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시 107:9절
제 목 :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신다
일 시 : 2017. 8. 2.
시편 107:9/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여러분은 매일 만족하는 삶을 사십니까? 여러분의 삶에는 날마다 좋은 것들로 가득 찹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모하지 않았거나 심령이 가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굶주림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아서 만족함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고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자에게 만족을 주시고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사모하다란 솨카크라고 하는데 (맹수처럼)뛰어다니다, 함축적으로 탐욕스럽게 찾다, 식욕이 있다, 서로 밀다, 갈망하다, 헤매다, (이리저리)달리다 라는 뜻입니다. 사모하다란 굶주린 사자가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을 연상시켜주는 단어이며, 몹시 갈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하는 것이 채워질 때까지 멈추지 않고 뛰어다니는 것을 의미합니다. 몹시 굶주리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먹이를 찾아 뛰어다니는 것이 사모하다 라는 단어의 참된 뜻입니다.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을 찾아다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주린이란 라에브라고 하는데 배고픈, (다소 강도가 강하게)배고파 쓰린, 주린 이라는 뜻입니다. 너무 배고파서 속이 쓰릴 정도로 굶주린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사모하는 것과 영적인 굶주림은 예수 믿는 자의 건강한 본성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하루 세끼의 식사를 하지 않으면 배가 고파서 견딜 수 없듯이 우리의 영혼도 순간순간 예수님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굶주리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없이도 굶주림을 느끼지 않는 다는 것은 영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굶주림이 있어야 주님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을 찾게 되면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켜 주시며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좋은 것이란 토브라고 하는데 아름다운, 최선의, 풍부한, 쾌활한, 선한, 자비롭게, 기쁘게, 친절하게, 최고로, 값진, 달콤한, 재산, 부귀, 잘되다 라는 뜻입니다.
만족시키다는 싸베아 라고 하는데 충분히 만족시키다, 충분하게 하다, (충분히)채우다, 충분하다, 가득차다, 물리게 하다, 만족하다, 자족하다, 싫증나다 라는 뜻입니다. 맛 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나면 어떤 음식을 봐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예수님으로 채워지게 되면 세상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게 됩니다. 주님 때문에 만족하게 되고 주님 때문에 기뻐하고 행복하게 됩니다. 그러면 또 다시 주님을 더 많이, 더 강하게 찾게 되는 것입니다. 시105:3-4/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4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겁기 때문에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하면서 주님으로 인하여 얻게 되는 기쁨과 감격을 맛본 사람은 반드시 계속해서 주님의 얼굴을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또 다른 기도로 인도합니다. 계속해서 기도하게 합니다. 이것은 주님을 경험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와 복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경험한 사람들은 주님의 얼굴을 구할 때마다 얼마나 좋은 것을 주실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을 주실지, 얼마나 멋진 것을 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대하게 됩니다. 이것이 반복되어 하나님은 자신을 사모하고 바라고 기대하는 자에게 또 다시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만족하는 삶, 그 기쁨과 즐거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또 다시 주님을 찾게 되는 것, 이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계속해서 주님을 찾고 주님을 구하는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찾을 때마다 우리에게 주실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하신 후에 마7: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정말 멋진 말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악한 부모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조폭이라도 자신의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합니다. 살인마로 감옥에 갇혔어도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즉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것은 말하면 잔소리이다라는 뜻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지 않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없어서 못 주는 안타까운 경우는 있어도, 차고 넘치는데도 아무 것도 주지 않고 자식을 골탕먹이는 부모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롬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사랑하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 주셨다면 그 아들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연히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입니다. 아들을 보내 주셔서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한다면 왜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아들 예수님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들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아들과 함께 보내실 모든 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자신의 아들에게 있습니다. 세 초부터 세 말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아들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예수님을 모시고 높이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복을 놓쳐 버리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놀라운 사실을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 주신 아들 예수님을 가장 귀하게 생각하고,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고, 아들 예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약1:17/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고 싶어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입니까?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높이고 존귀하게 여길 때입니다.
롬5:6-11/우리가 아직 연약한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한 때에, 그리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가장 위대한 증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증거로 보내 주신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요일4: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화목제물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즐거워할 때 하나님은 가장 만족해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만족한 삶을 사시고 날마다 좋은 것으로 채워 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다른 어떤 노력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더욱더 간절히 구하고 찾는 일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하십니다. 이런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