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 기부금 모금에 대한 조언 -모든 사람들을 찾아갈 것
길버트 테넨트 목사가 또 다른 계획을 들고 나를 찾아온 것은 이 무렵이었다. 그는 새 교회 건립을 위한 기부금을 모으고 있다면서 도와 달라고 했다. 원래 화이트 필드 목사의 제자들이었던 장로교 신자들을 모았는데 그들을 위해 교회를 지을 생각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빈번하게 기부금을 부탁해서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목사는 내 경험으로 볼 때 씀씀이가 너그럽고 공공심이 투철한 사람들의 이름이라도 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내 부탁을 친절하게 들어준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의 부탁에 시달리도록 만드는 것은 나답지 않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부탁 또한 거절했다. 목사는 그렇다면 조언이라도 해달라고 했다. 내가 대답했다.
“조언이라면 기꺼이 해드릴 수 있습니다. 우선, 기부금을 내줄 것 같은 사람들을 모두 찾아가세요. 그 다음에는 낼지 안 낼지 확실치 않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기부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을 보여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절대로 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을 빼놓지 말고 찾아가십시오. 목사님이 잘못 판단한 걸 수도 있으니까요.” 내 말에 목사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맙다면서 충고대로 따르겠노라고 했다. 그는 정말 내가 충고한 대로 모든 사람에게 기부를 부탁했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기부금을 모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아치 가에 아주 크고 멋진 교회를 지었다.
비포장 도로 개선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
우리의 도시는 널찍하고 곧게 뻗은 길들이 직각으로 교차되어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 길이 포장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비라도 오는 날이면 커다란 마차 바퀴에 패어 진창이 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건너다니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리고 마른 날에는 먼지가 또 문제였다. 나는 저지 시장 근처에 살았는데, 그곳에서도 주민들이 장을 볼 때면 진흙탕을 건너느라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시장 한가운데부터는 벽돌이 깔려 있어서 일단 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괜찮았지만, 그곳까지 가려면 신발이 흙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얘기도 하고 글도 써서 벽돌 포장도로와 시장 사이의 길을 돌로 포장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신발을 버리지 않고 편안하게 시장을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길은 여전히 비포장 상태여서 마차가 진흙탕을 지나 포장된 길로 들어서면 마차에서 진흙이 떨어져 순식간에 길 전체가 더러워졌다. 아직 거리 청소부가 없던 때라 청소할 사람도 없었다.
나는 얼마간 수소문한 끝에 거리 청소를 할 가난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구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집 앞 길을 깨끗하게 청소해주면 각 가정에서 한 달에 6펜스씩 거둬주기로 약속했다. 그런 다음 이 적은 비용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정리해 인쇄했다. 신발에 흙을 묻힌 채 집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집이 지저분해질 일이 없고, 사람들이 시장에 편하게 갈 수 있기 때문에 상점에 손님이 더 많아질 것이며, 바람이 부는 날에도 먼지가 상점 물건에 앉지 않는 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 인쇄물을 집집마다 돌리고 나서 하루 이틀 뒤에 다니면서 6펜스를 내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할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한 명도 빠짐없이 서명을 해주었고 한 동안 계약대로 아무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시장 주변의 포장도로가 깨끗해 진 것을 보고 좋아했고, 그렇게 해서 모두가 편리해졌다는 걸 알고는 다른 길도 포장되길 바랐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기부금을 내겠다고 했다.
얼마 뒤에는 시가지 포장에 관한 법안을 작성해서 주의회에 제출했다. 그때가 1757년, 내가 영국에 건너가기 직전이었다. 법안은 내가 떠날 때까지도 통과되지 않다가 과세 방법이 약간 수정되어 통과되었다. 이 부분은 내 원래 안보다 별로 나아보이지 않았지만 다만 도로 포장에 가로등 설치 계획까지 첨가된 것은 굉장한 성과였다. 가로등이 처음 설치된 것은 고(故) 존 클리프턴 씨 덕분이었다. 그가 자기 집 대문에 등을 하나 달아놓았는데, 그 등 때문에 굉장히 편해졌다고 느낀 사람들이 도시 전체를 그런 등으로 밝히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가로등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일 역시 내 공으로 돌아왔지만 그것은 순전히 존 클리프턴 씨 덕이었다. 나는 그저 그가 한 일을 따라 했을 뿐이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처음 런던에서 들여온 둥근 모양의 램프를 다른 모양으로 바꾼 것이 전부였다. 둥근 램프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불편했다. 아래에서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연기가 위로 잘 빠져나가지 못하고 둥근 램프 속에서 빙빙 돌았다. 그래서 램프에서 나와야 하는 빛이 연기에 가려졌다. 뿐만 아니라 번거롭게 매일 램프를 깨끗이 닦아야 했고, 닦다가 조금 실수라도 하면 깨져서 완전히 못 쓰게 되었다. 이런 단점을 없애기 위해 나는 편편한 유리 네 장으로 램프를 둘러쌌고 위에는 깔때기 모양의 긴 통풍구를 달아 연기가 잘 빠지게 했다. 또 밑에는 공기구멍을 만들어서 연기가 위로 빨려 올라가게 했다. 이렇게 하니 램프가 늘 깨끗할 뿐 아니라 런던의 램프처럼 몇 시간도 못 가서 어둑해져버리는 일 없이 아침까지 환했다. 혹시 건드리다가 실수를 해도 유리판 하나만 깨졌기 때문에 수리하기도 간단했다.
런던의 복스홀 공원에 있는 둥근 램프는 밑에 구멍이 있어서 늘 깨끗했는데, 그걸 보면서 나는 왜 런던 사람들이 가로등에도 그런 구멍을 내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구멍은 다른 목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구멍으로 가는 아마 끈을 늘어뜨려 심지에 불이 금방 붙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구멍으로 공기를 들여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한 듯했다. 그래서 가로등이 켜지고 몇 시간만 지나면 런던 시가는 어둑어둑해졌다.
개선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다 보니 또 한 가지 떠오르는 일이 있다. 런던에 있을 때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훌륭한 분이며 수많은 공공사업을 추진한 포더길 박사에게 어떤 일을 제안한 적이 있다. 내가 가만히 보니 런던 거리는 전혀 청소를 하지 않아 날씨가 맑은 날이면 온통 먼지가 날렸다. 그러다가 비가 오면 먼지가 진흙으로 변했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진흙이 점점 더 쌓여 나중에는 다닐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빗자루로 치워놓은 길로만 간신히 다닐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날이 개면 진흙을 치워야 했는데 이것은 굉장히 고된 작업이었다. 거리의 진흙을 긁어내 뚜껑이 없는 수레에 ㅇ싣고 운반하다보면 수레가 흔들리면서 진흙이 양쪽 길로 떨어졌다. 어떤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떨어져 그들이 짜증을 내기도 했다. 길의 먼지를 쓸어내지 않는 이유는 먼지가 상점이나 집의 창문으로 날아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나는 아주 빠른 시간에 비질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어느 날 아침, 행색이 초라한 여자 하나가 크레이븐 가에 있는 내 집 앞을 자작나무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여자느 ㄴ병석에서 막 일어난 사람처럼 얼굴이 창백하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누가 시켜서 청소를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닙니다. 돈 한 푼 없는데 일거리를 얻기도 힘들어서 높으신 분들 집 앞을 청소하면 얼마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이러는 거랍니다.” 나는 그녀에게 거리를 다 청소하면 1실링을 주겠다고 했다. 그때가 9시였는데 여자는 12시에 와서 1실링을 달라고 했다. 그녀가 비질을 꽤 느릿느릿 하는 모습을 아침에 보았던 터라 일을 그렇게 빨리 끝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보내 확인하게 했더니, 길 전체가 아주 깨끗해졌고 먼지는 길 가운데 있는 하수구에 다 쌓여 있더라고 전했다. 이 먼지는 나중에 비가 내릴 때 빗물에 쓸려갔으므로 길은 물론이고 하수구까지 깨끗해졌다.
그렇게 허약한 여자가 세 시간 만에 거리 청소를 했다면 건강하고 히쎈 남자는 시간이 그 절반밖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좁은 도로에는 하수로를 길 양쪽에 만들기보다는 길 한가운데에 하나만 만드는 것이 편하다는 얘기를 먼저 해야겠다. 거리에 떨어지는 빗물이 양쪽에서 한 가운데로 모이면 물살이 세져서 먼지를 모두 쓸어간다. 하지만 빗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면 대개는 물살이 약해져서 먼지를 쓸어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진창을 만들어놓는다. 그러면 마차 바퀴와 말발굽에 진흙이 보도로 튀어 거리가 지저분하고 미끄러워지며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포더길 박사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런던과 웨스트민스터의 거리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청소하고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제안합니다. 우선 관리인 몇 명을 고용해서 맑은 날에는 먼지를 쓸게 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진흙을 긁어내게 합니다. 여러 도로와 골목길을 몇 구역으로 나눈 다음 관리인 한 명당 한 구역을 배정합니다. 그리고 빗자루를 비롯한 청소 도구들을 지급해서 관리인이 각자 재량껏 가난한 사람들을 고용해 일을 시키도록 하는 겁니다.
건조한 여름에는 상점과 가정집에서 창문을 열기 전에 먼지를 쓸어다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모아놓습니다. 그러면 거리 청소부들이 뚜껑 달린 손수레에 실어가는 겁니다.
긁어낸 진흙은 한군데 모아두면 마차 바퀴나 말발굽에 밟혀 다시 퍼져버리므로 거리 청소부들의 수레를 좀 특별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몸통을 바퀴 위에 높지 달지 말고 낮게 답니다. 수레 바닥은 격자 모양으로 만들고 그 위에 짚을 깝니다. 이렇게 하면 진흙의 물기가 밑으로 빠지고 수레에는 흙만 남습니다. 무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이 빠지니 수레는 훨씬 가벼워집니다. 이런 수레들을 적당한 간격으로 놓고 바퀴 하나짜리 손수레로 진흙을 옮겨 거기에 싣습니다. 그런 다음 진흙의 물이 다 빠지면 수레에 말을 달아서 옮기는 겁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마지막 부분은 실행 가능성이 낮을 듯도 했다. 좁은 길에 수레를 늘어놓고 진흙의 물을 빼고 있으면 통행에 방해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상점들이 문을 열기 전에 먼지를 쓸어서 버리는 것은 낮이 긴 여름에는 특히 도움이 되는 좋은 제안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어느 날 아침 7시에 스트랜드 가와 플리트 가를 걸으면서 보니 해가 뜬 지 세 시간이 지나 날이 훤히 밝았는데도 문을 연 상점이 하나도 없었다. 런던 사람들은 밤에는 늦도록 촛불을 켜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해가 뜨면 잠을 잤다. 자기들이 원해서 그러면서도 양초세가 높다느니 수지 값이 비싸다느니 하면서 툭하면 불평을 했는데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런 사소한 일들은 신경 쓰거나 얘기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 먼지가 어떤 한 사람의 눈에 들어가거나 하나의 상점 안에 날리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된다면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하찮아 보이는 이런 일에 신경을 쓴다고 해서 심하게 비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행복은 어쩌다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횡재가 아닌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서 느끼는 것이다. 가난한 젊은이에게 면도하는 법과 면도칼을 다루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천 기니의 돈을 주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다. 돈은 금방 써버리고 나서 바보처럼 써버렸다는 후회만 하게 되지만, 면도하는 법을 배우면 이발소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이발사의 더러운 손가락과 입 냄새, 무딘 면도날 때문에 짜증날 일도 없다. 뿐만 아니라 아무 때나 편한 시간에 면도할 수 있고 좋은 면도칼로 면도하는 즐거움을 매일 누릴 수 있다. 내가 오랫동안 아주 행복하게 살아온 사랑하는 이 도시와 아메리카의 여러 도시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얼핏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런저런 일들을 몇 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