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연의 어머니 김애리 씨가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자택에서 딸이 받은 트로피(아시아축구연맹 선정 19세 이하 여자대회 최우수선수상)와 국가대표 유니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홍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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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한국을 8강으로 이끈 지소연(19·한양여대)의 뒤에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 김애리 씨(43)는 딸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남편과 갈라선 뒤 네 차례나 큰 수술을 받는 힘겨운 나날 속에서도 딸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했다. 26일 오전 1시 멕시코와의 8강전을 앞두고 있는 딸을 떠올리며 모처럼 편지를 쓴 어머니의 마음에는 간절한 바람이 배어 나온다.》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겸손한 마음 갖게 해주시고….”
사랑하는 딸, 소연아. 엄마는 오늘 새벽에도 너에 대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단다. 그 큰 부담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고생하는 너를 생각하면 기도밖에 해줄 게 없는 엄마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야.
엄마는 지난번 미국전이 끝난 뒤 전화로 들려온 너의 목소리가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축구에서만큼은 누구한테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잖아. 배가 아파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아쉽게 졌으니…. 그런데도 엄마가 걱정할까봐 애써 괜찮다고 말하는 너를 보면서, 또 다친 동료의 부상이 심하지 않아 다행이란 말을 가장 먼저 꺼내는 너를 보면서 ‘우리 딸, 이제 다 컸네’라는 생각을 또 한 번 했단다.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아경기에 출전한 지소연이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중거리슛을 날리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
소연아, 엄마는 요즘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야. 주변 분들이 밖에만 나가면 “딸 정말 잘 키웠다”고 말해 주시거든. 얼마 전엔 숭연이랑 식당에 갔는데 점심 값을 안 받겠다고 하시더라. 소연이가 시원한 골로 점심 값을 대신하면 된다면서. 엄마가 다니는 병원 의사 선생님도 “딸이 이렇게 대견스러운데 엄마도 뒤지지 않으려면 빨리 건강해져야 되지 않겠느냐”고 걱정해 주시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고마운 분들을 위해서라도 소연이는 최선을 다하고, 엄마도 빨리 건강해져 응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딸이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뛸 만큼 훌쩍 큰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옛날 생각을 많이 했어. 소연이가 처음 축구화를 신었을 때부터 모든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치더라.
초등학교 2학년이던 네가 처음 축구 선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반대했었지. 다칠까 걱정됐거든. 그런데 평소 엄마 말이라면 한 번도 어기지 않던 네가 축구에서만큼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고 결국 마음을 열었어. 허락은 했지만 사실 이후에도 말리고 싶은 마음은 숱하게 들었단다. 넌 부상을 당해도 가족이 걱정할까봐 아픈 내색조차 하지 않았잖아. 합숙이 끝난 뒤 집에 와 곯아떨어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고.
어쨌든 엄마는 모든 고난을 혼자 힘으로 이겨내고 우뚝 선 소연이가 정말 자랑스럽다. 얼마 전 엄마가 “한국에 돌아오면 남자 친구도 한번 사귀어 보고 결혼도 일찍 하라”고 했더니 네가 그랬었지. 결혼은 엄마 병 다 치료하고, 동생 대학 졸업시킨 뒤 서른 살 넘어 하겠다고. 또 매번 그랬잖아. “실업 팀 가면 월급 나오니까 엄마는 공장일 하지 마. 내가 다 할게”라고.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엄마는 내색은 안 해도 가슴으로 울었단다. 해준 것도 없는데 항상 가족부터 생각하는 너를 보며 하늘이 우리 집에 천사를 내려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었어.
소연아. 엄마는 사실 요즘 네 경기만 보면 심장이 두근거려 응원할 정신도 없단다. 그래도 국민이 함께 보고 응원해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소연이는 경기를 앞두고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 밤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하겠지. 엄마도 함께 기도할게. 우리 딸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