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보다 더 아프고 중생보다 더 기쁜 부처 마음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는 것은 다 자기 인생의 근본을 밝히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기 인생의 근본을 깨우쳐주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본시 우리의 사량분별이나 이론으로는 얻을 수도 없고, 가르치거나 배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은 전부 근본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이고, 또 그 생각이란 것은 모두 근본 마음 에서 일어난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념을 주워 듣고 횡설수설하는 가르침을 이리저리 좇아서는 내내 그 자리에 있는 근본 마음을 볼 수 없습니다. 일체 생각이 일어 나기 전 그 자리가 바로 빛나는 우리의 본래 생명체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것도 다 이러한 근본 자기 자리를 깨치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모여 선 수행을 하자는 것도 그런 부처님의 뚯과 통하는 것으로, 본래 마음 자리 를 밝혀 수행과 생활이 둘이 아닌 불교를 일으키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울고 웃고, 앉고 서고, 가고 오고 하는 모든 인간사에서 그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느냐 하 는 것이 우리의 공부 과제입니다. 참선 수행을 하여 망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무심해지라 하니까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있는 것을 수행이요, 불교라고 착각하는데 그런 것이 불교는 아닙니다. 그런 것이 불교라면 부처님이 어찌 중생의 아픔을 알 수 있겠습니까? 본래 마음 자리를 깨쳐야 모든 것을 소소영영하게 그대로 비출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 소 친구의 슬픔에 진정으로 같이 슬퍼하며 눈물 흘릴 수 있고, 또 기쁜 일에 같이 기뻐하며 춤추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슬프고 기쁜 여운을 몇 날 몇 달 몇 해를 끌고 가지 않을 뿐이지요. 이렇게 누구보다도 중생의 삶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보고 느끼시는 분이 부처님이십니다. 한 번 분한 일이 있으면 잊지 못하고 그 경계가 지나간 뒤에도 이를 갈고 분개하여 잠을 못 이루 는 등 그런 경계에 걸려 벗어 나지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중생 세계라 합니다. 그러나 둥근 것이 오면 둥글게 비치고, 모난 것이 오면 모나게 비치고, 또 검은 것이 오면 검게, 흰 것이 오면 희게 비치는 맑은 거울과 같이 만물을 그대로 비치는 본래 마음 자리는 일단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비 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지나고 나면 그림자도 사라지기 때문에 온갖 경계를 그대로 비칠 수 있는 것이지요. 만약 우리가 온갖 희로애락을 끌어 안고 가듯 본래 마음 자리가 지나간 그림자를 담고 있다면 그렇게 모든 것을 비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라고 바늘로 찔러도 아프지 않고, 더러운 것도 상관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생들 보다 더욱 중생의 온갖 희로애락을 심각하게 느끼시되, 본래 때 끼지 않는 그 마음을 아무 구애 없이 구사하시기 때문에 중생의 고통을 해결해 줄 지혜를 갖춘 대해탈의 부처님이 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현실을 떠나 부처 되는 도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부처님의 삶을 닮아 가고자 하는 우리는 남보다 더 쓰라린 감정을 깊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괴로운 것을 어루만 져 줄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니까 온갖 것을 느끼되 자기의 근본 마음에는 털끝만치도 흔들림 없는 그런 생활을 익혀 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렇게 해서 근본 마음을 밝히고 보면 사실 어떤 행동에도 구애가 없게 됩니다. |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오늘도 미소짓는 하루 되십시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중생보다 더 아프고 중생보다 더 기쁜 부처 마음...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항상 함께 하여주심에 고맙습니다 _()_