 가장 선호도가 높은 직업이었다. 일제가 조선인에게 제한적으로 정치적 진출을 허용했던 지방의회에 의사가 다수 진출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그는 일찍 만주국으로 건너가 만주국의 장교 노릇, 즉 일제의 주구 노릇을 했던가. 만주군은 조선의 독립군, 소련군, 중국군에 대항하는 군대로서 궁극적으로 일제에 봉사하는 군대였다. 그가 비록 군의관으로서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일제의 괴뢰 군대에 입대한 점은 그의 친일적인 성향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더구나 호구지책을 위해 그가 만주군에 들어간 것도 아닌 것을 고려할 때 그의 친일적인 생각과 행위가 매우 악질적인 것일 가능성이 있다.


그는 만주국의 군의가 됨으로써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영광을 누렸다. 그는 한국 초기 군부의 양대 세력(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의 하나인 만주군의 대부가 되었던 것이다. 박정희, 정일권(丁一權), 이주일(李周一) 등 만주군의 핵심을 이루었던 봉천군관학교와 신경군관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그는 만주군 출신 중에서는 가장 연장자였고 상급자였다. 해방 당시에 박정희와 정일권이 28세로 각각 중위와 대위였는데 비해 원용덕은 37세로 중령이었다. 그는 만주국의 수도인 신경에서 조선인 장교단의 단장격으로 조선인 후배들을 돌보아 주는 후견인의 위치에 있었다 한다.


● 일제 괴뢰군 장교가 국군 장군의 핵심이 되다

해방을 가로막고 있던 만주군 소속 조선인들의 대부분은 해방이 되자 광복군을 자칭하거나 광복군에 졸속으로 편제되었다. 또 해방의 공로자로 행세하기도 했다. 원용덕도 해방되기 얼마 전에 봉천으로 전근을 갔다가 해방된 지 며칠 후에 신경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정일권 등과 함께 교민의 보호를 빙자하여 '동북대한민국보안사(일명 신경광복군)'를 설치하여 시세에 따른 변신을 도모했다. 그러나 만주지역에 소련군이 진주하여 만주군은 무장해제 당했고 곧 이어 국공 내전이 벌어졌고 결국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해 갔다. 그러한 국면하에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국공 내전에 참여하기 위해 해방 이후 상당 기간 만주에 머무르던 것과는 달리 민족주의자들과 친일 경력을 지닌 자들은 대부분 은밀하고 산발적으로 국내로 귀환했다. 북한 지역도 이미 원용덕 등의 친일 분자들이 머리를 들고 활동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원용덕은 1945년 말경 평양에서 정일권, 백선엽(白善燁) 등과 함께 논의한 결과 월남을 결행했다. 같은 만주군 출신인 정일권, 백선엽, 백인엽(白仁燁), 김백일(金白一) 등이 그해 12월 월남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북한에 특별한 연고가 없던 원용덕은 이보다 일찍 월남했을 것이다.


원용덕이 월남할 즈음 남한에는 각종 정치 단체가 속출하고 또 각종 사설 군사 단체가 난립하고 있었다. 미군정과 우익 세력은 자신들의 물리적 기반을 확충하는데 공동 보조를 취했다. 또 그 우익 세력의 중심 부분을 이루고 있던 친일 세력이 미군정의 후원하에 반공 친미 세력으로 재등장했다.


조병옥(趙炳玉) 등 우익 세력은 국군예비대의 창설을 주장했으나 미군정은 대외적인 시선을 고려하여 경찰예비대라는 이름으로 군대 창설을 모색하게 되었다. '경찰예비대'는 1945년 11월 13일 국방사령부가 창설되면서 조선국방경비대로 칭해졌다(1946년 6월 15일 이후 통위부와 조선경비대로 각각 개칭). 미군정은 통역관 양성 및 군간부 요원 확보를 위해 1945년 12월 5일 군사영어학교를 설치했다. 일제 시기가 일제에 충성하고 일어 잘하는 군인이 출세하던 시기였다면 미군정기는 미국에 우호적이고 영어 잘하는 군인이 출세하던 시기였다. 미군정으로부터 생도 모집의 위탁을 받은 사람은 일본군 출신 이응준(李應俊), 만주군 출신 원용덕, 중국군 출신 조개옥(趙介玉)이었다. 그런데 중국군이나 광복군 출신들이 대부분 귀국하지도 않았으며 또 흔쾌히 참여하지도 않는 상황하에서 조개옥이 별로 추천권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이응준과 원용덕이 추천을 했다.


군사영어학교는 창군 요원을 준비하기 위한 임시 변통책이었기 때문에 입학 정원과 수학 기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입학 지원자 전부를 입학시켰고, 그후에는 수시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을 입학시켰다. 군사영어학교의 책임자는 리스 소령이었으며 조선인으로는 원용덕이 책임자로서 미군 교장의 보좌관이자 부교장이었다. 이 학교가 폐교되는 1946년 4월 30일까지 200명이 입교하여 110명이 임관되었다. 원용덕 자신도 부교장이자 학생으로서 군번 41번을 부여받았다.


임관된 110명 중 일본군 출신이 87명, 만주군 출신이 21명, 중국군 출신이 2명이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이 다수를 차지했다. 우익 세력에 국한한다 하더라도 창군(創軍)의 주력을 이루어야 할 광복군 출신들 대부분이 귀국하지도 않은 상태였고 또 미군정과 친일 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복군 출신들은 정통성을 내세우며 입교하지도 않았다. 결국 군사영어학교 출신, 즉 민족해방운동 경력이 없는 것은 물론 친일 분자나 친일 혐의가 있는 자들이 국군 창립의 중추가 되었다. 해방 이후 친일파가 친미파로 변신하고 한편 반공을 내걸고 친미 우익 동맹을 결성했듯이 군대도 역시 그러했다 원용덕 자신이 군대 내에서 그러한 전형을 보여 주었고 또 그러한 비극적인 양상을 초래한 일등 공신이었다.


원용덕과 같은 무리의 배후에는 물론 미국이 있었다. 원용덕은 미군정이 필요로 하는 조건, 즉 출세의 조건을 일차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첫째, 그는 이념적으로 철저히 반공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는 목사의 아들이었고 또 북한에 머무르지 않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둘째, 그는 군사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군의관이었기는 하지만 13여 년간의 장교 경험에다 계급은 중령이었으며 또 나이도 37세로 비교적 많은 축에 속했다. 셋째, 그는 영어에도 능통했다 한다. 그가 언제 영어에 능통하게 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미군들과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잘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그가 추천하거나 길러낸 군사영어학교 출신 등 창군의 주역들 역시 그와 이념적 정서적으로 유사한 경향의 인물들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1946년 2월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조선국방경비대의 초대 총사령관이 되었으며, 9월에는 육사의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의 교장을 지냈다. 그는 그후 부대가 전국적으로 창설되는 것과 함께 일선 부대의 지휘관으로 일했다. 1946년 12월 제8연대장(춘천)이 되었고 1년 후인 1947년 12월부터 1949년 1월까지 대령 계급으로서 제2여단장(대전, 제2사단의 전신)직을 맡았다.


제2여단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그는 여수․순천 사건 진압에 관계했다. 1948년 10월 여수․순천 지역에서 제주도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출발 예정이던 군대가 반란을 일으킨 것을 시발로 대규모 민중 봉기가 일어나자 송호성(宋虎聲)을 토벌군 사령관으로 하여 제2여단과 제5여단 등이 파견되었다. 제2여단장인 원용덕도 예하의 제12연대(군산)와 제2연대(대전) 등을 이끌고 현지에 토벌대로 파견되었다. 이때 토벌 부대의 지휘권을 둘러싸고 제5여단장 김백일과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얼마 후 그와 지휘권을 두고 다투던 김백일의 후임으로 1949년 1월에서 5월까지 제5여단장(광주, 제5사단의 전신)을 지냈다.


친일 부역자를 처벌하기 위한 반민족행위특별법도 군 내부의 친일 분자에 대해서는 전혀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군대는 반민족행위 처벌문제에 대해서는 무풍지대였으며 오히려 군대는 반민족 행위자들의 은신처가 되었다. 원용덕 역시 반민특위에 체포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여수․순천 사건 이후 군대 내에 숙군(肅軍)의 태풍이 몰아칠 때도 원용덕의 지위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는데 이는 그의 반공 사상이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가늠하게 해준다.


그는 채병덕(蔡秉德) 참모총장의 측근으로서 1949년 8월 육군본부 행정참모부장을 지냈고,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4월부터는 호국군 참모부장으로 근무했다. 전쟁중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전역했다가 1952년 1월 준장으로 다시 현역에 복귀하여 전쟁중 해체된 제2군단을 백선엽과 함께 복구하여 부군단장으로 부임했다. 원용덕은 부군단장으로 전선에서 잠시 근무하다가 곧 신태영(申泰英) 국방부 장관의 특별보좌관으로 있다가 다시 영남지구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정치 군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 부산정치파동을 연출한 정치 군인

전선에서는 피의 강이 흘러내리는 와중인 1952년, 제2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정치 세력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었다. 이승만은 국회에서의 간접 선거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을 추진했다. 그러나 민국당을 비롯한 야당 세력이 수적 우세를 점하고 있던 국회에서 내각 책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국회 내에서의 수적 열세를 관제 시위와 폭력을 동원하여 누르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갔다. '땃벌떼' '백골단' '민족자결단' 등 정체불명의 폭력배들이 부산 도청에 있던 국회의사당을 포위하고 삐라를 뿌리며 국회의원의 소환과 국회 해산을 강요했다. 이러한 살벌한 분위기하에서 이승만은 장택상(張澤相)을 국무총리, 이범석(李範奭)을 내무부장관으로 임명하는 한편 5월 25일 새벽 0시를 기해 부산 동래를 비롯한 경남의 8개 군과 전북의 6개 군, 전남의 7개 군에 잔여 공비 소탕과 치안 확보를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때 원용덕은 임시 수도 부산이 포함되어 있던 영남지구 계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이날 계엄사령관 원용덕의 지휘하에 48명의 국회의원을 태운 전용버스가 헌병들에게 검색 당하고 10명의 국회의원이 구속되는 사태가 전개되었고, 이러한 살벌한 분위기하에서 마침내 7월 4일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발췌 개헌안이 통과되었다.


이승만은 강압적인 위력을 보이기 위해 육군 참모총장인 이종찬(李鍾贊) 장군에게 1개 사단 병력을 부산에 파견할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종찬은 "국군은 몇몇 정치인의 사병이나 정치 도구가 아니다"라며 파병을 거부했다. 결국 국방부장관의 병력 파견 요청을 거부한 이종찬 총장은 우여곡절 끝에 해임되고 총장에 동조했던 이용문(李龍文) 작전국장과 김종면(金宗勉) 정보국장 등도 좌천되었다. 이종찬 등이 이승만의 정치적 군대 동원을 거부한 상태에서 원용덕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으로 보아 원용덕과 권력 핵심부간의 사전 담합(談合)이나 혹은 군대를 동원하여 야당을 탄압하는 악역을 수행하기에 원용덕이 적임자로 평가되어 영남지구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었던 것이리라. 정권의 기대대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이승만 정권에 대한 충성도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부산정치파동에서 충성도와 능력을 발휘한 원용덕은 1953년 3월 초대 헌병 총사령관이 되었다. 1953년 3월 24일자로 국방부에 헌병 총사령부가 창설되고 이에 원용덕이 초대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이승만은 헌병사령부가 이미 3군에서 헌병을 각각 별도로 운영하고 있으므로 헌병 총사령부를 설치하는 것이 옥상옥(屋上屋)이라는 군 내부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장관 손원일(孫元一)을 통해 당시 군편제와는 별도로 이 기관을 설치하게 했다. 2개 중대 규모로 창설된 헌병총사령부는 형식상 국방부의 관할 하에 있었으나 사실상은 대통령의 직접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특수 부대였다. 결국 헌병 총사령부는 부산정치파동을 솜씨있게 처리한 원용덕을 중심으로 한 친위 부대였으며 김창룡이 지휘하는 특무대와 함께 이승만의 권력을 유지하는 최고 최후의 물리력이었다. 원용덕은 이러한 헌병 총사령부의 사령관직에 있으면서 이승만 정권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 이승만의 오른팔로서 정권 유지를 위한 버팀목이 되었다.


● 반공포로 석방의 모험

휴전 조인이 이루어지기 직전 이승만의 지시로 반공포로가 석방되었는데 이 반공포로 탈출 작전을 총괄 지휘한 것도 원용덕이었다.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이 급진전되는 가운데 이승만은 미국이 주도하는 휴전에 반대하며 최후의 저항으로 반공포로 석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1953년 6월 18일 새벽 2시 부산, 마산, 광주, 논산 등 전국에 산재한 포로수용소에서 2만 7천여 명의 반공포로들이 탈출했다. 포로수용소는 국군의 관할이 아니라 미군의 관할이었다. 다만 미군의 지휘하에 국군의 경비 부대와 헌병이 경비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원용덕의 지시로 포로수용소를 경비하던 한국인 병사들이 같은 시각에 전국의 포로수용소 철조망을 끊고 전등을 꺼 반공포로들의 탈출을 방조했다.


미국은 반공포로 석방이 휴전회담을 파국으로 몰고 갈 것을 우려했다. 또 1950년 7월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미군에 이양할 것을 천명한 대전(大田) 협정을 위반한 것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즉 미군에 전혀 알리지도 않고 국군이 반공포로 탈출 작전을 수행한 것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했다. 또 원용덕은 휴전 직후인 1953년 9월, 송환을 원하지 않는 포로들의 관리를 맡기 위해 인도군 1개 여단이 인천항을 통해 입국했을 때 이들의 판문점행을 막기 위해 철길을 가로막기도 했다. 이들 사건들 때문에 미8군 사령부에서 원용덕에 대해 논의하는 고위급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회의 결과 말썽의 소지가 되는 헌병 총사령부를 군의 편제 속에 포함시키기로 하고 이 부대를 미군의 지원 대상에 넣도록 합의했다.


원용덕은 친미파였지만 이승만에 대한 지나친 충성심과 반공 정신으로 미국으로부터 기피 당했던 것이다. 반공포로 석방 사건으로 인해 그는 미국의 기피 대상 인물이 되고 휴전을 지연시킬 소지를 제공했지만, 한편으로 이승만의 신임을 더욱 확실히 받게 되었으며 중장으로 진급되기도 했다. 휴전에 반대하던 극단적인 반공 노선을 가진 원용덕은 1954년에는 중립국 감시위원단을 철수하라는 경고를 하기도 했다. 마침내 이러한 반공적 충성으로 1955년 6월 군인에 수여되는 최고 훈장인 금성태극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원용덕의 이러한 극단적인 충성과 반공 활동에는 개인적으로도 명암이 교차되었다. 이승만의 총애 속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그는 동시에 갖가지 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되고 경쟁자들의 견제와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또 미국이 독선적인 이승만의 반공노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에 따라 원용덕 역시 헌병사령관 이상 출세하기는 어려웠고, 또 결국에는 이승만 정권의 몰락과 함께 법정에까지 서야 했고,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 불온문서 투입으로 야당 의원들의 사상을 시험하다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폭풍이 휘몰아치고 간 뒤 또 하나의 사건이 정국을 휘몰아쳤다. 1954년 12월 18일 국회의원 신익희(申翼熙), 곽상훈(郭尙勳), 김상돈(金相敦), 김준연(金俊淵), 정일형(鄭一亨), 소선규(蘇宣奎) 등 야당 중진 의원들 집에는 『동아일보』석간과 함께 남북 평화협상을 촉구하는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명의의 호소문이 인쇄된 불온문서가 투입되었다. 12월 20일 본회의에서 김준연 의원은 이 사실을 폭로하며 투입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 내부의 소행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국은 북한의 공작 대원이나 좌익 계열에 의해 투입된 것으로 공식 보고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한 지 20여 일이 지난 후인 다음해 1월 13일 손원일 국방부 장관은 헌병 총사령부 제5부가 중심이 되어 실행한 행위임을 발표했다. 이에 다시 크게 문제화되어 국회 진상조사단이 구성되고 군 고위 간부가 관련되었음을 확인하고 2월 11일 국방부 차관실에서 헌병 총사령관 원용덕의 증언을 들었다. 이때 그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며 이 사건이 자신의 지시 하에 이루어졌음을 인정했다.


불온문서 투입 사건은 현하 미묘한 국제 정세에 편승한 북한 괴뢰 집단의 상투적인 선전인 평화협상론을 지지하여 이를 달성 내지 이에 동조하는 제3세력이 군내에 침투한 사실과 그 증거품인 동 불온 문서를 입수하였음을 계기로 국내 저명 인사, 특히 그들의 적극적인 포섭대상이 될 가능성과 영향력이 큰 야당 의원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의 정도를 파악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므로 본인이 직접 부하인 헌총 제5부장 김진호(金鎭浩) 중령에게 지시한 것이며 …


그리고 그는 군인으로서 정치에 관여한 것에 추궁을 받고 "우리 기관이 과거에 어떠한 일을 하여 왔나 하는 그것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 "자기같이 특수한 군인은 정치에 관여할 수 있다"고 하며 자신의 정치 관여 행위를 억지로 합리화했다.


불온문서 투입은 이승만 정권이 사사오입이라는 기상천외의 변칙으로 개헌을 하자 야당이 호헌동지회를 중심으로 파상 공세를 펴오고 자유당의 소장파 의원들까지 탈당하여 범야당 세력의 규합 기운이 고조되자 이에 호헌동지회를 와해시키려는 목적으로 헌병 총사령부가 시도한 정치 공작이었다. 어쩌면 국회 내에서의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났을 불온문서 투입 사건이 손원일 국방부장관의 돌연한 진상 발표로 인해 더욱 문제가 확대된 데는 원용덕의 지나친 독주와 헌병 총사령부의 정치 개입이 야권은 물론 여권과 군부 내에서도 질시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나 이승만은 원용덕에 대해 확실하고 계속적인 신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장성급 이상의 재판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재가를 필요로 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승만은 3월 23일 "헌병 총사령부는 그러한 것을 아는 것이 그 직책이며 또 헌병 총사령관이 직접 시켜서 행한 것이 알려진 뒤에는 문제될 것이 없으므로 이 일로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군법 회의에 회부 중이던 범인들도 모두 석방되고 말았다.


불온문서 투입 사건을 국회 조사단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사건 실마리가 풀리고 있었다. 즉 헌병 총사령부에 의해 체포 구금된 김성주(金聖柱)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국회에 청원서가 제출되었는데 1년 반이 지난 후 불온문서 투입 실무 책임자인 김진호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그 사건이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었다.


● 김성주 살해 및 시체 유기를 지휘 감독

김성주는 평북 강계 출신으로, 월남한 청년들로 구성된 평양청년회의 사업부장, 섭외부장, 부위원장을 지냈고 서북청년회 등 반공 청년단체의 최선봉에서 활동했다. 김성주가 이러한 반공 활동을 할 때 원용덕은 군 부대장으로 있으면서 이들에게 구호물자를 제공해 주는 막강한 후원자였다. 그 뒤 김성주는 대한청년단으로의 합류시에 본부 요직에서 밀려났으나 전쟁시 평양이 수복되자 유엔군의 임명을 받고 평남지사 대리가 되었으며 또 이승만을 지지하는 대한국민당의 사업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 한국전쟁중 이승만과 갈등으로 인해 김성주는 갑자기 방향을 전환하여 장면(張勉)을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운동을 전개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자 조봉암(曺奉岩) 대통령 후보자의 선거사무차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위와 같은 경력으로 엿볼 수 있듯이 그는 당대의 풍운아였다. 그러나 특히 다음과 같은 김성주의 행적은 이승만과 그의 오른팔 원용덕, 그리고 그의 반공 청년 운동 시절의 동지이자 경쟁자이며 이후 치안국장을 지낸 문봉제(文鳳濟)와의 관계를 악화시켰고, 마침내 그가 체포, 살해되는 원인이 되었다. 김성주는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을 비난하고 또 휴전 반대의 비현실성을 표명한 적이 있었다. 또 이승만의 정적이자 사상이 의심스러운(?) 조봉암의 선거운동에 한때 핵심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 한국전쟁시 평양이 수복되자 김성주가 유엔군의 임명을 받고 평남지사 대리로 활약했는데 이에 이승만은 자신이 이 땅의 통치자인데 자신의 명령을 받지 않는 김성주는 배신자로 여겼다는 것이다.


휴전이 임박하던 1953년 6월 25일 김성주는 을지로 거리에서 헌병들에게 체포되어 육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심문의 초점은 주로 반공포로 석방을 비난한 조병옥과의 연계였다. 그러나 조병옥은 김성주가 한창 심문을 받고 있던 중인 7월 20일 석방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계획은 다시 변경되어 조봉암과의 연계가 주로 심문의 대상이 되었다. 김성주는 고등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1954년 4월 7일에 7년형을 구형받았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 죄목이 고문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언도 공판이 예정된 4월 29일 김성주의 동생이 서대문 육군 제3형무소로 면회하러 갔으나 김성주는 이미 거기에 없었다. 4월 10일로 예정되었던 언도일은 아무런 이유없이 5월 6일로 연기되었다. 5월 6일 재판장을 비롯한 심판관들이 출정하여 공판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피고인이 공판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13일이 지난 5월 19일 국방부 보도과는 "중앙 고등 군법회의는 그동안 국가보안법 위반 살인 예비 및 내란죄로 심의를 받아오던 김성주에게 피의 사실을 인정하여 1954년 5월 6일 사형을 언도하였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판결문에 의하면 서울지법 4호법정에서 사형선고가 있었다. 또 사형 집행 지휘서와 집행 보고서에 의하면 김성주가 사형 선고를 받은 지 23일 뒤인 5월 29일 오전 10시 서울 수색 근처에서 45구경 권총으로 총살형이 집행되었고, 원용덕이 사형 집행의 지휘관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위의 국방부 발표문과 판결문 및 사형 집행 관련 문서들은 조작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김성주가 살해될 당시에도 그의 죽음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는데 가족들의 청원서가 접수되자 1955년 3월 국회에서 특별조사위원회가 가동되었다. 위원회는 김성주가 불법적으로 살해되었다는 사실과 살해범을 대체로 밝히긴 했지만 처벌 문제는 흐지부지 되었다. 이 사건의 내막이 다시 폭로된 것은 4․19혁명 이후 김성주 형제들의 고발을 계기로 해서였다.


군사 재판에서 김성주에게 7년형이 구형되자 이승만은 김성주가 무죄가 될지도 모른다는 원용덕의 보고를 받고, 국방부장관이던 손원일을 통해 '반역자' '극형'이라고 쓰여진 영문 메모를 원용덕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원용덕의 지시로 김성주는 1954년 4월 16일 형무소에서 원용덕의 신당동 관사로 끌려와 5월 29일이 아니라 그날밤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해된 다음 그의 시신은 약 2개월 동안 원용덕의 집 방공호에 묻혀 있다가 6월 10일경 화장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김성주가 이미 살해된 이후에 판결문과 증인 사형 집행 관련 문서들을 치밀하게 조작하여 김성주가 합법적으로 총살된 것으로 꾸몄던 것이다.


● 권력의 별이 떨어지다

원용덕은 1960년 7월 29일 헌병 총사령관직에서 해임당하고, 8월 3일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 한 신문 기사는 연행당하는 원용덕의 사진과 함께 출두 장면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지난 12년동안 이 정권 하에서 3군 수사권을 한 손에 쥐고 뒤흔들던 전 헌병 총사령관 원용덕 중장은 고 김성수 사건에 관련되어 살인 및 시체 유기 혐의로 구속 영장을 받고 3일 아침 8시 25분 삼성(三星)이 빛나는 전용 세단에 몸을 싣고 합동수사본부에 출두 즉각 구속되었다. 야반 불철로 원 중장 자택을 지키던 기자들이 달려들자 원 중장은 별이 번쩍이는 군모를 벗고 '언론계 여러분 너무 수고가 많으십니다. 시국이 혼란한 이때 여러분들은 자숙해 주시기 바랍니다‘고 넌지시 웃는 얼굴로 까닭 모를 경고로 구속 출두 인사(?)를 하며 카메라 앞에서 포즈까지 취해 보이기도 했다(『동아일보』, 1960년 8월 4일자).


군사재판 법무사였던 유춘산(劉春山)은 상부의 지시로 강제로 판결문을 작성했다고 증언했고(7월 30일) 또 사형 집행의 입회 정보관으로 서명 날인되어 있던 노엽(盧葉)도 입회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7월 29일). 합법으로 위장된 살해 사건임을 입증하는 증언과 증거가 잇달았다.


장성들이 이 사건의 심판을 맡지 않으려고 하여 우여곡절 끝에 1960년 9월 19일, 재판장에 김종오〔金鐘五, 후에 장도영(張都暎), 장창국(張昌國) 중장으로 교체 〕중장, 심판관에 이한림(李翰林) 중장, 김형일(金炯一) 중장, 임부택(林富澤) 중장 등 화려한 진용의 육군 고등 군법회의가 용산의 육본 법정에서 열렸다. 원용덕은 군복에 약장(略章)을 달고 입정하여 카메라맨들을 호령하고 그들에게 폭언을 가하는 위용(?)을 보였다. 마침내 1961년 9월 30일 원용덕에게는 파면, 전 급료 몰수, 징역 15년의 판결이 내려졌다. 장창국 재판장은 "창군에 대한 원 중장의 공로와 특히 반공포로 석방에 관한 공로를 참작하고 특히 본 건이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압력으로 감행되었다는 점 등의 정상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김성주 살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자 1960년 12월 김성주의 유가족들에 의해 원용덕 등 5명의 관계자들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도 제기되었다. 이에 재판부는 2년 반 만인 1963년 5월, 유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1백만 원을 지불하도록 했다. 원용덕은 김성주 살해 사건 재판과 함께 '김구(金九) 살해 사건' '불온문서 투입 사건' '장면 부통령 암살 계획 사건' 등에 대해서도 고발당하거나 심문을 받아야 했다.


재판 당시의 신문 기사에 의하면 그의 저택은 장안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큰 규모였으며 호피, 골동품 등으로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었고, 또 이승만에게 극도의 충성을 바쳤듯이 응접실에는 이승만의 서명이 있는 두 폭의 휘호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원용덕 역시 4․19혁명 직후에 그가 호령하던 헌병들에게 이끌려 법정에 피고로 서야 했으며 쉰이 넘은 나이에 감옥살이를 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원용덕은 한 인간을 불법적으로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죄인으로는 관대한 형량을 받았고 또 15년형을 다 채우지 않고 특사로 풀려났다. 그리고 원용덕은 이승만 정권이 몰락하기까지 헌병 총사령관으로 권세를 누리다가 1968년 2월 24일 제명에 죽었다.

□ 임대식(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 참고문헌
대한민국국방부,《국방부사》, 1954.
《근대 36년사》, 공동문화사, 1981.
한용원,《창군》, 박영사, 1984.
백선엽,《군과 나》, 대륙연구소, 1989.
이응준,《회고 90년》, 1982.
고정훈,《비록(秘錄)군》, 동방서원, 1967.
문봉제․선우기성, 「서북청년회」,『중앙일보』, 1972, 12, 21~ 1973, 2, 12.
김태호,《사건야화》, 서음출판사, 1976.
「하우스만 회고록」,『한국일보』, 1990, 10~ 199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