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4월 24일 〈빨간 머리 앤〉의 캐나다 소설가 루시 몽고메리가 세상을 떠났다. 〈빨간 머리 앤〉의 앤은 11∼16세, 후속작 〈에이번리의 앤〉의 앤은 16∼18세, 〈래드먼드의 앤〉의 앤은 18∼22세이다. 연작 장편의 앤은 점점 나이가 들어 마지막 〈앤의 추억의 나날〉에서는 75세까지 도달한다.
〈빨간 머리 앤〉의 앤은 고아원 출신으로 순수하고 감성이 풍부한 앳된 소녀이다. 앤이 매슈와 마릴라 남매의 집에 오게 된 것은 입양기관 담당자의 실수 탓이었다. 둘 다 독신으로 농사를 짓는 남매는 농장일도 거들 수 있는 남자아이 입양을 원했는데 뜻밖에 여자아이 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아이를 데리러 역에 갔던 오빠 매슈는 여자아이가 온 데 놀라지만, 앤의 천진난만하고 사람 끄는 힘에 고혹되어 반해버린다. 차분한 마릴라는 꼬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입양기관과 접촉한다. 그런데 앤을 본래 입양하기로 되어 있던 사람이 일꾼들을 혹사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위인이었다.
마릴라는 앤을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 이후 마릴라는 아이의 순수성에 매료되어 급기야는 “앤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이라고 생각할 만큼 앤을 좋아한다. 앤은 매슈와 마릴라에게 인생의 즐거움 그 자체가 된다.
앤도 매슈와 마릴라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이윽고 앤은 교원학교에 수석 합격한다. 재학 중에도 모범 학생으로 인정되어 졸업 때에는 대학교 입학 장학금도 받는다. 하지만 매슈가 병으로 죽고 마릴라의 건강도 악화되자 앤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마을학교 교사가 된다.
앤에게 ‘빨간 머리’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친구 길버트가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길버트도 교원학교에 다녔다. 세월이 흐르면 길버트와 앤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그렇게 볼 때 〈빨간 머리 앤〉은 성장소설이자 청춘소설이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소녀의 이야기, 얼마나 흐뭇한가!
앤은 말이 많다. 아이가 말이 많다는 것은 호기심과 감성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또 아이를 품어주는 환경이 그만큼 자유롭고 너그럽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사람의 지능이 어릴 때 입과 손을 얼마나 많이 움직였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과학적 사실을 교육정책 입안자와 부모들은 명심해야 한다.
“말이 많다!”, “시키는 대로 해!”, “공부나 해!”라고 아이를 윽박지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말 많으면 빨갱이”로 모는 사회가 걱정스럽다. 현진건은 〈고향〉에서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라고 증언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