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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랑별파파
이천 년 전 초대교회 시절에는 사도들이 목숨을 걸고
주님의 말씀을 과감하게 선포했으며
그 선포의 심리는 정확하고 거침없었기에 주님의 능력과 역사가
일상다반사처럼 나타났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요즘 교회는
주님이 아닌 사람의 눈치나 보며 비위나 맞추려는 심리로 인하여
복음의 원래 본질이 많이 퇴색하여
초대교회 시절처럼 주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이 거의 없습니다.
능력이 안 나타나는 이유로 인해 은사의 시대는 이미 종료되었고
오직 말씀을 이해하고 머리에 저장하는 수준 정도를 믿음이라고 하며
믿음과 은혜와 구원의 의미를 매우 퇴색시켰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이미 기록되었듯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은사는
반드시 있는 것이고
바울 사도조차도 은사에 대하여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현대는 왜 은사가 안 나타납니까?
은사의 시대가 종료되어서가 아니라, 거듭난 믿음이 거의 없고,
영성이 너무 타락했으므로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염된 파이프에 생수를 흘려보내시겠습니까?
만약 그랬다가는 생수마저 파이프로 인하여 오염됩니다.
주님은 그걸 잘 아시므로 흘려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리 주의자들은
그런 명백한 이유도 모른 채 은사가 종료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는, 귀신의 역사를 받아
귀신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는 가짜은사자들의 난립으로 인해
몇 안 되는 진짜 성령의 은사자들도 귀신의 능력자라 오해받으며
분별 못 하는 사람들로부터 동급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이는 신학적 교리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영성의 문제와 성경의 본질로 접근하여 그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요즘은...
그 당시 사도들이 거침없이 전한 진짜 복음을 듣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교인들 또한 성경에서 복음의 진리를 구하지 않고,
가르치는 목사님들의 입에 더 의지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십 수 년전... 저희 장모님께
그날 담임 목사님이 선포한 설교에 대하여 의향을 물어본 적 있었습니다.
저의 장모님은 대형교회 권사님입니다.
참고로 과거에 제가 다녔던 교회이기도 합니다.
그 교회 담임 목사가 구하고, 두드리고, 찾으라는 것의 의미를
이 땅의 것으로 변질시켜 잘 먹고 잘살라는 육의 것을 구하라는
메시지로 종종 전합니다.
그날 목사님이 선포한 설교 내용을 간추리자면...
"물질이 부족합니까? 물질이 넘치도록 구하십시오.
회사에서 진급이 안 됩니까? 주님께 매달리십시오.
자녀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갖길 원하십니까?
그렇게 되도록 새벽기도회에 열심히 나와 열심히 구하십시오.
주님은 무엇이든 잘 누리며 살라고 물질세계를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는 물질세계의 모든 것을 잘 누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주님의 은혜로 복 받아 본이 되는 모습을 보여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모습들을 유심히 보고 감동하여
그들이 교회에 나와야 그들도 구원의 길에 동참시킬 수 있습니다.
믿고 구하기만 하면 주님은 다 주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큰 산도 옮기는데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사람은 할 수 없으나 주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구했는데도 받지 못했다면 나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었는지
여러분의 믿음을 돌아봐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맞지도 않는 상황에 적용하여
그럴듯하게 짜깁기하며 선포합니다.
결정적으로 목사님은...
말씀 선포대로 구해도 안 되면 어쩌나 근심되어...
여러분들이 구해도 못 받았다면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라며
빠져나갈 출구전략까지 만들며 선포합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인지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분도 살아 호흡하는 동안은 돌이킬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장모님께
예수님께서 주신다는 것은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주님을 갈급하게 찾으며 돌이켜 회개하려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님이라고 성경을 직접 보여주며 증명시켰지만,
성경에 나온 것을 뻔히 보면서도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장모님뿐만이 아닙니다.
그 교회 여러 사람에게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의견을 들어봤지만, 물어본 제가 민망할 정도로
목사님이 선포하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라는 핀잔만 돌아왔습니다.
이분들이 이러는 이유가 있습니다.
목사님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미국 신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담임 목사의 설교를 대단히 신뢰했기에
제가 의문을 가지고 증명하려고 한들
제 말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미 성경의 권위를 뛰어넘었기에
성경의 말씀보다 담임 목사의 설교를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있으나 마나이고
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 된 지 오래입니다.
강대상에서 주로 선포하는 말씀은 대략...
'십자가 보혈 피로 우리는 이미 모두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돌이켜 회개하고 거듭남도 없이 여전히 육의 속성대로 살면서...)
'우리는 주님을 믿었기에 모두 구원받았습니다.'
(믿음은 거듭나 성령의 열매로 증거되는데 그 증거도 없으면서...
그리고 구원의 확신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갖는 것이라는 뜻으로
바울 사도가 기록하였는데 온전한 거듭남도 없으면서...)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이고 은혜로 삽니다.'
(은혜란... 이 땅의 것을 누리면서 나의 육적 모습을 가리고 방어하는
도구가 아니라, 주님을 간절히 찾는 자들을 거듭남으로 이끌며,
거듭난 자가 구원의 첩경에 넘어지지 않고 전진하도록 부어주시는
생명의 능력인데...)
'여러분은 이미
주님께 붙잡힌 바 되어 주님의 견인과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교회 안에서와 밖에서의 모습이 전혀 다른데...
그렇게 하도록 주님께서 은혜 주시고 견인하셨을까요?)
'여러분은 이제 주님을 입으로 인정했기에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로마서에 분명히 기록되었는데...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주인이 되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데, 여전히 육의 속성으로 살면서...)
이런 선포에 아멘~소리가 교회 밖까지 우렁차게 들립니다.
성경을 보면 자기를 부인, 좁은 길, 십자가의 길, 회개, 거듭남, 열매...
천국은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가는 곳이라고 하셔서...
예수님의 이 모든 말씀이 너무 부담이 많아 힘들었는데,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이런 부담감을 다 멸하고
밑도 끝도 없이 믿기만 하면 은혜로 구원받고,
무조건 구원을 확신하라고 하니
목사님의 이런 선포가 얼마나 반가운지 마음의 짐을 덜어주셔서
심적 자유함으로 인하여 모든 부담감에서 벗어낫기에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인해 매우 환호합니다.
마치 모든 과정을 편하게 생략하고
축지법을 써서 천국에 쉽게 가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들은 이것을 자유함이라고 하고, 믿음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보다 목사님의 말씀에 더 환호합니다.
저는 강대상에서 이렇게 선포하는 목사님들을 보면
제가 어릴 때 흔히 보던 딱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럴듯한 입담으로 청중들을 꾀어
밀가루로 제작된 가짜 약을 파는 약장사와 오버랩됩니다.
심한 표현을 써서 좀 그렇지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약을 팔고 있습니다.
그것도 먹으면 죽는 맹독이 들어간 약을 말입니다...
이런 가짜 복음이 선포되니 교회에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어떻게 주님께서 이런 선생들과 함께하시겠습니까...
성경의 권위를 뛰어넘어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믿음과 은혜와 구원을 성경의 본질이 아닌,
사람의 생각으로 막 선포하는데 무슨 주님의 역사가 있겠습니까...
주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니 자신들을 기준 삼아
은사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하며
주관적인 생각으로 함부로 교리를 만들어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럼 요즘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의 온전한 개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믿음의 정확한 진리를 선포하지 않고 그냥 막연히 믿으라고만 하며
믿음으로 다 된다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뭉뚱그려 믿음을 선포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만 선포하면
듣는 이들이 자기 입맛대로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오류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진짜 개념이 무엇인지 뜬구름 잡듯 가르치지 말고
정확하게 가르쳐야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려는 오류가 사라집니다.
온전한 믿음은...
자기를 철저히 부인하고 회개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 안에는 자기를 부인, 회개, 거듭남, 순종, 성령의 열매가
모두 포함되어 내가 십자가에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주인이 되어
이것이 삶의 열매로 억지로가 아닌 자연스럽게 나와야 진짜 믿음입니다.
삶이 없이 머릿속에서만 왔다 갔다 하는 신학 이론은 믿음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선포가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게 가장 힘들고 어렵고 대단히 부담스러워합니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육적 미련이 많기에 고민하고 좌절합니다.
세상 것을 의지하고 누리는 사람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단호하게 돌이키려는 엄청난 각오가 선제되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러하기에 좁은 문, 좁은 길,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런 진리는 교인들이 너무나 부담스러워하기에
거듭나 주님의 쓰임을 받는 선생이 아니면 거의 선포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믿음으로 들어가는 첫 단추인데
처음부터 빗나가니 온전한 믿음이 성립될 리 없습니다.
온전한 회개의 선포가 없습니다.
믿음 안에 이미 회개가 다 들어있다고 가르칩니다.
그 말은 옳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는 자신을 부인하고 돌이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완전히 굴복하여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한다는 선언과 함께
'내가 죽고 주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게 하소서'라는 영성으로
마음을 찢으며 애통하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진정환 회개는 입술만의 고백이 아니라,
내 마음의 전적인 변화로 옛 모습을 완전히 탈피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습에서 완전히 돌아선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그리고...
회개했으면 당연히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분명히 있습니다.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입술만의 고백으로 그친 가짜 회개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그리 나왔기에 그대로 믿으셔야 합니다.
이를 믿지 않는다면 내가 믿노라 하는 것도
다 내 편의에 맞춰 내가 만든 헛된 믿음(교리적 믿음)일 뿐입니다.
온전한 거듭남(주님의 영접)의 선포가 없습니다.
거듭남은 자기를 단호하게 부인하려는 사람이 간절히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께서
내 안에 인격적으로 실제 오시는 영적인 현상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거듭남이 곧, 참믿음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입교식 때 관념적으로 주님을 인식하고
입술로 시인한 것을 주님의 영접이요,
거듭남이라고 잘못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삶의 변화됨이 전혀 없이
자신은 주님을 영접하여 거듭나 구원받는다고 확신하는
잘못된 착각에 빠지게 하여 진짜 거듭날 기회조차 박탈시킵니다.
이천 년 전 당시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곧,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 당시 초대교회에 대한 살인적인 핍박으로 인해 목숨을 걸어야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할 수 있었던 시대입니다.
이는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절대 입으로 시인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교회에서는 그 당시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상황인데도
지금을 그때와 동일시 하여 입술로 시인만 하면
거듭남이고 주님을 영접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지금 입술로 시인하면 주님이 영접되었다는 분들을
이천 년 전 당시의 분위기가 지금 다시 도래한다면 과연 몇 명이나
목숨을 걸고 입으로 시인하겠습니까...
아마... 이를 가르치는 목사님들 조차도
그 살벌한 상황에서 입술로 시인 못 하는 분들이 넘쳐날 것입니다.
그 예가 이미, 일제 강점기에 수많은 목사님들과 교인들이
죽음이 두려워 예수님을 배신하고
신사참배에 굴복한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분들처럼 성령으로 거듭나
입술로 주님을 진짜 시인한 몇몇 분들은 거의 다 목숨을 잃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이는 역사적 고증만으로도 이미 증거되었습니다.
하물며,
일제 때보다 더 떨어지는 지금 시대의 영성으로 입술만의 시인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입으로 시인했으니 자신은 주님을 영접했다고 확신하는 분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초대교회 당시의 살벌한 상황으로 되돌려
시뮬레이션을 해 보십시오.
그런 상황이라도 진짜 입술로 시인할 자신이 있는 분들은
그 시인이 성경에 기록된 합당한 시인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성경을 인용하더라도 그때 상황이 어떠하였는지...
분명히 따져가며 인용해야 정확하고 무리가 없습니다.
보혈 피에 대하여 온전한 가르침이 없습니다.
보혈 피를 인정하고 의존만 하면 내 죄가 사해졌다고 가르칩니다.
보혈 피는 분명 모든 인류에게 허락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혈 피는
진정한 돌이킴과 회개를 전제로만 뿌려지는 피입니다.
거듭나는 회개도 없는데
어찌 보혈 피가 아무에게나 막 뿌려지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교회만 다닌다는 이유로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보혈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아야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간절한 거듭남의 회개 없이 여기저기 막 적용하는 보혈 피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해서도 안 됩니다.
거듭남에 이르는 회개도 없이
그런 식으로 다 죄가 용서되어 모두 천국에 들어간다면
천국은 바로 오염될 것이고, 지옥 가는 교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옥에 갈 자는 넘쳐나고
구원받을 자는 아주 적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것이기에 절대 믿어야 합니다.
내 임의대로 혹은 교리를 만들어
이리저리 비틀어 천국 문을 넓혀 사람들을 안심시켜 기쁘게 한들
복음의 본질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 피는 거듭남에 이르는 회개가 전제되지 아니하면
그 누구에게도 절대 뿌려지지도 않고 전혀 상관도 없습니다.
온전한 은혜의 선포가 없습니다.
그저 은혜로 다 된다고만 하며 누리라고만 뭉뚱그려 가르칠 뿐,
은혜의 정의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은혜를 내 편의대로 적용하여 덧씌우려고 합니다.
여전히 육의 속성으로 살면서 은혜로 산다고 자기 자신을 속입니다.
이 땅에서 무엇을 하든 다 용서되고 허용되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저 은혜만 앞세우면...
내 육적 모습을 다 무마시키는 용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주님의 말씀대로 사냐고 따지면서...
말씀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은혜가 필요하다고 하며
은혜의 명분 뒤에 숨어서 자신을 육적 모습을 정당화시킵니다.
이런 식으로 은헤를 남용하다가는 결국, 죄와 타협하게 되고,
심장은 점점 차가워져 죄를 죄를 여기지 않게되어
양심에 화인맞게 됩니다.
은혜는 절대!!!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죄를 무마하기 위해 은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죄 없다함을 받기 위해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땅은 천국이 아닌 사단이 공중권세 잡은 곳이기에
얼마든지 거듭난 자에게도 죄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매일 옷을 빨듯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은혜는...
내가 이 땅에서 육적인 본능대로 살도록 하는 허가증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베푸시는 능력입니다.
자동차는 연료가 없으면 앞으로 전진 못 하듯...
비록 거듭난 그리스도인조차도
주님의 은혜가 부어지지 않으면 천국을 침노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매일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거듭난 사람에게 영적 은혜가 없으면
단 하루라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매우 괴로워합니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이 없어 괴로워하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못 사니까 은혜가 필요하다는 의미는
성경에 기록된바 없는 사람이 만든 유전(교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육의 속성대로 살면서 은혜를 앞세워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변명하거나 정당화하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회개를 해야 마땅합니다.
열매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선포가 없습니다.
열매를 말하면 행위라고 하며 대단히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거듭남의 온전한 믿음이 없기에 열매가 있을 리 없으므로
오직 믿음과 은혜라는 말에만 기대고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열매는...
간절히 회개하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성령님과 함께하셔서
육의 속성으로 살던 옛사람이 완전히 죽고,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으로 인하여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주님의 거룩한 성품)가
삶에서 그대로 나타나도록 하시기에
그 모습 그대로 사는 것이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진짜 사랑하기에 주님만 붙잡을 수밖에 없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기에 이웃의 어려움을 보면
참지 못하고 긍휼한 마음에 그들을 위로하려고 하며,
거듭나기 전에는 참지 못하던 성격이
성령으로 인하여 억지로가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인내하게 되고,
세상에 빠지지 않고 절제하려는 강력한 마음이 들어서고,
늘 주님으로 인하여 기쁨이 떠나지 아니하며,
남들이 나를 자극하고 힘들게 해도... 이에 분한 마음은 삭아지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구원받을 수 있도록 전도에 힘쓰게 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인하여 내가 속한 공동체에 항상 덕을 끼쳐
분란이 없고 합심으로 이끌려지게 하고,
세상 것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께만 절대 충성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열매입니다.
즉, 내가 주님께 접붙임(거듭남) 당해 주님의 거룩한 성품이
자연스럽게 내 안에 흘러들어 나타나는 현상이고,
이런 모습이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열매가 자신에게 안 보이니 열매란 말을 들으면
스트레스받고, 열매를 운운하는 사람들을 향해
행위적 믿음이라며 맹렬히 비난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그날에 이르러 열매를 찾겠다고 하셨습니다.
즉, 거듭난 온전한 믿음인지를 보시겠다는 추상같은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믿음은 열매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상급에 불과하다는 논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며,
열매의 본질이 아직 무엇인지 모르기에 하는 소리입니다.
열매는 상급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열매가 없다는 것은 거듭나지 않았음을 증거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구원과 거리가 멉니다.
그러므로, 믿노라 한다면 당연할 정도로 성령으로 거듭나
그날이 되어 주님께서 보이라고 하는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휴거의 선포가 없습니다.
이는 과거 수많은 단체에 의하여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오직 주님만이 아신다는 휴거 날짜를
마귀의 뀀에 빠져 날짜를 함부로 남발했고,
특히나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이슈화된
다미선교회의 결정적인 공로(?)로 인하여
휴거를 말하면 마치 시한부 종말론자로 의심받을까 두려워
함부로 선포하길 꺼립니다.
그러므로 휴거에 대한 의식이 거의 없습니다.
휴거는 반드시 있는 것이기에 성경의 진리대로 꼭 선포해야 하고,
믿는 이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성령으로 거듭나, 기름이 항상 준비된 상태로 있어야 합니다.
WCC, 배교등 종교통합으로 인한 폐해에 대한 선포가 없습니다.
이는 WCC에 가입된 교회와 목사들이 많고,
WCC의 폐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목사님들로 인하여
쉬쉬하는 분위기이고 심지어는 WCC에 대하여 적극 옹호하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또는, 뒤늦게 WCC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런 단체인지 몰랐다며
회개 없이 변명으로 일관하며 뒤로 숨으려고 합니다.
WCC는 주님을 굉장히 멸시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
이렇게 현대 교회들이 잘 선포하지 않는 목록에 대하여 정리해봤습니다.
이런 근본적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르치는 선생이 아직 거듭남에 이르지 않았기에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이 없으므로 배운 지식에만 의존해서
자기 능력으로만 가르치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목회는 내 힘으로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헛된 지식을 남발하여 그 많은 양들을
주님이 아닌 자신을 따르게 하며 배나 지옥 자식으로 만들게 됩니다.
배운 교리에만 의존하다 보면 심령을 깨우는 설교가 아니라,
오히려 영을 더 잠재우며 삶은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지식신앙으로만 끝나게 하여
메아리만 요란한 말뿐인 가르침이 됩니다.
또한,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입술로만 이렇다 저렇다 하지 마시고,
본인도 자신의 입술에서 선포되는 올바른 삶의 모습이 보여져야 합니다.
양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막상 본인이 그렇지 못하다면 그 선포되는 말씀이 능력도 안 될 것이며,
양들을 변화시킬 수 없는 약 파는 약장사의 이미지만 씌워질 것입니다.
그저 거듭남으로의 변화도 없이 입술로만 '주여주여'를 외치게 하는
지식 교인들만 대량으로 양산시킬 뿐입니다.
주님은 진리의 말씀대로 선포하고 그 말씀 그대로 사는 사역자들과
함께하시며 역사와 능력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야 배우는 양들도 주님이 함께하셔서 변화되는 은혜가 나타납니다.
가르치는 분들은 정확한 진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비록 사람들이 그 온전한 진리를 거부하고 힘들어할지라도
그들의 눈빛을 의식하지 말고 주님만 믿고
초대교회의 사도들처럼 담대하게 선포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의 대열에 동참시킬 수 있습니다.
교인의 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성경의 본질대로 바르게 가르쳐서 교인들이 한 명이라도 더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교인 수와 헌금에만 연연하며 교인들 눈치만 보게 되다가
정작 모든 양들을 지옥 자식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선생 된 자의 책임이 훨씬 더 크기에
구원받아 천국에 가면 그 상급이 더 크고 귀하며,
지옥에 가면 그가 받을 형벌이 더욱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진리를 훼손하고 복음의 본질을 가려서
사람들을 안심시킨 후 지옥으로 보내려 합니다.
우리는 마귀가 가리려는 복음의 본질을 끄집어내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세상의 복음에 이미 중독된 사람들이 복음의 본질을 믿으려 하지 않기에
본질을 전하는 분들을 많이 핍박할 것입니다.
저 역시 목숨까지 위협받는 게 이제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은 훼손되어서도 안 되며,
반드시 이 세상에서 빛을 발해야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구원의 대열에 속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올바른 진리를 선포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때입니다.
마귀와 하나님의 자녀 간에 사생결단의 영적 전쟁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
두려움 없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